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바스 대통령이 세계를 등에 업고 벌인 ‘쿠데타’… 하마스는 지구 내에 150만 명 주민과 함께 고립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음모, 배반, 그리고 친위 쿠데타.’ 지난 1년여 동안 치밀하게 진행돼온 시나리오가 마침내 대단원에 들어섰다.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부를 무너뜨리고 피어난 ‘꽃’이니 ‘악의 꽃’이라 불러도 좋겠다. 선거로 들어선 정부와 ‘칙령’으로 세워진 정부가 서로 ‘정통성’을 주장하는 사이, 불행한 국민은 눈앞에 다가온 인도적 재난을 불안하게 바라만 보고 섰다. 점령된 땅 팔레스타인에서 ‘희망’을 말하는 것은 이렇게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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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자치정부는 부패의 온상으로
‘대단원’의 서막은 지난 6월13일 하마스 소속 무장요원들이 가자지구 북부에 있는 파타 보안군 본부를 장악하면서 올랐다. 하마스의 출발점이자 지지기반인 가자지구가 오롯이 하마스의 통제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대통령은 즉각 하마스가 주도해온 ‘거국내각’을 해산하고, ‘비상내각’을 출범시켰다. 그러곤 가자지구를 장악한 하마스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자치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군사 쿠데타를 일으켰다”는 게다. 기막힐 노릇이다.
아바스 대통령이 말한 ‘쿠데타’의 뿌리부터 따져보자. 1년5개월여 전인 지난해 1월25일,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역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의회(PLC) 선거가 일제히 치러졌다. 선거에 앞서 적어도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였다. 야세르 아라파트의 정당인 ‘파타’의 몰락이 그것이다.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에 따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출범 이후, 1996년 치러진 선거에서 자치정부 대통령에 오른 아라파트는 집권 이후 예정됐던 의회 및 지방 선거를 줄줄이 연기했다.
자치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공무원의 80% 이상을 팔레스타인 땅에서 살아온 이들로 채웠다. 하지만 고위직은 모두 자치정부 출범을 전후로 망명지에서 ‘귀환’한 기술관료들이 장악했다. 자치정부가 비민주주의와 관료주의, 부패의 온상이 되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이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은 갈수록 커졌다. 자치정부의 전권을 틀어쥔 아라파트로선 굳이 ‘선거’라는 모험에 나설 까닭이 없었던 게다.
2004년 11월 아라파트가 숨진 뒤에도 자치정부 지도부의 권력이 흔들림 없이 이어졌음은 물론이다. 2005년 1월 치러진 선거에서 62%의 득표율로 아라파트에 이어 자치정부 대통령에 오른 아바스는 이런 ‘현상’에 아무런 변화를 가져오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피폐한 민심을 다독이는 자선·교육 사업으로 대중적 지지를 모아온 이슬람 저항단체 ‘하마스’는 대안 정치세력으로 성장해갔다.
이윽고 투표일이 다가왔다. 아라파트 사후 치러지는 첫 번째 자치의회 선거였고, 무장투쟁 노선을 굽히지 않는 ‘이슬람 지하드’를 제외한 팔레스타인 제 정당·사회단체가 총망라해 치러진 선거였다. 국제적인 선거 모니터요원들이 대거 투입됐고, “공정하고 민주적으로 치러진 선거였다”는 평가가 내려졌다. 투표소가 문을 닫았을 때 ‘파타의 퇴조, 하마스의 약진’은 불을 보듯 뻔했다.
선거 승리 뒤 미국과 유럽연합 ‘원조 중단’
하지만 막상 투표함을 열었을 때, 현실은 조금 더 진전된 모습으로 나타났다. 켜켜이 쌓여온 파타와 자치정부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은 예상보다 훨씬 넓고 깊었다. 하마스의 압승이었다. 최종 집계 결과 자치의회 전체 132석 가운데 ‘변화와 개혁’을 내건 하마스가 44%에 이르는 지지율을 얻으며 제1당으로 올라섰다. 의석도 전체의 절반을 훌쩍 넘어선 74석을 얻었다. 파타당은 45석을 얻는 데 그쳤다.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이 사상 최초로 선거를 통해 집권에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독버섯처럼 자리를 잡은 기득권 세력은 ‘패배’를 현실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중동 민주화를 외치던 미국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서방 진영도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의 집권을 반길 리 만무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이 민주적인 절차에 따라 내린 ‘선택’은 그들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던 게다. 하마스는 선거 승리의 기쁨에서 채 깨어나기도 전부터 원조 중단을 무기로 한 서방의 위협과 이스라엘의 봉쇄와 무력시위, 파타의 조직적인 저항과 반발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다음은 목 조르기 단계였다. 먼저 팔레스타인의 목숨줄인 미국과 유럽연합 등 서방의 ‘원조’가 끊겼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게 이유였다. 혼란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은 자치정부를 대신해 거둬들인 세금과 관세를 동결해버렸다. 15만 자치정부 공무원의 월급도 줄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됐다. 혼란이 가중됐다. 파타는 하마스의 연립정부 구성 제안을 갖은 조건을 내걸며 애써 피했고, 모든 혼란의 책임은 전적으로 하마스 정부에 들씌워졌다. 내분이 증폭됐다.
그리고 지난해 12월 아바스 대통령은 마침내 조기 총선이란 ‘회심의 카드’를 꺼내들었다.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도 이에 약속이라도 한 듯 호응했다. 이스라엘 역시 “온건파인 아바스 대통령이 자치정부의 모든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애초부터 선거 결과를 받아들일 마음이 없었던 파타와 국제사회가 하마스의 승리를 무력화하기 위한 ‘쿠데타’의 마각을 드러낸 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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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도 가자지구 치안 통제권을 놓고 가끔 젊은 피가 거리에 뿌려졌지만, 올 들어선 하마스-파타 간 무장충돌의 횟수와 강도가 갈수록 늘었다. 지난 2월 사우디아라비아의 중재로 어렵사리 파타가 참여하는 거국내각이 구성됐지만, 파타 무장세력들은 정부의 통제권을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 총질은 눈에 띄게 격화했고, 이내 서로를 향한 분노로 폭발해갔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장악은 이런 혼란의 와중에 우발적으로 발생한 사건이었다.
비상내각 출범 몇 시간 만에 벌어진 일
지난 2002년 아라파트가 안팎의 압박에 밀려 마지못해 서명한 ‘자치정부 기본법’은 팔레스타인의 헌법 격이다. 기본법은 자치정부 내각 해산권을 오로지 자치의회에만 부여하고 있다. 아바스 대통령도 이를 잘 알고 있을 터다. 그럼에도 그는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직후 기다렸다는 듯 ‘대통령 직권’으로 거국내각을 해산하고, 비상내각을 출범시켰다. 두 개의 정부가 세워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움직인 건 미국과 유럽연합, 그리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다. 조지 부시 미 행정부는 아바스 대통령이 비상내각을 임명한 직후인 6월18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겨냥해 취해졌던 정치·경제적 금수조처를 전면 해제한다”고 밝혔다. 또 4천만달러 상당의 인도적 지원을 유엔을 통해 팔레스타인 쪽에 전달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스스로 부과한 금수조처에도 미국은 그동안 하마스 정부에 대항하는 파타 무장세력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해왔다.
유럽연합 쪽도 “팔레스타인에 대한 직접 지원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히고 나섰고, 아바스 대통령이 비상내각을 출범시킨 지 불과 몇 시간 만에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도 “동결했던 자치정부의 세금과 관세수입 약 5억6299만달러를 팔레스타인 쪽에 넘겨주겠다”는 발표를 내놨다. 이슬람주의 정치세력의 부상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집트 등 아랍 각국도 앞다퉈 환영 성명을 쏟아냈다. 하니야 총리는 “새 내각 구성은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다”고 강조했지만, 이제 그를 팔레스타인 총리로 인정하는 이웃나라는 시리아와 카타르가 고작이다.
“하마스 지도부가 외세와 결탁해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을 분리시켜 ‘국가 안의 국가’를 만들려 한다.” 아바스 대통령은 6월20일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에서 열린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중앙위원회에 참석한 자리에서 하마스를 겨냥한 ‘독설’의 수위를 더욱 높였다. ‘살인자’ ‘테러리스트’ ‘광신도’ 따위의 다시 주워담기 힘든 단어들도 등장했다. 시리아에 망명 중인 하마스 지도자 칼레드 마샬은 가자지구 장악 직후 “팔레스타인의 ‘국가적 이익’을 위해 아바스 대통령과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지만, 아바스 대통령은 이날 “하마스와는 (앞으로) 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제 ‘가자의 비극’을 말할 차례다. 미국과 유럽연합, 이스라엘과 파타 정부가 한목소리로 ‘암흑’이라 부르는 하마스 치하의 가자지구 상황은 어떨까? 주간 은 6월21일 내놓은 최신호 기사에서 현지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하마스의 가자지구 장악에 대한 여론이 조금씩 다를 순 있겠지만, 적어도 한 가지 점에는 모두들 동의한다. 하마스가 통제권을 확보하면서 가자지구 최악의 악몽은 사라질 것이란 점이다. 경쟁 무장세력 간 충돌 때문에 생긴 치안 붕괴와 혼란이 마침내 끝날 것이란 게다.”
지난 몇 년 동안 가자지구 주민들이 가장 절실하게 바란 것은 ‘법 질서’ 확립이었다. 팔레스타인 미잔인권센터가 최근 내놓은 자료를 보면, 가자지구의 치안 붕괴와 무장세력들의 발호로 지난 2002년 초부터 2007년 6월 현재까지 모두 655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 가운데 81명은 어린이다. 같은 기간 127명이 납치됐는데, 이 가운데는 외국인도 30명이나 끼어 있다. 이스라엘의 공세가 아니어도 가자지구 주민들의 일상은 범죄와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던 게다. 은 “파타 지지자들조차도 하마스의 장악 이후 가자지구가 안전해질 것이란 점에선 이견이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석유 공급 차단, 주민들은 사재기
그럼에도 ‘비극’을 피할 순 없다. 지난 2005년 8월 이스라엘이 ‘점령군’과 ‘정착민’을 모두 철수시킨 뒤에도, 가자지구의 숨통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틀어쥐고 있었다. 40년 가까이 가자지구를 봉쇄해온 이스라엘은 그곳으로 통하는 땅길과 하늘길, 바닷길을 모두 장악하고 있다. 가자로 향하는 물과 식량, 석유와 전기는 모두 이스라엘이 공급권을 장악하고 있다. 하마스가 장악한 가자지구의 생사여탈권은 고스란히 이스라엘이 쥐고 있는 게다.
앞날은 예견이 가능하다. 는 6월19일치에서 현지 유엔 관계자의 말을 따 “(이스라엘이 차단한) 가자로 향하는 길목이 열리지 않는 한, 가자지구 주민들은 열흘 안에 식량 부족사태를 겪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하루 앞선 6월18일 은 “하마스가 가자지구를 장악한 것에 대한 첫 번째 대응 조처로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로 향하는 석유 공급을 차단시키면서, 가자지구 주민들이 식량과 연료 등 생필품 사재기에 나섰다”고 전했다.
가자지구는 흔히 ‘지구상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360㎢의 땅 덩어리에 줄잡아 150만 명이 몰려 살고 있다. 이스라엘이 가자지구 주민들에게 하마스를 선택한 데 대한 ‘연대 책임’을 물으려 든다면 삽시간에 인도적 재난으로 번질 수 있다. 하마스 목죄기에 적극 가담했던 ‘국제사회’는 비극이 일정한 수준을 넘지 않는 한 이를 방관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껏 그래왔던 터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기회를 날려버릴 기회는 절대 놓치지 않는다.” 는 6월18일치에서 이스라엘인들이 즐긴다는 농담을 소개했다. 하마스와 파타로 갈려 총질을 해대는 팔레스타인을 바라보며 고소를 머금은 이스라엘인들이 많은 것에 대한 경고다. 신문은 이렇게 물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희망도 책임감도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때, 이스라엘은 뭘 기대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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