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발률 높아 민간 겨냥하는 ‘대량살상무기’… 2월 말에도 파키스탄에 수출됐을 가능성 높아
▣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드디어 일을 냈다. 지난해 2월 노르웨이가 주도한 ‘집속탄 금지를 위한 오슬로 회의’는 올 2월 뉴질랜드에서 ‘웰링턴 선언’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 5월30일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집속탄금지협약’(CCM)이 탄생했다. “집속탄의 숨겨진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각국이 협력해야 한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특별 메시지를 전할 만큼 세계적 관심 속에 타결된 이 협약에는 무려 111개국이 참여했고, 오는 12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서명하는 절차만 남겨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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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개국이 참여한 ‘웰링턴 선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과 독일이 처음 개발해 사용하기 시작한 집속탄은 1960~70년대 미국이 인도차이나반도에 집중적으로 쏟아부으면서 ‘악명’을 떨쳤다. 집속탄은 큰 폭탄 하나 속에 적게는 2~3개에서 많게는 2천여 개까지 들어있는 작은 폭탄이 흩어져 터지면서 광범위한 지역을 무차별적으로 초토화시키는 무기다. 더구나 불발률이 높고 생명력도 길어 그 잠재적 위협은 치명적이다. 베트남전 당시 미국이 사용한 집속탄의 불발률은 10~30%에 달했고, 최근 개발된 집속탄도 불발률이 평균 7~14%에 이른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집속탄 피해자 통계를 모아온 ‘핸디캡인터내셔널’이 집속탄이 사용된 24개 국가를 분석해 2006년 11월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집속탄으로 인한 사상자의 98%가 민간인이다. ‘대량살상무기’가 따로 없다.
산고 끝에 태어난 집속탄금지협약에 허점이 없는 건 아니다. 집속탄 최대 생산국이자 사용국인 미국을 비롯해 이스라엘, 러시아, 중국, 인도, 파키스탄 등이 집속탄의 ‘유용성’을 내세워 협약에 참여하지 않은 탓이다. 더블린 회의 기간에 최대 논쟁거리가 협약국과 비협약국 간의 관계를 다룬 협약 제21조였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협약에 적극 참여한 유럽 각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으로 미국과 긴밀한 군사적 동맹관계를 맺고 있어서 논쟁은 쉽게 결론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협약국은 비협약국이 집속탄금지협약에 동참하도록 독려하되, 그들과의 공동 군사작전에는 참여할 수 있다”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물론 협약국은 집속탄을 개발·생산·비축·거래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와 함께였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집속탄 문제에서도 한국은 미국의 ‘동맹국’이다. 더블린 회의 기간에 미국이 시끌벅적하게 반대 로비를 벌인 반면, 한국은 소리소문 없이 집속탄 금지라는 세계 여론을 역행하고 있었다. 현재 세계적으로 집속탄을 생산하는 국가는 한국을 포함해 34개국이며, 특히 한국은 중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유이한’ 집속탄 수출국이다. 미국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가 2005년 4월 내놓은 관련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그리스와 함께 미국이 생산하는 집속탄을 종류별로 모두 수입하는 집속탄 수입국이기도 하다. ‘윤리투자’를 내걸고 있는 노르웨이의 연금펀드(GPFG)는 한국 내 집속탄 생산기업인 풍산과 한화를 2006년 12월과 2008년 1월 각각 ‘투자금지대상’으로 지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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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산·한화, 노르웨이 연금펀드 ‘투자금지 대상’
두 기업은 최근 다시 한 번 국제 인권단체들의 관심을 끌었다. 국제사회가 집속탄금지협약 체결을 위한 막바지 노력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 3월 풍산과 한화 두 기업이 집속탄을 집중적으로 사용하는 파키스탄에 다량의 집속탄두를 수출한 사실이 드러난 탓이다. 파키스탄 세관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월23일 부산항을 출발해 3월19일 파키스탄 카라치항에 닿은 ‘BBC 아일랜더’호에는 다음과 같은 두 기업의 군수품이 실려 있었다.
우선 한화가 선적한 ‘다목적 소탄’(MPSM·Multi-Purpose Submunition)은 2.75인치 로켓탄용 탄두로, 헬리콥터나 항공기에서 투하되는 집속탄이다. 익명을 요구한 영국의 한 군사 전문가는 이 탄두가 미국의 히드라 로켓으로 발사되는 ‘M73’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집속탄 반대 캠페인을 꾸준히 벌여온 ‘집속탄반대연합’(Cluster Munition Coalition)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이 탄두는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군이 1만800여 발을 쏟아부은 것과 같은 종으로, 불발률은 평균 6%다.
풍산 쪽이 선적한 ‘제품’으로 넘어가보자. 파키스탄 세관 자료엔 세부 내역이 공개돼 있지 않지만, 지난 2006년 여름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군이 1800여 발을 퍼부었던 ‘155mm DPICM’ 집속탄과 비슷한 탄두일 것으로 추정된다. 근거는 크게 3가지다. 첫째, 풍산은 파키스탄 군수품제작소(POF)와 지난 2006년 말 ‘155mm DPICM’ 거래 계약을 맺은 바 있다. 둘째, 카라치항에 도착한 풍산의 제품이 POF 하청공장인 산즈왈 공장으로 곧장 수송됐다. 셋째, 카라치항에 ‘물건’이 도착한 지 4주 만인 지난 4월12일 아슈파크 파르베즈 키야니 파키스탄군 참모총장이 POF 의장인 사이드 사바핫 후사인 중장으로부터 ‘155mm DPICM’을 전달받는 ‘탄두 이전식’이 열렸다. 파키스탄 일간 는 4월13일치에서 군 고위 장성들이 대거 참여한 이날 행사에 “류진 풍산 회장과 신언 파키스탄 주재 한국 대사도 참석했다”고 전했다.
문제의 ‘제품’이 집속탄인지를 확인하는 질문에 풍상 쪽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상대국(파키스탄)의 동의 없이 (자세한 내막을) 밝힐 수 없다”며 “한국산 집속탄은 (불발탄으로 남는 게 아니라) ‘자폭 능력’이 있어 민간인을 해치지 않는다”고 답했다.
자폭 능력, 한번도 검증된 적 없어
하지만 ‘155mm DPICM’ 집속탄이 레바논 남부에 무차별 살포되면서 집속탄에 대한 공포감을 자극한 게 이번 금지협약을 추동해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은 레바논에서 사용한 집속탄의 불발률이 0.06%에 불과하며, 자폭 능력이 99%를 넘는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레바논에서 현장 조사를 벌인 인권운동가들은 “불발탄이 도처에 널려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더블린 회의에 참석한 수전 워커 ‘지뢰금지캠페인’ 자문위원은 과 한 전화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이른바 ‘자폭 능력’이란 건 단 한 차례도 검증된 적이 없다. 게다가 이스라엘이 레바논에 투하한 탄두 중 단 한 발만 불발탄이 나왔다 해도, 그 피해는 상상하기조차 끔찍할 게다. 투하된 지 40년이 다 돼가도록 라오스의 어린이들이 불발탄으로 목숨을 잃고 있다.”
1970년대 라오스에서, 1991년과 2003년 이라크에서, 그리고 2006년 레바논까지. 집속탄은 지난 몇십 년 동안 주로 전쟁 막바지나 종전 이후 악의적으로 살포됐다. 한국이 생산해 수출한 집속탄 역시 세계 어느 곳으로 흘러들어가 언제쯤 민간인을 위협할지 예측할 수 없다. 파키스탄 서부 산악지대 와지르스탄의 모스크에서 기도를 하고 나오던 무고한 소년일 수도, 카슈미르의 가난한 산골 소녀일 수도 있다. 어디서 애먼 목숨을 노리게 될지, 누구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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