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족들의 이주 물결에 위구르족 밀집지 카스는 두 개의 세계로, 경제적 소외감과 불평등이 동요 부추겨
▣ 카스·우루무치(신장웨이우얼 자치구)=글·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야? 여기는 촬영금지 구역이란 말야. 신분증 꺼내봐!” 땅딸막한 키에 도끼눈을 치켜뜬 사내가 달려왔다. 까만 제복 차림의 카스역 상주 경찰이다. “기념으로 역과 기차를 찍는 것일 뿐”이라는 말에, 도끼눈 경찰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세상 물정 모르고 천방지축 날뛰는 어린아이를 만난 듯 일장 훈시라도 할 태세다. “카스는 국경지역이야. 국경지역은 위험해. 게다가 지금 중국은 정세가 불안하단 말이야. ‘정세 불안’이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
역과 공항에는 ‘까만 제복’이 가득
그가 ‘정세 불안’을 입에 올린 건 우리 일행을 겁주려고 한 말만은 아니었다. 불안한 정세를 반영하듯 역 주변에 ‘까만 제복’이 가득했다. 경계 체제가 강화된 건 카스역뿐만이 아니다. 신장의 중심인 우루무치 공항과 카스 공항에서도 예전보다 훨씬 강화된 보안검색이 이뤄지고 있었다. 한밤중 카스 공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풍경도 중무장을 한 군인들의 모습이었다.
카슈가르(Kashgar). 위구르어로 ‘눈부시게 아름다운 지역’이란 뜻이다. 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땅 카스는 또한 중국 신장의 ‘주인’인 위구르인들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기는 곳이기도 하다. 위구르인들의 최대 밀집 지역이자 가장 ‘위구르적인’ 풍경을 간직한 곳이기 때문이다. 1933년 카스에서는 ‘동투르키스탄 공화국’이라는 위구르인들의 독립국가가 세워진 적도 있었다. 불과 3개월간의 일장춘몽으로 끝났지만, 카스는 위구르인들에게 여전히 ‘꿈의 땅’으로 기억된다.
실크로드가 번성했던 시절, 카스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을 연결했던 중개무역의 중심 도시국가로, 중국 내에서 가장 일찍 국제시장을 형성했다. 남으로는 인도, 서쪽으로는 중앙아시아와 유럽으로 통하는 실크로드의 가장 중요한 길목이었고 동서 문물 교류의 중심지였다. 하지만 지금의 카스는 여전히 ‘발전을 기다리는’ 중국 내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티베트에서 ‘폭동’이 일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온 지난 3월14일, 텔레비전에선 무장군인들만큼이나 무표정하고 무거운 얼굴을 한 아나운서가 “극소수 테러 분자들의 소행”이라는 친절한 ‘해석’을 읽고 있었다. 화면 가득 은행과 상점 등을 부수고 불을 지르는 ‘극소수 폭도’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비쳐졌다. 그날 이후 카스 거리에는 경찰들이 갑자기 늘어났다. 카스 주변 지역에도 인민해방군 병력이 속속 증강되는 낌새였다.
경찰과 군인들이 부산하게 움직이며 ‘불안한 정세’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카스의 일상은 평온했다. 베이징 시각과 무려 3시간의 시차가 있는데도, 카스를 비롯해 중국 전역은 모두 ‘베이징 시간’으로 통일돼 있다. 하지만 신장 지역에서는 대부분 ‘신장 시각’에 맞춰 산다. 사람들이 기지개를 켜고 활동을 시작하는 때는 보통 베이징 시각으로 오전 10시 정도다. 3월14일 티베트에서 벌어진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스의 위구르인들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다. 주식인 ‘낭’에 양젖 요구르트를 찍어 먹으며 어제와 같은 하루를 시작했다.
카스에서 만난 대부분의 위구르인들은 ‘한가하게’ 티베트에서 일어난 일들을 둘러싸고 입방아를 놀릴 마음의 여유가 없어 보였다. 물론 ‘맘대로 지껄일 수 있는 자유’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럴 자유가 주어진다고 해도 ‘정치’보다는 먹고사는 문제가 더 다급하다. 카스 위구르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치솟는 물가와 집값 상승, 실업, 취업난 등이다. 일견 여느 한족들의 고민과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곳 위구르인들이 겪는 문제에는 훨씬 구조적이고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
15년 넘게 카스의 한 호텔 소속 가무단에서 무용수로 일해온 아부자예(35)는 이마에 파인 깊은 주름을 실룩이며 망연하게 담배만 피워대고 있었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받는 월급은 큰 차이가 없다. 거의 오르지 않았다. 내가 지금 15년차 무용수지만 월급은 고작 1천위안(약 14만원)이다. 이마저도 올해로 끝이다. 15년차가 넘으면 퇴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춤추는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는데 퇴직 뒤 삶이 암담하다.”
모든 일자리는 한족에게 우선권
삶이 암담하기는 대학 졸업반인 알리와 투르스나이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은 카스의 유일한 대학인 카스사범대학 학생들이다. 학교 정문 앞 복사집에서 취업용 이력서를 대량 복사하고 있던 이들은 “졸업하기가 두렵다”고 했다. 카스사범대학을 다니는 모든 위구르 대학생들의 꿈은 당연히 교사다. 하지만 고향인 카스에서 교사가 되는 건 아주 운이 좋은 경우다. 대부분은 카스보다 더 낙후한 주변 지역으로 밀리거나, 그나마도 자리가 없어서 교사가 되지 못하는 학생들이 부지기수란다. 왜? “신장이 위구르족 자치구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모든 일자리는 한족에게 우선권이 주어진다. 교사 채용 때 중국어 구사 능력이 관건인데, 대부분의 위구르 학생들은 중국어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한족 학생들과 어떻게 경쟁이 되겠나.”
한족 학생들이 초등학교 때부터 제2외국어로 영어를 배운다면, 위구르족 학생들은 중학교 때부터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배운다. 초등학교 때는 일주일에 한 번 1~2시간 정도 배우는 게 고작이다. 그래서 중산층 이상의 위구르족 부모들은 자녀를 초등학교부터 한족 학교에 보내거나 중국어와 위구르어 2개 언어를 같이 쓰는 ‘이중언어 학교’에 보내고 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중국어를 배운다고 해도 이들이 한족 학생들과 동등한 능력을 인정받는 건 아니다. 어딜 가나 티가 나는 ‘이국적 외모’와 무슬림이라는 종교적 색채는 중국 내 위구르족들을 ‘이방인화’하는 족쇄다.
현재로선 ‘밖’으로 나갈 길도 막혀 있다. 카스의 한 여행사에서 일본어 가이드를 하는 파리다는 “몇 년 전부터 줄곧 여권을 신청했지만, 매번 거절당했다”며 “위구르인들이 여권을 받는 것은 올림픽 이후에나 가능할 것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말했다. 카스는 위구르족 분리독립을 외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근거지와 가깝고, 이들에 동조하는 이들도 많다. 위구르인들이 외국에 나가 ETIM의 조직원이 되거나, 이슬람 성지 메카 등을 순례하면서 ‘수상한 사람들’과 접촉할 것을 염려한 중국 당국이 여권 발급을 아예 중단시킨 게다.
거주지도 따로 쉼터도 따로
카스의 위구르인들도 티베트와 마찬가지로 자기 땅에서 ‘소수민족’이 돼버렸다. 특히 지난 2001년 우루무치와 카스를 잇는 남신장철도가 개통되면서, 수많은 한족이 카스로 흘러들어 왔다. 이들은 쓰촨이나 허난 등지의 농촌에서 허드렛일을 하러 올라오는 농민들이거나, 카스에 불어닥친 개발 붐을 등에 업고 몰려오는 건축자재상들과 부동산업자 등이 대부분이다. 한족의 이주 물결은 위구르인의 최대 밀집지 카스를 ‘두 개의 세계’로 갈리게 했다. 한족의 상업 중심지와 위구르족의 상업 중심지가 나뉘고, 한족 거주지와 위구르족 거주지가 분할됐다. 마오쩌둥의 대형 조각상이 세워져 있는 카스의 인민광장이 정부 청사를 둘러싼 한족의 쉼터라면, 신장 최대의 이슬람 사원이 있는 아이티카 광장은 위구르족의 휴식처라는 묵계가 형성됐다.
최근 신장과 티베트 등지에서 발생하는 중국 소수민족의 분리독립 운동이나 소요 사태의 뿌리도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에서도 가장 가난한 지역인 서부에 집중된 소수민족들은 중국 내 지역 간 격차뿐 아니라, 민족 간 발전 격차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급속한 한족화에 따른 소수민족의 경제적 소외감과 불평등 증가, 민족 정체성 동요 등이 ‘극소수 테러 분자’들의 ‘폭동’을 부르는 것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무안공항서 175명 태운 항공기 추락
[영상] “총이 웬 말”...50만 시민, 내란 공포 딛으며 함께 부른 “힘내”
푸틴, 아제르에 ‘여객기 추락’ 사과…우크라 드론 오인 격추 인정
경찰, 추경호 ‘계엄해제 방해로 내란 가담’ 피의자 조사
한덕수는 왜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했을까
윤석열, 3차 출석 요구도 불응 시사…공수처, 체포영장 검토 방침
[영상] 부산 시민들 “내란 공범 나와라”…박수영 의원 사무실 항의 농성
베트남, 마약 밀수 조직원 27명에 무더기 사형 선고
영원한 ‘줄리엣’ 올리비아 핫세 가족 품에서 잠들다…향년 73
최상목 권한대행 체제…민주, 헌법재판관 임명·쌍특검법 공포가 탄핵 잣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