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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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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다하르, 치안 실패 재건 실패

등록 2007-05-04 00:00 수정 2020-05-03 04:24

탈레반 탄생지 르포… 동맹군의 몸집 부풀리기가 가져온 건 치안이 아니라 전쟁, 미숙한 공격에 민간인 피해 심각

▣ 칸다하르(아프가니스탄)=글·사진 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는 탈레반의 탄생지다. 이곳에서 1994년 말 탈레반 운동이 동터올랐고, 칸다하르 전역과 인근 남부지방 그리고 서부 헤라트를 거쳐 1996년 9월 카불에 도착하기까지 무섭고도 빠르게 번져갔다. 탈레반의 정신적 지도자 물라 오마르는 탈레반 집권 기간이던 1996~2001년 수도 카불이 아닌 이곳 칸다하르에 머물렀다. 탈레반이 지었다는 이 지역 최대의 모스크 ‘이드가르’에선 매주 금요일 오마르의 설교가 이어지기도 했다.

“자기들 필요한 길은 잘 뚫어놓았다니까”

칸다하르는 파키스탄 남부 퀘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탈레반의 ‘물주’로 알려진 파키스탄과 소통하는 데도 어려움이 없다는 얘기다. 수많은 탈레반들이 난민들에 묻혀 ‘퀘타~칸다하르’ 국경을 별 문제 없어 넘나든다. 탈레반은 지난해부터 자신들의 본고장인 칸다하르를 다시 장악하겠다고, 칸다하르와 카불 간 연결 도로를 끊어놓겠다고 별러왔다. 그 도로가 혹시라도 끊길까, 그 전에 꼭 한 번은 육로를 타고 이동해야겠다고 맘먹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 3~4월 아프간 전역을 흔들어댄 납치 사건으로 간이 콩알만 해진 탓에 렌터카보다 값이 싸기까지 한 비행기를 예약했다. 결국 그 비행기가 예고도 없이 스케줄을 변경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탔다. 애당초 육로 이동을 원하던 터라, 심리적으로 좋은 핑곗거리가 됐을지 모른다. ‘할 수 없다. 그냥 차 타고 가자!’

‘카불~칸다하르’ 고속도로는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미국인들이 자기들 필요한 길은 잘도 뚫어놓았다니까”라던 한 카불 시민의 말이 떠올랐다. 탈레반의 활동 무대인 남부의 관문 격인 칸다하르와 수도 카불을 연결한 도로는, 알카에다가 주로 활동하는 동부 중심도시 잘랄라바드와 카불을 잇는 도로와 함께 아프가니스탄에서 시원하게 달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로다. 군용 트럭이 이동해야 하는 길은 모두 잘 닦여 있다는 얘기다. 그 도로를 타고 5시간여 만에 칸다하르에 닿았다. 매번 놀라는 거지만 아프가니스탄의 검문은 그리 까다롭지 않아 ‘맘만 먹으면’ 폭탄 들고 움직이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카불~칸다하르 고속도로도 엇비슷했다. 대여섯 군데 초소도 없는 검문소에서 누가 누군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복과 군복을 입은 이들이 옛 소련제 칼라슈니코프 소총을 거칠게 들이대곤 했지만 그렇다고 검문이 까다로운 건 아니었다.

그렇게 닿은 칸다하르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은, 그냥 ‘사람 사는’ 동네였다. 임베드(종군) 프로그램으로 취재 중인 네덜란드의 한 방송사가 칸다하르는 도심조차 엄청나게 위험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는데, 그건 ‘임베드’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은 갇힌 기사였다. 칸다하르 도심 밖 여행은 쉽지 않았지만 최소한 도심 내에서 움직이기에는 별 어려움이 없었다.

“최하 밑바닥부터 최고 윗사람들까지 전부 부패했어. 이 정부에 희망이 없다고. 국제사회는 지금 돈과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 아프간계 미국인인 자비드 아흐마드(50·가명)는 나직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남부지방에 체류 중인 그는 칸다하르 옆 동네인 헬만드 지방의 경우 “거의 모든 주민이 탈레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부패’에 대한 불만은 가는 곳마다 이구동성으로 들려왔다. “탈레반은 물론 정부 관료들도 구호물품을 갈취하고 있다니까.” 사실 확인은 힘들었지만 피난민 와이즈 파지(가명)의 말에서도 부패한 정부에 대한 주민들의 분노를 감지할 수 있었다. 이런 부패 양상은 세계 아편 생산의 80~90%를 ‘책임’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이 아편 수확기에 접어든 요즘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지난 3월 말 칸다하르 주정부가 ‘아편 없는 지역’으로 선언한 칸다하르의 네 지구, 단드(Dand)·바만(Baman)·자리(Zhari)·아르간다브(Arghandab) 지역이 실상은 전부 ‘아편 청정지역’은 아니라는 사실. 그건 ‘1제리브’(0.19536ha에 해당하는 단위)당 1천아프가니(약 20달러)에서 5천아프가니(약 100달러)까지 돈을 받고 아편농사를 눈감아준 뒤 ‘청정’ 선언을 했다는 소문에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달리 생계수단이 없는 농부들의 아편밭을 대책 없이 뒤집어엎는 아편 박멸 사업이 곳곳에서 충돌을 빚어내는 가운데 아편과 관련한 모순은 칸다하르 곳곳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아편 없는 청정 지역’의 실체

칸다하르 시내 중심가에서 미 동맹군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군이 뒤섞여 철통같이 버티고 선 시 외곽 칸다하르 공항으로 이르는 길목에는 수확을 기다리는 아편꽃들이 여봐란듯이 활짝 피어 있다. 또한 ‘아편 박멸 프로젝트’의 현지 일꾼이 아편을 피워대는 모습도, 유엔마약범죄사무소(UNODC) 칸다하르 사무실 인근에 마리화나가 곱게 자라나고 있는 장면도 모두 ‘아편 모순’의 그림들이다. 이런 그림은 탈레반과 아편의 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아편을 금지하는 이슬람의 규율에 따라 2001년 아편 박멸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던 탈레반이 이제는 (아편 박멸을 외치는 정부에 맞서) 아편 농사꾼들의 보호막 노릇을 하고 있다.

최근 헬만드 지방 상귄 지구를 탈레반으로부터 재탈환한 NATO 동맹군이 기자들까지 비행기로 실어날으며 축하행사를 열었지만 탈레반의 반응은 이런 거였다. “마을 원로들의 부탁을 받아들여 주민들의 아편밭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한 전술적 후퇴였다. 곧 재탈환한다.” 그렇게 보호한 아편이 탈레반의 재원 일부를 채우는 걸로 알려진 가운데 탈레반은 이슬람의 아편 금지와 관련해서는 또 이렇게 자기 옹호를 한다. “대부분의 아편이 서방으로 건너가 (무슬림 형제가 아닌) 이단자들을 중독시키니까 별 상관없다!” 그러나 아편은 ‘이단자들’만 중독시키는 게 아니었다. 칸다하르 시내 아편 중독자 재활센터에 머물고 있는 10명 남짓한 아프간 중독자들은 작은 본보기일 뿐, 아프간 당국은 중독자 통계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아편을 피우거나 차에 섞어 복용하는 건 현지에서 드물지 않게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예상치조차 없는 민간인 피해

이러는 사이 칸다하르와 남부지방 일대의 치안 부재는 심각한 ‘인도주의적 재난’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재난이 야기하는 건 단연 계속되는 각종 교전이다. “동의하지 않는다. 적어도 칸다하르 지방의 치안 사정은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엔 하루에 세 번이 넘게 자살공격이 발생했는데 올해는 거의 없다. 칸다하르는 날씨도 춥지 않아 겨울에도 (탈레반이) 맘만 먹으면 공격할 수 있었다.” 칸다하르 주지사 아사둘라 칼리드는 악화되는 치안 사정에 대해 묻자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나 주지사의 항변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와 인터뷰한 사흘 뒤 칸다하르 시내에서는 NATO 차량을 겨냥한 자살 공격이 벌어져 민간인 6명이 다쳤다. 자살공격대 모집 담당이 퀘타에서 칸다하르로 들어왔다는 소문이 들려온 날이었다.

그러나 이라크를 모방했다고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자살공격은 그러나 이라크와 달리 아프간군과 경찰, 외국 군대(NATO와 미군) 그리고 정부 관료 등 ‘적’을 주로 겨냥하고 있다. 그 미숙한 공격이 민간인을 더 많이 죽게 하거나 다치게 하는 건 이라크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말이다. “무기 들고 우리(탈레반)와 싸우는 놈들이나, 그 외국인들과 협조하는 놈들이나 우리에겐 다르지 않다.” 외세 점령에 이를 가는 탈레반의 골수 기질이 외국인 반감으로 발전하고 있는 탓에 칸다하르 시내에 자리한 국제 비정부기구(NGO) 사무소는 대부분 간판을 걸지 않고 있었다. 탈레반이 교전 중에 주민 가옥을 ‘방패’ 삼고 들어앉아 공습을 피하는 것처럼, NGO들도 민간인 가옥처럼 간판 없이 들어앉아 혹시 모를 공격을 피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나마도 속속 떠나고 몇 개 남지 않았다.

그동안 정치적 이슈로 인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탈레반 시절 이전부터 최근까지 남부지방은 15년 내리 심각한 가뭄에 직면해 있었다. 지난 겨울에는 때아닌 물난리가 나기도 했다. 구호가 절박한 이런 지역에 인도주의적 구호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치안은 없고 교전만 계속되고 있으니 ‘치안유지 실패, 구호와 재건 실패’를 칸다하르는 단적으로 보여준다. 해를 거듭할수록 숫자만 늘려가는 동맹군의 몸집 부풀리기가 가져온 건 치안이 아니라 전쟁이었다. ‘탈레반 시절엔 적어도 치안은 유지됐다’는 말이 심심찮게 들려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탈레반의 극단적 규율은 근본적으로 아프간 동남부 일대에 퍼져 사는 파슈툰족의 보수적 관습에 기인한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여성들의 부르카 착용 의무나 남성들의 턱수염 기르기 의무 등은 칸다하르 같은 곳에선 별다른 문화적 충격이 아니다. 실제로 칸다하르 거리를 둘러보면 남성들의 턱수염은 비교적 자유로워진 것 같은데, 여전히 99%의 여성들은 부르카를 두르고 다녔다. 아프간 내 소수민족이자 유목민으로 분류되는 쿠치족 여성들만이 부르카를 입지 않았다. 탈레반 억압의 상징으로 간주돼온 부르카보다는 치안 부재와 교전으로 인한 위기 상황이 주민들에게는 더 피부로 다가오는 문제였다.

이런 측면에서 NATO군이 목표물을 가리지 않고 하늘에서 퍼붓는 공습을 ‘선호’해온 건 치명적 오류였다. 그건 ‘미숙한 자살공격’보다 더 나쁜 방식이라 할 만하다. 그동안 민간인 피해가 주로 공습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지난해 10월 칸다하르에서 불과 30km 남짓 떨어진 판자위 지구에 대한 공습으로 최소 60~80명의 민간인이 죽은 게 극명한 사례다. 심지어 당시 공습은 ‘이제 교전이 끝났으니 마을로 돌아가도 좋다’는 아프간 정부의 공지를 듣고 돌아간 주민들이 만난 날벼락이었다.

‘공습’은 ‘포기 정책’이다

그럼에도 공습은 멈추지 않고 있다. 마약 중독자 통계를 내기가 불가능한 것처럼 최근 잇따른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 상황도 ‘파악 불가’다. 납치 위협까지 보태지면서 언론이나 공신력 있는 단체의 접근이 더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최근 아프간 인권위원회 등이 잇따라 내놓은 민간인 피해 보고서 어디에도 피해 수치는 예상치조차 거론되지 못했다.

“탈레반은 주민 가옥을 거점으로 교전을 벌이다 두어 시간 만에 달아나거든. 밤에는 오토바이 타고 와서 먹고 자고, 아침엔 사라져.” 판자위 인근에서 피난 온 아부둘 하디(가명)의 증언은 탈레반의 게릴라전과 민간인 방패 전술을 말해주고 있다. NATO 동맹군 역시 “탈레반이 민간인을 방패 삼기 때문에 민간인 피해가 발생했다”는 주장을 종종 해왔다. 그 게릴라전에 맞선 ‘공습’이 NATO에는 쉬운 방식일지 몰라도 민간인 피해를 피할 수 없는 치명적인 방식이었다. 이를 ‘포기 정책’으로도 부르는 이유다.

“우린 전기가 없어. 전기가 있으면 일자리도 더 많아질 텐데….” 해를 거듭할수록 몸짓만 불려가는 아프간 ‘해방’ 전쟁. 그 한가운데 오도가도 못하는 칸다하르 주민들이 해방과 재건을 약속한 국제사회에 요구하는 건 이렇게 ‘사소한’ 것이었다.


[인터뷰_ 아사둘라 칼리드]

“올해 들어 나는 아주 행복하다”

민심과는 달리 치안 상황이 좋다고 말하는 아사둘라 칼리드 칸다하르 주지사

▣ 칸다하르(아프가니스탄)=이유경 국제분쟁 전문기자 penseur21@hotmail.com

2년 째 칸다하르 주지사를 맡고 있는 아사둘라 칼리드는 자살공격 횟수 감소를 근거로 치안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나토의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유감스럽지만, 외국 군대와 국제사회에는 불만이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거리의 민심과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를 의식해서인지, 그는 인터뷰 내내 공세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탈레반에 납치돼 최근 참수된 아프간 기자 아즈말 사건은 남부의 치안 사정이 나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는데.

=칸다하르 방문이 이번이 처음인가?

그렇다.

=뉴스는 계속 챙겨봤나?

그렇다.

=아프간 뉴스를 제대로 챙겨봤다면…. 당신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다. 칸다하르 상황은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는 아주 어려운 시기였다. 예를 들면, 하루에 자살공격이 세 차례 발생한 적도 있다. 평균 주 1회. 올해는 자살공격이 한 달에 한 번도 발생할까 말까다. 거의 없다. 지난해 판자위와 재리에서 탈레반이 활동했고 우린 군사 작전을 감행했다. 약 1만5천 명의 피난민도 발생했다. 그러나 올해는 판자위 지구가 완전 정상화됐고, 재리도 괜찮다. 피난민 80%가 고향으로 돌아갔다. 칸다하르 전역에 탈레반 활동이 아주 없다는 얘기는 아니지만 장담하건대, 탈레반 활동은 나날이 사그라지고 있다.

현실이 그렇기 바라지만….

=아니, 현실이 그렇다. 뉴스를 제대로 챙겨봤다면 알게다.

아직 4월 초순인데, 지난해와 그렇게 비교하고 단언하긴 이르지 않나?

=칸다하르 날씨는 카불과 다르다. 지금은 탈레반이 공격하기 좋은 시즌이다. 겨울에도 맘만 먹으면 공격할 수 있었다. 주지사로서 내가 눈 감고 지내는 거 아니다. 다 보고받고 있다. 지난해보다 70~80%는 좋아졌다.

그렇다면 왜 상황이 좋아졌다고 보나? 국제치안보조군(ISAF)의 작전 때문인가?

=탈레반이 그렇게 강하다고 보지 않는다. 각 마을의 원로들과도 좋은 연락망을 갖고 있다. 지난해 카르자이 대통령이 이 지역을 세 번이나 방문했고 성공적이었다. 칸다하르 주민들은 나날이 (대탈레반) 군사 작전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가고 있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납치 사건은 탈레반이 약화됐다는 증거다.

지난해 10월 판자위에서 나토군 공습으로 수십 명의 민간인이 숨지는 등 ‘실수’로 인한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고 있는데.

=민간인 피해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렇잖아도 ISAF와 이 문제를 놓고 얘기를 나눈 바 있다. 그런데 그건 그냥 실수였다. 나도 알고 모두 다 안다. 왜 우리가 싸우는가? 그건 탈레반 때문이다. 탈레반이 없다면 싸울 일이 없다. 나토 동맹군도 그런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동맹군에 불만은 없나?

=전혀 없다. 그들은 우리를 돕기 위해 이 나라에 와 있다. 여기에 싸움만 하러 온 게 아니다. 재건도 하고 있다. 이따금 테러리스트 활동이 있을 때마다 마을 주민들이 바로 우리에게 군 작전을 요청하고 있다.

피난민들은 구호물자 부족 등 여러 가지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데

=어떤 종류의 피난민을 말하는 건가?

마이완 지구 출신도 있고….

=우린 그 지역에서 온 피난민이 없다.

내가 만나봤는데….

=아프간 북부 지역에서 온 쿠치족이 있고, 교전으로 생긴 피난민은 판자위, 재리 지구에서뿐이다. 그 지역에서 피난 온 사람들에게 우린 구호물자를 전달해왔다. 물자가 부족해서 만족하지 않을 수는 있다. 아무튼 우린 그 피난민들을 모두 집으로 무사히 귀환시킬 수 있었다. 군사작전으로 파괴된 집도 다시 지어줄 계획이다. 보상금도 줄 거다. 마이완 지구에서 온 난민이 단 한 명도 없다. 만일 당신이 마이완 지구에서 온 누군가를 만났다면, 그건 미국이나 인도로 이민가고 싶어서 온 사람들일 게다.

정보가 부족할 수도 있다고 생각지 않나?

=당신이 잘못된 정보를 입수했을 거다.

피난민 중에는 교전뿐 아니라 가뭄, 홍수 등 자연재해를 피해 온 이들도 있던데.

=그렇게 피난 온 경우가 판자위, 재리 지구 등인데 누구도 그들 인생을 다 돌볼 수는 없지 않나. 그래서 당신 말대로, 불만이 있을 수는 있다. 올해 들어 나는 아주 행복하다. 칸다하르는 지난해보다 나아졌다. 내년엔 더 나아지길 바란다. 재건복구 공사도 진행 중이고, ISAF하고도 아무 문제가 없다. 당신은 지금 부정적인 것을 찾아내려고 애를 쓰는데, 신의 은총으로 그런 건 전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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