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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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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5명 중 1명이 가족을 잃었다

등록 2008-03-28 00:00 수정 2020-05-03 04:25

이라크 침공 5년, 사망자 이라크인 103만 명·미군 장병 3992명… 언제 죽음의 굿판은 걷힐까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그들은 ‘전쟁’이 뭘 뜻하는지 알기나 했던 걸까? 임박한 파국이 몰고 올 참상을 희미하게라도 내다볼 수 있었을까? 미국과 영국이 메소포타미아의 평원을 유린하기 시작한 지 5년이 지난 지금, 새삼 궁금해진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베트남전이 극에 이른 1968년 텍사스주 공군 방위군으로 입대했다. 복무기간 내내 이역만리 정글에서 숱한 동년배가 스러져갔지만, 그는 미 본토를 벗어난 일이 없다.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아예 군문 근처엔 가본 일조차 없다. 그들이 경험한 전쟁은 기껏 영화의 한 장면이거나,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정밀유도 무기’의 활약상이 고작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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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지대’에서 전쟁을 보는 그들에겐…

전쟁의 북소리를 울렸던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 국방장관은 미 해군 비행교관 출신이지만, 한국전과 베트남전 사이 ‘평화시’에 복무해 실전 경험이 없다. 이라크 침공을 기획한 딕 체니 부통령은 베트남전 징집을 다섯 차례나 연기한 끝에 병역을 피했고, 폴 울포위츠 전 미 국방부 부장관 역시 군 복무 경험이 전무하다. 베트남전과 파나마 침공, 제1차 걸프전을 현장에서 경험한 콜린 파월 전 미 국무장관이 이들이 쳐놓은 ‘거짓의 덫’에 걸려든 건 차라리 희극이다.

“이라크에서 목도하고 있는 ‘성공’을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게다.” 그럼에도 부시 대통령은 여전히 거침이 없다. “이라크전은 싸울 만한 가치가 있는 전쟁”이라는 신념에 찬 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그는 이라크 침공 5주년을 맞은 3월19일 미 국방부 청사에서 연설에 나서 “일부에선 여전히 철군을 거론하지만 이라크전이 실패로 끝날 것이란 반전론자들의 주장은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며 “최근 반전론자들이 전쟁 비용 쪽으로 비판의 화살을 돌리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체니 부통령도 질세라 ‘신화’ 부풀리기에 몰입했다. 은 지난 3월17일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를 깜짝 방문한 체니 부통령의 말을 따 “지난 5년을 돌아보면, 어려울 때도 힘들 때도 물론 있었다”며 “하지만 어쨌든 이라크 전쟁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고, 결국 성공작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고 전했다. 경호원을 대거 거느린 채 이라크에 도착한 그는 바그다드 중심가 ‘안전지대’(그린존)에서 한 발짝도 나서지 않았다.

체니 부통령의 주장에 대한 ‘반박 성명’은 핏빛 폭발음으로 울려퍼졌다. 그의 발언이 끝나기 무섭게 중남부 시아파 성지 카르발라에선 자살폭탄 공격이 벌어져 40명이 숨지고 71명이 다쳤다. 바그다드 중심가에서도 폭탄 공격이 벌어져 4명이 숨지고 13명이 다쳤다. 체니 부통령이 머무르는 동안 두 차례 박격포 공격이 ‘안전지대’를 뒤흔들기도 했다. 성공담이 신기루임을 입증할 증거가 더 필요한가?

현실은 냉혹하다. 말은 진실을 이길 수 없다. 그러니 평화단체 ‘이라크보디카운트’가 체니 부통령의 이라크 방문 일주일 전인 3월10일부터 한 주 동안 기록해놓은 참상을 들춰볼 일이다. 이라크 침공을 진두지휘한 토미 프랭크 전 미 중부군사령관은 “우리는 희생자를 일일이 세지 않는다”고 말했다. 해서 이 단체는 개전 초기부터 미군 대신 이라크 민간인 피해를 이라크 안팎의 각종 공개자료를 바탕으로 집요하게 추적해왔다.

3월10일 월요일, 남부 최대 도시 바스라에 남은 유일한 신경외과 전문의 칼리드 나시르 등 이라크 전역에서 모두 34명이 목숨을 잃었다. 3월11일 화요일, 장례식에 참석했다 귀가하던 일가족 16명이 거리 매설 폭탄 공격으로 목숨을 잃는 등 모두 90명이 숨졌다. 3월12일 수요일, 10살 난 소녀가 미군의 총격으로 목숨을 잃는 등 모두 24명의 민간인이 숨졌다. 죽음의 기록은 이어진다.

가족 잃은 사람 바그다드 지역에선 40%

3월13일 목요일, 바그다드 중심가에서 벌어진 차량폭탄 공격을 비롯해 각종 유혈사태로 모두 39명이 스러졌다. 3월14일 금요일, 유명 축구선수 출신인 문테르 칼라프가 무장괴한의 습격을 받아 자기 집 앞에서 숨지는 등 모두 15명이 목숨을 잃었다. 3월15일 토요일, 일가족 삼형제가 한꺼번에 목숨을 잃는 등 19명이 목숨을 잃었다. 3월16일 일요일, 무장괴한의 습격으로 2명의 이라크 경찰이 순직하는 등 모두 26명이 목숨을 잃었다. 체니 부통령의 방문을 앞둔 일주일 사이에만 모두 247명이 비명에 간 게다. 성공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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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28일 영국의 저명한 여론조사기관 ORB가 현지 실태조사를 바탕으로 내놓은 이라크 민간인 사망자 추정치는 더욱 충격적이다. ORB는 당시 내놓은 보도자료에서 “이라크 전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20%가 2003년 개전 이후 가족 중 1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고 답했다”며 “특히 바그다드 지역에선 이런 답변이 전체 응답자의 40%에 달했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인구조사가 이뤄진 1997년을 기준으로 이라크 인구는 405만여 가구 2200만여 명(2007년 7월 현재 추정치는 2700만여 명)에 이른다. 이를 근거로 ORB가 추정한 2003년 3월 개전 이후부터 2007년 8월 현재까지 전쟁으로 인한 이라크인 사망자는 모두 103만3천여 명에 이른다.

끝없는 아비와 들끓는 규환을 피해 용케 살아남은 이들의 삶도 나락에 다가서 있긴 마찬가지다. 지난 2월18일 유엔난민기구(UNHCR)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침공 이후 40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나라 안팎에서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200만 명이 넘는 이라크인들이 유혈을 피해 남의 땅에서 천덕꾸러기가 됐고, 240만 명은 차마 국경을 넘지 못한 채 자기 땅에서 난민으로 떠돌고 있다. 이라크 적신월사는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600만 바그다드 시민 가운데 삶의 터전을 잃고 떠도는 이들은 4명 중 1명꼴”이라고 전했다. 이라크 안팎의 난민 규모는 노르웨이 전체 인구와 맞먹는다.

경제 상황은 어떨까? 손쉬운 척도는 이라크 재정수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원유 수출량이다. 점령 치하 지난 5년 동안 이라크의 원유 수출량은 단 하루도 침공 이전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침공 이전부터 20~30%대를 넘나들던 실업률은 현 이라크 정부조차 40~70%로 잠정 집계하고 있을 정도다. 영국 민간단체 ‘인도주의정책그룹’(HPG)은 “국내외 난민을 빼고도 400만 명의 이라크인들이 긴급 식량지원이 필요한 상태”라고 전했다. 〈AFP통신〉은 3월19일 “이라크인 10명 중 4명 정도가 하루 미화 1달러 이하에 의지해 사는 절대빈곤층”이라고 전했다.

유혈의 상처를 가장 극명히 드러내는 건 작고 여린 이들이다. 유엔아동기금(UNICEF)이 지난 2월 말 펴낸 ‘2007년 이라크 어린이 보고서’를 보면, 이라크 어린이 200만 명 이상이 만성적인 영양부족 상태다. 지난해 여름 17살 이하 어린이·청소년 가운데 학년말 시험에 응시한 이들은 전체의 28%에 불과했다. 그나마 진급이 가능한 성적을 얻은 아이들은 이 가운데 40%에 그쳤다. 지난 2004년 86%였던 초등학교 취학률이 2006년엔 46%로 떨어졌고, 초등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는 76만여 명에 이른다. 이와는 별도로 난민으로 이라크 전역을 떠도는 어린이 22만 명도 교육의 기회가 철저히 차단된 상태다.

“이라크 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안전한 마실 물을 공급받는 어린이는 전체의 40%를 밑돌고 있다. 특히 수도 바그다드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하수시설이 마련된 주거지에 사는 어린이는 전체의 20% 남짓에 불과하다. 지난해 늦여름 이라크를 강타한 콜레라에 4500여 명이 감염된 것도 이유가 있었던 게다. 그럼에도 이라크 보건부의 자료를 보면, 지난해 봄 현재 100만 명 가량의 어린이가 홍역 예방접종을 받지 못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이라크 군경 당국은 ‘치안 위협’을 이유로 1350여 명의 어린이·청소년을 각종 구금시설에 억류하고 있다.

도움의 손길은 멀기만 하다. 무엇보다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치안 상황이 문제다. 이라크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단체들의 최우선 과제는 구호활동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전이 돼버린 지도 이미 오래다. 2003년 침공 이후 이라크에서 숨진 구호요원은 모두 94명에 이르며, 부상자도 248명에 이른다. 또 24명이 체포 또는 억류됐고, 89명이 납치를 당했다. 국제적십자사가 이라크의 인도적 상황을 “지구촌 전체를 놓고 볼 때 최악의 상황”이라고 규정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시 행정부는 개전 초기 사담 후세인 정권을 몰아내고, 법질서를 바로 새우며, 새 정부를 출범시키기까지 약 500억달러에서 600억달러 정도가 소요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는 3월19일치에서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미 국방부가 쓴 이라크 전비는 이미 6천억달러를 넘어섰다”며 “미 의회예산국조차 최종 전비가 1조~2조달러에 이를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고 썼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펴낸 책에서 이라크 전쟁을 “3조달러짜리”로 규정한 바 있다.

그러니 〈BBC방송〉이 3월19일 인터넷판 기사에서 “이라크 전쟁은 전쟁 기간과 비용 면에서 이미 제2차 세계대전에 견줄 만하다”고 지적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애초 내세웠던 전쟁의 목표 가운데 이룬 게 있다면 사담 후세인 정권의 몰락이 고작이다. 이라크엔 애초 대량살상무기가 없었으니 ‘확산 방지’는 공염불이었고,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확산시키겠다는 ‘구상’이 ‘망상’에 불과했음은 이라크의 오늘이 웅변해준다.

지난 3월15일 이라크 중북부 발라드에서 미시시피주 걸프포트 출신인 미 육군 224공병단 소속 레란도 브라운 상병이 부상이 깊어져 목숨을 잃었다. 3월17일엔 바그다드 도심에서 벌어진 폭탄 공격으로 미 육군 4사단 223전투여단 68기갑연대 1대대 소속 마이클 엘리지 병장과 크리스토퍼 심슨 상병 등 2명이 전사했다. 3월19일 중남부 디얄라주에선 차량이 전복되면서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병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로써 침공 이래 3월21일 오전 현재까지 이라크에서 전사한 것으로 확인된 미군 장병은 3992명으로 늘었다. 절망은 극한을 모르는가. 무모한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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