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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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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전화, 세계의 풍경] 세계 최저 요금의 비밀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월 2천 분 사용에 1만1천원 등 싼 요금제 많은 홍콩, 인구밀도 높고 가입율은 154.4%

▣ 홍콩=글·사진 이경하 전문위원 kh0617@gmail.com

홍콩 증권거래소에서 근무하는 그레이스 콴(26)의 한 달 휴대전화 요금은 150홍콩달러(약 2만원) 정도다. 퇴근 뒤 친구들과 간간이 통화하는 그는 “월 3천 분 통화에 무제한 문자 서비스면 충분하다”고 말한다. 금융·경제전문 통신사 에서 일하는 일레인 유안(30)은 콴보다 적은 ‘월 2천 분 요금제’를 사용하고 있다. 그가 한 달 휴대전화 요금으로 내는 돈은 88홍콩달러(약 1만1천원)에 불과하다.

개인 인식하는 SIM 카드 사용

홍콩의 휴대전화 요금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한국처럼 기본료에 더해 통화료가 부과되는 방식이 아닌 고정 요금제 덕분이다. 개별 통신사업자가 제공하는 각종 요금 패키지 가운데 자신의 사용 패턴에 맞춰 선택만 하면 된다. 통화 품질이 상대적으로 좋은 반면 고가의 요금제에 속한다는 ‘스마톤 보다폰’(SmarTone-Vodafone)사의 제일 비싼 요금제가 한 달 198홍콩달러(약 2만6천원) 정도니, 한국에 비해 상당히 저렴하다. 단, 일단 특정 요금제에 가입하면 최하 15개월을 사용한다는 약정을 맺어야 한다. 15개월의 약정 기간이 부담스럽거나 단기간의 홍콩 체류 때만 휴대전화를 사용할 경우에는 선불카드를 그때그때 구입해 사용하면 된다.

이렇게 저렴한 요금이 가능한 것은 홍콩 휴대전화 시장의 특수성 때문이다. 홍콩 통신청(OFTA)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8년 5월 말 현재 홍콩의 휴대전화 가입률은 154.4%다. 홍콩 전체 인구가 700만 명인데, 휴대전화 가입자 수는 1075만 명에 육박한다. 집 전화 가입률도 100%를 넘어선 지 이미 오래다. 좁은 국토에 높은 인구밀도라는 조건과 많은 무선통신 업체들의 치열한 경쟁으로 저렴한 요금제가 가능해졌다. 단말기는 특정 요금제에 가입할 경우 공짜로 받거나, 50% 이상 할인된 가격에 살 수 있다.

휴대전화 단말기 교체도 간단하다. 기계에 고유번호가 등록되는 한국과 달리 홍콩에서는 번호와 가입자 정보가 등록된 엄지손톱 크기의 ‘SIM 카드’를 사용한다. 단말기 교체 때 이 카드를 빼서 새 단말기에 장착하기만 하면 된다. 휴대전화를 분실하면 사용하던 SIM 카드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새로운 카드에 기존 정보를 인식시켜 그대로 사용하면 된다. 부작용이 없는 건 아니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리면 되찾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단말기 고유번호가 없는 탓에 분실되거나 도난당한 휴대전화가 몽콕 등지의 전자시장에서 손쉽게 거래되기 때문이다.

단말기를 한 대 마련하고 휴대전화를 이용하는 데 드는 유지 비용이 이렇듯 저렴하다 보니 상당수의 홍콩인들이 1개 이상의 번호를 사용한다. 가입률이 150%를 넘는 이유의 하나가 여기에 있다. 카우룽에서 전자제품 도매업을 하는 프란시스 령(41)은 “일과 개인 생활을 구분하기 위해 2개의 번호를 사용한다”며 “가족과 함께 쉴 때는 일 전용으로 사용하는 휴대전화를 아예 꺼놓는다”고 말했다.

어디에도 없는 ‘8’자

이왕 번호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홍콩에서 휴대전화 번호 이야기를 할 때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숫자 ‘8’이다. 중국인들은 ‘발’(發·재산을 모으다 등의 표현에 쓰이는 글자)의 발음이 비슷한 숫자‘8’을 좋아하는데, 사투리인 광둥어를 쓰는 홍콩 사람들도 이 점은 다르지 않다. 새로 번호를 개설하려고 대리점에 가면 번호들이 빽빽한 A4용지를 서너 장 주고 마음에 드는 번호를 고르라고 한다. 아무리 꼼꼼히 살펴도 ‘8’이 들어있는 전화번호를 찾기는 쉽지 않다. ‘8’자가 많이 들어간 전화번호는 통신 업체들이 경매에 붙여 고가에 팔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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