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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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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만에서 추억을 만나다

등록 2007-04-2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버스 차장 ‘꼰트롤’, 판박이 약을 파는 아저씨, 주전자를 짊고 다니는 냉차장수… </font>

▣ 암만=글·사진 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낯선 곳에서 뜻밖의 친숙한 것들을 만나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은 묘하다. 버스 차장은 물론 커피와 차 배달, 음식 배달을 하는 ‘배달’의 기수들, 추억 아련한 손간판, 손수레꾼, 냉차 장수, 거리의 사진사 등 우리의 추억이 현실에 살아 있는 현장을 만났다.

한 손에 쟁반 든 배달의 기수들

요르단의 마을버스나 시외버스에는 차장이 있다. 차장은 운전기사 조수 역할도 겸한다. 안내양이 아니라 안내군(君)이다. ‘꼰트롤’이라 부른다. 당연 외래어이다. 꼰트롤은 그야말로 마을버스 승객들을 ‘콘트롤’한다. 차장 경력 3년차인 나세르(18)는 “차장일 해볼 만합니다. 하루 2교대로 일하는데 수입도 그리 나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암만, 암만(가요?), 암만(가요!)” 나세르는 연방 행선지를 반복하면서 호객을 하고 있다.

나세르가 하루 종일 일해서 얻는 수입은 8천~9천원 정도. 요르단의 차장들은 호객도 하고 차비도 받지만, 차내 ‘질서’를 잡는 역할도 도맡는다. 여성 승객이 서서 가는 것은 가만 두고 볼 수 없는 일. 남성 승객이 태연하게 앉아 있을 때면, 차장이 당당하게 다가가 여성에게 자리를 양보하라고 ‘협조’를 구한다. 창밖을 바라보면서 ‘꼰트롤’의 눈길을 피해봤자 허사다. 알아서 일어나 자리 양보하는 것이 상책이다. “버스 출발합니다. 얄라~!”

“커피 설탕 많이 넣은 것 2잔하고, 설탕 조금 넣은 커피 한 잔, 박하잎 넣은 홍차 한 잔 배달이오~.” 암만 구시가지의 ‘샴스 알아시일’ 같은 배달 전문 다방은 각광받는 신종 업종이다. 차나 커피 배달이 최근에 새로 생긴 것은 물론 아니다. 식당이나 찻집에서 종종 커피나 차를 배달해주었다. 그러나 요즘은 차와 커피 배달, 판매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점이 늘고 있다.

아부 사미르(32)는 올해 들어 차 배달 전문점을 새로 열었다. 2명의 배달 직원을 두고 있는데 수입이 짭짤하다. “차나 커피를 즐겨 마시는 상가 지역 상인들의 특성상 배달 건수가 계속 올라가고 있어요.” 차 배달은 전화 주문도 있지만 직접 배달 직원들과 자신이 주변 시장 골목골목을 돌면서 주문과 배달을 받곤 한다. “상인들이 차를 마시는 시간대가 있어요. 그 시간에 맞춰서 시장 골목을 한 바퀴 돌면 기존 손님에게 때맞춰 차도 배달하고 새로운 손님도 끌고 여러 면에서 고객관리가 어렵지 않아요.” 차 배달 전문 업소에는 ‘장부’가 하나 있다. 고객 이름과 배달 내용, 수금 상황 등이 가득하게 암호처럼 적혀 있는 장부다. 아랍에도 ‘외상문화’가 있다는 사실이 정겹다.

상가 주변 지역, 유유히 인파 틈새를 헤치고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 손에 음식을 담은 쟁반을 들고 음식을 배달하는 ‘배달부’들이다. 손님들이 주로 배달을 요청하는 것은 현지 음식이다. 이들에게 ‘철가방’ 같은 도구는 없다. 밋밋한 쟁반 하나가 배달 도구의 전부다. 아랍 빵과 콩이나 가지 등을 갈아서 만든 소스, 야채 샐러드, 채소와 고기를 적절하게 섞어 끓인 아랍식 찌개, 닭고기, 양고기 등이 고객들이 자주 찾는 음식들이다. 패스트푸드 전문점인 피자헛이나 맥도널드, 버거킹이나 KFC 따위는 오토바이나 차량을 이용한 무료 배달 서비스를 하고 있다.

손간판 그림으로 가득한 극장

이곳에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는 것이 있다. ‘이발소 그림’은 대량 판매를 목적으로 제작한 값싼 그림을 말한다. 암만 시내 구시가지, 이라크 바그다드 무탄나비 거리, 이집트 카이로 타흐리이르 광장 주변과 칸엘칼릴리 시장 골목 등에 가면 그림을 그리는 ‘직업화가’들을 만날 수 있다. 직업화가는 작품활동을 하는 화가가 아니라 그림을 주문생산해내는 그림 생산자를 일컫는 말이다. 이 직업화가들의 작품이 이발소 그림에 해당한다.

암만 시내 후세인 사원 거리에 자리한 ‘알바르다위’ 안에는 아랍풍과 서양풍의 그림이 빼곡이 걸려 있다. 나름대로 정성이 들어간 그림들이다. ‘대중미술 화랑’을 자처하는 이곳은 문을 연 지 50년이나 됐다.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가업을 잇고 있는 무함마드 알바르다위(47)는 “이 그림들은 거의가 이라크 직업화가의 손을 빌려 정성껏 그린 것들”이라고 말했다. 그림마다 직업화가들의 친필 서명이 들어 있다.

손으로 그린 간판을 볼 때도 아련한 추억 속에 들어선다. 여러 해 전만 해도 암만 곳곳의 극장가는 손간판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현대화되면서 요즘은 대개 실사 간판이 보편화되고 있다. 재개봉관에 해당하는 일부 영화관만이 손간판의 전통을 잇고 있다. 손간판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보면 누가 누구인지 알듯 말듯 하다. 실제 인물을 닮은 듯 안 닮은 듯한 손간판 자체가 추억이다. 깔끔한 실사 현수막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한국에 비해 요르단은 손으로 직접 쓴 현수막이 일반적이다. 거리 곳곳에서 날아갈 듯한 아랍어 필기체로 장식된 현수막들이 무슨 말인지는 몰라도 ‘나 좀 봐달라’는 손짓을 하며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하루에도 수만 명이 오가는 암만 구시가지의 후세인 사원 한 귀퉁이에는 사진사 경력 50년이 넘는 아부 무함마드(67)가 있다. 12살 때부터 선친에게서 사진을 배웠다. 손님들은 있기나 한 것일까. 한참을 지켜보고 있어도 사진 찍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언제나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 카메라는 150년이나 묵었어요. 그래도 잘 작동합니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잘 썼죠. 그런데 공문서에 부착하는 사진들이 천연색 사진으로 바뀌면서 이제 쓸 일이 별로 없네요.” 흑백 사진기를 곁에 두고 회상에 잠긴 그가 잔잔한 미소를 띠운다.

“이 약을 살짝 바르고 뒤집은 다음에 베끼고 싶은 그림이나 글씨에 갖다대고 동전 등으로 정성껏 문질러주세요. 그대로 그림이 묻어납니다. 신기하지요.” 칼리드(46)는 어린 시절 학교 앞에서 그림이나 책을 그대로 베껴내는 ‘신비한 약물’ 판박이 약을 팔던 아저씨를 떠올리게 한다. “그림 베끼는 약은 종이는 물론 천에다가 해도 됩니다.” 시장통인지라 쉴 새 없이 인파가 오가지만 이 신비한 약을 사가는 손님은 별로 없다. 칼리드는 91년 걸프전쟁을 겪으면서 쿠웨이트를 떠나 요르단에 정착을 한 가자 출신 팔레스타인 실향민이다. 컬러 복사기가 힘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신비한 약물’은 추억이 되고 있다.

이곳에서도 추억 속으로 사라져가네

“냉차 있어요, 목 축여보세요.” 암만 곳곳의 터미널 주변에는 오스만터키 시대 복장을 하고 긴 주전자를 짊어지고 다니는 ‘아저씨들’이 있다. 냉차 장수들이다. 긴 주전자 모양의 냉차통에서 온몸을 움직여가며 냉차 한 잔을 따라내는 솜씨는 보는 것만으로도 갈증을 줄여준다. 요르단 곳곳에서 어린 시절의 추억을 만났다. 반가운 한편 아쉬움도 생긴다. 우리 곁에서 사라져버린 많은 것들이 이곳에서도 서서히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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