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간 정부의 핵심 과제라는 아편 박멸 사업, 미국 지원받아 무차별 공격 중?
▣ 낭가르하르(아프가니스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익숙한 느낌이었다. 그건 내게 ‘철거 깡패’를 연상시켰다. 산동네 판자촌에 들이닥쳐 쑥대밭을 만들어버리는 ‘한국적 상황’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그렇다고 그들이 ‘깡패’는 아니었다. 주정부 대변인과 무장경찰 그리고 도심에서 고용된 10여 명의 ‘막대기 부대’ 정도에 불과했다. 게다가 그들은 아편 박멸사업이라는 막중한 ‘공무’를 수행 중이었다. 아프가니스탄 전역에서 펼쳐지고 있는 이 사업은 마약퇴치부(Ministry of Counter Narcotic) 동부지방관 아흐마툴라 알리자이의 말마따나, ‘테러와의 전쟁’과 쌍벽을 이루는 아프간 정부의 핵심 과제다. 그런데 이 핵심 과제를 수행하는 부처 간 불협화음은 거의 ‘콩가루 집안’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미국 ‘모 기관’의 재정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주지사가 주도하는 아편 박멸작업을 두고 알리자이의 불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이건 불법이야. 주지사 개인 비서들이 날품팔이들 동원해서 벌이는 일이거든.” 그는 카니켈 지구 주민 1명이 미리 약속했던 일당 500아프가니(약 10달러) 가운데 300아프가니를 주지사 개인 비서인 마수드에게 뜯겼다며 낸 진정서를 눈앞에서 흔들어댔다.
‘아편 박멸 일용노동자’와 주민들
5월1일 아프간 동부 로닷 지구로 향하는 아편 박멸팀에 ‘임베드’(동행 취재)를 하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내일 마을 주민들이 우리 팀에 얼마나 협조적인지 보게 될 거요.” 전날 인터뷰한 닝가르하르 주정부 대변인 누라가 자왁은 내게 이렇게 장담했다. 물론 그의 말은 미심쩍었다. “그래, 어디 한번 가봅시다”라고 응수했다. 현장에 도착하기도 전에 그가 말한 ‘협조’라는 게 박멸팀에 고용된 현지인 인부들을 두고 한 말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정확히 말해 그들은 ‘주민’이라기보다, 도시에서 고용한 ‘아편 박멸 일용노동자’들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열심히 일했다. 일부는 마지못해 나선 분위기가 역력했다. 또 다른 이들은 때로 뭔가 골똘히 생각에 잠긴 채 들고 온 막대기로 양귀비 밭을 후려쳤다. 이를 불안하면서도, 그러나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주민들이 쳐다보고 있었다. 서너 살쯤 돼 보이는 꼬마에서부터 아편밭 주인 그리고 좀처럼 문 밖을 나서지 않는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까지 ‘구경’나온 주민은 다양했다. 약 20분간 이 밭에서 저 밭으로 박멸작업은 이어졌고, ‘팀’은 이내 다른 마을로 이동했다.
“권력 있는 사람들 밭은 안 건드리고 가난한 우리 밭만 건드려….”
망가진 밭을 바라보는 모히불라(29)는 23명의 가족을 먹여 살리는 아편 농사가 세 번째 망가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더 묻지 못하고 또 다른 주민에게 옮겨가려는 순간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통역이 ‘빨리’와 ‘그만’을 연발하며 취재를 통제하기 시작했다. 주민 인터뷰를 최우선 취재 과제로 놓고 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주정부 대변인 자왁이 “더 이상의 사진 취재도, 인터뷰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두고 갔다”고 강조했다. “당신이 사진을 충분히 찍을 때까지 계속 박멸하리라”고 했던 자왁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었다.
“길도 물도 없는데 채소 기르라니”
아프간에서 체류한 두 달 동안 종종 느끼는 바지만 현지인 통역 일부는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는’ 게 몸에 배어 있었다. 게다가 3월 초 납치 사건으로 외국인 기자는 풀려나고 현지인 통역(기자)과 운전기사만 목숨을 잃었던 탓에 이런 현상은 더더욱 정당성을 얻어갔고, 쉽사리 자기검열로 이어지는 듯했다. 아편 박멸 현장에서 애당초 상의한 취재가 건건이 빗나가면서 급기야 통역과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덕분’에 양귀비 열매에서 아편 즙을 정성스럽게 긁어대는 인근 마을 주민들을 더는 취재할 수 없었다. 아편 박멸사업은 그만큼 민감한 사안이었고, 구린내가 많이 나는 ‘공무’였다.
“우리 보고 채소 농사를 지으라고 하는데, 채소를 팔러 시장 가는 길이 나빠서 가는 길에 전부 시들어버려. 게다가 물도 태부족인데, 아편 농사가 다른 농사보다 물이 덜 들거든.” 지난해 아편 농사로 아들 결혼식을 치를 수 있었다는 아지둘라(40)의 말이다. 주정부와 마약퇴치부 관계자에게 “보상 한 푼 안 한다면서 대책 없이 밭을 갈아엎으면 농민들은 뭘 먹고사느냐”고 묻자, 한목소리로 ‘도로’와 ‘물’ 관련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도로를 만들고, 마케팅을 활성화하고, 다른 관련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학교를 짓고, 용수 공급 시스템을 만들고….” 마약퇴치부 지방관 알리자이도 허공에 떠도는 말만 잔뜩 늘어놓았던 주정부 대변인 자왁 못지 않았다. 그는 “농민들을 위해 각종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라며 “아편을 박멸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지원이 끊기기 때문에 반드시 박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아편 재배는 단순히 “몸과 정신을 파괴하는 나쁜 짓”이라는 도덕적 잣대를 들이댈 사안이 아니었다. 세계 최대 아편 생산국이던 아프간에선 탈레반 정권 등장과 함께 아편 재배가 사실상 퇴치됐다. 지난 2000년 여름 탈레반 정권이 아편 재배 금지령을 내린 이후 아편 재배 면적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2001년 2월 현지조사에 나선 유엔 마약통제프로그램(DCP) 실태조사팀도 “아편 재배가 거의 완전히 근절 단계에 와 있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정부 관료·경찰도 아편 밀수에 연루
그러나 미국 주도의 아프간 침공과 잇따른 탈레반 정권의 몰락과 함께 아편 재배는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탈레반이 부활해 조직 기반을 넓혀나가는 사이 아편 재배는 무서운 생명력으로 아프간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약 200만 농민들의 생계수단이 돼 있다. 전후 약 6년간 물과 전기, 도로 등 기본적인 기반시설조차 닦아놓지 않은 국제사회의 재건 실패와 부패한 아프간 정부 탓으로 그 책임을 돌려도 될 듯싶다. 여기에 지방 군벌들은 물론 정부 관료와 경찰까지 아편 밀수사업에 연루된 부패상 때문에 박멸과 재배가 공존하는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아프간 아편 재배 관련 영화를 만들었던 영화감독 샤피쿨라 샤이크는 “아프간 파키스탄 국경지대에 널린 게 헤로인 공장이고 아편 밀수업자다. 그 밀수 조직들이 불안한 치안 조성에도 한몫하고 있다”며 “치안이 나빠야 밀수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영화 에서도 묘사된 바지만, 낭가르하르 지방의 2006년 아편 재배량이 전년도에 비해 346%나 급증한 배경을 두고 관련 부처들은 모두 마약 왕들이 농민들에게 뿌린 돈 탓을 했다. 생계를 보장해줄 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게 밥줄이 절박한 농민들의 현실이기에, 이런 악순환이 쉽게 가실 것 같진 않다. “아편 중독자 중 10% 정도만이 아편 재배 농민이고 나머지는 농사와 관계없는 사람들이다. 다수는 파키스탄과 이란 등지에서 난민생활 중에 중독됐다.” 잘랄라바드시 퍼블릭 헬스 병원의 아편 중독치료실 의사 라이쿨라 오바이디의 설명 역시 아편 재배가 농민들에게는 그저 밥줄이라는 점을 방증하는 한 근거로 볼 만했다.
이렇게 아편과의 전쟁이 빚어낸 생계수단 상실과 경제적 박탈감을 한 축으로, 테러와의 전쟁이 빚은 민간인 피해를 또 다른 한 축으로 이 두 전쟁은 아프간 전역에서 민간인들의 목숨과 생계를 꾸준히 위협하고 있다. 아편과의 전쟁은 목숨보다는 생계를 위협하지만 보도에 따르면 이 역시 목숨을 앗아간 적이 있긴 하다. 4월 초 ‘낭가르하르 지역 라디오’는 바티콧 지구 한 마을에서 아편박멸팀과 주민들의 충돌로 주민 1명이 죽고 4명의 경찰이 주민들이 던진 돌에 다쳤던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
그리고 지난 한 주간에도 변함없이 수십 명의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대부분이 공습 피해자들이다. 4월27일부터 3일간 서부 헤랏 지방에서는 미 동맹군의 공습으로 최소 51명의 민간인이 사망했고, 5월1일 남부 칸다하르 마루프 지구에서는 다시 미 동맹군의 공습으로 13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이틀 전인 4월29일 낭가르하르 가니켈 지구 쉬르겔 마을에서는 또다시 미 동맹군의 ‘가짜 교전’으로 6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1명이 테러리스트 혐의로 연행됐다.
탱크 앞세운 미군 공습에 민간인 사망
5월3일 쉬르겔 마을을 찾았다. 마을이라고 하기엔 너무 작고, 집채보다 더 큰 대문이 들머리에 버티고 선 이 곳에 4월29일 새벽 2시께 미군은 7대의 탱크와 2대의 헬리콥터를 끌고 들이닥쳤다. 이들은 마을 들머리 대문 앞에 폭탄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담을 넘어 침입해 마구 총질을 해댔다고 주민들은 입을 모았다.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문을 열기 위해 나오던 자나트 굴(50)이 처음으로 쓰러졌고, 야외에서 잠을 자던 굴의 친인척 3명(부부와 딸)이 두 번째로 사망했다. 그리고 도망치던 이브라임(35)이 풀밭에서 죽었고, 아부둘 나지르(30)가 잇따라 목숨을 잃었다. 이 사건을 두고 미군 쪽은 “반군과 교전 중 반군 4명과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고 밝혔지만, ‘반군’은 없었다. 일부 언론은 어린이 1명과 여성 1명이 죽었노라고 보도했지만, 어린이 사망자는 없었다. 주정부 대변인은 민간인 희생자에게 30만아프가니(약 6천달러)의 보상금을 줬다고 얘기했지만,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사건이 일어난 뒤 조사든 취재든 현지를 찾은 외부인도 없긴 마찬가지였다.
민간인 피해가 유독 심했던 한 주가 거의 끝나갈 무렵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주도의 국제치안보조군은 기자회견을 열고 다시 한 번 이렇게 다짐했다. “민간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아프간 군당국과 협조를 잘하겠노라”고. 계속 사고치는 미군보다 아프간 군당국과의 협력에 초점을 맞춘 좀 이상한 다짐이었다. 한편 미군 쪽은 “민간인 피해는 보고된 바 없다”거나 “민간인 피해를 잘 알지 못한다”며 건건이 잡아뗐다. ‘아편 전쟁’을 두고 낭가르하르 주정부와 마약퇴치부의 궁합이 잘 맞지 않는 것처럼 테러와의 전쟁에서도 지휘부대가 서로 다른 NATO와 미군 쪽의 궁합이 그리 썩 맞는 것 같지는 않다.
아무튼, 한밤중에 날벼락을 만났던 작은 마을 쉬르겔의 안마당에도 양귀비는 곱게 자라고 있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출석 요구 3번 만에 나온 경호처장 “대통령 신분 걸맞은 수사해야”
“임시공휴일 27일 아닌 31일로” 정원오 구청장 제안에 누리꾼 갑론을박
고립되는 윤석열…경찰 1천명 총동원령, 경호처는 최대 700명
경호처 직원의 ‘SOS’ “춥고 불안, 빨리 끝나길…지휘부 발악”
25년 경호 공무원의 조언 “대통령 ‘개인’ 아닌 ‘공인’ 지키는 것”
또 튀려고요? [그림판]
“최전방 6명 제압하면 무너진다”…윤석열 체포 ‘장기전’ 시작
‘윤석열 체포 저지’ 박종준 경호처장 경찰 출석
돈 더 주고 대형항공사 비행기 타야 할까? [The 5]
윤석열 탄핵 찬성 64%, 반대 32%…국힘 34%, 민주 36% [갤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