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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 토종 vs 스타벅스 ‘손 떨리는 대결’

등록 2007-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커피의 본고장 중동을 노리는 외국계 커피 브랜드들, ‘커피 전쟁’의 미래는?

▣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중동에서 색다른 ‘전쟁’이 한창이다. 커피 전쟁이다. 아랍산 커피와 스타벅스·커피 빈·코스타 등 외국계 커피 전문점 사이에 시장 장악을 두고 경쟁이 치열하다. 토종 커피점들까지 반격에 나서면서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하루에 (아랍) 커피 두세 잔은 마셔야 해요. 글쎄요, 안 마시면 금단현상처럼 손까지 떨릴 지경이랍니다!” 이런 고백을 하는 아랍인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아랍의 이슬람 지역에서 커피 안 마시는 사람은 ‘외계인’이다. 유럽식이나 미국식 커피는 아닐지라도 아랍 커피의 진한 맛을 외면하는 경우는 없다고 봐도 좋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커피 마시기에 힘쓰는 문화가 존재한다.

대졸 월급 30만원, 커피 한 잔 3천~4천원

요르단 수도 암만의 옛 시가지 시장 골목을 돌다 보면 아주 강한 커피 향이 곳곳에서 유혹한다. 원두 커피 판매점에서 커피를 굽는 향이 짙게 새나온다. 이곳 사람들은 손님을 환대할 때 연하게 탄 아랍 커피 한 잔을 먼저 권한다. 그런 다음에 “커피 드시겠어요, 차를 마시겠어요? 설탕은 얼마나 타드릴까요?”하고 커피와 차 중에 하나를 고르도록 한다. 이때 커피는 양은 적어도 커피의 향과 맛이 진한 것이 나온다. 이것이 아랍식 손님 환대법이다. 커피는 이렇게 중동 지역 주민들의 생필품으로 자리하고 있다.

암만 시내의 쇼핑과 문화 공간인 메카 몰에는 전체 매장의 20% 안팎이 커피를 판매하고 있다. 커피 하면 흔히 콜롬비아 등 중남미 국가를 원산지로 생각하지만, 커피의 본고장은 기실 유럽도 남미도 아니다. 이미 9세기 무렵부터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커피를 재배했고, 이것이 이집트와 예멘을 거쳐 15세기 무렵에 이르면 페르시아와 터키, 그리고 북아프리카 일대로 퍼져나갔다. 이슬람권에서 시작된 커피 열풍은 17세기 무렵이 돼서야 유럽으로 퍼져나갔으니, 누가 뭐래도 커피의 본고장은 이슬람권이다.

아랍의 커피 문화에 최근 도전장을 낸 것은 스타벅스, 코스타, 커피 빈 등 유럽과 미국산 커피 브랜드다. 이들 외국계 브랜드 커피는 중동 시장을 확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중동 지역에서 외국계 브랜드 커피는 ‘중·상류층 문화 코드’의 하나다. 요르단의 경우 대졸자의 평균 월급이 30만원 정도인데, 커피 한 잔에 3천~4천원이나 한다. 그럼에도 외국계 브랜드 커피의 시장 장악력은 계속 커지고 있다.

스타벅스는 △오만(5곳) △카타르(9곳) △쿠웨이트(41곳) △사우디아라비아(50곳) △아랍에미리트(47곳) △바레인(8곳) △요르단(6곳) △레바논(10곳) 등 아랍 전역에서 176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 브랜드 커피인 코스타는 이집트, 시리아, 바레인, 카타르, 오만, 아랍에미리트, 요르단 등에 40여 개 지점이 있다. 커피 빈은 쿠웨이트, 카타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등의 국가에 20여 개 지점과 이스라엘에만 11개 지점이 있다. 이 지역에 반미·반서구 정서가 확산된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아랍 커피도 ‘브랜드화’로 맞서

이들 외국계 브랜드 커피는 처음부터 서민들을 공략하지 않았다. 중·상류층 밀집 지역이나 아메리칸대학 같은 미국계 대학가에 그들만의 문화 공간으로 자리를 잡았다. 처음부터 계층 전쟁을 벌이고 차별화 전략을 펼친 것이다. 중·상류층 문화를 맛보고 싶은 서민층의 신분 상승 욕구도 건드리는 셈이다. “값이 문제가 아니지요. 반미 정서가 문제될 것도 없고요. 스타벅스의 강한 맛이 좋아서 이곳을 즐겨 찾습니다.” 암만의 대표적인 상류층 지역인 압둔 거리의 스타벅스 카페를 찾은 한 대학생은 ‘스타벅스 예찬론’을 폈다.

외국계 브랜드 카페 중 가장 주목을 끄는 것은 단연 스타벅스이다. 미국의 대표적인 커피 브랜드임에도 반미 정서가 강한 중동 전역에서 역설적이게도 날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스타벅스는 이스라엘과의 관계에 얽힌 구설수에 휘말리곤 한다. 2001년 8월 이스라엘에 개점한 이래 2003년 4월까지 6곳의 지점을 운영하다가 영업을 중지했다. 이를 두고 소문이 무성했다. 반이스라엘 정서를 가지고 이스라엘에서 철수한 것이 아니냐는 식이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는 미국 시애틀 유대인 이민 사회에서 인정받는 기업가다. 그 때문인지 하워드 슐츠나 스타벅스가 이스라엘군을 지원한다는 루머로 곤혹을 겪기도 했다. 그러자 스타벅스는 지난해에 레바논 돕기 캠페인을 펼쳤다. 스타벅스가 친유대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의 하나였다.

외국계 커피 전문점의 중동 커피 시장 장악은 아랍 토종 커피 시장에 여러 면에서 영향을 끼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영향은 아랍 커피가 점차 브랜드화하고 있는 점이다. 토종 아랍 커피를 찾는 발걸음도 증가하고 있다. 고유한 원조 아랍 커피 맛을 강조하는 문구와 브랜드 이름, 광고 이미지까지 담아서 곳곳에서 홍보전도 펼치고 있다. 아직 아랍 전 지역에서 시장을 확보한 아랍 커피 전문점은 등장하지 않았지만, 점차 기업화하고 있다.

여전히 ‘토종 카페’ 앞은 북적대지만

아랍 커피 하면 에스프레소 정도의 커피 분량에 설탕 외에는 아무것도 가미하지 않은 커피를 연상하면 된다. 강하고 깊은 맛이 특징이다. 터키식 커피와도 맛이 다르다. 아침저녁 출퇴근 시간이면 암만 시내 곳곳에서 예외 없이 교통 혼잡을 빚는 곳이 있다. 커피를 파는 ‘토종 커피 전문점’들로, 커피를 사기 위해 차량들이 좁은 도로를 점령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커피 판매점은 진한 아랍 커피만을 팔며 앉아서 커피를 마실 공간은 없다. 요르단의 경우 전통의 맛으로 승부하는 ‘아부 압두’를 비롯한 토종 커피 판매점들이 브랜드화하고 있고, 가격도 외국계 브랜드 커피의 10분의 1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아랍 커피 전문점은 외국계 커피 브랜드와 맞대결을 벌이는 수준은 아니다. 아랍 토종 커피의 시장 장악력을 높이는 수준에 불과하다.

브랜드화 전략으로 ‘외제 커피’에 도전하고 있는 토종 아랍 커피, 시장 확대에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외제 브랜드 커피의 맞대결에서 아랍인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커피의 본고장 아랍에서 토종 카페와 스타벅스가 ‘문명의 대결’을 벌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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