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내법이 미치지 않아 ‘고문’도 자유로운 쿠바 미군기지의 외곽 포로 수용소…기소된 10명 중 유죄 판결은 하나도 없어… 30개국 390여 명 기약 없는 수감 생활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테러와의 전쟁’은 2001년 10월7일 시작됐다. 9·11 동시테러 직후 ‘보복’을 다짐한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사건의 배후로 지목한 알카에다 소탕을 명분으로 그날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을 겨냥한 전격 군사행동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해 11월13일 부시 대통령은 특별 ‘군사명령’을 내렸다. 미국인이 아닌 테러 연루 혐의자를 적법한 절차 없이 무기한 구금하도록 하고, 혐의자에 대해선 미국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도 법적 조력을 받을 권리를 박탈한다는 내용이었다. 재판을 받게 되더라도 반드시 미 군사법정을 통하도록 했다.
“독방 감금·알몸 조사 다 괜찮다”
같은 해 12월28일 미 법무부는 짤막한 비밀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미국이 쿠바에서 조차한 관타나모 미군기지는 미국의 ‘주권’이 영향을 끼칠 수 없는 지역이므로, 적대 활동을 벌인 외국인들을 이곳에 구금해도 미 연방법원이 관할권을 주장할 근거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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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2주 만인 2002년 1월11일 철조망이 둘러쳐진 관타나모 미군기지 외곽 ‘캠프 엑스’로 20명의 무슬림 남성들이 끌려왔다. 얼굴은 가려지고 손과 발에 쇠고랑이 채워진 채로 ‘짐짝’처럼 아프가니스탄을 출발해 지구 반바퀴를 돌아온 이들은 미군에 붙잡힌 ‘테러 용의자’들이었다. 관타나모 포로수용소의 시작이다.
그해 8월1일 미 법무부는 또 다른 비밀 문건을 작성해 부시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수감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고문에 상응하는 고통’을 주는 것은 불법이 아니라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고문’까지는 아니어도 그에 못지않은 ‘심각한 고통’을 줌으로써 효과적인 조사가 이뤄질 수 있으며, 고문을 금지하는 미 국내법도 피해갈 수 있다는 ‘조언’이었다. 이는 같은 해 12월과 이듬해 4월 두 차례에 걸쳐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국방장관이 △잠 안 재우기를 비롯한 ‘감각적 폭력’ △독방 감금 △알몸 조사 △군견을 동원한 스트레스 유발 등 ‘조사 테크닉’을 허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지난 1994년 국제고문방지협약을 비준했다. 협약은 “어떤 극단적인 경우라도, 그것이 전쟁이든 전쟁에 대한 위협이든, 국내 정치적 불안이든 여타 공공의 긴급한 상황일지라도, 고문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심각한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유발하는 행위”를 ‘고문’으로 규정한 미 연방 고문방지법은, 수감자를 고문하거나 고문하겠다고 위협한 경우 최고 20년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관타나모 수용소에선 국제법도, 미 국내법도 소용없었다.
2002년 1월 이후 최근까지 관타나모 수용소를 거쳐간 이들은 40여 개국 출신 770여 명에 이른다. 국제앰네스티는 ‘관타나모: 무법의 아이콘’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수감자 가운데 상당수는 그저 잘못된 시간에 잘못된 장소에 있던 사람들”이라며 “(그들은) 미국의 보상금을 노린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요원들의 손에 붙들려 끌려온 것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이 단체가 500명의 수감자를 대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미군이 체포해 이송해온 수감자는 전체의 5%에 불과했다. 분석 대상 가운데 86%는 파키스탄이나 아프가니스탄 당국에 체포된 뒤 미군에 넘겨졌으며, 대부분의 경우 미군은 이들 한 사람당 수천달러의 보상금을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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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원에서 기도하다 붙들린 15살 소년
관타나모 수용소에 갇힐 당시 18살 이하였던 청소년은 지금까지 확인된 것만 17명이다. 심지어 13살 난 소년도 ‘적 전투요원’으로 엮여 관타나모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이 청소년들 가운데 지금도 수감돼 있는 이도 4명이나 된다. 모하메드 가라니와 오마르 카드르는 각각 15살 때 관타나모로 이송됐고, 유세프 세흐리와 하산 아사쉬는 각각 16살과 17살에 체포돼 관타나모에서 성년을 맞았다. 미 국방부는 2004년 1월 성명을 내어 “이 청소년은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적 전투요원이며, 나이는 구금 여부를 결정하는 데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앰네스티가 보고서에서 전한 모하메드 가라니의 사연은 이 청소년들의 가혹한 세상살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아프리카 차드에서 태어난 가라니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영어와 컴퓨터를 배우기 위해 파키스탄으로 유학을 떠났던 그는 지난 2001년 10월 ‘테러와의 전쟁’ 시작과 함께 현지 공안당국에 체포됐다. 체포 당시 15살이던 그는 카라치의 한 이슬람 사원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체포 직후부터 온갖 고문을 당해야 했던 그는 파키스탄 당국이 미군 쪽에 자신을 넘겨줄 때 “대단히 기뻤다”고 말했다. 더 이상 고문을 당하진 않을 거라고 믿은 탓이다.
하지만 가라니의 ‘꿈’은 이내 여지없이 깨졌다. 신병을 넘겨받은 미군은 그의 얼굴을 가리고 손과 발에 쇠고랑을 채운 뒤 뭇매를 퍼부었다. 이어 헬리콥터로 아프가니스탄 칸다하르로 옮겨진 뒤에도 고문은 계속됐다. 체포된 지 석 달여 만인 2002년 1월 가라니는 관타나모로 보내진 첫 번째 수감자 행렬 20명 가운데 포함됐다. 현지 도착 이후에도 고문은 멈추지 않았다. 앰네스티는 보고서에서 “스무 살 성년이 된 지금도 가라니는 여전히 관타나모에 갇혀 있다”며 “언제쯤 풀려날지 가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으로 우울증에 걸린 그는 벌써 두 차례나 자살을 기도한 바 있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외부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40여 명의 수감자가 관타나모 생활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수감 조건 개선을 요구하는 목숨을 건 장기 단식농성을 벌인 사람만도 연인원 200여 명에 이른다. 지난해 6월10일에는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3명의 수감자가 한꺼번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관타나모 수용소 책임자인 해리 해리스 해군 소장은 그들의 죽음에 대해 “이는 절망에 따른 선택이라기보다는 미국을 겨냥한 비대칭적 공격 전술을 편 것”이라고 주장했다. ‘매우 효과적인 선전선동술’이란 주장도 흘러나왔다. 당시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시우스는 “미군 당국자의 주장을 듣는 순간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해야 할 때가 됐다는 점을 깨달았다”며 “수감자들이 당하는 고통 때문만이 아니라, 관타나모 수용소가 얼마나 미군 당국자들을 비인간적으로 만들 수 있느냐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자살이 효과적인 선전선동술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개설 5년째를 맞은 지난 1월11일 미국·영국·스페인·이탈리아·독일 등 9개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인권단체들이 집회에 나섰다. ‘역사에 길이 남을 법·정치적 폭거’인 관타나모 수용소를 즉각 폐쇄하라는 외침이 지구촌 곳곳에서 조용히 촛불로 타올랐다.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됐던 ‘적 전투원’ 가운데 지금까지 범죄 혐의로 기소된 이들은 10명에 불과하다. 이들 가운데 정식 재판에 회부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수감자는 단 1명도 없다. 지난해 말 현재 관타나모 수용소에는 30개국 출신의 390여 명이 기약 없는 수감 생활을 하고 있다. ‘테러와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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