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연대를 중심으로 안정을 찾아가고 있던 소말리아에 난데없는 전쟁…유엔 ‘헤즈볼라 지원’ 운운하면서 미 대테러전 새로운 최전선으로 떠올라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인도양 쪽으로 툭 튀어나온 땅덩이가 지도에서 도드라지는 아프리카 북동부는 흔히 ‘아프리카의 뿔’로 불린다. 코뿔소의 뿔 모양을 닮았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멀리 아라비아반도의 열기가 금방이라도 와 닿을 듯한 그곳은 홍해로, 다시 수에즈운하를 거쳐 지중해로 나아가는 해상 교통의 요충지다. 수많은 유조선과 화물선, 군함과 어선이 뒤엉켜 망망대해가 늘 북적인다. 그곳에 소말리아가 있다.
이슬람 법정, 흩어진 민심을 아우르다
서쪽으로 에티오피아, 북서쪽으로 지부티, 남서쪽으로 케냐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소말리아는 이슬람 국가다. 아라비아반도에서 전파된 이슬람이 9~10세기께 확고히 자리를 잡은 이래 신심 깊은 무슬림들의 땅으로 유지돼왔다. 19세기 말 프랑스·영국·이탈리아 등 제국주의 열강이 그 땅으로 몰려왔고, 2500여 년 역사의 유서 깊은 땅을 갈가리 찢어 나눴다.

프랑스가 차지한 땅은 지부티로 남겨진 채, 1960년 7월1일 영국과 이탈리아의 신탁통치를 받아온 지역을 통합해 독립국가를 선포했다. 새 나라 건설의 희망과 혼란이 채 가시기도 전인 1969년 말 군사 쿠데타가 벌어졌다. 모하메드 시아드 바레가 이끄는 독재정권이 무장저항에 무너진 것은 그로부터 22년여 뒤인 1991년의 일이다.
독재자의 몰락은 서글픈 내전으로 이어졌다. 유엔 차원의 개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상황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1993년엔 미국의 무모한 군사 개입으로 수백 명의 소말리아인이 희생되기도 했다. 미군 쪽의 피해도 없는 것은 아니어서 2대의 헬리콥터가 추락하면서 18명의 미군이 목숨을 잃었다. 이른바 ‘블랙호크 다운’ 사건이다. 결국 유엔 평화유지군은 1995년 3월 소말리아에서 철수했다.
지난 2004년 유엔 중재로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에서 ‘소말리아 과도 연방정부’(TFG·이하 과도정부)가 구성되긴 했지만, 바레 정권 붕괴 이후 지금까지 소말리아에선 나라는 있으되 정부는 없는 ‘초현실적 상황’이 이어져왔다. 16년 동안 정부가 없었다는 건 뭘 의미할까? 상하수도·보건·복지·교육·교통·통신·전력·금융 등 모든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를 의미한다. 이슬람 깃발을 앞세운 지역 경제인과 자선단체가 이런 공공 서비스를 제공하는 핵심이었다. 치안 유지도 그들의 몫이었다.
흩어진 민심을 아우른 것은 지역별로 조직돼 샤리아(율법)를 기반으로 법 질서를 유지한 이슬람 법정이었다. 이들은 소송 비용을 받아내 마련한 재원으로 교육·의료 사업도 병행했다. 범죄에 노출된 지역 상인들은 치안 유지에 나선 이슬람 진영에 기꺼이 돈을 냈다. 199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지역별 이슬람 법정의 연대 움직임이 본격화했고, 이윽고 1999년 4월 ‘이슬람법정연대’(ICU·이하 이슬람연대)가 꾸려졌다.
이슬람연대의 급부상은 각 지역에 똬리를 튼 군벌들의 위기감을 키웠다. 서로를 향해 총질을 해대던 이들이 수도 모가디슈를 중심으로 ‘평화회복과 테러방지를 위한 연맹’(ARPCT·이하 반테러연맹)을 꾸린 것도 이 때문이다. 2006년 초반부터 이슬람연대와 반테러연맹 사이에 충돌이 잦아지기 시작하더니, 그해 5월 결국 모가디슈 도심에서 교전이 벌어져 300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같은 해 6월5일 이슬람연대는 마침내 모가디슈를 장악했음을 선포했다.
10여 년 만에 항구도 문을 열고…
수도를 장악한 지 한 달여 만인 지난해 7월15일 이슬람연대는 유엔군이 철수한 뒤 10여 년 동안 폐쇄됐던 모가디슈 국제공항을 개방했다. 8월15일엔 해적들로 들끓던 모가디슈 북동부 500km 지점의 하라드헤레 지역을 장악했다. 같은 달 25일엔 한때 아프리카 북동부에서 가장 바삐 움직이던 모가디슈 항구가 역시 10여 년 만에 문을 열었다. ‘안정’은 빠르게 찾아오는 듯했다.
2001년 9·11 동시테러 이후 장기간 무정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소말리아는 ‘위험지역’으로 꼽혔다. 알카에다에 동조하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이 혼란을 틈타 흘러들 수 있는 땅으로 여겨졌다. 미국이 모가디슈로 향하는 이슬람연대의 길목을 막고 나섰던 반테러동맹 군벌세력에게 무기와 현금을 지원해온 이유였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슬람연대의 모가디슈 장악 직후 “소말리아가 알카에다의 도피처가 되는 것을 가장 우려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 기름을 부은 것은 어처구니없게도 유엔이었다. ‘유엔 소말리아 감시그룹’은 지난해 11월 소말리아 현지 상황에 대한 86쪽 분량의 평가보고서를 내놨다. 감시그룹은 보고서에서 “지난해 7월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720명의 ‘노련한’ 소말리아 병사가 현지로 건너가 헤즈볼라와 함께 이스라엘에 맞서 전투를 벌였으며, 그 대가로 레바논은 시리아와 이란의 도움을 받아 소말리아 이슬람 진영에 무기를 공급하고 군사훈련을 시켜줬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또 “이란이 소말리아의 우라늄 광산 채굴권 확보를 조건으로 이슬람연대에 무기를 공급하려 했다”는 지적도 내놨다.
소말리아 출신 ‘이슬람 전사’들이 헤즈볼라를 지원했다는 주장은 소말리아 이슬람 진영이 외국 ‘테러조직’을 지원할 것이란 우려의 현실태로 읽힐 수 있다. 시리아와 이란이 소말리아를 지원한다는 주장은 이슬람 반미전선이 아프리카로 확장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 감시그룹은 보고서의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근거가 있을까?
소말리아 국민 절대 다수는 이슬람 수니파다. 시아파 국가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다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 국제사회의 집중적인 관심이 쏟아졌음을 감안할 때, 수백 명의 소말리아 병력이 현지에 있었다면 눈에 띄지 않았을 리 없다. 지난해 11월17일 감시그룹은 보고서를 유엔 안보리 해당 위원회에 제출했지만, 명확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해 진땀을 흘려야 했다.
그럼에도 ‘테러와의 전쟁’에 고정된 부시 행정부의 시각은 변하지 않았다. 아프간과 이라크, 레바논에서 처절한 실패를 맛봤음에도 소말리아에서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이슬람연대가 힘을 얻어갈 무렵부터 미국은 벌써 몇 년째 유엔의 무기금수 조처를 비웃기라도 하듯 소말리아 군벌에게 무기와 자금을 제공해왔다. 는 지난해 5월 이런 내용을 전하며, “지난 2002년 12월 소말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지부티에 대테러 전담부대를 설립하고 1600명 규모의 미군 병력을 상주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과도정부 지원하라” 유엔이 또 ‘명분’제공
이제 에티오피아가 등장할 차례다. 지난 70년대 영토분쟁으로 소말리아와 전쟁까지 치렀던 에티오피아는 이슬람연대의 약진을 극도로 경계해왔다. 에티오피아 정부가 미국과 함께 반테러연맹 군벌과 소말리아 과도정부 보호를 자임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에티오피아와 미국의 직·간접 지원을 받은 군벌 상당수는 과도정부와도 긴밀히 연계돼 있다. 이들이 얼마나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했는지는 설립된 지 2년이 지난 최근까지도 과도정부의 영향력이 임시 수도로 삼은 서부 중소도시 바이도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과도정부가 그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1만5천 명 규모의 에티오피아군이 이들을 보호했기 때문이다.
전쟁 준비가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명분’이 필요했다. 미국의 이라크 침공·점령을 사실상 사후 승인했던 유엔 안보리가 또다시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과거의 우를 되풀이했다. 안보리는 지난 12월6일 결의안 제1725호를 통해 “지역 평화유지군이 소말리아로 진입해 과도정부를 보호하고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도록” 허가했다. 결의안은 두 가지 치명적 결함이 있다. 우선 유엔 헌장은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분쟁의 일방을 대신해 유엔이 중재나 개입에 나설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안보리 결의안은 명백히 이슬람연대에 배타적이며, 과도정부에 우호적이다. 헌장 위반이다. 이슬람연대의 모가디슈 장악으로 소말리아가 급속도로 ‘평화와 안정을 회복’하고 있음은 차라리 논외로 하자.
진군의 북소리는 울렸다. 결의안이 나온 지 이틀 만인 12월8일 이슬람연대는 에티오피아군의 지원을 받는 과도정부 쪽과 교전을 벌였다고 밝혔다. 이슬람연대는 애당초 에리트레아와의 전쟁에서 단련된 에티오피아군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12월21일 일부 지역에서 또다시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고, 이슬람연대가 ‘성전’을 촉구한 가운데 12월20~26일 에티오피아군의 대규모 공세가 이어졌다. 결국 12월28일 이슬람연대는 모가디슈에서 물러났고, ‘승리’를 확신한 알리 모하메드 게디 과도정부 총리는 계엄령을 선포했다. 아프리카연맹(AU)은 에티오피아 쪽에 침략행위 중단과 철군을 촉구했지만, 유엔 안보리는 이마저도 외면했다.
“영원히 잊지 못할 가르침 주겠다”
미군이 드러내놓고 ‘직접 행동’에 나서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미군은 지난 1월7일과 8일 이틀간 AC-130 전천후 공격기까지 동원해 소말리아 남부에서 강력한 공습작전을 벌였다. 지난 1998년 케냐와 탄자니아 주재 자국 대사관 폭탄 공격의 배후로 지목한 파줄 압둘라 모하메드 등 3명의 ‘알카에다 지도자’를 겨냥한 작전이었다고 설명했지만, 등 외신들은 이 과정에서 적어도 수십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났다고 전했다. 소말리아가 명실상부한 ‘대테러 전쟁의 새로운 최전선’으로 떠오른 것이다.
소말리아가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근거지가 되는 것을 막는 유일한 길은 전 국토를 아우를 수 있는 강력하고 단일한 중앙정부를 확립하는 것이다. 이슬람연대는 그 가능성의 단초를 보여줬다. 시장에서 군벌의 갈취가 사라지면서, 살인적인 생활물가도 서서히 잡힐 태세였다. 과거 평화협상에서 배제됐던 이슬람연대는 ‘중요한 역할’을 떠맡을 준비가 돼 있었다. 미국과 이웃나라의 역할은 이들이 ‘유엔이 인정한’ 과도정부와 대화에 나설 수 있도록 시간을 주는 것으로 족했을 것이다.
지난 6월 모가디슈를 장악한 뒤 이슬람연대의 지도자 셰이크 샤리크 셰이크 아메드는 사우디아라비아 일간 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미국이 모가디슈를 장악한 우리를 겨냥해 직접 무장 개입에 나선다면, 영원히 잊지 못할 가르침을 줄 준비가 돼 있다”며 “우리는 미국에 1993년의 패배를 되풀이시켜줄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미국의 섣부른 개입이 또다시 참화를 예고하고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극우·국힘·검찰, ‘죽은 윤석열’ 누가 먼저 버릴까 [4월7일 뉴스뷰리핑]
[속보] 이재명, 개헌 동시투표 반대 뜻…“내란 종식이 먼저”
[단독] 헌재, 프린트도 안 썼다…선고요지 보안 지키려 ‘이메일 보고’
‘대선 꿈’ 홍준표 “헌재 없애자”…윤석열 지지층에 손짓
한덕수, 내란문건 봉인하나… ‘대통령기록물’ 되면 최대 30년 비공개
[속보] 이재명 ‘개헌보다 내란 종식이 우선’ 입장 낸다
코스피 4% 넘게 떨어져 2350대 추락…매도 사이드카 발동
‘윤석열의 멘토’ 신평 “윤 예언자적 점지로 국힘 대선후보 뽑힐 것”
조기대선 6월3일 잠정 결정…내일 국무회의 최종 의결
머스크, 트럼프 관세 발표 사흘 만에 “미국-유럽 무관세 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