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친결혼이 심한 경우 70%가 넘는 중동, 젊은이들 중심으로 온라인 이용한 만남 늘어나
▣ 암만(요르단)=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yahiya@hanmail.net
아랍·이슬람 세계의 풍속도가 변하고 있다. 그중 결혼 풍속도의 변화는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사촌 간의 결혼이 대세를 이루는 전통이 흔들리고 있고, 가까운 친척과 가족에게서 배우자를 소개받는 중매 풍속도 변하고 있다. 온라인 결혼 소개 사이트가 성행하고, 사촌 간의 결혼을 우려하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광고

남녀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없어서
“근친결혼이 미풍양속인가, 전통도 변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집안 배경도 모르는 사람들하고 어떻게 사돈을 맺을 수 있는가?” “결혼은 맺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근친결혼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서구 제국주의자들의 호도이다.” “근친결혼이 유전질환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그런 주장의 근거가 희박하다.” 근친결혼을 둘러싼 논쟁도 한창이다. 바야흐로 시대가 바뀌고 있는 게다.
광고
중동 지역의 가장 일반적인 결혼 풍습은 사촌 간의 결혼을 기본으로 하는 근친결혼이다. 그동안 여성의 가장 좋은 배우자는 숙부의 아들(이븐 암므)였다. 혼사는 집안 어르신들이 주도하고, 중매결혼도 보편적이다. 근친결혼 비율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평균 30%가 넘고, 심한 경우 70%에 가까운 나라도 있다. 걸프 연안 국가들의 경우 근친결혼 비율이 50%를 넘는다. 사촌 간의 결혼도 20~35%에 이르고 있다. 이는 다른 아랍 국가에서도 비슷한 상황이다.
요르단 수도 암만에 사는 소아과 의사 왈라는 지난해 약혼녀와 파혼을 했다. 위로금을 지불하느라 이래저래 고생도 많았다. 약혼녀는 다름 아닌 사촌 동생이었다. 왈라는 “가족과 친척의 주선으로 약혼식을 올렸지만, 사랑의 감정이 생기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냉담해하는 왈라를 보고 약혼녀가 따졌다. 결국 결혼 약속을 파기했고, 왈라는 위자료를 지불하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약혼녀에게 사촌 오빠인 왈라는 ‘우선적으로 결혼을 할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전통 덕분이다.
이마드와 무하마드는 형제지간이다. 이마드의 아내 와파와 무하마드의 아내 나히라는 자매 사이이다. 겹사돈인 셈이다. 겹사돈은 아랍·이슬람 세계에서 드물지 않다. 두 부부가 낳은 자녀들의 촌수 계산은 복잡하기 그지없다. 근친결혼이 많은 이 지역에서 우리 식의 친가와 외가의 구별은 쉽지 않다. 근친결혼이지만 사촌 이내는 금혼이다. 이런 식으로 사촌 간의 결혼으로 겹사돈이 되는 비율이 전체 부부의 약 3%에 이른단다.

광고
근친결혼으로 인한 유전질환 등 부작용도 만만찮게 거론된다. 유방암·다운증후군·당뇨·고혈압은 물론 중증 빈혈, 신생아의 체중 저하 등이 대표적인 근친결혼의 후유증으로 꼽힌다. 일부 국가의 정부나 민간단체에서는 이 때문에 근친결혼 전통을 깨뜨리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기성세대만 근친결혼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 아니라 신세대들 사이의 결혼에서도 근친결혼 비율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여전히 청춘 남녀가 자연스럽게 이성을 대하고 사귈 수 있는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이혼녀, 이혼남도 찾아가네
변화의 조짐은 사이버 공간에서 시작됐다. 온라인에서 만나 마음에 들면 오프라인 데이트를 즐기고 결혼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요즘 아랍·이슬람 지역에 점점 번지고 있는 인터넷 중매 사이트 덕분이다. 조건 맞춤식 결혼에 거부감을 느끼는 젊은이들이 인터넷을 통해 돌파구를 찾고 있다. ‘하늘의 별 따기’ 같은 성공률은 문제될 것이 없다. 그야말로 “인터넷은 사랑을 싣고”다.
결혼 풍속도가 바뀌면서 중매 전문업체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집트의 경우는 150여 개의 오프라인 결혼소개소가 성업 중이다. 가족이나 지인, 중매쟁이를 통한 전통 결혼은 결혼 소개소가 필요 없었다. 아예 일간지에 구혼 광고를 싣는 경우도 종종 눈길을 끈다. 온라인 결혼 소개소는 더 활성화되고 있다. 인터넷에 접속하면 파트너를 소개하는 사이트들이나 결혼 정보 사이트들이 우후죽순으로 늘어가고 있다. 배우자 소개 사이트는 해외 거주 이민자들과 장기 체류자들을 본국 거주자는 물론 다른 아랍 국가, 심지어 동남아시아나 옛 소련 지역 배우자와도 연결해주고 있다.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인터넷 중매 사이트는 ‘arab2love.com’ ‘muslimmatch.com’ ‘singlemuslim.com’ ‘arablounge.com’ 등이 꼽힌다. 특히 ‘arab2love.com’은 종교에 관계없이 아랍계 데이트 상대나 친구를 만날 수 있는 열린 사이트다. 다른 사이트들은 전세계 무슬림을 대상으로 하는 인터넷 중매 사이트로 명성이 높다. 배우자 선택의 기본 조건은 무슬림인 것이 특징이다. “국적과 인종 불문, 무슬림 배우자 환영”이다. ‘muslimmatch.com’의 등록 회원 수는 12만 명에 이른다. 회원 가입은 무료지만 짝을 찾는 절차 등을 거치려면 유료 회원으로 가입해야 한다. 가입비는 우리 돈으로 연간 10만원 안팎이다.

사우디아라비아 출신 여성 파티마 압달라(32·가명)는 “친구가 용기를 줘서 인터넷 중매 사이트에 등록했다. 지난 3년간 배우자를 찾아나섰지만 아직까지 내게 맞는 배우자를 찾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혼녀나 이혼남들도 인터넷 결혼 사이트를 찾고 있다. 인터넷 중매회사를 통해 결혼에 성공하는 비율은 5%에 이른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물론 여전히 전통결혼이 대세이다 보니, 중매 사이트를 두고 찬반 논란이 일고 있다. “마음껏 데이트도 못하는 현실인데 자유롭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좋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혼기를 놓친 여성들이 스스로 배우자를 찾아나설 수 있는 열린 공간”이라거나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제한된 요즘 젊은이들에게 데이트와 결혼 사이트가 새로운 돌파구”라는 목소리도 설득력 있게 나온다.
반대 의견 역시 만만찮다. 우선 “여성으로 신분을 속이고 장난을 치는 경우도 있다”거나 “온라인에서 만난 상대를 오프라인에서 만났더니 전혀 딴판이었다. 완전히 속았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또 “인터넷이 지니는 익명성이 온라인 데이트 상대자를 신뢰하는 데 어려움을 준다”거나 “진지하게 배우자나 이성 친구를 구하려는 경우도 있지만, 심심풀이로 사이트를 기웃거리는 경우도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일부에선 “불건전한 성매매 사이트나 포르노 사이트에 접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한다.
성매매 등의 폐단 방지책도
실제로 인터넷 중매 사이트가 번져가면서 젊은이나 기혼자들 사이의 ‘은근한 만남’이나 성매매를 알선하는 불법 사이트들도 점차 늘고 있다. 이런 폐단을 예방하기 위해 결혼 정보업체들도 자구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인터넷 중매 사이트 ‘아프라셰이크칼리드’(afrah-khgh.com)를 운영하는 압둘라 빈 사이드 알자흐라니는 “웹사이트에 등록자의 이메일이나 연락처를 공개하지 않는다. 서로 간의 교류는 웹페이지상에서만 가능하도록 했다. 서로가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을 때 사이트 운영팀이 양쪽 당사자의 부모나 후견인에게 이같은 사실을 통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첨단기술로 무장한 젊은이들이 수천 년 이어온 전통을 바꿔낼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광고
한겨레21 인기기사
광고
한겨레 인기기사
서울 강동구 ‘깊이 20m’ 싱크홀 실종자 오토바이·폰만 발견
“인연 끊자 쓰레기야” 전한길 절친, 작정하고 입 열었다
한덕수처럼, 윤석열 탄핵 심판도? [3월25일 뉴스뷰리핑]
의성 산불 역대 3번째로 커져…서울 면적 5분의 1 태웠다
트럼프에 소송 건 한국 출신 21살 컬럼비아대생…“시위로 표적 돼”
삼성전자 TV사업 이끈 한종희 부회장 별세…향년 63
명일동 대형 싱크홀에 빠진 오토바이 실종자…안엔 토사·물 2천톤
미 해군 전문가 “군함 확보 시급, 한국이 미국 내 조선소에 투자하면…”
밤새 더 커진 의성 산불…96㎞ 불길 맹렬한데 오늘도 강풍
[단독] 검찰 “오세훈 측근, 시장 선거 당일도 명태균 만나” 진술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