상식과는 다르게 유럽 전체 메달 수를 합산하는 몇몇 언론과 기관들, 런던올림픽에서는 ‘상식밖’이 실현될까
▣ 브뤼셀(벨기에)=도종윤 전문위원 ludovic@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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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24일 폐막한 2008 베이징올림픽의 최다 메달 획득(우승)국은 어딜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변은 분명 “중국!”일 것이다. 혹 금메달과 은·동메달을 동등하게 보는 이라면 “미국!”이라고 대답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같은 질문을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에게 던진다면? 곧 “유럽연합!”이라는 대답이 돌아올 것이다. 물론, 쑥스러운 웃음과 함께.
베이징올림픽에서는 중국이 금메달 51개로 1위, 미국이 36개로 2위, 러시아가 23개로 3위를 차지했다. 유럽에서는 영국이 금메달 19개로 4위였고, 독일·이탈리아·프랑스 등이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메달 집계를 우리의 ‘상식’과는 다르게 한다. 유럽연합 소식을 전하는 인터넷 신문 〈EU옵저버〉는 8월25일치 기사에서 “유럽연합이 금메달 87개를 따내 우승을 차지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한술 더 떠 유럽연합 연구기관 ‘영 유러피언 페더럴리스트’와 독일의 홍보기업 ‘유로-인포메이션’의 자료를 인용해 “유럽연합 27개국이 모두 280개 메달을 따 100개의 메달을 딴 중국, 110개를 딴 미국을 월등한 차이로 따돌렸다”고 보도했다.
“중국·미국을 월등한 차이로 따돌려”
이 신문만의 엉뚱한 주장도 아니다. 유럽연합 이사회 순번 의장국을 맡고 있는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도 프랑스 선수단 환영식에 참석해 “유럽연합은 이번 올림픽에서 1위를 차지했다”며 “이는 유럽연합 시민들의 스포츠 실력뿐 아니라 공동의 가치가 가져온 승리”라고 자평했다.
사실 유럽연합이 올림픽 1위를 ‘참칭’하는 데는 정치적인 이유가 숨어 있다. 2005년 유럽헌법이 부결된 데 이어 지난 6월 아일랜드에서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새로운 유럽헌법안이라 할 ‘리스본 조약’이 부결된 것은 유럽연합 정체성의 큰 위기를 상징한다. 이 때문에 국가를 넘어 지역 공동체로 발돋움하려는 유럽에서는 국가 단위로 참가하는 올림픽에서 유럽연합의 정체성이 어떻게 드러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된다. ‘영 유러피언 페더럴리스트’ 쪽이 지난 7월8일 사르코지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럽연합이 이번 올림픽에 개별 국가 대표가 아닌 ‘유럽연합팀’으로 참가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권유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단체는 당시 “유럽연합이라는 정체성이 곧 갈등으로 얼룩진 유럽의 국가주의·민족주의 운동을 다소라도 잠재울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상당수 유럽인들은 “베이징올림픽에서 유럽연합이 우승했다”는 주장을 터무니없다고 여긴다. 영국 예비내각의 마크 프랑코스 의원은 “엉터리 통계에 불과할 뿐”이라고 코웃음을 쳤고, 대표적인 유럽 통합 반대론자로 꼽히는 니겔 페라지 유럽의회 의원은 영국 일간 와 한 인터뷰에서 “‘영 유러피언 페더럴리스트’나 ‘유로-인포메이션’ 같은 기관들은 유럽연합에서 재정 지원을 받는 어용 단체에 불과하다”며 “그들의 주장은 유럽을 하나의 국가로 만들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것일 뿐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고 폄하했다.
지금은 우스꽝스럽게 보일지라도…
처음 유럽연합의 올림픽 우승을 언급한 ‘유로-인포메이션’도, 이런 식의 메달 집계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이 업체는 “이런 비교가 완벽하게 공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개별 국가에 출전권을 주는 시스템인 올림픽에서 유럽연합이 단일 팀으로 간주되면, 유럽연합의 이미지 상승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내놨다. 사실 월드컵처럼 국가별 참가가 아닌 협회별 참가라면 ‘유럽연합팀’ 구성이 전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리스본 조약 부결로 2009년 초에 출범하려던 ‘유럽연합국’은 당분간 유보됐지만, 2012년으로 예정된 런던올림픽에서는 유럽연합이 어떤 모습으로 대회에 참가할지 지켜볼 일이다. 처음에는 우스꽝스런 주장도 시간이 지나 익숙해지면, 서서히 받아들여지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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