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의 새 얼굴 ‘NGO’ 개발협회의 놀라운 회원 증가… 돈과 일자리 등의 ‘콩고물’로 유인해
▣ 랑군(버마)=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1988년 8월 민주항쟁(88항쟁) 당시에는 시위를 마친 뒤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가족과 이웃들에게 우리가 거리에서 무엇을 했는지 말하지만 않으면 집에 머물 수 있었다. 군정보국(MI)만 조심하면 안전을 그리 심하게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은 다르다. 밀고자들이 사방에 널려 있어 상황이 더 나쁘다. 내 집도 안전하지 않게 돼버렸다.”
△ 지난 9월 민주화 시위의 중심지였던 버마 랑군 시내 중심가의 경찰 초소 밖에 정복경찰들이 앉아 있다. 무차별 폭력 진압으로 대규모 시위는 사라졌지만, 산발적인 소규모 기습 시위가 이따금 벌어지기 때문에 랑군 거리 곳곳에서 경찰·보안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가는 곳마다 특별지부… 특별지부…
킨 오마르는 88항쟁을 경험했고, 지금은 타이-버마 국경지대에서 민주화 운동을 하고 있다. 그의 말마따나 지난 20년 동안 버마에서 눈에 띄게 늘어난 것은 ‘군복’과 더불어 ‘사복’이 아닐까 싶다. 버마 내부 취재를 한 지난 4주 동안 가는 곳마다 만난 건 ‘특별지부’라 불리는 사복 공안요원들이었다.
“간밤에 특별지부에서 전화가 왔다. 당신의 동향을 묻더라.”(포코쿠에서)
“(특별지부 요원들은) 외국인들이 현지인과 나눈 대화 내용을 알아들을 정도로 영어 실력을 갖추고 있다.”(만달레이에서)
“우리 호텔에 묵었던 이스라엘 여행객이 민족민주동맹(NLD) 본부를 방문했다가 미행을 당했는지 특별지부에서 전화를 했다. 그의 동향을 보고하라고. 보고를 제대로 안 하면 호텔 문 닫게 될 줄 알라는 협박도 했다.”(랑군에서)
버마 각지에서 접한 이런 증언들을 종합해보면 외국인은 거의 이 특별지부가 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직접 목격한 특별지부 요원들은 ‘사복’이긴 해도 사실 조금 티가 났다. 머리 가르마를 옆이나 뒤로 제법 단정하게 넘기고, 롱지(남녀 공용 버마 전통 치마)도 입지만 양복바지도 입는다. 일반인들에 비해 한마디로 ‘때깔’이 좋았다. 그리고 버마에서는 흔치 않은 휴대전화를 식탁에 올려놓고 밥 먹는 이들의 눈에선 그야말로 ‘빛’이 났다.
“아까 그 사람들이야.”
같이 밥을 먹던 현지인 가이드가 ‘혹시나’ 하던 내 직감을 확인시켜준다. ‘아, 이젠 좀 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깨달음’도 잠시, 사복요원들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점을 알게 되면 아연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주로 외국인을 대상으로 감시와 정보수집에 집중하는 특별지부도 있지만, 각종 폭력사태에 심심찮게 연루되는 ‘연합연대개발협회’(USDA·개발협회)와 ‘스완 아르신’(Swan Arrshin)으로 불리는 사복들도 있다. 지난 2003년 12월에는 미얀마여성위원회(MWA)라는 여성조직까지 생겨났다. 이들 조직 모두 “시민들의 일상 감시와 민주화 운동가 잡기에 혈안이 돼 있으며, 자기들끼리 성과 올리기 경쟁까지 벌이고 있다”고 민주화 운동가들은 혀를 찼다.
이들 중 스완 아르신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비공식 조직이다. ‘민병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이 조직은 개발협회의 행동부대쯤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 조직의 요원 가운데는 군사정권이 ‘사면’해준 범죄자들도 다수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스완 아르신’이라고 적힌 완장을 똑똑히 보았다. 그들이 주도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 개발협회가 ‘맹위’를 떨쳤던 지난 2003년 5월30일 벌어진 데파윈 학살(530 학살·아웅산 수치의 현 가택 연금의 시발점이 된 사건)을 목격한 틴틴에(28·가명)의 증언은 두 조직의 관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직업이 승려인 사람들도 포함돼
1993년 ‘사회단체’라는 간판을 달고 창설된, 공식적으로 ‘비정부기구’(NGO)인 개발협회는 군사정부 고위인사와 군 고위인사가 중앙위원직에 대거 이름을 올리고 있다. 사실상 군사정부의 또 다른 얼굴인 셈이다. 이들은 주로 흰색 셔츠와 초록색 롱지를 공식 유니폼처럼 입고 다니기 때문에 ‘하얀 셔츠’로도 알려져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늘 유니폼을 입고 다니는 건 아니다. 개발협회 구성원에는 “학생도 있고, 교사나 사업가, 거리에서 마주치는 노점상에 심지어 승려까지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거리의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이들을 구분해내기란 쉽지 않은 노릇이다.
“승려 둘이 먼저 다가왔다. 차를 세우더니 이윽고 무차별 공세를 시작했다.” 데파윈 학살 당시 아웅산 수치의 경호원 노릇을 한 모조아웅(28)의 증언에 따르면, 개발협회에는 ‘승려’도 분명히 가담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망명단체인 민주개발네트워크(NDD)가 지난해 5월 내놓은 보고서 ‘하얀 셔츠: 버마 독재의 새 얼굴’에서, 개발협회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 진행한 조사에는 개발협회 회원 가운데 직업을 ‘승려’라고 밝힌 이들도 포함됐다.
“돈도 좀 나오고, 무엇보다 일자리 구하기나 사업이 수월해진다. 그래서 너나 없이 개발협회에 가입한다.”
랑군 시민 민초(30)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개발협회 회원 수가 전방위로 늘어나고 있는 건 그만큼 ‘콩고물’이 떨어지기 때문이란 점은 쉽사리 짐작할 수 있다. “구멍가게라도 차릴라 치면 일단 개발협회에 가입을 해놓아야 별 탈이 없다”는 게 주민들의 한결같은 전언이었다. 회원의 ‘특전’은 랑군 같은 대도시는 물론 도시에서 떨어진 외진 지역에서도 비슷하게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소수민족이 주로 거주하면서 군사정부와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는 내전 지역에선 전쟁에 쓰일 무기를 나르는 일꾼들을 거의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해 충당한다. 개발협회에 가입하면 이런 중노동에 동원되지 않는다.
“한 가정당 최소 1명은 개발협회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 그러니 비밀이란 게 있을 수 없지….” 시위와는 거리가 멀었던 평화로운 관광지 인레 호수를 곁에 두고 있는 낭쉐 마을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그냥 존경해서’라며 대담하게 집안에 버마 독립영웅 아웅산 장군의 사진을 걸어놓은 주민 투투아웅(가명)은 “버마 전역, 마을 구석구석 그들이 없는 곳이 없다”고 주장했다.
“(군사정부가) 주민들을 강제로 개발협회 회원명부에 올려놓고 각종 모임에 동원한다”는 그에게 ‘거부하면 어떻게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여러 가지 처벌이 뒤따른다”고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야당 모임이나 시위를 무산시키기 위해 동원된 현장에서 폭력을 휘두르지 않아도 처벌을 가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깡패처럼 굴어야 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명령을 거부한 사람들에게는 뭇매가 가해진다”고 덧붙였다.
개발협회 회원증은 ‘마법의 카드’
현재 개발협회의 ‘공식’ 회원 수는 버마 전체 인구 5천만 명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2380만 명이나 된다. 50만 버마군의 40배가 넘는 규모다. 인도로 망명한 버마인들이 만드는 가 2005년 12월11일치에서 인용한 테이우 개발협회 사무총장의 말을 들어보면 상황이 쉽게 이해된다. “만일 거리 한편에 두 사람이 서 있으면, 그중 1명은 개발협회 회원이라고 보면 된다.”
이렇게 엄청난 수의 회원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회원 모집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첫째, 푼돈이라도 받고자 자발적으로 가입하는 부류가 있다. 둘째, 사업 허가증을 받거나 사업을 원만히 하기 위해 반강제로 가입하는 경우다. 셋째, 협박에 못 이겨 강제로 가입하는 경우가 있다. 마지막으로 자신도 모르는 새 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경우다. 교사를 포함해 공무원들은 거의 자동으로 개발협회 회원으로 등록되는데, 특히 교사들은 다시 학생을 대상으로 회원 강제 모집에 동원된다. 이런 ‘권고’를 무시하면 차별대우는 기본이고, 사직을 강요당하기도 한다는 게 ‘하얀 셔츠’ 보고서의 지적이다. 어린이까지 잡아가는 군대 강제징집이 ‘민병대’ 수준의 NGO로도 이어지고 있는 게다.
이 밖에 북서 라카잉 지방의 무슬림 소수민족인 ‘로힝야’처럼 버마 시민권이 없는 이들은 신분증을 발급받기 위해 단체로 개발협회에 가입하는 경우도 있다. 버마에선 도시 간 이동을 할 때 한두 차례 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신분증 없이는 이동의 자유가 없다. 개발협회 회원증은 버마 전역에서 검문소를 무사통과할 수 있는 ‘마법의 카드’로 통한다.
‘암 덩어리’와 다름없는 이 조직이 버마 민주화의 미래에 심각한 위협이 된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그 하나는 군사훈련까지 받으며 ‘민병대’로 자리잡아가고 있다는 점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일종의 정당으로 변신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미 1990년대 중반부터 아웅산 수치의 연설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으며 ‘용역깡패’로서 실력을 쌓아온 이들이, 2000년부터는 은밀히 군사훈련까지 받고 있다고 각종 보고서들은 전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월 민주화 시위는 물론 그 이전부터 있었던 크고 작은 무력진압에는 군경뿐 아니라 이 ‘민병대’들도 동원되었다는 건 버마 현지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랑군 시내 한 사원에서 숙식을 해오다 사원이 지난 9월 공격받은 뒤 도피했다는 모조아웅은 “공격 당시 사원 밖을 지키고 선 건 ‘군복’이었고, 사원 안으로 들이닥쳐 폭력을 휘두른 건 ‘사복’이었다”고 말했다.
이들 ‘민병대’는 또 버마의 다양한 인종과 종교를 분열시키며 소규모 충돌을 조장하기도 한다. 지난 2003년 1월 버마 중북부 사가잉 지역에서 무슬림 마을에 불을 지르고 32명의 무슬림을 납치한 것도, 2005년 1월 버마 제2 도시 만달레이의 힌두사원을 불태운 것도 모두 개발협회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사원 밖엔 군복, 사원 안엔 사복
12월3일 버마에서는 군부로부터 선택받은 이들만 참여할 수 있는 ‘전국회의’(NC)가 재개됐다. 이 회의는 지난 2005년 축출된 킨?H 전 총리가 마련한 ‘새 민주국가 건설을 위한 7단계 로드맵’의 첫 단계다. ‘정당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개발협회는 이 로드맵 다섯 번째 단계에서 치러질 ‘공명정대한 선거’를 준비 중이다. 미래의 선거를 위해서인지 몰라도 이들은 지난 몇 년간 NLD 당원 빼가기 작업도 병행해왔다. NLD 지도부는 사실상 ‘마비 증세’를 보여왔지만, 버마 전역에 산재한 수많은 당원들은 버마 민주화의 미래다. 버마 군부는 이제 ‘군부독재’에서 ‘민간독재’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국제사회와 야당 진영이 대화와 타협만 외친 지난 20여 년 동안 군부는 이렇게 많은 작업을 진척시켜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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