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버쿠젠 쓰레기 에너지 공장 등 독일 환경 시설 둘러본 ‘청소년 환경 여행’…필름 현상할 수 있을 정도로 더러웠던 라인강, 수십년간의 노력으로 되살아나
▣ 레버쿠젠(독일)=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도로변에 빽빽이 심어진 키 큰 가로수, 발길이 닿는 곳마다 노란 은행잎으로 물든 공원, 작은 성처럼 예쁜 집들…. 독일 레버쿠젠시는, 찻길과 나란히 한 자전거 도로가 출근하는 이들로 가득 차 있지 않았다면 환경이 잘 보존된 시골 마을로 착각할 정도였다.
환경 관련 시설 유지에만 1조2천억원
사실 레버쿠젠은 울산만큼 공장이 많은 기업도시다. 울산을 상징하는 기업이 현대자동차라면, 레버쿠젠 경제를 이끄는 기업은 제약·화학 분야의 대명사인 바이엘이다. 아스피린으로 잘 알려진 바이엘은 1912년 이곳에 공장을 짓고 회사를 세웠다. 바이엘이 오기 전까지 레버쿠젠은 황무지였다고 한다.
지금은 인구 16만 명이 넘는 기업도시다. 황무지를 기업도시로 만든 것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이 아니었다. 이곳 시민들은 “바이엘이 이윤 창출만을 목표로 했다면 오늘날의 레버쿠젠은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바이엘은 화학제품과 제초제, 살충제 등 농업약품 비중이 높은 다국적 기업이다. 본사는 레버쿠젠에 있다. 생산물의 특성상 자주 환경단체들의 공격 대상이 되기 때문에 환경보호 이미지를 위해 회사가 쏟는 노력도 남다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폐수 정화 장치 등 환경 시설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현재 레버쿠젠에서 발생하는 생활·공업 하수는 모두 바이엘의 정화시설을 거친 뒤 라인강으로 흐른다. 매일 오·폐수 1억ℓ를 처리하는 바이엘의 정화시설은 세계 최대 규모로 알려졌다. 회사가 4개의 폐수처리 탱크와 폐기물 소각장, 매립지 등 환경 관련 시설을 유지하는 비용만도 연간 10억유로(약 1조2천억원)에 이른다. 바이엘 국제정책 담당 롤랜드 케이퍼는 이런 환경투자에 대해 “바이엘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환경 등 지역사회에 투자하고 있다”며 “사회 공헌 활동을 통해 신뢰를 얻는다면 회사는 장기적으로 꾸준한 수익을 내며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래서 바이엘은 2004년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한 과학’이라는 새로운 기업이념을 내걸고 환경 분야 사회공헌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청소년 환경 교육을 위해 민간기업으로서 최초로 유엔환경계획(UNEP)과 ‘청소년 환경 프로젝트를 위한 파트너십’을 체결한 것이다. 바이엘은 이를 위해 3년간 매년 100만유로(약 12억원)를 지원한다. 지난 11월5~10일엔 ‘청소년 환경 여행’이 열렸다. 16개 나라에서 선발된 48명의 학생이 5박6일 동안 레버쿠젠을 중심으로 독일 환경 시설을 둘러보고 환경 관련 세미나에 참여하게 하는 행사다.
‘환경 여행’을 하는 동안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8일 방문한 레버쿠젠의 시립 폐기물 처리 관리소였다. 폐기물 처리 관리소는 5t 트럭만 한 크기의 커다란 컨테이너로 가득 차 있었다. 각 컨테이너에는 번호표가 붙어 있는데, 우선 병·종이·고무·전자제품·스티로폼 등 재활용할 수 있는 물품들을 종류별로 분류했다. 여기까지는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큰 규모의 고물상과 별 차이가 없었다.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를 소각하는 ‘쓰레기-에너지 공장’은 쓰레기를 다시 에너지로 만들어내는 첨단 시설이었다. 우선 재활용이 불가능한 쓰레기는 쓰레기-에너지 공장의 쓰레기 창고로 옮겨진 뒤 다시 재분류 과정을 거쳤다. 사람이 조정하는 두 개의 큰 기중기가 쓰레기를 집어올려 쓰레기의 성격을 조사한 뒤 자석 등을 이용해 비슷한 종류의 쓰레기로 분류한다. 그렇게 차례대로 쌓인 쓰레기는 소각된다. 쓰레기를 운반·분류·소각하는 모든 과정은 기계가 하며, 사람은 실내에서 컴퓨터로 기계를 조정한다. 쓰레기를 태우면서 발행한 열은 증기를 만들고, 다시 이 증기는 전기를 만들어냈다. 관리소 홍보를 맡고 있는 하미트 샤쿠어는 “쓰레기 에너지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는 지역송전선망을 타고 가정, 학교 등 5만 가구에 공급된다”고 말했다.
망가지는 데 몇 년, 되살리는 데 수십 년
9일에는 라인강 북부 지역의 대기오염을 감시하고 수질을 점검하는 시설국가환경보호기관(LUA-NRW)을 방문했다. 눈으로 본 라인강은 누런 흙탕물이어서 그다지 깨끗해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수질관리를 맡고 있는 헬가 카처 박사의 설명을 듣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1960년대 라인강은 각종 오물과 유럽에서 흘러들어오는 폐수로 지금보다 훨씬 심하게 오염됐다. 필름을 현상할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독일 정부가 20년 동안 수질을 개선하기 위해 도시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를 집중적으로 관리하면서 눈에 띄게 개선됐다.”
옛 서독 지역의 도시 생활하수와 산업폐수는 93%가 시립 하수처리장이나 기업체의 하수처리장에 연결됐다. 또 라인강에 ‘생물학적 폐수처리 공장’을 설치해 강의 부영양화 현상으로 생긴 영양물을 제거하는 기술을 이용해 지난 10년 동안 질소와 인을 각각 68%, 64% 감소시킨 것으로 나타났다. ‘라인강의 기적’으로 이룬 경제성장은, 강을 죽이고 산을 죽이고 산성비를 내리게 했다. 게르만의 전설뿐만 아니라 독일 문학과 음악의 배경이 됐던 아름다운 풍광을 되살리기 위해 독일 정부는 1970년대부터 총력을 기울였다. 망가지는 데는 몇 년 걸리지 않았지만, 되살리는 데는 수십 년 걸린 셈이다.
산업화와 경제성장의 부산물이었던 환경파괴의 심각성을, 그리고 다시 이를 복원하기 위한 수십 년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경험한 각 나라의 환경대사들은 많은 숙제들을 떠안았다. 자기 나라의 고민을 털어놓고 다른 나라에서 온 환경대사들의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온 남지민(24)씨는 봄철 황사 문제를 꼽으면서 “황사의 근원이 되는 중국 내몽골 지역의 사막 현장을 다녀오면서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이번 ‘환경 여행’에 동참했는데 독일의 수질·대기질 관리 노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박지운(25)씨는 “환경을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며 “유럽에만 있는 배출권 거래소(온실가스 감축 의무가 있는 국가에 배출 허용량을 부여한 뒤 국가 간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거래하는 곳)를 동아시아에 세워 환경 보존도 하면서 배출권을 팔아 이윤을 남길 수 있는 사업을 구상 중”이라며 환경 비즈니스에 대한 야심을 보여줬다. 브라질의 페드로 루이즈 샤프(21)는 “브라질에 산업화가 이뤄지면서 아마존 지역의 벌채가 심각한 수준”이라며 아마존의 환경 문제에 우려를 표했다. 중국의 주쿤니에(22)는 “중국의 경제가 급속히 성장하는 가운데,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경제개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발전된 환경 기술을 가진 독일 등 선진국들이 높은 환경 기준을 요구하고 자국의 환경사업을 확장하려는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적지 않았다. 케냐의 티투스 도카 쿠리아는 “가난한 국가는 환경 기술도 없고 환경 시설을 설치할 만한 돈도 없다”며 “이런 상태에서 가난한 국가는 부자 나라의 쓰레기통이 될지도 모른다”고 비판했다. 그를 포함해 개발도상국가에서 온 환경대사들은 산업폐기물을 제3세계 국가에 떠넘기는 선진국들의 행태를 비판하면서 높은 환경 기준이 무역장벽으로 작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환경대사, 처지 따라 처방도 갖가지
독일에서 같은 것을 보고 지구적 차원에서 환경 문제를 고민하더라도 각 나라의 구체적인 현실에 따라 고민의 방향과 깊이가 달라지는 환경대사들을 보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화두에 대해 다시 고민하게 됐다. 지난해 2월 지구온난화를 막고 온실가스를 줄이자는 취지로 채택된 교토의정서의 운명에 대해서도. 지구는 미래 세대에게 잠시 빌려쓰고 있을 뿐이라는 말에 모두가 공감할 만큼 둥글지는 않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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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에코메지네이션’ 성공적… 우리나라는 환경 공헌 거의 없어
더 이상 환경 파괴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 속에서 ‘환경’이냐 ‘개발’이냐는 이분법을 넘어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화두가 등장했다. 특히 지난해 2월16일 ‘교토의정서’(지구온난화를 규제하기 위해 대상국은 2008년에서 2012년 사이에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1990년 수준보다 평균 5.2% 감축해야 한다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에 관한 의정서)가 채택되면서 환경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물론 교토의정서 의무이행 대상국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 등 총 38개국에 불과하지만, 이런 환경 규제가 전세계적으로 확산될 것이기 때문에 더 이상 환경 문제를 등한시하는 것은 불가능하게 됐다. 최근 기업은 환경에 대한 사회적 역할을 적극적으로 할 것을 요구받고 실천하고 있다. 또 환경 자체도 이익을 창출하는 원천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환경 비즈니스’가 각광을 받는 추세다.
제너럴일렉트릭(GE)도 2005년 ‘에코매지네이션’(Ecomagination: Ecology(생태학)과 Imagination(상상력)의 합성어)이라는 전략을 발표해 환경사업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에코매지네이션은 환경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해 고객들의 친환경성과 경비 절감을 동시에 추구할 수 있도록 혁신적인 기술을 고안·개발하겠다는 것이다. GE는 2700만달러를 투자해 5~7MW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급 풍력 터빈, 태양 광선에서 에너지를 얻는 광전지, 수소에너지 등을 개발하고 있다. GE의 2005년 환경사업 총매출은 101억달러를 기록해 목표치인 200억달러의 절반을 달성했고, 2005년 수주액은 200년의 두 배인 170억달러로 집계됐다. 이같은 성과에 대해 GE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환경은 돈’이라는 전략이 맞아떨어지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며 “고객의 관심이 계속적으로 높아지고 주주가치 상승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외국 기업만큼 적극적이지 않아도 국내 기업들도 환경에 조금씩 눈을 돌리고 있다. 삼성SDI는 PDP와 LCD의 무연 솔더링(납 없이 땜질하는 방식) 양산에 성공했고, GS칼텍스는 국내 최초로 누출 탐지·보수 시스템을 도입해 공장 전체적으로 평균 76% 정도의 휘발성 유기화합물질(VOC) 배출량을 줄이는 등 친환경 에너지 생산에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사업은 워낙 큰 투자 비용에 비해 돌아오는 이익은 ‘신뢰’ ‘도덕성’과 같은 추상적인 것인데다, 사업 불확실성도 커서 국내 기업들이 적극적인 투자를 여전히 기피하고 있다. 환경운동연대의 안준관 팀장은 “우리나라는 기업이 환경 분야에서 사회공헌을 하는 예가 거의 없다”며 “그런 문화가 정착되지 않았고, 환경사업이 기업에 이익이 되냐 안 되냐만 따지기 때문에 알맹이 없이 기업을 홍보하는 데에만 이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광양환경운동연합 박주식 국장은 “포스코가 친환경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동안 광양 시민들은 포스코 광양제철소에서 발생하는 공해에 시달리고 있다”며 “지역 일대 대기 오염도 치유하지 못하면서 친환경 기업이라고 홍보를 하고 다니는 것은 이중적인 태도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일”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광양제철소 인근 지역은 발암물질인 다환방향족탄화수소(PAHs) 오염 농도가 국내 일반 지역의 PAHs 농도보다 100배 높은 19.5ppm으로 나타나 문제가 되고 있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지역 시민들에게 큰 피해를 주는 기업과, 당장의 이익은 없지만 장기적인 기업의 발전을 위해 ‘신뢰’라는 추상적인 가치에 아낌없이 투자하는 기업. 양극단 사이에서 ‘환경은 돈’이라는 믿음이 현실화될지 여부는 기업의 선택만으로 결정되는 일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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