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IE 보고서 “이란 핵개발 가능성 없다”… 부시는 새해부터 테러지원국이니 제3차 세계대전이니 말해왔는데…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거짓말’의 뒤를 이은 건 ‘무능함’이었다. 조작한 정보를 바탕으로 전쟁을 벌이고, 그 뒷수습을 못해 피를 흘리며 세월을 보내고 있다. ‘있다’던 대량살상무기는 끝내 발견하지 못했고, 무모한 이라크 침공은 조지 부시 행정부의 발목을 임기 말까지 붙잡고 있다.
“2003년 가을께 중단”
그럼에도 또 다른 전쟁을 운운해왔다. 이란의 핵무장이 그 ‘이유’였다. 이라크 침공 초기부터 ‘다음은 이란 차례’란 말을 공공연히 거론하더니, 급기야 최근엔 ‘제3차 세계대전’이란 끔찍한 조어까지 튀어나왔다. 한데 이번에도 그 전제가 ‘거짓말’에 기댄 것이란 사실이 드러났다. 지구촌을 헤집은 ‘거짓말’과 ‘무능함’의 끔찍한 드라마가 두 번째 시즌을 맞고 있는 모양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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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미 대통령는 12월4일 오전 10시께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백악관 홈페이지에 공개된 동영상을 보면, 부시 대통령이 회견장에 입장해 질의응답을 마치고 퇴장할 때까지 이날 회견은 모두 42분10초 동안 진행됐다. 부시 대통령의 모두 발언과 미 경제현황·중동 평화회담·미 대선 예비선거·베네수엘라 국민투표 결과 등 몇 가지 사안을 빼고, 이날 회견은 온통 전날 공개된 국가정보평가보고서(NIE·이하 평가보고서) 내용에 집중됐다. 일단 평가보고서 내용부터 짚어보자.
미 의회와 언론을 통해 12월3일 공개된 내용은 평가보고서 가운데 비밀해제된 A4용지 9쪽 분량이다. 이 가운데 표지와 주석, 2005년 5월 같은 주제로 내놓은 보고서와의 비교표 등을 빼면 실제 ‘주요 정보판단’은 2쪽을 조금 넘을 뿐이다. 중앙정보국(CIA) 등 16개 미 정보기관이 참여해 작성한 평가보고서의 뼈대는 이렇다.
미 정보당국은 우선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지난 2003년 가을께 중단했다”고 판단했다. 이는 “이란 정부가 숨겨온 핵활동이 드러나면서 (이 무렵) 국제사회의 압력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는 게다. 평가보고서는 또 “2007년 중반까지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향후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재개할 의도가 있는지는 불투명한 상태”라고 적었다.
앞서 2005년 평가보고서에서 미 정보당국은 “이란이 국제적 의무와 국제사회의 압력에도 핵무기 개발에 나선 상태”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이번 평가보고서에선 이미 4년여 전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을 뿐 아니라,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할 만큼 충분한 양의 핵물질을 손에 넣지 못했다는 상당히 믿을 만한 증거가 있다”고 썼다. 이란에 대한 무력 사용까지 거론하며 위기감을 키워온 부시 행정부로선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는 내용이다.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주장은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 이란도 핵무기 개발을 2003년 중단한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신뢰를 잃고 ‘양치기 소년’이 되는 건 아닌가?”
2월 작성된 뒤 네 차례 반려
“이라크 침공에 앞서 (핵폭발 직후 생기는) ‘버섯구름’을 언급했다. 하지만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 지난 10월17일 대통령께선 이란의 핵무장과 관련해 ‘제3차 세계대전’ 가능성을 경고했다. 하지만 그 발언을 하기 몇 달 전부터 정보당국은 이란이 이미 지난 2003년 핵무기 개발을 포기했다는 정보를 갖고 있었다. 위험을 지나치게 부풀린 건 아닌가?”
“핵확산금지조약(NPT)은 이란 같은 나라가 우라늄 농축 기술을 보유하는 걸 금하지 않았다. 이란에 대해 이중잣대를 들이대는 건 아닌가?”
“벌써 두 번째다. 이라크에 이어 이란. 대통령께서 미국민들에게 강조한 것이 사실과 다르다는 점이 드러났다. 미국민들과의 신뢰도에 금이 가는 것이 걱정스럽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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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선 질문이 꼬리를 문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은 요지부동이었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했다는 내용을 보고받은 것은 지난달 말이다. 그동안은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나섰다는 확증이 없었다. 이번 평가보고서를 통해 적어도 지난 2003년 가을까지는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었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이란이 핵무기 개발 능력을 갖추는 것은 국제사회에 중대한 위협이 된다. 그게 이번 평가보고서의 강조점이다. 바뀐 건 아무것도 없다. 이란에 대한 정책에도 변화가 없을 것이다.” 한데…, 이를 어쩐다. 부시 대통령의 주장을 백악관 대변인이 이튿날 뒤집어버렸다.
“지난 8월 마이크 매코넬 국가정보국장이 부시 대통령에게 이란 핵무기 개발 계획과 관련해 ‘기존 판단에 영향을 끼칠 만한 새로운 정보를 입수했다’는 점을 보고했다. 다만 새 정보를 기초로 최종 판단을 내리기까지는 검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부시 대통령의 회견 다음날인 12월5일 오후 〈CNN방송〉은 다나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페리노 대변인은 “부시 대통령은 ‘새 정보’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선 보고받은 바 없다”고 강조했지만, ‘거짓말’ 논란을 비껴갈 순 없었다.
기실 ‘거짓말’ 논란은 평가보고서가 나오기 전부터 워싱턴 정가 안팎에서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CIA에서 27년여 동안 정보분석관으로 활동했던 레이 맥거번은 지난 8월22일 인터넷 매체 에 기고한 글에서 “이란의 핵무기 사업과 관련한 정보평가보고서는 이미 지난 2월 작성이 끝난 상태”라며 “하지만 부시 행정부 강경파의 의견과 배치된다는 이유로 네 차례나 반려됐다”고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가 이란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정보를 조작하려 했다”는 게다.
진보적 인터넷 매체 〈IPS뉴스〉도 지난 11월9일치에서 전직 CIA 요원들의 말을 따 비슷한 보도를 했다. 이 매체는 “이란 핵무장 관련 평가보고서는 이미 1년여 전 완성됐지만, 부시 행정부의 기존 주장과 배치되는 정보당국의 평가의견 때문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며 “딕 체니 부통령을 중심으로 한 부시 행정부 내 강경파가 이란에 대한 강경 노선을 밀어붙이기 위해 평가보고서 내용을 수정하라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얘기다.” 부시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조지프 바이든 미 상원 외교관계위원장은 〈ABC방송〉 등과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그는 “부시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현 정보기관은 미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정보기관이며 부시 대통령 역시 미국 역사에서 가장 무능한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임기 안 군사행동 불가능해져
부시 대통령은 올 초 새해 국정연설에서 이란을 ‘테러지원국’이자 ‘대량살상무기 확산 우려국’으로 지목한 뒤 지난 1년 내내 강경 발언을 이어왔다. 그 극한이 지난 10월17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제3차 세계대전’ 발언이다. 하지만 새 평가보고서가 공개되면서 세 번째 세계대전은 확실히 ‘연기’된 것으로 보인다. 이란 침공설을 부추겨온 네오콘 진영의 핵심 멤버인 칼럼니스트 로버트 케이건조차 기고문에서 “평가보고서 공개로 부시 대통령의 임기 안에 이란에 대한 군사행동을 감행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고 썼다.
남은 건 뭔가? 평가보고서가 지적한 대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최종 포기하도록 만들 수 있는 건 오로지 이란 정권 지도부의 정책적 결단뿐”이다. 극한 대립을 뚫고 해결 국면으로 접어든 북핵 사태가 교훈이 될 수 있을까? 부시 대통령의 1년여 남은 임기가 길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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