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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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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절망은 철수하는가

등록 2007-07-20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전비는 베트남전 수준에 이르고 전사자는 3596명… 부시의 ‘네 번째 단계’ 기자회견 몇 시간 만에 ‘철수 법안’ 하원 통과</font>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이라크에 미군을 파견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미국민들에게 물었다. 이라크 침공 초기인 2003년 3월24~25일 실시한 조사에선 응답자의 75%가 ‘잘했다’고 답했다. ‘실수’라는 응답은 23%에 불과했고, 2%는 판단을 유보했다. 침공 2년이 채 안 된 2005년 1월 초 다시 물었을 때 ‘실수’라는 응답이 50%를 넘어섰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엔 ‘잘했다’는 응답이 55%로 다시 높아졌다. 유혈의 망령이 이라크 도처에서 피를 뿌리면서 침공을 둘러싼 찬반 여론은 그해 내내 엎치락뒤치락을 반복했다. 하지만 같은 해 12월16~18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가 이라크 침공이 ‘잘못된 일’이라고 답한 이후 대세는 단 한 차례도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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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실수’ 응답자 60% 넘어

지난 7월6~8일 미 일간 〈USA투데이〉는 여론조사 전문기관 갤럽과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62번째 실시한 정례 여론조사를 내놨다. 이라크 침공이 ‘실수’였다고 답한 응답자가 조사를 시작한 이래 처음으로 전체의 60%를 넘어섰다. ‘잘한 일’이란 응답은 36%에 그쳤다. ‘바그다드 치안 확보를 위해 (올 초) 미군 병력을 증파한 전략이 현지 상황에 어떤 영향을 끼쳤다고 보느냐’는 질문엔 응답자의 71%가 ‘부정적’이란 답변을 내놨다. ‘긍정적’이란 평가는 26%에 그쳤다. 또 미 의회가 늦어도 오는 9월까지는 새 이라크 정책을 도출해내야 할 것이란 의견도 전체 응답자의 95%에 이르렀다. 최근 워싱턴 정가가 심상찮게 돌아가는 이유다.

미 의회가 짧은 여름 휴가를 마치고 7월 초 복귀한 이후 조지 부시 행정부와 민주당 주도의 의회 사이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이라크 정책을 둘러싸고 부시 행정부와 의회가 한판 대논쟁을 시작한 탓이다. ‘이라크 대논쟁’은 애초 오는 9월 중순이나 돼야 불을 뿜을 것으로 전망돼왔다.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이라크 주둔 미 사령관과 라이언 크로커 주이라크 대사가 지난 1월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이라크 증파 계획의 진전 상황에 대한 종합 보고서를 9월15일까지 의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회가 2008 회계연도 국방예산 심의가 본격화하면서 논쟁을 더는 미룰 수 없게 됐다. 때 맞춰 나온 미 의회조사국(CRS)의 보고서는 이런 분위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지난 6월28일 의회조사국은 이라크전쟁을 포함한 부시 행정부의 군사행동이 초래한 재정적 부담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에 대한 상세한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의회의 예산 심의를 위한 자료였다. ‘9·11 동시테러 이후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한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간 비용’이란 제목의 45쪽 분량인 이 보고서를 보면, 2001년 9·11 동시테러로 촉발된 ‘테러와의 전쟁’에 들어간 전비는 올해 추가예산을 포함해 모두 6110억달러에 이른다. 현재의 화폐가치로 환산한 베트남전 당시 전쟁 비용이 약 6500억달러 수준임에 비춰,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역사상 가장 값비싼 전쟁으로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보고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면, 2003년 봄 이라크 침공 이후 지금까지 투여된 이라크 전비는 전체 테러와의 전쟁 경비 가운데 75%에 이르는 4510억달러에 이른다. 아프간을 포함한 기타 대테러 활동에 들어간 경비도 1270억달러에 이르며, 미군 시설과 미 대사관의 경계 강화에 들어간 비용도 280억달러로 추산된다. 이는 한 달 평균 이라크에서 100억달러, 아프간에서 20억달러 등 모두 120억달러가 전쟁 비용으로 쓰이고 있음을 뜻한다.

대테러 전쟁으로 인한 미군 전사자 규모도 새삼 관심을 끌었다. 은 지난 7월9일 “2001년 12월 아프간에서 탈레반 정권을 몰아낸 이래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투입됐다 희생된 미군 전사자가 4천 명을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날로 2003년 3월 이라크 침공 이래 숨진 미군은 3596명에 이르렀고 부상자도 2만6500여 명에 달했다. 특히 올해 들어 이라크에서 저항세력의 공세가 극심해지면서 지난 6개월 새에만 모두 580여 명이 목숨을 잃는 최악의 유혈사태를 보였다. 아프간에선 이날까지 모두 404명이 숨졌고, 1361명이 다쳤다고 통신은 덧붙였다.

“9월15일 이라크 정책 논쟁이 끝나는 날”

미 국내 정치적 역학도 ‘논쟁 조기화’에 한몫했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 실패란 ‘호재’ 속에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상하 양원을 탈환한 민주당은 갈수록 거세지는 철군 여론에 어떻게든 화답을 해야 했다. 자칫 내년 대선에서 ‘이라크’란 호재가 민주당의 ‘무능’이란 악재로 바뀌기 전에 불만에 가득 찬 여론 앞에 가시적 성과를 내놔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을 것이다. 대선과 함께 치러질 의회 선거를 의식한 공화당 일부 의원들이 ‘이탈표’를 만들어내는 상황은 민주당 지도부의 행동을 더욱 부추겼을 게다. 워싱턴 정가에서 “9월15일은 이라크 정책과 관련한 논쟁이 시작되는 날이 아니라 끝나는 날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 맥락이다.

의회의 움직임에 대한 백악관 쪽의 대응도 숨가쁘게 이어졌다. 는 7월9일치에서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7월8일 남아메리카 4개국 순방 계획을 취소하고 이라크 정책 검토에 들어갔다”며 “스티븐 해들리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휴가를 중단하고 워싱턴으로 긴급 복귀해 부시 대통령 최측근들과 대의회 설득 대책을 논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런 긴박한 분위기 탓에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철군 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했다”는 추측까지 나돌았다. 미 네오콘의 기관지 격인 가 인터넷판을 통해 “소신을 가지라”며 부시 대통령을 압박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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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오콘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부시 대통령의 ‘소신’은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부시 대통령은 7월10일 오하이오주에서 열린 기업인 초청 행사에 참석해 의회의 철군 압박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아랍 위성방송 는 부시 대통령의 말을 따 “2만8천여 병력을 이라크에 증파했지만, 결과를 말하기엔 아직 때가 이르다”며 “이라크 주둔군 지휘관들이 증파 전술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는 것은 미국민들의 희망이며, 또 군 최고통수권자로서 내가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고 보도했다. 부시 대통령은 또 “민주주의는 전체주의를 이기고야 만다고 굳게 믿고 있으며, 그런 신념에 바탕해 정책 결정을 내리고 있다”며 “미군이 이라크에 주둔하는 것은 미국의 안정과 세계의 평화를 위해 필요한 일이며, 우리는 결국 승리할 것”이라고 재차 강조했다. 의회-행정부 간 한판 대격돌은 피할 수 없어 보였다.

이튿날인 7월11일 미 상원에서 표결에 부쳐진 ‘웹-헤이글 수정안’은 이라크 정책을 둘러싼 의회와 부시 행정부 사이의 첫 ‘교전’이었다. 베트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민주당 짐 웹(버지니아주), 공화당 척 헤이글(네브래스카주) 상원의원이 공동으로 마련한 수정안의 뼈대는 두 가지다. 우선 해외에 파병된 현역 미군 병사들은 파병 기간이 끝나면 반드시 같은 기간 동안 자국 내 주둔을 해야 한다. 또 해외에 파병된 주방위군은 파병 근무 1년이 종료된 이후 3년 동안은 다시 파병될 수 없다.

아슬아슬한 부시의 승리

겉보기엔 미군 병사들의 복무 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이라크에서 병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미 국방부 입장에선 치명적인 파급효과를 낼 수 있는 조항이다. 수정안에 따라 병사들의 파병 근무를 조정할 경우, 이라크 주둔 미군 규모는 급격히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수정안을 두고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정책을 무너뜨리기 위한 우회 전략”이란 지적이 나온 것도 이 때문이다.

‘1차전’의 승자는 부시 행정부였다. 공화당 출신 상원의원 7명이 민주당과 입장을 같이했음에도 백악관 쪽의 극성스런 로비 덕에 수정안은 의결정족수에서 4표 부족한 56표의 찬성밖에 얻지 못해 부결됐다. 이를 두고 는 “공화당 출신 의원들이 공개적으론 이라크 정책과 관련해 백악관을 비난하고 있지만, 실제 이라크 정책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표결까지는 나서지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아직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다는 게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군사행동을 개시한 이래, 이라크전쟁은 네 차례 주요한 단계를 거쳐왔다. 첫 번째는 사담 후세인 정권에서 이라크를 해방시킨 단계다. 두 번째는 이라크가 주권을 회복하고 국민투표를 실시한 단계다. 세 번째는 사마라의 황금돔 사원 폭파사건으로 촉발된 종파 간 폭력사태의 비극적 확산 단계다.” ‘작은 승리’에 고무된 겐가? 부시 대통령은 7월12일 오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라크 현지의 상황에 대한 대국민 직접 보고에 나섰다.

“이제 우리는 네 번째 단계로 들어서고 있다. 이라크의 치안을 이라크인 스스로 떠맡을 수 있도록 병력을 증강 배치하고 새로운 군사작전을 시작했다. 모든 미국민이 바라는 대로 이번 작전은 미국민을 보호하고 미군 장병들을 귀국시키기 위해 필수적인 일이다. …의회가 정한 18개 기준 가운데 적어도 8개 분야에서 병력 증파 전략은 만족할 만한 진전을 이뤘다. 의회에 요청한다. 이라크 주둔 미군에 필요한 시간과 자원을 제공해달라. 미군 장병들은 이라크에서 엄청난 희생을 감내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의회는 전쟁을 관리할 권한이 없으며, 이라크전쟁은 알카에다와의 한판 승부”라며 “이 시점에서 철군을 말하는 것은 끔찍한 대규모 유혈사태를 부를 게 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의 모두 발언이 끝난 뒤 꼬리를 문 취재진의 날선 질문 공세는 미국 여론의 현주소를 극명히 보여줬다.

엎치락 뒤치락, 논쟁은 이제 시작

“(이라크를 침공함으로써) 결국 미국이 이라크로 알카에다를 불러들였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나?”

“공화당 의원들도 이라크 정책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여론도 이라크 정책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왜 바꾸지 않는 건가?”

“9·11 동시테러를 저지른 집단과 똑같은 집단이 이라크에서 폭탄테러를 저지르고 있다는 증거라도 있나?”

“침공 초기엔 충분한 병력을 투입하지 않는 실책을 저질렀다. 알카에다가 이라크에 개입하는 것도 차단하지 못했다. 종파 간 유혈 충돌을 방지하도록 이라크 정부를 압박하지도 못했다. 당신의 새 이라크 정책이 성공할 것이란 보장은 어디 있나?”

이날 부시 대통령의 회견이 끝난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미 하원은 내년 4월1일까지 이라크 주둔 미군 전투 병력을 철수시키는 것을 뼈대로 한 법안을 223 대 201로 통과시켰다. 논쟁은 이제 겨우 시작인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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