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그 많은 복구비용은 어디로 갔나

등록 2008-08-29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4천만달러 들인 교도소 건설 중단 등 이라크 재건 총체적 관리 부실… ‘치안 유지’ 위한 미 무기 수입에는 올해만 127억달러 써</font>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제2의 저항세력.’ 지난 2006년 12월 영국 일간지 은 이라크의 전후 재건·복구를 가로막고 있는 만연한 부패와 예산 낭비를 이렇게 표현했다. 끊임없는 유혈로 치안 불안을 부추기는 저항세력만큼이나 위험하다는 얘기다. 상황은 미국 쪽도 마찬가지여서, 그동안 크고 작은 부정·부패 사건이 끊이지 않아왔다. 조지 부시 행정부가 지난 2004년 10월 이라크재건특별감사국(SIGIR·이하 특별감사국)을 설치해 감사 결과를 의회에 직접 보고하도록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6월 말 현재까지 특별감사국의 감사 결과에 따라 모두 17명이 기소돼 이 가운데 8명이 실형에 처해졌고, 5명이 재판을 받고 있다. 벌금·추징금 등도 모두 1700만달러에 이른단다.

[%%IMAGE4%%]

지난 7월 말 특별감사국은 올 2/4분기 감사보고서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 이번 보고서에서 특별감사국이 주목한 예산 낭비 사례는 바그다드 북서부 디얄라의 칸 바니 사드 교도소 건물이다. 칸 바니 사드에 교도소를 건설하기로 결정한 것은 사담 후세인 정권 몰락 직후 들어선 연합군 임시행정처(CPA) 시절이다. 미 육군 공병대가 2004년 3월 공사를 발주했고, 다국적 건설업체 ‘파슨스’가 수주를 했다. 1800명 수용 규모에 재활·직업교육 시설까지 갖춘 현대식 교도소를 설계·시공하기로 하는 이 공사는 4천만달러짜리였다.

높다란 감시초소는 들새 둥지로

애초 2004년 5월 착공해 이듬해 11월에 완공하기로 했던 칸 바니 사드 교도소 건설 공사는 첫 삽을 뜨기 전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수니파 저항세력의 공세가 연일 불을 뿜었고, 아부 그라이브 수감자 학대 사건이 터지면서 교도소 건설 자체가 성난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결국 착공 시점은 6개월여 늦어졌고, 그나마 공사 기한은 갈수록 늦춰졌다. 급기야 업체 쪽에서 완공 시점을 2008년 말로 연기해줄 것을 요청하면서, 미 당국은 2006년 6월 마침내 공사 중단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공기 연장으로 인한 비용 초과가 주된 이유였다. 〈AP통신〉은 칸 바니 사드의 현 상황을 이렇게 전했다.

“건설 현장은 텅 빈 채다. 20여 개나 되는 높다란 감시초소는 들새들이 둥지로 사용하고 있다. 벽의 갈라진 틈새는 야생동물의 안식처가 됐다. 미국 정부로서도 면이 상하는 일이지만, 일자리 창출 등 지역 경제 활성화에 대한 기대로 들떴던 현지 정치인들의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사예드 라술 알 후세이니 칸 바니 사드 시의회 의장은 〈AP통신〉과 만나 “공사가 중단된 채 방치된 교도소 건물은 거대한 괴물”이라며 “저 괴물이 막대한 재건자금과 함께 우리의 희망도 통째로 집어삼켰다”고 말했다. 후세이니 의장은 이어 “철근을 충분히 쓰지 않는 등 날림공사로 언제 무너질지 모르기 때문에 주택단지로도 개발할 수 없다”며 “그나마 감방은 튼튼한 편이니 공장으로 사용할까도 생각해봤을 정도”라고 말했다. 속 터질 일이다.

재정은 좋아지는데 사회기반시설 투자는 줄어

칸 바니 사드 교도소 신설 공사는 2007년 6월 공식 중단됐다. 공사 중단 시점에 현장에는 120만달러 상당의 건축 자재가 남아 있었다. 미 당국은 변변한 경비 인력조차 배치하지 않았고, 자재 대부분이 사라진 것은 당연했다. 특별감사국 보고서를 보면, 애초 미 당국은 파슨스 쪽에 교도소와 함께 국경경비초소·법원·경찰훈련장·소방서 건설 등 모두 53개의 공사(9억달러 규모)를 발주했다. 이 가운데 완공된 것은 현재까지 18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올봄까지 파슨스 쪽이 미 정부에서 받아낸 공사대금은 칸 바니 사드 교도소 공사대금 3300만달러를 포함해 모두 3억3300만달러에 이른다. 이 가운데 약 43%에 이르는 1억4200만달러가량은 이미 중단됐거나 폐기·취소한 공사 관련 대금이다. 총체적 관리·감독 부실이 빚어낸 희비극이다.

그나마 미국 입장에서 다행스러운 건, 이라크 정부의 재정 상태가 갈수록 좋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에서 한 발을 뺄 수 있는 여지가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특별감사국은 보고서에서 “2003년 이후 이라크가 내놓은 자체 재건·복구 자금이 500억달러에 이르면서, 같은 기간 미국이 지원한 재건·복구 비용 규모와 엇비슷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미 의회에 딸린 회계감사국(GAO)도 지난 8월5일 펴낸 보고서에서 ‘장밋빛 전망’을 부추긴다. 회계감사국은 보고서에서 “올 한 해 이라크 정부가 원유 수출로 벌어들일 금액은 670억~79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는 2005~2007년 이라크 연평균 원유 수출액의 2배를 넘어서는 규모다. 이에 따라 지난 2005년부터 쌓이기 시작한 이라크의 재정 흑자 규모는 올 연말이면 382억~503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회계감사국은 추정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재정 흑자 규모가 커지고 있음에도 이라크 정부가 최근 3년 새 사회기반시설에 대한 투자를 되레 줄였다는 점이다. 회계감사국은 보고서에서 “이라크 정부가 2005~2007년 원유설비·상수도·전력망 등 이라크 국민들의 삶의 질과 직결된 부문에 대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며 “이 기간에 이라크 정부는 연평균 △원유부 예산 92% △전력부 예산 93% △수자원부 예산 13%씩을 각각 줄였다”고 지적했다. 올 들어 관련 예산 편성을 늘리고는 있지만, 이쯤에서 의문을 가질 만하다. 그 많은 ‘돈’은 대체 어디로 간 걸까?

‘돈’의 행방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는 추적이 가능하다. 은 지난 8월1일 “이라크 정부가 치안 상황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109억달러 상당의 미국산 무기를 구매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은 미 국방부에 딸린 국방안보협력청(DSCA)이 전날 미 의회에 통보한 내용을 따 이라크 정부의 ‘쇼핑 목록’을 이렇게 전했다. ‘M1A1 에이브램스 탱크 140대, C-130 허큘리스 수송기 6대, M1117 장갑차 160대, AGM-114M 헬파이어 미사일 및 발사대를 장착한 헬리콥터 24대, 경장갑차 392대, M-72 대전차무기류 26기, 험비 장갑차량 156대….’

기실 지난 2005년 이후 이라크 정부는 미국산 무기 수입 물량을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2005년 1억3200만달러 규모의 무기를 구매한 데 이어, 2006년과 2007년에도 각각 23억달러와 45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사들였다. 미 해외무기수출법(FMS)은 5천만달러 이상의 무기를 수출할 때는 30일 이전에 이를 의회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30일 안에 미 의회가 아무런 제재 조처를 취하지 않으면 승인을 한 것으로 본다. 미 의회는 8월 한 달 휴회에 들어간 상태다. 물론 회기 중이었더라도 109억달러짜리 무기 수출에 반대표를 던질 의원은 많지 않았을 게다. 이라크에 대한 무기 수출은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되면, 올 들어서만 이라크 정부의 미국산 무기 수입액은 127억달러까지 치솟게 된다. 지난 1999~2006년 미국이 전세계를 상대로 판매한 무기가 연평균 154억달러였다.

미국이 철수를 위해 준비하는 일

〈AP통신〉은 8월21일 “이라크와 미국이 내년 6월까지 이라크 주요 도시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데 잠정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조지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수 시한을 특정하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이라며 반대해왔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라크 치안 상황이 호전되는 데 따라 미군 철수 규모를 연동시키는 방식”이라고 통신은 덧붙였다. 그러니 미군 철수는 이라크군이 얼마나 ‘준비’가 됐느냐에 달렸다. 이라크의 무기 수입이 이어질 것으로 보는 이유다. 미군이 떠난 빈자리를 중무장한 이라크군이 메운다면, 주변 국가들은 위협을 느낄 수 있다. ‘시장’은 언제나 그렇게 커져왔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