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무심하시지…” 최악의 중국 대지진… 가장 피해 큰 원촨현 양시우쩐 마을은 생존자가 4분의 1도 되지 않아
▣ 베이징(중국)=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5월12일 베이징
“집 안 흔들렸어요? 지금 주변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는 난리났어요. 지진이래요!”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옆 동료가 다소 호들갑스럽게 지진 소식을 전한다. “ㅁ씨네는 21층에 살잖아요! 갑자기 아파트가 심하게 흔들리기에 이거 지진이다 싶어서 이제 갓 낳은 아기를 둘러업고 21층에서 1층까지 계단으로 막 뛰어내려왔대요. 하도 정신이 없어서 어떻게 내려왔는지도 모르겠다고 하더군요. 인근 오피스텔 사람들도 갑자기 건물이 요동치는 걸 느끼고 죄다 밖으로 대피했어요. 집에는 아무 이상 없었어요?”
[%%IMAGE4%%]
아파트 단지 광장 안. 사람들이 평소보다 더 북적거렸다. 광장 안 사람들은 평소와 다르게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무슨 얘기들을 꽤나 심각하게 나누고 있었다. 지나가면서 언뜻언뜻 들리는 대화 내용들은 대개가 ‘지진 얘기’였다. 누군가의 입에서 “난리가 났다”는 얘기도 들려왔다.
집.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시어머니가 벌떡 일어선다. “얘야, 지금 쓰촨에서 지진이 나서 난리가 났다. 보통 지진이 아니라 아주 어마어마한 지진이 났단다. 조금 전에 집 앞에서 사람들하고 얘기하다가 왔는데, 그중에 어떤 노인네는 집이 바로 쓰촨이라고 당장 내려간다고 하더라. 베이징 아들 집에 애 봐주러 왔는데 영감이 아직도 고향에 있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더라고. 쯧.”
5월12일 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
“언니, 베이징은 괜찮아요? 저희 집은 와르르 무너졌대요. 고향마을이 초토화된 거 같아요. 그래도 가족들이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무서워 죽겠어요.”
5월12일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각, 중국 쓰촨성 충칭에 있는 한 중국인 친구에게서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왔다. 그의 고향은 쓰촨성 청두에서 2시간여 떨어진 농촌마을이다. 5월 말에 일주일 정도 직장에 휴가를 내고 고향에 갈 거라며 들떠 있던 그다. 지금쯤이면 그는 무너진 고향집 앞에서, 잿더미 속에 비명횡사한 고향 사람들 소식에 깊은 울음을 토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지진이 나기 사흘 전까지만 해도 그와 나는 충칭에서 ‘미래의 꿈’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사흘 뒤 발생한 강도 7.6의 대지진이라는 재앙은 우리 모두의 ‘미래’에 없던 일이었다.
중국 언론매체는 지진 속보 체제로
누군가는 마치 하늘이 무너져내린 것 같다고 했다. 한 중국 언론은 “폭격을 맞고 전원 폭사한 죽음의 마을 같았다”라고 보도했다. 지진 전문가들은 “원자폭탄 40개를 투하한 위력”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표현이야 어쨌든 대형 참극이 빚어진 것은 확실하다. 32년 전 중국 허베이 탕산 지역에서 약 24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탕산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 32년 만에 중국에서 벌어진 대형 지진 참사다.
5월15일 현재까지 공식 집계된 사망자 수만 2만 명을 넘어섰다. 사망자 수는 매일매일 경신되고 있다. 수습한 주검보다는 아직 수습되지 않은 주검이 더 많고, 더 많은 사람들은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는 ‘실종자’로 분류돼 있다. 5월12일 지진이 발생한 뒤 5월14일까지 줄곧 폭우가 쏟아진 탓에 재난 현장 접근도 쉽지 않아서, 사망자는 앞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5월15일 중국 언론의 보도를 보면, 사망자가 5만 명 이상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번 지진의 최대 피해 지역은 쓰촨성 원촨현. 마을 전체 인구의 70%가 전멸하다시피 했다. 원촨현 양시우쩐 마을은 상주 인구 1만2천 명 가운데 생존자는 불과 3천 명도 되지 않는다. 특히나 학생들과 어린이들의 피해가 많아서, 원촨현 일대 마을에서는 거의 한 세대의 어린 학생들이 절멸됐다는 비보도 전해지고 있다. 이외에도 간쑤성과 산시성, 충칭시, 윈난성, 허난성 등지에서도 지진 피해자가 속출하고 있다.
세계적 판다 서식지인 쓰촨성 원촨현은 소수민족인 강족 밀집지역이기도 하다. 강족 인구가 약 2만9천 명으로 전체 현 인구 11만 명의 약 27%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많은 피해자를 낸 원촨현 말고도 인근의 베이촨과 ?x양시 등에서도 수만 명의 사상자를 냈다. 원촨현의 경우 아직도 6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x양시에선 땅에 매몰돼 있는 사람만도 2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이들의 생존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망자 수는 거의 종잡을 수가 없는 셈이다.
쓰촨에서 대지진이 발생한 뒤 모든 중국 언론매체는 지진 속보 체제로 들어갔다. 지난 2005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때와는 대조적으로 이번 지진 참사 뒤 중국 정부는 언론을 통해 실시간으로 현장 소식을 전하고 있다. 중국 〈CCTV〉에서는 거의 모든 정규 프로그램을 중단한 채 재해 관련 실시간 보도를 하고 있으며 다른 방송사들도 쇼와 오락 프로그램 방영을 금지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움직임도 예전에 비해 눈에 띄게 기민해졌다. 사건 발생 뒤 2시간여 만에 원자바오 국무총리가 재해지역에 도착해 눈물을 흘리며 구조작업을 진두지휘하는 장면은 전 중국인들의 심금을 울렸다. 인터넷에는 “원 총리님, 수고하십니다. 몸도 챙기면서 하세요!”라는 글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가고, 지진 발생 뒤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아 중국 대륙뿐 아니라 중화권 전체에서 대대적인 모금 및 헌혈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중국 전역에서 재해지역 피해자들을 위한 촛불기도회도 속속 퍼져나가고 있다. 티베트 사태와 성화 봉송 사건 등으로 서구 세계와 날카로운 대립을 빚으며 강한 ‘애국주의’ 열풍에 휩싸였던 중국인들이 이번 지진 참사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대동단결’하는 모습이다. 지난 5월14일 베이징 일간 에 실린 사설 제목은 이런 분위기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재난구조는 모든 애국자들에 대한 동원령이다.”
하지만 올림픽을 불과 석 달도 남겨두지 않은 시점에서 발생한 이번 지진 참사는 중국 정부와 중국인들을 망연자실하게 만들고 있다. 올 초 설을 앞두고 발생한 남부지역의 눈사태와 산둥성 열차 충돌 사고, 뒤이은 티베트 사태, 세계 곳곳에서 빚어진 성화 봉송 마찰 사건, 카르푸 불매운동 등 반서구 운동, 게다가 최근에 확산되고 있는 치명적인 장바이러스 전염병에 이르기까지 잇단 악재에 시달려온 중국으로서는 이제 지진 참사라는 최악의 상황까지 맞은 것이다. 중국인들 입에서 “하늘도 무심하시지…”라는 탄식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유언비어 배포 혐의자 구속되기도
지진 발생 뒤 중국 정부가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 것은 재앙과 관련된 갖가지 유언비어들과 이로 인한 사회 혼란이다. 지난 5월12일 밤, 후진타오 주석 주재로 열린 정치국 상무위원회 비상대책회의에서 나온 핵심 내용 중 하나도 유언비어 근절과 사회질서 유지다. 각종 언론과 인터넷 등에서도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엄벌에 처한다는 내용이 매일 나오고 있다. 충칭 등에서는 이미 유언비어 배포 혐의자들이 구속되기도 했다. 실제로 재해지역이나 부근 지역에서는 매일 각종 유언비어들이 난무하고 있어서 주민들이 외부로 탈출하는 소동을 벌이는가 하면, 학생들 참사가 컸던 지역에서는 학부모들을 중심으로 분노가 폭발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지진으로 인한 인적·물적 피해도 막대하지만 이보다 올림픽을 앞두고 자칫 사회 혼란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더 노심초사하는 중국 정부의 속타는 마음이 읽히는 대목이다.
재난 상황 처리는 고도의 정치기술을 필요로 한다. 결과에 따라서 그것은 더 큰 재앙이 될 수도 있고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지금 중국 정부는 그 시험대에 직면해 있다. “하늘은 중화를 보우할 것이고, 재해지역을 보우할 것이다.” 지금 전 중국에 울려퍼지고 있는 ‘기도’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허락 했을까요 [그림판]
[속보] 윤석열 쪽 “25일 공수처 출석 어렵다…탄핵 심판이 우선”
[영상] 민주 “한덕수 탄핵 절차 바로 개시, 내란 수사 타협 대상 아냐”
“윤석열, 안가 ‘술집 바’로 개조하려 했다” 민주 윤건영 제보 공개
[속보] 한덕수 “여야 타협부터”…쌍특검법·헌법재판관 임명 거부 시사
[영상] 윤상현, 명태균에 ‘외교장관 청탁’ 의혹…김건희 만난다니 “니만 믿는다”
“사살 대상 누구였냐” 묻자 기자 노려본 노상원…구속 송치
‘윤석열 안가’서 내란 모의에 술집 의혹도…박근혜 수사 때 눈여겨봤나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조갑제도 “국힘은 이적단체”…여당은 ‘내란 가짜뉴스’ 대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