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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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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오늘을 걷다] 타이 엘리트 좌파의 자가당착

등록 2008-07-11 00:00 수정 2020-05-03 04:25

연일 ‘왕의 길’에서 시위 벌이는 PAD에 섞인 좌파들, 그들의 ‘대연정’이 궁금하다

▣ 방콕(타이)=글·사진 유재현 소설가 hyoooo@hanmail.net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①]

서울의 도심이 촛불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는 지금, 방콕에서 벌어지는 탁신 축출 집회·시위의 거점인 랏차담는의 마카완 다리 앞도 못지않게 뜨겁다. 방콕의 반정부 시위를 이끌고 있는 것은 ‘민주주의를 위한 인민연합’(PAD). 지난 5월28일 출정을 선언한 이 투쟁은 ‘탁신이 물러날 때까지 전진’을 외치며 서울과 마찬가지로 끝을 알 수 없이 계속되고 있으며, 6월20일부터는 아예 정부청사를 둘러싸고 있다.

서울의 촛불시위와 비교하지 말길…

물론 서울의 촛불시위를 방콕의 시위와 비교하는 건 불쾌한 일이다. 방콕의 시위를 선두에서 지휘하는 PAD는 다름 아닌 2006년 타이의 군부 쿠데타를 지원했던 조직이다. 2005년부터 방콕을 휩쓸기 시작한 반탁신 시위는 알려진 것처럼 군부 쿠데타 뒤 군소리 없이 깨끗하게 거리에서 사라졌는데, PAD는 방콕의 정부 청사를 탱크가 둘러싼 지 사흘 만에 ‘우리의 목적은 달성됐다’며 행복하게 해산을 선언한 바 있다. 그런 PAD가 다시 나타나 똑같은 모습으로 방콕의 거리를 휩쓰는 탓에 상황은 2006년의 ‘도돌이’로 보이고, 방콕의 거리에는 다시 쿠데타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안개처럼 흘러다니고 있다.

해산을 선언했던 PAD가 2년 만에 다시 등장한 이유는 2006년 9월의 군부 쿠데타가 ‘도루묵’이 됐기 때문이다. 알려진 것처럼 2006년 방콕으로 탱크를 끌고 와 탁신 정권을 붕괴시키고 국가안보위원회를 구성했던 쿠데타 세력은, 1997년의 민주헌법을 휴짓조각으로 만들었고 몇 주 뒤에 민정으로 권력을 이양하겠다는 ‘립서비스’를 구태의연하게 씹어먹으며 장장 15개월 동안 권력을 쥐고 있었다. 그런데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는 헌법을 개정한 뒤 총선을 치러 민간(복을 입은 군부)으로 권력을 이양한다는 타이 군부 쿠데타의 교과서를 개정할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2007년 12월의 총선에서 탁신을 등에 업은 신당인 ‘인민의 힘’이 과반에 가까운 의석으로 1당의 자리에 올라, 사막 순다라벳 정권이 등장한 게다. 기껏 일을 벌였더니 전과 달리 도루묵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분기탱천, 왕과 군부를 구하기 위해 다시 나선 PAD는 연합조직이다. 2006년이나 2008년이나 변함없이 5명의 지도부가 이들을 대표하고 있는데, 미디어계의 거물인 손디, 육군소장 출신의 참롱(우리가 알고 있는 추억의 ‘미스터 청렴결백’ 방콕시장인 그 참롱이다), 빈민운동계의 대학교수 솜킷, 전력민영화 반대투쟁으로 명성을 드높인 공기업노동자연합 사무총장 솜삭, 민주운동가 핍홉이 PAD 오총사다. 한때 탁신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다 반탁신으로 돌아선 손디를 제외한다면 쿠데타 지지 세력이라고 간단히 매도해버릴 수 없는 인물들이다. 이래서 방콕의 2008년은 2006년과 마찬가지로 외부 관전자의 머리를 헝클어버리는 묘한 마력을 과시하는데, 이 지점에 타이 정치의 험준한 산이 가로놓여 있다.

랏차담는 대로(大路). 차크리 왕조의 본궁과 별궁을 잇던 ‘왕의 길’이다. 그 길의 한쪽 끝, 별궁 쪽 운하 위에는 다리 하나가 놓여 있는데, PAD는 바로 그 다리 앞을 집회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 ‘왕에게 권력을’ ‘우리는 왕을 사랑한다’를 외치는 PAD는 자타가 공인하는 왕당파들로, 왕의 길 한구석에 모여 있는 이유는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바로 그 랏차담는의 다리 앞을 찾았던 날은 지난 6월 초. 아직 이른 오후라 지글거리는 태양이 만물을 태우고 있던 연단 주위에는 1천여 명이 모여 있었다.

정권은 악당에게서 악당에게로

마침 오총사의 대표 격인 손디가 선글라스에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패셔너블한’ 차림으로 사자후를 토하고 있었다. 뒤이어 솜삭이 흰 염소수염에 침을 튀기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탁신을 요절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집회장을 돌면서 눈에 밟혔던 건 적지 않은 50대 중반 또는 후반의 장년층 참가자들이었다. 서울시청 앞 잔디광장의 ‘고엽제 노인들’을 떠올리겠지만, 분위기가 다르다. 말하자면 인텔리의 고상한 아우라가 후광처럼 드리워져 있다. 이들이 이른바 ‘타이의 386세대’에 해당하는, 1970년대 민주화 학생운동 세대다. 한때 밀림으로 들어가 총을 잡기도 했던 이 세대는 1980년대 이후 정계와 사회·빈민·노동·여성 운동 등 여러 분야의 지도자로 성장했다. 타이 좌파는 이들을 빼고는 설명할 수 없다. 마카완 다리 앞의 집회에서 적지 않게 눈에 띄는 장년층 인텔리들의 존재는 그 좌파의 일부가 PAD에 참여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왕과 군부를 지원하는 좌파. 물론 이들에게는 왕과 군부에 대한 사랑보다는 탁신과 같은 신자유주의적 민간 파시스트 정권에 대한 혐오감이 앞선다.

PAD의 적인 탁신이 희대의 악당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권력을 이용해 부정부패를 일삼았고 시장개방·자유무역협정(FTA) 등에서 신자유주의자로서의 위상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그는 또 반인권의 상징이었다. 이른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뒤 3천여 명에 이르는 혐의자들을 재판 없이 초법적으로 처형하는 만행을 저지른 주인공이 탁신 정권이다. 남부의 무슬림 분리주의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 이래저래 탁신은 악당이다. 그러나 악당이 탁신만이 아니라는 점에서 PAD에 참여하고 있는 타이 좌파의 자가당착은 ‘노무현의 386그룹’의 자가당착을 허공에 날려버리는 힘을 과시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2005년 반탁신 투쟁의 와중에 거리에 등장한 새로운 힘들을 이끈 PAD가 몸소 운전한 탱크는 푸미폰 국왕의 개입과 함께 18번째 쿠데타를 향해 초고속으로 직행했다. 이 위대한 반자본·반신자유주의 투쟁으로 탁신 정권은 붕괴됐지만, 권력은 탁신 못지않게 신자유주의를 갈구해 마지않는 왕과 군부의 손으로 넘어갔다. 부정부패와 금권정치는 달라지지 않았고, 민주주의는 왕과 군부의 손에 넘겨져 왕궁과 병영의 똥통에 내던져졌다. 그들은 워싱턴DC의 앞잡이인 신자유주의 정권의 우두머리 탁신의 목을 베어 워싱턴DC의 또 다른 오랜 앞잡이인 왕과 군부의 손에 쥐어주기를 간절히 희망했을 뿐이다. 권력은 악당에서 악당의 손으로 넘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그놈이니 최소한 본전이라고? 이게 왜 타이 민주주의는 물론 타이 사회의 발전을 최소한 10년 이상 뒤로 돌린 역주행인지를 말하기 위해 한 악당의 업적을 돌아보자. 탁신은 줄곧 아시아 최대의 반FTA 시위를 이끌어낸(?) 신자유주의의 신실한 기수였지만, 동시에 타이 최초로 가난한 자들을 배려한 복지정책을 실현한 ‘이중트랙’(Dual Track) 정책의 장본인이었다. ‘30밧으로 병원에’란 구호로 상징되는 탁신의 의료보장제도는 병원의 높은 문턱을 죽어도 넘지 못하던 빈곤한 농민과 노동자, 빈민이 30밧을 들고 그 문턱을 넘게 했던 타이 역사상 최초의 제도였다. 농촌을 대상으로 한 무조건부 자금 지원은 이전의 어떤 정권도 거들떠보지 않던 빈곤한 농민들을 겨냥한 것이었다.

가난한 자들이 탁신을 지지한 이유

탁신이 최초로 집권한 뒤 지난 3번의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일하는 자들, 가난한 자들을 배려한 정책 덕분이었다. 방콕의 엘리트들은 탁신이 돈으로 표를 샀다고 떠들어대지만 쿠데타 뒤의 총선에서 탁신이 금권선거를 자행했다는 증거는 누구도 제출하지 못했다. 게다가 금권정치로 말한다면 탁신의 선임자들도 다를 것이 없었다.

2006년 쿠데타로 ‘30밧 의료보장제도’는 일거에 무산됐다. 탁신의 복지정책이 중단됨으로써 야기될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푸미폰 국왕은 뜬금없이 ‘충족경제’(Sufficiency Economy)란 걸 내놓았다. ‘욕심 부리지 말고 저축하며 살아라’로 요약되는 국왕의 충족경제는 오직 대다수 가난한 자들에게만 해당할 뿐 세계 최상위급 부자인 푸미폰 왕실을 비롯한 부자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없는 기만적인 유사경제 캠페인이다.

탁신과 같은 신자유주의자가 왕과 군부가 철저히 외면하던 일련의 민중적 정책에 손을 댔던 데는 표를 끌어모으기 위한 정치적 목적이 앞섰겠지만, 본질적으로는 타이 사회가 천천히라도 앞을 향해 걸어온 결과다. 타이의 노동자, 농민, 빈민은 지난 60년 동안 왕실과 탱크의 공포가 드리운 그늘에서 조금씩 벗어나왔다. 탁신이 그들의 목소리를 일부라도 수용한 것은 탱크와 왕관으로 짓누를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2006년 쿠데타 뒤 2년이 지난 지금 PAD는 재결성을 선언하고, 2006년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왕을 사랑한다’는 구호를 앞세우고, 19번째 쿠데타를 촉구하며 방콕의 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그 모든 성과를 배신하고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PAD에 참가한 타이 좌파의 자가당착은 타이 현대사를 고질적으로 농단해왔던 엘리트주의를 빼고는 설명할 길이 없다. 노동자·농민과 같은 우매한 대중에게 결코 신뢰를 보내는 법이 없던 엘리트 만능의 운동세력은 탁신을 축출하기 위해 아래가 아닌 위로 손을 내밀었다. 또한 가난한 자들이 탁신에게 보냈던 지지의 진정한 의미를 무시하고 소외시켰다. 그럼으로써 그들은 탁신의 축출을 성사시켰지만 결국 왕과 군부의 노리개가 됐다. PAD의 ‘어게인 2006’이 다시금 성공을 거둔다고 해도, 얻을 것은 왕과 군부가 쥐고 흔들어대는 기만적 민주주의, 변함없는 부정부패, 빈곤, 우민정치의 계속일 뿐이다.

역사를 고질적으로 농단해왔네

타이 민주화운동 앞에는 왕과 군부, 그리고 신자유주의의 대자본가라는 두 악당이 있다. 두 명의 악당을 단번에 모두 처단할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역사란 언제 어느 때에도 그런 식으로 충동적으로, 유아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지금 타이에 필요한 것은 60년 동안 탱크와 군주제의 우민 이데올로기로 다수를 짓밟고 군림해온 늙은 악당을 때려눕히는 일이다. 늙은 악당을 없애지 못하다면 젊은 악당을 때려눕힐 기회 또한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이므로.

소설가 유재현의 ‘아시아의 오늘을 걷다’는 비정기적으로 연재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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