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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3개국 르포 ③ 시리아]시리아에선 말조심하라

등록 2007-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전투조직이 설 자리 없는 철저한 통제 국가… 이라크 난민 늘면서 수니-시아 갈등이 나타나

▣ 다마스쿠스(시리아)=글·사진 김재명 국제분쟁 전문기자
kimsphoto@hanmail.net

시리아는 통제 사회다. 어딜 가나 경찰이나 보안요원, 정보원의 눈길이 번득인다. 체제를 위협하는 어떤 움직임도 용납되지 않는다. 시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곳곳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얼굴과 마주쳐야 했다. 식당에 가면 가장 눈에 잘 띄는 곳에 아사드의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웃는 얼굴이 아니다.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는 듯한 표정이다. 위압적이다. 마치 “내가 보고 있는 데서 체제 불만에 관한 얘길 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는 듯하다. 조지 오웰의 소설 에 나오는 ‘빅 브라더’를 떠올릴 수 있는 곳이 바로 시리아다.

어디서나 마주치는 ‘빅 브라더’대통령

이와 관련해 시리아에서 겪은 일 하나. 이런저런 경로를 거쳐 다마스쿠스에서 미국 출신의 두 남녀를 만났다. 연인 사이인 그들은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해 들어갈 것이 거의 확실해지던 2003년 초, 이라크에서 미국의 공습을 ‘인간띠’를 둘러 온몸으로 막겠다며 이라크 바드다드에 집결했던 평화운동가들이다. 아랍어를 배우는 학생 신분으로 몇 달째 다마스쿠스에서 머물고 있는 이 두 사람과 시내 중심가의 한 식당에 갔다. “시리아에 대한 인상이 어떠냐?”고 묻기에, “미국으로부터 체제 변화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라서 충분히 이해는 가지만, 통제 사회라는 느낌을 받았다”며, 손가락으로 음식점 벽에 걸려 있는 아사드 대통령의 얼굴 사진을 가리켰다.

두 사람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는 약속이나 한 듯이 입에다 손가락을 갖다 댔다. 입조심하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낮은 목소리로 “이런 큰 음식점 안에는 감시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고, 종업원들도 우리 얘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종업원이 보안기관의 끄나풀(정보원)이라면, 그래서 신고를 한다면, 미처 예상하지도 못한 모진 일을 겪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들은 “우리 같은 백인들은 ‘서방 정보기관에 줄을 대고 있는 스파이’라고 오해를 받기 십상”이라는 얘기도 덧붙였다.

시리아는 1963년 이래 40년 넘게 ‘국가비상 사태’를 유지하고 있는 권위주의 국가다. 국가 권력도 왕조시대처럼 아버지로부터 아들이 물려받았다. 지난 2000년 ‘아랍의 비스마르크’라는 별명을 지녔던 하페즈 알아사드 대통령이 죽자, 안과의사였던 아들 바샤르가 대통령에 올랐다. 더 정확히 말해 시리아는 ‘경찰 국가’다. 시리아 국가보안기관들은 체포영장 같은 ‘번거로운’ 절차를 거치지 않고, ‘용의자’를 무작정 체포하고 재판 없이도 오래 가둬놓을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지녔다. 시리아 사람들 가운데 심정적으로 아사드 1인 지배체제에 불만을 지닌 사람들도 보안기관들의 안테나에 혹시나 걸려들지 않을까 몸조심, 입조심을 하는 데 익숙한 편이다.

시리아의 보안기관은 크게 네 가지다. 정치보안국, 일반정보국, 육군 정보부대, 공군 정보부대다. 이 보안기관들은 치외법권적인 권한을 휘두르면서 국민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돼왔다. 아울러 이 보안기관들은 일반 시민들 가운데 많은 정보원을 두고, 어디서 누군가 체제 불만의 목소리를 내는지 적발해내는 데 힘을 쏟아왔다. 정부의 통제를 받는 시리아의 언론사들은 ‘아사드의 나팔수’라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런 까닭에 시리아는 치안 안정에 관한 한 세계 어느 나라 못지않게 표면적으로는 안정적인 모습이다. 이웃 이슬람 국가들에서 일어나는 전투적인 이슬람 무장조직 반체제 활동도 시리아에선 씨가 말랐다.

시리아 사람들의 반미 감정은 매우 높은 편이다. 그렇지만 어떤 형태의 반미 시위, 이를테면 다마스쿠스 주재 미국 대사관 앞에서 데모를 벌이는 것도 정부기관과의 사전 조율 없이는 이뤄지기 어렵다. 다마스쿠스 시내 중심가에서 서북쪽에 자리잡은 라우다 지역의 미국 대사관으로 가봤다. 그곳은 시리아의 외교 거리로서, 미 대사관 말고도 각국의 대사관들이 자리잡고 있다. 미 대사관은 2.5m 높이에다 차량이 부딪쳐도 끄떡없을 만큼 두꺼운 담을 둘렀다. 이슬람권 지역의 다른 미 대사관들처럼, 폭탄을 가득 싣고 전속력으로 돌진해 들어와 인명 살상을 노리는 차량폭탄 테러에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9·11 뒤 미국에 이슬람 조직 정보 넘겨

미국은 시리아를 ‘테러 지원국’이라 비난해왔다.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시리아가 은밀히 돕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아울러 미국은 “시리아가 이라크 안에서 활동하는 반미 저항세력들을 몰래 돕고 있다”고 비난해왔다. 대사관은 두고 있지만, 미국 대사가 다마스쿠스에 부임하지 않고 공석으로 남은 지 오래다. 시리아와 미국의 불편한 관계를 보여준다.

시리아로선 할 말이 없지 않다. 다마스쿠스에서 발행되는 영자신문 의 모하마드 다우드 논설위원은 이렇게 말했다. “2001년 9·11 테러 뒤 시리아의 정보기관들은 알카에다 관련 정보들을 미국에 제공해왔다. 그런 정보들을 통해 미국은 수만 명의 미국인 목숨을 구해냈을 것이다. 우리 시리아도 모든 형태의 테러에 반대하는 국가다.” 그는 “이라크에서 걸핏하면 벌어지는 차량폭탄 테러에 대해서도 시리아는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나타내왔다”며 “시리아에 대한 미국의 부정적 이미지는 시오니스트(이스라엘)들의 영향력이 만들어낸 허구적 이미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시리아가 9·11 동시테러 뒤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알카에다를 비롯한 전투적 이슬람 조직들에 관한 정보를 넘긴 데는 아사드 정권 나름의 정치적 계산이 스며 있다. 첫째는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처럼 시리아의 정권 교체를 노리는 미국의 압박 수위를 낮추려는 계산이고, 둘째는 시리아의 국내 정치 안정이라는 필요에서다. 시리아는 이스라엘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도, 국내에 알카에다와 같은 반미·반이스라엘 성향의 전투적인 이슬람 조직이 활동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다우드 논설위원은 “시리아는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다. 이웃나라 터키가 정치에서 종교를 배제하고 서구적인 모델을 추구하는 세속 국가라 하지만 그 나라에도 이슬람 정당이 있다. 그러나 시리아엔 이슬람 간판을 내건 정당은 없다”고 말했다.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이슬람 성직자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최고권력을 휘두르는 이란이나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을 모델 삼아 종교에 바탕한 신성 국가를 추구하는 이슬람 운동 진영을 체제 위협 세력으로 여긴다. 1981년 이집트의 사다트 대통령을 공식 행사장에서 저격해 죽인 ‘이슬람형제단’ 조직은 시리아에서 1978~82년에 걸친 대규모 체포와 투옥, 처형으로 인해 지하로 잠복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럼에도 오사마 빈 라덴의 이념에 동조하는 자생적인 전투적 이슬람 조직들은 은밀히 활동 중이다. 이들은 이슬람 종교를 정치에서 배제하고 세속주의를 지향하는 아사드 대통령 체제에 불만이 많다. 9·11 동시테러 5주년을 하루 앞둔 지난 2006년 9월12일 4명의 무장요원이 사제폭탄을 실은 2대의 차량을 몰고 다마스쿠스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한 사건도 이들이 벌인 것으로 알려진다.

난민 때문에 물가는 오르고 일자리는 없어지고

2003년 4월 후세인 정권이 붕괴한 뒤 4년이 흐른 지금 중동에는 이라크 난민 홍수라는 새로운 현상이 생겨났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최근 통계를 보면, 이라크의 상황 악화에 따라 지난 4년 동안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터키, 이란 등 이라크 이웃 국가들에는 200만여 명의 이라크 난민들이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시리아가 100만 명으로 가장 많고, 요르단에 70만 명, 레바논에 4만 명의 이라크 난민이 머물고 있다. 안토니오 구티에레스 유엔 난민고등판무관은 “이라크 난민은 중동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난민 이래 최대 규모로, 상황은 ‘인도주의적 재앙’ 수준”이라고 규정했다.

이라크에서는 올해 들어와서도 한 달에 10만 명 가까운 난민들이 주변 국가로 몰려가고 있어, 시리아로 들어오는 이라크 난민 규모는 더욱 늘어나는 중이다. 시리아는 이라크 난민들이 불어나면서 전에 없던 몇 가지 문제점에 부딪쳤다. 다마스쿠스에서 만난 현지 언론인들의 얘기를 모아보면, 문제점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주택 가격과 임대료가 크게 올랐다. 다마스쿠스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에 들어가 물어보니 임대료는 3배, 주택 가격은 70%쯤 올랐다고 한다. 현금을 싸들고 온 일부 이라크 부자들이나 중산층들은 큰 문제가 없지만, 서민들의 경우는 당장 추위를 피할 집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

둘째, 노동시장에 값싼 인력이 넘쳐나 인건비가 크게 떨어졌고 고용시장이 불안해졌다. 시리아는 안 그래도 높은 실업률이 사회문제로 꼽혀온 상황인데, 이라크 난민 문제가 고용시장의 주름살을 더하는 셈이다(미국 중앙정보국(CIA) 세계연감 자료집에 따르면, 2005년 시리아 실업률은 12.5%에 이른다.)

셋째, 시리아의 이라크 난민 사회에서도 이라크에서와 마찬가지로 수니파-시아파 사이의 갈등이 나타나고 있다. 아세이다 지나브의 카페에서 만난 한 이라크 난민은 “아직까지는 수니-시아 사이의 갈등이 심각하지 않고, 모두들 이곳에서 생존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기 때문에 큰 사고가 없었다”며 “그러나 이라크의 혼란이 계속돼 난민 수가 지금보다 더 불어나면, 시아-수니 갈등 문제가 시리아의 이라크 난민 사회로 옮겨와 폭력이 일상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이라크 사람으로 넘치는 한 카페에서

피난민을 수소문한 끝에 들어선 다마스쿠스의 한 카페에는 온통 이라크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가운데는 수니파 사람들이 많은 편이지만, 시아파 사람들도 섞여 있다. 그들이 집을 떠나 시리아로 넘어온 사연들을 들어보면 이즈음 이라크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시아-수니 갈등의 단면들을 엿볼 수 있다. 40대 중반의 전직 교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는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국경을 넘어 1주일 전에 이곳에 도착했다. 나는 집과 자동차를 비롯해 많은 것들을 놔두고 떠나왔다. (시아파 강경 지도자 무크타다 사드르를 따르는 민병대인) ‘마흐디’들이 우리 이웃집을 공격해 가족들을 죽였다. 그 까닭은, 내기 이해하기로는, 우리 이웃집 사람들이 수니였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은 겁에 질려 도망치듯 바그다드를 빠져나왔다. 가진 돈도 얼마 안 돼 한 달이나 버틸까 모르겠다. 이라크 상황이 안정되는 대로 돌아가야 하는데….”

카페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들을 난민으로 만든 ‘원인 제공자’로 미국을 꼽았다. 이라크 침공과 점령정책을 잘못한 데 따른 사회 혼란의 책임을 따지는 것도 잊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선 반미 저항세력이 미군 순찰 차량을 노리고 길에 놔둔 사제폭탄 때문에 아이들이 많이 죽고 다쳤다. 미군들이 이른바 ‘테러분자들’과 숨겨놓은 무기를 찾는다고 걸핏하면 집안으로 군홧발로 쳐들어와 아이들이 겁에 질려 울곤 했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사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 시리아로 넘어왔다. 미국의 조지 부시는 이라크를 너무나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후세인 시절엔 그런 혼란이 없었는데….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좋겠다.”

“지난 2003년 봄 미군이 침공하기 전까지 우리 가족의 삶은 남 부러울 게 없었다. 나는 아침마다 아이들을 학교에 자동차로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와서는 아침밥을 느긋이 먹고 병원에 나갔다. 매주 목요일 밤에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가족들과 외식을 하곤 했다(이슬람권에선 금요일이 휴일이다). 그런데 아이 엄마가 미군 폭격을 맞아 허리를 크게 다쳤다.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로는 더욱 큰 혼란이 벌어졌다. 그런 혼란 통에 범죄율이 높아졌고, 돈을 노린 범죄꾼들에게 납치될 위험 때문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도 망설여졌다. 길거리에 세워진 검문소가 이라크 정부군이 세운 것인지, 납치범들이나 반미 저항세력이 세운 가짜 검문소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그래서 시리아로 넘어왔다.” 퀭한 모습의 40대 남성은 “이라크 의사 면허가 있지만 이곳 시리아에선 통하지 않을 것”이라며 “언젠가 이라크가 안정을 되찾아 고향 땅으로 돌아가기만 바랄 수밖에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팔레스타인 난민의 이중고

이라크 난민을 말하면서 팔레스타인 난민을 빼놓을 수 없다. 같은 수니파인 사담 후세인의 보호를 받아왔던 이라크의 팔레스타인 난민 3만4천 명은 2003년 후세인 정권 붕괴 뒤 시아파로부터 살해 위협을 받고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가 지난 4년 동안 시리아로 넘어 들어왔다.

시리아에 머무는 동안 통역을 도와준 오마르 압둘라(21·전 바그다드 국제대학생)의 우울한 얘기.

“내 아버지는 팔레스타인인이지만 어머니가 시리아인이다. 내가 어머니를 따라 시리아로 들어오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시리아로 오는 데 필요한 비자를 얻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버지가 지금 바그다드에 그냥 남아 있는 것도 비자를 얻지 못해서다. 어제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이라크를 떠나지 않으면 죽이겠다는 협박 편지와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고 한다. 지금 이라크에 남아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그렇게 하나둘 죽어가고 있다.”



“골란고원 돌려주면 미국 돕겠다”

논설위원 오바이다 하마드 인터뷰




‘통제 사회’인 시리아에선 언론 역시 정부나 집권 바트당이 장악하고 있다. 양대 아랍어 일간지인 과 대표적 영자지 , 시사잡지 등도 모두 정부가 운영하는 한 회사에서 발행된다. 언론인을 만나면 시리아 정부의 공식 입장을 비교적 정확히 들을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른다섯의 젊은 언론인 오바이다 하마드 논설위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은 시리아를 테러지원국으로 비난해왔는데, 시리아의 반론은 뭔가.
=시리아가 레바논의 헤즈볼라와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돕고, 이라크 안에서 활동하는 반미 저항세력들을 돕는다고 미국은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중동을 잘 모르고 이스라엘의 주장만을 받아들인 데서 생긴 오해다. 이스라엘은 시리아의 영토인 골란고원을 불법으로 점령하고 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우리의 적 이스라엘에 맞서 싸우는데 시리아가 팔짱만 끼고 그냥 바라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시리아가 테러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다. 시리아도 테러를 반대한다.
테러에 반대한다지만, 2년 전인 2005년 2월에 발생한 라피크 하리리 레바논 전 총리 암살 사건의 배후도 시리아 정보기관이 아닌가?
=구체적인 증거를 놓고 말하자. 증거가 없다면, 하리리 전 총리 암살로 누가 득을 보았느냐를 따져봐야 한다. 시리아는 하리리 전 총리 암살 뒤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을 철수시키라는 압력에 부딪쳤고, 결국 군대를 철수시켰다. 그러자 이스라엘은 국방력이 약해진 레바논을 만만하게 봤고, 실제로 2006년 7월 레바논을 침공했다.
분명히 밝히지만,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은 레바논 정부의 공식 요청을 받아 레바논에서 주둔하기 시작했다. 레바논의 평화를 지켜온 사실상의 ‘평화유지군’이었다. 평화 유지 임무를 수행하면서 약 100명의 시리아 장병들이 희생됐다. 우리는 그들을 ‘순교자’라고 부른다. 다시 말하거니와, 레바논 주둔 시리아군은 점령군이 아니었다. 팔레스타인과 남부 레바논을 내리눌러온 이스라엘군과는 달랐다.
이라크에서 수렁에 빠진 미국은 시리아가 이라크의 안정을 측면에서 도와주길 바라는 모양새다.
=그러려면 시리아가 무엇을 바라는지 미국이 먼저 알아야 한다. 시리아는 이스라엘로부터 골란고원을 되찾고 싶어한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압력을 가해 그 문제를 푼다면, 시리아도 이라크 사태의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미국을 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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