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NLC 3편의 보고서, 매텔·월마트·성 패트릭 성당 물품 만드는 현지 공장의 참혹한 삶 고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바비인형, 십자가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 크리스마스 휴가 분위기로 흥청거리는 미국에서 국경을 뛰어넘는 ‘노동’과 ‘자본’의 조용한 신경전이 한창이다. 발단은 미국의 대표적 노동·인권 단체로 꼽히는 ‘전국노동위원회’(NLC)가 지난 11월 중순부터 최근까지 잇따라 펴낸 세 편의 보고서다. 보고서를 통해 미국 업체에 납품하는 중국 생산공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노동환경과 착취 구조가 드러나면서, 관련 미국 업체들은 해명과 함께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보고서를 하나씩 들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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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언제나 ‘신입’ 사원
먼저 ‘바비인형’이다. 노동위원회는 지난 11월 초 중국 선전경제특구에 자리한 신위플라스틱 공장에 대한 실태조사 내용을 담은 ‘불행한 인형’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이 공장에서 생산하는 제품은 바비인형과 텔레비전 시리즈로 인기를 모은 ‘토머스와 친구들’에 등장하는 기차 인형 등이다. 생산한 장난감은 세계 최대 완구업체인 매텔과 월마트, 맥도널드 등에 납품됐다.
노동위원회는 신위 공장 노동자들의 고용상태에 주목했다. 이 공장에서 일하는 5천여 노동자의 95%는 비정규직이다. 고용 계약 기간은 짧게는 하루에서 열흘, 한 달씩이며, 최대 고용 계약 기간도 석 달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비정규직 노동자 860만 명’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내용이다. 보고서의 지적을 보자.
“노동자들은 언제나 ‘신입’ 사원이다. 따라서 아무런 법적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다. 중국 노동법상 임시직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하지만 근로계약을 지속적으로 갱신해 정규직에게 적용되는 법적 권리를 일부러 피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 행위다. 초단기 근로계약을 맺은 신위 공장 노동자들은 의료보험과 상해연금, 유급휴가와 출산휴가 등 법이 보장하는 어떤 혜택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고, 해고수당이나 퇴직금 따위도 있을 리 만무하다.”
신위 공장이 가장 바쁘게 돌아가는 건 여름철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해 장난감 생산량을 대폭 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럴 때면 방학을 맞은 인근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대거 노동자로 변신한다. 노동위원회는 “지난여름에도 이 공장에선 1천여 명의 청소년을 고용했다”고 밝혔다. 방학을 마친 학생들이 학교로 돌아가는 9월은 비수기의 시작이다. 지난 9월 말 현재 이 공장에선 하루 평균 10명의 노동자를 해고하고 있단다. 노동위원회는 보고서에서 “매텔은 자사 대표 상품인 바비인형의 상표권 보호를 위해 세계 각지에서 한 달에 한 번꼴로 소송을 벌이고 있지만, 정작 바비인형을 만들어내는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선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주여, 저희를 긍휼히 여기소서. 이러다 과로사하겠나이다.”
노동위원회가 11월 하순 내놓은 두 번째 보고서는 예기치 않은 파장을 불렀다. 미 뉴욕을 대표하는 교회인 성 패트릭 성당과 트리니티 교회에서 판매하는 십자가 등 ‘성물’이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고통받는 중국 노동자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란 폭로 때문이었다.
법정 초과근무시간의 5배 넘어[%%IMAGE5%%]
논란을 부른 공장은 중국 광둥성 동관 지역에 있다. 이 공장 노동자의 대부분은 여성으로, 15~16살 청소년도 다수 포함돼 있다는 게 노동위원회의 지적이다. 이들의 하루 평균 노동 시간은 14~15시간, 아침 8시에 시작해 밤 10시~11시30분에 일을 마치는 게 일상이다. 일이 몰릴 때면 하루 18~19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이럴 때면 새벽 2~3시까지 일한 뒤에도 이른 아침에 다시 고된 일과를 시작해야 한다.
납품 기한이 다가오면 ‘밤샘 노동’도 필수다. 아침 8시에 시작된 일과가 이튿날 아침 6시~9시30분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정해진 휴일은 없다. 일주일에 단 하루도 쉬지 못하고, 휴일 없이 몇 달을 보내기도 한다. 노동위원회는 “노동자들의 일주일 평균 노동 시간은 100시간을 훌쩍 넘고, 이 가운데 절반 이상이 강제 초과근무”라며 “이 공장의 초과근무 시간은 중국의 법정 초과근무 시간의 5배가 넘는다”고 지적했다. 초과근무는 강제 조항이며, 초과근무를 하지 않을 경우 하루치 품삯이 벌금으로 부과된다. 노동위원회는 이 공장의 한 여성노동자의 증언을 따 이렇게 전했다.
“지난 4월25일은 납품 기한이었다. 그날 새벽 3시까지 일을 계속했다. 꼬박 16시간 반을 쉬지 않고 십자가를 만들었다. 자정 무렵부터 배가 고팠지만 야식도 주지 않았다. 모두 너무 피곤해서 잠을 자러 갔다. 막 잠자리에 들었나 싶었는데 벌써 아침 8시가 됐는지, 공장 간부들이 깨우기 시작했다. 납품하는 날에는 제품 상자를 실어야 한다. 20kg이나 되는 상자를 쉼없이 트럭에 실었다. 한 300상자쯤 실었던 것 같다. 온몸이 떨어져나갈 것 같았다. 곁에 있던 동료가 ‘이러다 과로로 죽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 교계에서 “십자가의 원산지는 몰랐지만, 이탈리아 등지에서 주문 생산해온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당혹스러워한 것은 당연했다. 특히 가톨릭계에선 최근에도 “문제의 공장에서 생산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하지만 노동위원회의 확인 결과 성 패트릭 성당에서 판매하는 십자가는 이 공장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과 일치했다. 노동위원회는 “성당에서 판매하는 십자가에는 원산지 표시가 없었지만, 이를 납품한 중개업체가 중국 쪽 공장에서 제품을 수입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일당 2.12달러, 십자가 29.95달러
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성 패트릭 성당에서 판매하는 십자가는 1개당 29.95달러다. 미 ‘크리스천소매상협회’가 지난해 미국 일대 2055개 매장에서 판매한 십자가 등 성물은 모두 46억3천만달러어치에 이른다. 신위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일당은 하루 8시간 노동 기준으로 2.12달러에 불과하다.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장식품 대부분이 열악한 노동 조건 아래서 신음하는 중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다.” 노동위원회가 12월12일 기자회견을 열어 공개한 58쪽 분량의 최신 보고서는 앞선 두 보고서의 ‘종합판’이라 할 만하다. 이 단체 찰스 커내건 사무국장은 이날 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월마트는 싼값에 크리스마스 장식품을 팔면서 ‘이런 게 명절 분위기 아니냐’고 떠들어댔다. 하지만 끔찍한 노동 조건과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급료를 받아가며 장시간 노동을 하는 중국 어린이와 청소년을 착취한 대가로 ‘명절 분위기’에 젖어들 미국인은 없을 게다. 월마트에서 판매하는 물품의 70%가량을 생산하는 중국의 어린 노동자들에게 비참한 삶을 강요하면서 싼값에 물건을 공급한다면 월마트는 스크루지나 다름없다.”
노동위원회가 고발한 현장은 중국 광둥성 광저우의 후안야 공장이다. 이 공장 8천여 노동자들의 평균 노동 시간은 하루 12~15시간, 일주일 평균 노동 시간은 84시간에 이른다. 여러 달째 휴일 없이 일하는 것도 앞선 사례와 마찬가지였다. 이 공장의 노동자 절반가량은 일주일에 105시간씩 일을 했다. 일요일 휴무를 선택한 노동자는 하루 임금의 2.5배를 감봉당한다. 초과근로는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게다.
그만두면 한 달치 임금 포기해야
열악한 임금 상황도 비슷하다. 노동자들이 공장 밖으로 빼내 노동위원회에 전달한 임금 자료를 보면, 이 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임금은 시간당 49센트다. 초과근로 수당이 포함된 액수다. 노동위원회는 “이 공장에서 법정 최저임금(시급 55센트)을 채워 임금을 받는 노동자는 전체 노동자의 8% 남짓에 그쳤다”고 전했다. 참기 힘들면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원하는 때에 맘대로 그만둘 수도 없다. 회사 쪽에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퇴사하면, 한 달치 임금을 포기해야 한다는 조항이 근로계약서에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중국 노동자들을 혹사해 만든 장식품으로 미국인들이 싼값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고, 그들의 피땀으로 만든 선물용 장난감을 헐값에 샀다. 육체적으로 혹사당하고, 경제적으로 착취당한 중국 노동자들의 아픔으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은 ‘성탄’의 의미에 정면으로 반하는 짓이다.” 노동위원회의 보고서가 나온 직후 바이런 도건(민주당·노스다코타주) 상원의원은 워싱턴에서 성명을 내어 “외국 노동자들을 착취한 덕에 가격이 떨어진 물품을 미국인이 구매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며 “이런 행태를 근절하기 위한 입법 활동을 즉각 시작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07년에 기본적인 노동권을 유린한 업체에서 생산한 물품의 수입·판매를 미국에서 금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한 법안이 미 상원(1월)과 하원(4월)에 각각 제출됐지만, 지금까지 처리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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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은 삶이지만, 때로 ‘돈’을 의미한다. 노동이 돈으로 둔갑한 극단적인 사례가 노예노동이다. 노예를 사고팔아 막대한 부를 축적하던 영국이 노예무역을 법으로 금지한 것은 200년 전인 1807년, 노예제도 자체를 폐지한 것은 1833년의 일이다. 하지만 국제노예노동반대기구(Anti-Slavery International)가 최근 내놓은 연차보고서를 보면, 적어도 1230만여 명이 지구촌 곳곳에서 여전히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꿈의 나라’ 미국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년 이상 농장주에게 학대당하던 이주노동자 3명이 지난달 말 탈출에 성공해 보호시설에 넘겨졌다. 탈출한 이들의 몸에는 학대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머리와 몸통에는 매를 맞아 생긴 상처가 남아 있었고, 1명은 팔에 칼에 베인 깊숙한 상처도 있었다. 또 다른 1명의 손목에선 탈출을 막기 위해 채워둔 쇠사슬로 인한 상처도 발견됐다고 현지 경찰 당국이 밝혔다.”
지난 12월19일 영국 는 ‘노예노동, 미국의 굴욕’이란 제목의 기사를 내보냈다. 미 플로리다주 콜리어 카운티의 이모칼리에서 지난 11월20일 학대받던 이주노동자들이 집단 탈출을 감행한 사건을 다룬 기사였다. 탈출에 성공한 이주노동자는 마리아노 루카스와 호세 발라스케즈, 호세 아리 등이다. 이들은 경찰에서 “땡볕 아래서 휴일도 없이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했으며, 뼈빠지게 일했음에도 농장주가 온갖 명목으로 돈을 떼가 일을 많이 할수록 오히려 빚이 늘어났다”고 말했다.
해마다 10월 중순부터 이듬해 6월 중순까지 플로리다에선 1만5천여ha의 면적에서 토마토가 재배된다. ‘플로리다토마토위원회’(floridatomatoes.org)가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06년 플로리다에서 미국 전역으로 팔려나간 토마토는 58만9천여t에 이른다. 이를 통해 벌어들인 수입만도 4억300만달러에 이른다. 극소수 실험재배지를 뺀 나머지 밭에서 다 익은 토마토를 수확하는 건 사람의 손이다.
이번 사건이 벌어진 이모칼리는 인구가 고작 1만9천여 명(2006년 말 기준)에 불과한 소규모 농업도시다. 하지만 이 일대에서 수확철 토마토밭에서 일하는 이주노동자는 2500~3천 명에 이른단다. 이 이주노동자들의 절반가량은 멕시코 출신이며, 과테말라(30%)와 아이티(10%)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다.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거대 농장에 일용직으로 고용돼 토마토(또는 밀감)를 수확한다. 불법 체류자가 많은데다 일용직이다 보니 미국 노동법의 보호를 기대할 순 없다. 지난 30년새 수확철 이주노동자의 임금에 거의 변화가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이모칼리의 토마토 농장 노동자들은 약 14.5kg들이 바구니 하나를 채울 때마다 40~45센트(약 400원)를 받는다. 미 연방법이 정한 최저임금은 시간당 5.85달러, 플로리다 주법은 6.67달러로 정하고 있다. 하루 평균 10~12시간을 일하는 이들이 연방 최저임금을 채우기 위해선 평균 2~2.5t을 수확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맨손으로는 불가능한 양이다.
장기간 노동과 낮은 임금이 이주노동자들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의 전부는 아니다. 는 탈출한 이주노동자들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농장주들은 입에 넣기도 어려울 정도의 음식을 주면서도 식비를 꼬박꼬박 받아 챙겼다. 쌀과 콩이 전부고, 운이 좋아야 일주일에 두어 차례 고기가 섞여 나왔는데 식비가 매주 50달러였다. 마당에 있는 호수나 양동이를 가져다 샤워라도 하면 꼬박꼬박 목욕값으로 5달러를 받았다. 아파서 일을 하루 쉬겠다고 하면 뭇매를 퍼부었다. 밤이면 문을 밖에서 잠근 컨테이너에서 아무렇게나 잠을 잤다. 그러고도 숙박비로 일주일에 20달러씩 거둬갔다. 소변을 참다 못해 잠자는 컨테이너 한 귀퉁이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었다.”
플로리다주의 이주노동자 착취는 역사가 오래다. 매카시즘의 광기를 파헤친 영화 의 실제 주인공으로 알려진 에드워드 머로 〈CBS방송〉 기자는 1960년 플로리다 현지 취재를 통해 이주노동자 착취 실태를 폭로한 프로그램에서 “한때 노예를 소유했지만, 이제는 노예를 잠시 빌린다”고 꼬집었다. 반세기가 지나서도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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