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가 대통령 후보 수락연설 한 민주당 전당대회, 매케인과의 5% 차이를 대선까지 이어갈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예스 위 캔, 예스 위 캔, 예스 위 캔….”(우린 할 수 있다.)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의 마일하이, 2008년 민주당 전당대회 마지막 날 행사가 열린 미식축구 덴버 브롱코스의 홈구장인 인베스코 경기장은 흥분으로 들끓었다. 영화 을 연출한 데이비스 구겐하임 감독이 만든 버락 오바마 후보의 삶을 담은 다큐가 방송된 직후였다. 함성의 정점에서 ‘주연배우’가 연단에 섰다. 함성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후보 수락 연설에 나선 오바마 후보는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눈빛을 빛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대단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단에 선 지 2분이 다 되도록 그가 한 말이라곤 잦아들지 않는 청중의 환호에 대한 답례뿐이었다. 가 인터넷 사이트에서 생중계한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 후보가 “겸허한 마음으로 미 대통령 후보직을 받아들인다”고 선언하자, 벌떡 일어선 지지자들은 다시 우레와 같은 함성을 토해냈다.
킹 목사 연설 꼭 45년째 되는 날
이어 연설이 시작됐다. 오바마 후보가 맨 먼저 감사를 표한 건 자신의 경쟁자였던 힐러리 로댐 클린턴 상원의원이었다. 이어 그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입에 올렸고, 와병 중에 지지연설을 해준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 등을 차례로 거론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었다.
“2004년 전당대회에서 내 지난 삶에 대해 얘기했다. 최선을 다해 일하고 또 자신을 희생한다면, 우리 다음 세대는 스스로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그게 바로 ‘미국의 약속’이다. …232년 미국의 역사 속에서 그 ‘약속’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평범한 시민들은 용기를 내어 일어섰다. 그리고 그 ‘약속’을 지켜냈다. 우리는 지금 다시 그같은 순간에 처해 있다. 전쟁과 경제 위기 등으로 ‘미국의 약속’이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잘못된 정책 대응이 불러온 결과다. …8년으로 충분하다. 오늘밤 미국인들은 민주당원이든, 공화당원이든, 지지정당이 없는 무당파이든 21세기에 미국의 약속을 되살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공화당은 세 번째 임기를 차지하려고 한다. 미국을 너무나 사랑하기에, 앞으로의 4년이 지난 8년 세월과 똑같아지도록 내버려둘 수 없다. 오는 11월4일 우리 모두 일어서서 외쳐야 한다. 8년으로 충분하다고.”
격정적인 연설이 이어질 때마다, 청중은 소용돌이쳤다. “8년으로 충분하다, 8년으로 충분하다, 8년으로 충분하다….” 환호성은 구호가 돼 메아리쳤다. 전당대회 기간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존 매케인(McCaine) 공화당 후보가 부시 대통령과 똑같다는 뜻으로 ‘맥세임’(McSame)이란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8만4천여 명의 인파가 꽉 들어찬 경기장은 오바마 후보가 46분여 연설을 이어가는 동안 갈수록 열기를 더해갔다. 이날 연설에서 오바마 후보는 시종 강한 톤으로 부시 대통령과 매케인 후보를 정면 비판했다.
“매케인 후보의 의회 표결 기록을 보면, 90% 이상 부시 대통령과 뜻을 같이했다. 10%의 차이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모험을 할 생각은 없다. …매케인 후보가 부시 대통령의 행적을 좇아, 거친 언사와 나쁜 전략을 고집한다면 그건 그의 선택이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변화는 그런 게 아니다. …매케인 후보가 이런 문제들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는 건 아니다. 다만 매케인 후보는 문제가 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어 그는 자신의 정책을 하나하나 제시해나갔다. “이라크전쟁을 책임 있게 끝내겠다.” “아프간에서 알카에다·탈레반과의 싸움을 끝마치겠다.” “모든 미국인이 감당할 만한 수준의 의료체계를 갖추겠다.” “노동자 가정 95%의 세금을 감면하겠다.” “10년 안에 중동 원유에 대한 의존에서 탈피하도록 하겠다.” “앞으로 10년 동안 재생 가능 에너지 개발에 1500억달러를 투자하겠다.” “미래의 분쟁에 맞게 미군을 새롭게 만들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단합’을 강조했다. 미국민의 ‘공통의 꿈’을 말했다. ‘초당적 협력’을 외쳤다. 청중은 다시 흥분했다. 1963년 마틴 루서 킹 목사가 워싱턴의 링컨기념관 앞에서 열린 대규모 군중집회에서 ‘내겐 꿈이 있습니다’란 연설을 한 지 꼭 45년째 되는 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유색인종’이 주요 정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된 게다.
전당대회 직후 여론이 그대로
2년에 한 번씩 의회 선거를, 4년에 한 번씩 의회와 대통령 선거를 함께 치르는 미국에서 정치는 곧 선거운동이다. 그 꽃은 공화·민주 양대 정당의 전당대회. 그래서 전당대회 전 과정은 일종의 ‘인포머셜’(정보를 전달하는 상업광고)로 부를 만하다. 각 정당은 정강·정책을 구체화해 유권자들에게 제시하고, 자기 당 후보의 삶과 철학을 알려 부동표를 모으는 기회로 전당대회를 활용한다. 텔레비전 프로듀서들과 영화감독, 홍보전문가, 연설문 작성 전문가 등이 총출동해 유권자들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단어 하나하나까지 꼼꼼히 살피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선거캠프에서 전략가로 일했던 정치분석가 마크 펜은 8월19일 인터넷매체 에 올린 글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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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축구 슈퍼볼 경기가 열리는 날, 야구 월드시리즈의 마지막 7차전이 열리는 날, 그리고 쇼프로 의 마지막 경연이 펼쳐지는 날, 대부분의 미국인들은 일찌감치 텔레비전 앞에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4년마다 열리는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가 열리는 날도 마찬가지다.”
사실 대선이 열리는 해 여름에 개최되는 각 정당의 전당대회는 후보자를 선출하는 ‘통과의례’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대통령의 임기 중반에 치러지는 의회선거(중간선거) 직후부터 차기 대선주자 결정을 위한 각당의 경선이 불을 뿜기 때문에, 전당대회 몇 달 전에 후보자는 사실상 결정된다. 정작 전당대회가 중요한 이유는 행사 자체가 일종의 ‘정치적 분수령’ 노릇을 해왔기 때문이다. 마크 펜의 글을 다시 훑어보자.
“지난 60년 역사를 놓고 볼 때, 전당대회 직후 치러진 여론조사 결과 뒤처졌던 후보가 당선에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때로 전당대회 뒤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줄어들고, 이어 벌어지는 텔레비전 토론이 판세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전당대회 이후 실제 선거일까지 유권자들이 표심을 바꾼 사례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그해 치러지는 선거의 ‘쟁점’도 전당대회를 거치며 만들어진다. 최근 몇 차례 미 대선에선 외교·안보와 경제 문제 둘 중 하나가 선거 최대의 쟁점으로 떠오르는 일이 되풀이돼왔다.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공화당이 외교·안보 분야에서 우위를 점해온 반면 민주당은 경제 문제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자극해왔다. 강점을 보이는 분야를 누가 먼저 쟁점화해내느냐에 선거의 성패가 달렸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2004년 대선이 단적인 사례다. 이라크에서 발목이 잡히기 시작한 부시 대통령에 맞서 존 케리 상원의원을 후보로 내세운 민주당은 전당대회 이후 전혀 ‘탄력’을 받지 못했다. 대다수 언론은 케리 후보가 선전했다는 평가를 내렸지만, 지지율 급반등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당시 전당대회에서 민주당은 케리 후보가 ‘베트남전 전쟁영웅’이며, 따라서 이라크전쟁을 훌륭히 수행해낼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집중 부각시켰다. 현직 대통령으로 대테러 전쟁을 진두지휘하는 부시 대통령에 맞서기에는 지나치게 수세적인 대응이었던 게다. 결국 쟁점은 ‘외교·안보’로 굳어졌고, 부시 대통령은 텔레비전 토론에서 참패하고도 실제 선거에선 낙승을 거뒀다.
올해는 어떨까? 퀴니팩대 여론조사연구소가 지난 8월12~17일 미 전역에서 1547명의 투표 의사가 있는 유권자를 상대로 실시해 8월20일 내놓은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응답자의 44%가 이번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로 ‘경제 문제’를 첫손에 꼽았다. ‘이라크전쟁’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12%였고, 10%는 고유가로 인한 에너지 위기를 꼽았다. 경제 문제를 좀더 구체적으로 보자.
매케인의 지지자 클린턴?
조사 결과 응답자의 86%는 현재 미국의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거나 ‘나쁘다’고 답했고, ‘좋은 편’이라고 답한 응답은 12%에 그쳤다. ‘아주 좋다’는 답변은 단 1%에 그쳤다. 오바마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가 ‘나아질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38%에 달했다. ‘나빠질 것’이라고 답한 이들은 22%였고, 응답자의 29%는 ‘지금과 비슷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면 매케인 후보가 당선되면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는 20%였고, 21%는 ‘나빠질 것’이라고 답했다. ‘지금과 비슷할 것’이란 답변은 무려 49%에 달했다. 오바마 후보에겐 유리한 국면이 조성된 셈이다. 후보 수락 연설에서 오바마 후보가 각종 국내 정책을 구체적으로 나열하면서 쟁점화에 나선 것도 이 때문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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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대회에 앞서 대부분의 미 언론은 오바마 후보의 최대 과제로 ‘힐러리 클린턴 의원 지지층을 어떻게 다독일 것인가’를 꼽았다. 대회를 앞두고 발표된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 민주당 지지층의 75%만이 오바마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이라고 답한 탓이다. 심지어 와 〈ABC방송〉이 전당대회 직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클린턴 의원 지지자 가운데 오바마 후보를 지지하겠다는 응답자는 42%에 불과했다. 20%는 차라리 매케인 후보에게 표를 줄 것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에 매케인 후보 진영이 내놓은 4편의 신작 텔레비전 선거광고 가운데 3편이 이 문제를 파고든 것도 이 때문이다. 매케인 후보 공식 사이트(johnmccain.com)에 올라온 광고 내용은 대충 이런 식이다.
새벽 3시, 침대에서 아이가 곤히 자고 있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온다. 국가적 위기 상황이다. 이어 클린턴 의원이 경선 기간에 오바마 후보를 공격하던 동영상이 등장한다. “매케인 후보가 백악관으로 가져갈 만한 평생의 경험이 있음을 잘 알고 있다. 반면 오바마 후보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라곤 200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명연설을 했다는 점이 고작이다.” 이어 점잖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힐러리가 맞다. 매케인 후보를 대통령으로.”
또 다른 광고에선 폭넓은 지지를 얻은 클린턴 의원이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지 못한 점을 꼬집는다. 어김없이 클린턴 의원이 경선 당시 오바마 후보를 비판하는 동영상이 등장하고, “오바마는 진실을 싫어한다”는 말로 매듭짓는다. 세 번째 광고에선 아예 클린턴 의원 지지자였던 여성이 출연해 매케인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그는 “수많은 민주당원들이 매케인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바꿨다”며 “그렇게 해도 괜찮다”고 시청자를 ‘안심’시킨다.
매케인 후보로선 아쉬울 테지만, 민주당의 ‘내분’은 이번 전당대회를 통해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 힐러리 클린턴 의원과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은 8월26일과 27일 각각 연단에 서 오바마 후보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 의사를 밝혔다. 클린턴 의원은 특히 8월27일 후보 선출을 위한 호명투표(각 주 대의원들이 차례로 지지 후보를 밝히는 과정) 도중 “단합의 정신과 승리의 목표를 위해 투표를 거치지 말고 오바마 후보를 만장일치로 대선 후보로 지명하자”고 제안해 갈채를 받기도 했다. 이를 두고 칼럼니스트 크리스토퍼 하이예스는 8월27일 인터넷판에 올린 글에서 “클린턴-오바마 갈등은 신기루에 불과하다”며 “이는 매케인 후보가 부추긴 정도가 아니라, 아예 만들어낸 것”이라고 꼬집었다.
일부 차이는 있었지만, 전당대회 전까지 오바마 후보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매케인 후보에 5%포인트 남짓의 우위를 보여왔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있는 공화당 쪽의 반격이 만만찮을 것임은 자명하다. 지미 카터(1980)·월터 먼데일(1984)·마이클 듀카키스(1988) 후보 등도 전당대회 직후 두 자릿수 이상의 지지율 반등세를 경험했지만, 공화당 전당대회로 분위기가 반전되면서 로널드 레이건(1980·1984)·조지 부시(1988) 후보에게 패한 바 있다. 미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전당대회 이후 오바마 후보가 지지율 격차를 10%포인트 이상으로 벌린다면, 백악관 입성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내다본다. 공화당 전당대회 첫날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 등 전통적 지지층 이탈을 부추긴 장본인들이 대거 매케인 후보 지지연설에 나설 계획임에 비춰, 공화당의 ‘자충수’도 기대해볼 만하단다.
희망과 두려움, 무엇을 발견할까
“오바마 후보가 맞닥뜨린 가장 큰 난제는 미국인들이 변화를 원하고는 있지만, 동시에 그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고 있다는 점이다.” 칼럼니스트 월터 샤피로는 8월25일 인터넷매체 에 올린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오바마 후보가 미 민주당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된 것 자체로 미국은 이미 역사적인 변화를 경험했다. 지구촌은 오는 11월4일 미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만날 수 있을까? 미국인들이 그 변화에서 ‘희망’을 발견하느냐, ‘두려움’을 발견하느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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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미국 정치에서 전당대회는 일종의 축제다. 그 절정은, 물론 후보자의 수락 연설일 터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무명’의 정치인이 명연설을 남겨 눈길을 끌기도 한다. 버락 오바마 후보도 2004년 전당대회에서 남긴 명연설로 일약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은 바 있다. 올해 민주당 전당대회에선 누가 ‘스타덤’에 올랐을까? 데니스 쿠시니치(61) 하원의원을 단연 첫손에 꼽을 만하다.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를 지역구로 임기 2년의 하원의원에 여섯 차례 내리 당선된 그는 20대 초반 일찌감치 정계에 뛰어든 풀뿌리 정치인 출신이다. 시 의원으로 출발해 시장에 당선된 게 불과 서른 살 때여서 ‘소년 시장’으로 불리기도 했다. 클리블랜드 시장 시절 시영 전력회사의 민영화를 반대하다 이권에 개입한 폭력조직의 암살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던 그는 민주당 진보파의 ‘맨 왼쪽’에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전평화운동에도 적극 가담해 지난 2003년엔 간디평화상을 받았다. 그는 지난 2004년에 이어 이번 대선에도 당내 경선에 출마했지만, 단 1명의 대의원도 얻지 못한 채 일찌감치 선거운동을 접어야 했다.
“민주당원 여러분, 11월을 맞을 준비는 되셨나요?” 민주당 전당대회 둘쨋날인 8월26일, 잇따른 연설에 지친 청중 앞에 수줍은 표정의 쿠시니치 의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2008년 선거해를 맞아, 우리 민주당원들은 미국민을 깨워내야 합니다. 깨어나라, 아메리카!” 행사가 열린 덴버 시내 펩시센터 장내엔 군데군데 빈자리마저 눈에 띄었다. 아랑곳 않은 채 그는 연설을 이어갔다.
“지난 2001년 정유업체와 군수업체가 미국을 장악했다. 그 결과 미국의 국채가 4조달러 이상 늘었다. 몇백만 미국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불의한 전쟁에 비용을 대기 위해 몇조달러의 차관을 끌어다썼다. 미군 장병과 무고한 이라크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 수억달러가 투여됐다. 이라크와 아프간 재건 비용을 충당하느라, 정작 미국에선 교량 하나 증축할 경비가 없다.”
짧은 순간 연설은 외침으로 바뀌었다.
“보험업계가 의료보험을 접수하려 한다. 깨어나라, 아메리카! 제약업계가 약값 책정에 관여하려 한다. 깨어나라, 아메리카! 투기업자들이 월스트리트를 장악하려 한다. 깨어나라, 아메리카!”
잠잠하던 장내가 어수선해지는가 싶더니 한명두명 손뼉을 치기 시작한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깨어나라’고 외친다. 얼굴엔 웃음까지 띠고 있다.
“원유 장악을 위해 이라크에 갔음에도, 정작 여러분의 지갑에서 더 많은 돈을 ‘시추’하려 든다. 깨어나라, 아메리카. 부시 행정부는 미국민의 통화 내용을 감청할 수 있지만, 우리의 창조적 정신까지 도청할 순 없다. 우리의 우편함을 열어볼 순 있어도, 경제적 기회를 열어내진 못한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은 추적해내면서도, 경제를 어떻게 운영해나갈지는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깨어나라, 아메리카!”
웃던 얼굴이 조금씩 상기된다. 진지해진 표정에선 힘이 느껴진다. 어느새 하나가 된 청중은 쿠시니치 의원의 ‘팔뚝질’을 따라하고 있다. “그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정책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앉아서 보고만 있지 말고 분연히 일어나라는 말이다. 평화를 위해 일어나라. 번영을 위해 일어나라. 교육을 위해….”
〈AP통신〉은 이날 그의 연설을 “청중에게 전기충격을 주는 듯했다”고 표현했다. 6분 남짓 사자후를 토해낸 그가 무대 뒤로 사라지고, 다음 연사가 연단에 선 뒤에도 청중은 한동안 “깨어나라”고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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