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중상류층 쇼핑몰에서 전자제품까지 중동을 휩쓰는 무소부재 ‘한류’(漢流) 열풍
▣ 암만(요르단)=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아시아의 큰 용’ 중국이 중앙아시아를 넘어 중동으로 몰려오고 있다. 중국 제품은 그야말로 ‘무소부재’(無所不在)다. 가정은 물론 관공서와 사무실, 거리와 상점마다 넘쳐난다. 이미 중동 깊숙이 자리를 차지한 중국의 힘은 날이 갈수록 거세지면서, 이제 유럽으로 힘차게 뻗어나갈 기세다.
‘짝퉁’과 유사 제품의 매력
중국산 제품은 요르단 재래시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네거리 귀퉁이마다 어김없이 나타나는 길거리 판매상들 손에 쥐어진 대형 풍선이나 안마기 같은 제품에도 중국어가 선명하다. 재래시장의 완구점은 물론 문구잡화점, 생활용품점, 어린이 용품이나 선물용품 전문점 그 어디에나 중국산이 넘쳐난다. 컴퓨터 전문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제품들도 대개 중국산이다. 텔레비전, 비디오, 라디오, 오디오 등 가전제품도 이제는 중국산이 대세다. 의류와 직물, 신발류도 중국산이 장악한 지 오래다.
“어, 저 신발 값이 엄청 내렸네.” 혹시나 하고 확인해보면 영락없이 중국산이다. 심지어 이슬람 종교용품도 중국산이 장악해가고 있다. 얼마 전에 끝난 라마단 기간 내내 요르단 무슬림 가정을 비춰주던 등불과 각종 장식도 대부분 중국산이었다. 이런 분위기는 요르단만이 아니다. 이집트나 시리아, 두바이 재래시장 풍경도 이와 다르지 않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 기념품 상점에도 이젠 중국산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지역의 대표적인 기념품인 올리브 나무로 만든 각종 조각품들도 중국산으로 교체되고 있을 정도다.
중동에서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중국산의 특징은 ‘짝퉁’이란 점이다. 하지만 정품의 해적판을 만드는 게 아니다. 교묘하게 정품을 흉내낸 유사 제품이 대다수다. “매장에서 취급하는 제품 100%가 중국산이다. 중국 제품은 나름대로 경쟁력이 있다. 저렴한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이다.” 암만 구시가지에서 기념품 대리점을 하는 아흐마드(30)는 “겉보기에 고급 상품과 비슷한데다 품질도 나쁘지 않아 찾는 이들이 많다”며 “몇만원 정도 하는 물건과 비슷해 보이는 제품을 몇천원에 구입할 수 있으니 소비자가 끌릴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렇다고 중국산이 저가 재래시장 골목과 서민들의 생활 터전에만 넘쳐나는 것은 아니다. 암만 중심가의 메카 몰, 카르푸 등 중·상류층이 많이 찾는 전문 쇼핑 공간에서도 중국산 제품이 갈수록 늘고 있다. 중국산 쇠고기가 매장 한쪽을 차지하고 있고, 컴퓨터 제품은 물론 각종 전자제품들도 중국산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중국산임을 감추려는 듯 종종 ‘메이드 인 차이나’ 대신 ‘메이드 인 피아르시(PRC)’라고 약자로 적어놓거나, 아예 생산지 표시가 안 돼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암만의 중국 대사관에는 요즘 중국 입국 비자를 신청하는 발걸음이 줄을 잇고 있다. 일주일에 줄잡아 200명 정도가 중국행 비자를 발급받는단다. 중국과의 교역이 늘고, 중국산 제품의 수요가 많아진 덕분이다. 관공서에 사무용품을 납품하는 아부 나예프도 “곧 2주 일정으로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중국대사관 앞에서 만난 그는 “요즘 취급하는 문구 사무용품 대부분이 중국산”이라며 “중국에서 직접 구매처를 찾아보기 위해 방문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아랍어 한 마디 못하는 중국인도 장사
전자제품에서도 중국의 입김이 거세지고 있다. 최근 중국은 이집트에서 이동통신 단말기(휴대전화)를 생산하는 협정을 맺었다. 계획이 실현되면, 하루 15만 대 이상의 휴대전화를 현지에서 생산하게 된다. 앞서 지난 2004년 12월 초엔 아랍에미리트연합(UAE)의 두바이 인근에 중국산 제품 전용 쇼핑몰 ‘드래곤 마트’가 문을 열기도 했다. 중국은 원유·천연가스 산업뿐 아니라 교통과 이동통화·초고속 인터넷 등 통신, 소비재 부문 등 경제의 각 분야에서 걸프 연안 국가들의 중요한 거래상대로 떠오르고 있다.
중동 각국의 경제지표는 중국의 부상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2005년 중국의 대중동 수출액은 513억달러에 이른다. 중국 정부는 2010년까지 이 수치를 2배로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힌 바 있다. 아랍에미리트연합의 지난해 대중국 교역 규모는 142억달러로, 이는 전년 대비 31.5%가 늘어난 규모다. 사우디아라비아·바레인·아랍에미리트연합·카타르·쿠웨이트·오만 등 걸프 연안 국가 전체로도 전년 대비 30%가량 교역량이 증가했다. 중국은 올해 말을 목표로 걸프 연안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 중이다. 아랍에미리트연합에 진출한 중국 업체만도 1천여 곳에 이른다니, 그야말로 ‘한류’(漢流)가 절정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중국산 제품뿐만이 아니다. 중국인들도 앞다퉈 중동으로 몰리고 있다. “어느 날 초인종 소리가 들렸다. 밖을 보니 한국인 아줌마가 서 있었다. 문을 열고 인사를 했더니 낯선 말을 하더라. 알고 보니 중국인 보따리 장사였다.” 이집트 카이로에 사는 한 교민은 “아랍어나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중국인들이 버젓이 장사를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전했다. 카이로 북쪽의 서민 집단 거주지역에선 중국인들을 쉽게 마주칠 수 있을 정도란다. 중동 각국의 주요 도시 곳곳에 ‘중국인 거리’가 하나둘 늘고 있는 것도 눈에 띄는 변화다.
문화적 측면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보다 먼저 아랍권 공영방송에 등장했다. 이집트 같은 나라에선 이미 지난 2004년부터 초·중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제2외국어에 중국어를 포함시켰다. 반대로 요르단의 수도 암만의 요르단대학 언어 과정엔 아랍어를 배우려는 중국인 유학생이 해마다 늘어나는 등 중국인들의 아랍어 학습 열풍도 거세다.
이집트, 초중 제2외국어에 중국어 포함
사정이 이렇다 보니, 중동을 찾는 중국인 관광객도 해마다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집트 관광 당국은 올해 10만 명 정도의 중국인 관광객이 이집트를 찾을 것이란 전망치를 내놓기도 했다. 이들 관광객을 겨냥한 중국 식당도 늘고 있는데, 암만 시내에만 현재 10여 곳이 성업 중이다. 이 식당들은 관광객 외에도 다수의 현지인들과 장기 거주 외국인들도 즐겨 찾는다. 중국의 음식문화도 중동에서 확실히 자리를 잡은 모양새다. 중동에서 불고 있는 중국 바람은 전방위로 몰아치는 ‘태풍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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