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1일 터키군, PPK 공격 내세워 이라크 국경 넘어… 쿠르드 자치정부 군대와 맞닥뜨리면 아찔한 상황이 벌어질 수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교전의 두 상대가, 무력을 사용해 싸우고 있다. 사전적 의미로만 따진다면 분명 ‘전쟁’이라 부를 만하다. 하지만 나라와 나라가 정면으로 맞붙은 건 아니다. 그러니 굳이 ‘전쟁’으로 부르지 않는 것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다른 나라를 침범해 공격함’이란 뜻의 ‘침공’이란 낱말을 사용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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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일지 1년일지 모를 ‘이른 시일’
지난 2월21일 이라크 북쪽 국경을 넘어 들어간 터키군이 쿠르드노동자당(PKK) 게릴라와 연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 국경을 넘어 남의 나라로 쳐들어가 군사작전을 벌이는 건 분명 주권 침해요, 침략 행위다. 각국이 앞다퉈 비난 성명을 내놓고, 즉각 철군을 요구하는 유엔 차원의 결의안이 나오는 게 일반적인 절차일 게다. 한데 국제사회의 반응이 영 신통찮다. 아니, 지나치게 너그럽다. 지난 2006년 여름 레바논을 침공해 폭격을 퍼붓던 이스라엘을 대하던 태도와 고스란히 닮아 있다.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터키와 미국인, 쿠르드족을 포함한 이라크인들은 공통의 적과 맞서 있다는 점이다. 바로 PKK다. 무고한 인명을 살상하는 자들의 은신처가 남아 있는 건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2월28일 미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조지 부시 대통령은 ‘터키군의 이라크 공세 장기화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그는 “터키군의 활동 범위는 제한적이어야 하며, 시한 역시 한시적이어야 한다”며 “터키군이 신속하게 작전 목표를 완수한 뒤 이른 시일 안에 철군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철군 시한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때맞춰 터키를 방문한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도 2월27일 벡디 고눌 터키 국방장관 등과 만나 부시 대통령과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니 터키 쪽의 반응은 쉽게 예상이 가능했다. 은 이날 고눌 장관의 말을 따 “터키군은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까지 이라크 북부에 주둔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 역시 터키군 철군 시한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야사르 부유카니트 터키군 사령관은 한술 더 떴다. 〈CNN방송〉은 부유카니트 터키군 사령관의 말을 따 “말하자면 ‘이른 시일’은 상대적인 개념”이라며 “때에 따라 하루를 뜻할 수도, 한 해를 뜻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터키는 지난 24년간 줄기차게 (PKK의) 테러 공격에 맞서 싸워왔다”며 “테러와의 투쟁은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말이 아니어도 터키군의 이라크 침공은 그동안 여러 차례 되풀이돼왔다. 지난 1995년엔 3~5월 3만5천여 병력을 동원해 국경 너머 이라크 땅에서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벌인 바 있다. 1997년엔 5~7월 3만여 병력을, 다시 9~10월 1만5천여 병력을 각각 동원해 PKK 소탕작전을 벌였다. 갓 일주일여를 넘긴 터키군의 최신 공세가 쉽게 끝나지 않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원유 바탕으로 광범위한 자치권 누려와
터키군이 무시로 이라크 국경을 넘나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독립 쿠르디스탄 건설’을 내건 PKK의 테러 공격을 뿌리뽑겠다는 게 ‘명분’이라면, 1990년대 초반부터 광범위한 자치권을 누리고 있는 이라크 쿠르드족에 대한 견제는 ‘실리’다. 자치정부까지 구성한 이라크 쿠르드족이 막대한 원유 자원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키워가며 ‘쿠르드 민족주의’의 구심점으로 떠오를 경우, 자칫 140만여에 이르는 자국 내 쿠르드족이 ‘동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터키군은 PKK 소탕이 목적이라고 말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을 놓고 볼 때 PKK가 유일한 목표물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네치르반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총리가 2월25일 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 것도 이유가 있는 게다. 그는 이어 “터키군의 침공 목표는 쿠르드 자치정부이며, 우리는 이에 맞서 결연히 싸워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찔한 것은 터키군과 쿠르드 자치정부의 군대인 ‘페슈메르가’가 맞닥뜨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2월21일 탱크를 앞세우고 국경을 넘어온 1200여 터키군이 이라크 북부 바메르네까지 진주해 들어오자, 주민들의 연락을 받은 페슈메르가 대원들이 현장 부근에 급파되기도 했다. 터키군과 페슈메르가 병사들이 사실상 대치하는 상황이 되자 마수드 바르자니 쿠르드 자치정부 대통령은 국경지대 최대 도시인 도후크로 달려가 “터키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하는 첫 번째 쿠르드인이 될 것”이라고 목청을 높였다. 이쯤 되면 ‘전쟁’의 성립 요건을 두루 갖추게 되는 셈이다.
여기에 ‘미국 변수’도 끼어든다. 오랜 나토동맹국인 터키와 최근 몇 년 새 소원한 관계로 지내온 미국은 이번 터키군의 공세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명분은 부시 대통령이 언급한 ‘대테러 전쟁’이다. 영국 시사주간지 는 2월28일치 인터넷판에서 “미국과 터키는 지난해 11월부터 PKK를 겨냥한 군사협력을 진행해왔다”며 “미군 당국은 터키군이 이라크 북부 산악 지역에 은거하고 있는 PKK 게릴라들을 공격하는 데 필요한 각종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터키군이 공세적이 된 건 미국 때문”
지난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 당시 미군과 어깨를 겯고 싸웠던 쿠르드족 입장에선 당연히 배신감을 느낄 법하다. 은 2월28일 바르자니 총리의 말을 따 “지난해 말부터 터키군이 공세적으로 바뀐 것은 미국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는 “미국은 각종 정보를 터키군에 제공해 우리 영토를 유린하도록 하고 있다”며 “터키군 전투기가 이라크 영공을 침해하는 걸 수수방관한 건 미국의 큰 실수”라고 주장했다. ‘친미’로 일관해온 쿠르드족 민심이 슬며시 ‘반미’로 돌아서고 있는 이유다.
급변하는 정세 속에 가장 곤혹스러운 건 이라크 중앙정부다. 국경을 넘어 자국 영토 안으로 30km 이상 진군해 들어와 전투를 벌이는 터키군에 맞서 어떤 물리적 반격도 가할 수 없는 입장인 탓이다. 그저 PKK의 테러 활동과 터키군의 침공을 싸잡아 비난하며 “철군하라”는 주장만 되풀이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한 연합군 임시행정처(CPA)가 이라크 과도정부로 주권을 넘긴 게 2004년 6월28일이다. 그로부터 3년8개월여가 흘렀지만 이라크는 여전히 주권국가 노릇을 못하고 있다. 애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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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르티야 카르케렌 쿠르디스탄.’ 쿠르드 민족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기반한 쿠르드노동자당(PKK)의 태동은 197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설적 쿠르드족 지도자 압둘라 오잘란이 주도해 1974년 결성한 학생조직이 모체가 돼 1978년 공식 출범했다. 옛 쿠르드족의 영토인 터키 남부와 이라크 북부, 시리아 북동부와 이란 북서부 등 광범위한 지역에 흩어져 사는 쿠르드족을 모아 단일한 독립 사회주의국가를 건설하는 게 목표다.
PKK가 터키 정부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이기 시작한 건 지난 1984년이다. 터키 남동부에서 쿠르드족 분리독립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시작된 PKK의 무장투쟁으로 지금까지 줄잡아 3만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게릴라 공격을 주요한 투쟁 수단으로 활용하는 탓에 미국과 나토, 유럽연합 등은 PKK를 테러조직으로 분류하고 있다.
지난 1999년 오잘란이 터키 당국에 체포되면 PKK의 무장투쟁은 한동안 주춤해졌다. 사형선고를 받고 복역 중 터키 정부가 사형제도를 폐지하면서 2002년 10월 종신형으로 감형된 오잘란도 정치투쟁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해왔다. 이에 따라 2002년 11월엔 PKK 산하에 ‘콘그라 겔’이란 정치조직을 따로 꾸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산발적인 유혈충돌은 이어졌고, PKK와 터키 당국은 휴전과 개전 선언을 되풀이하며 오늘도 쫓고 쫓기는 싸움을 멈추지 않고 있다. 터키 당국은 현재 이라크 북부에 은신해 있는 PKK 게릴라 요원이 3천~4천 명에 이르며, 국경을 무시로 넘나드는 이들이 강경 무장투쟁을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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