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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엔 선후배가 없다?

등록 2006-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국식 예의범절의 기준으로 볼 땐 낯설기만 한 탈권위주의의 풍경들 …‘선생님’만 직업 호칭으로 인정… 도지사와 운전기사가 자연스레 겸상도

▣ 글·사진 호찌민=하재홍 전문위원 vnroute@naver.com

“한국식 예의범절은 정말 복잡해요. 권위주의가 너무 심한 것 같아요.”

한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 유학생이나 노동자들, 결혼한 여성들이 한국 생활 적응의 어려움을 토로할 때 공통적으로 쏟아내는 말이다. 이들은 한국에서 교수, 사장, 시부모 등과 자리를 함께할 때, 신경의 안테나 몇 개를 사면팔방으로 쉼없이 돌려야 한다. 안 그러면 ‘벼락’이 떨어질 테니까.

그럼 베트남에는 우리식 예의범절이 없는 걸까? 베트남도 중국·한국·일본과 더불어 유교 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다. 예의를 중시하는 전통은 한국과 같지만, 실생활에선 분명한 차이가 있다. 베트남인들의 경험과 시선 속에선 한국이 낯설듯, 베트남의 탈권위주의 풍경은 ‘충격’적으로 낯설어, 우리의 고정관념에 적잖은 파열음을 만들어낸다.

교사와 학생이 자연스레 맞담배를…

직장에서 베트남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부를까? 지극히 공식적인 자리를 제외하고는 보통 안(형·오빠), 지(누나·언니), 앰(동생)으로 부른다. 나이가 삼촌뻘인 경우엔 쭈(삼촌), 짜우(조카)로 부른다. 우리와 달리 직책을 일상 호칭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운전기사도 도지사를 형이라고 부른다. 간부회의가 끝난 뒤, 운전기사는 어디에서 식사를 할까? 운전기사도 도지사와 나란히 앉아 간부들과 함께 식사를 한다. 도지사가 따라주는 물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마시고, 건배를 할 때도 잔의 ‘높이’에 신경쓰는 경우란 없다.

‘떳까 안앰 중따.’(우리의 모든 형제들) 베트남에서 흔히 연설 첫머리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직원들이 일상적으로 호형호제를 하고, 전혀 ‘급’이 맞지 않는 운전기사가 식탁의 모서리도 아닌 중앙에 앉아 간부들과 겸상을 하는 것은 이렇듯 베트남인들 사이에 ‘형제애’가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교수와 학생이 어우러지는 모습도 한국과는 사뭇 다르다. 수업의 시작과 끝에 학생들은 자리에서 일제히 일어나는 것으로 교수에 대한 예를 갖춘다. 그렇게 유교식 예의범절이 엄연하게 내면에 흐르고 있지만, 쉬는 시간이면 구내 매점에 함께 내려가 교수와 학생이 커피를 마시며 맞담배를 ‘천연덕스럽게’ 피운다. 수업에 대한 얘기와 더불어 시시껄렁한 농담이 예사로 오간다. 때때로 방과 후 노래방에 함께 가 교수와 학생이 어깨동무를 하고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얼굴이 벌게지도록 함께 취한다. 한국에서라면 ‘괴짜’ 교수로 낙인찍힐 만한 행동들이, 베트남 교수 사회에선 가장 보편적인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어울려 지내는 모습에선 교수와 학생이 전혀 구분되지 않지만, 베트남에서 직업이 호칭으로 사용되는 유일한 업종이 바로 ‘교직’이다. 의원님, 판사님, 기자님이란 존칭은 없지만 ‘선생님’은 있다. 그만큼 교직은 사회에서 신성한 지위를 갖는다. 그런데 ‘교수님’은 없다. 교수는 직업의 의미보다 직책의 의미가 강하기 때문이다. 유치원 보조교사부터 대학의 총장까지 모두 ‘선생님’일 뿐이다. 교수 사회 내부에서도 공식석상을 제외하고는 호형호제가 호칭의 기본이다.

베트남 정부 총리가 한 신문사를 방문했을 때 일이다. 때마침 퇴근시간인지라 기자들은 총리의 어깨를 무심결에 부딪히며 밖으로 뛰어나가고, 대걸레 자루를 든 청소부 아줌마는 총리의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며 걸레질을 했다. 언론사는 물론이요, 베트남의 모든 기관은 국가의 지휘통제를 받고 있으니 총리의 비위를 거스르면 문책을 당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신문사의 ‘무신경한’ 첫 맞이에도 불구하고 총리의 표정엔 불쾌감이 어리지 않는다. 기자는 기자 역할을, 청소부 아줌마는 청소부 역할을, 총리는 총리 역할을 하는 것일 뿐이다. 총리를 배려한 의전 때문에 신문사가 ‘비상’에 걸리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국경일 행사장, 군인들의 ‘짝다리’

권위주의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군대의 풍경은 어떨까? 군복무를 한 한국 남성이라면 군대 시절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지만, 반복 숙달된 ‘짬밥’ 내공으로 병장 1호봉이면 그 소리가 아주 ‘시끄럽게’ 들린다고들 한다. 부사관과 장교들은 그 소리를 머리 뒤통수로도 들을 수 있는 ‘득도의 경지’에 올랐다는 말도 있다. 베트남의 군인과 경찰들은 어떨까? 국경일 행사장에서 각 방송사의 카메라가 돌고 있는데 베트남 군인과 경찰들이 ‘짝다리’를 한 채 옆사람과 잡담을 하기 일쑤고, 그런 모습을 잡은 화면이 안방으로 고스란히 전달된다. 아무도 ‘눈동자 굴러가는 소리’를 듣지 못한다. 연설을 하는 장관도, 행사장 책임자도, 도열해 있는 동료 대원들도, 안방의 시청자도 전혀 눈살을 찌푸리지 않는다. 베트남 사람들은 행사장 내 일사불란한 정자세를 거북스럽게 여기고, 편한 자체로 연설에 반응하는 소소한 잡담을 오히려 당연하다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농촌 지역에 있는 군부대 주변에는 발목에서 허리 높이 이상까지 잡초가 자라 있다. 주변도로도 울퉁불퉁 곳곳이 파여 있다. 그 길을 꿩총을 멘 군인들이 운동화를 신고 어슬렁거리며 지난다. ‘오와 열’도 맞추지 않아 누가 선임자이고 누가 후임자인지 구분되지 않는다. 초소를 통과할 때, 초소 위병과 출입자는 손 한번 서로 흔들어주는 것으로 절차가 끝난다. 초소 위병은 슬리퍼를 신은 채 의자에 앉아 있다. ‘잡초 제거작업’ ‘도로 평탄작업’에 이골이 난 한국군의 시선으로 보면, 베트남 부대 주변의 광경은 도저히 용납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꿩총이라니. 하지만 이들이 지난 세기 프랑스군과 미군을 자력으로 물리친 세계 유일의 군인들이다. 군기가 무너진 것이 아니라, 군기의 개념이 우리와는 차원을 달리하는 것뿐이다. 중국과 1천 년을 싸웠던 끈기와 몽골군을 물리쳤던 투지는 이들의 내면에 면면히 살아 있다.

베트남 사람들도 한국 못지않게 술을 즐긴다. 하지만 술 역시 다른 음료와 똑같은 취급을 받기에 이른바 ‘주도’라는 건 존재하지 않는다. 혼자 따라 마시는 건 기본이고, 술 따르는 데 오른손·왼손, 바깥쪽·안쪽의 구분이 없다. 아랫사람이 윗사람 앞에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고 마시는 법도 없다. 남이 술을 부어주는데, 그 잔을 잡고 있거나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베트남 사람과 처음 술자리를 하는 한국 사람은 손이 민망해질 때가 많다.

‘선배의 침은 로열젤리요, 선배의 말은 경전 말씀이기에, 까라면 까는 게 후배.’ 이런 문장은 베트남어로 곧바로 번역되지 않는다. ‘선배, 후배’라는 단어가 베트남어 사전에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선은 단어의 뜻을 풀어서 설명해야 하고, 그 다음엔 문장의 배경을 설명해주어야 한다. 직책이 호칭으로 사용되지 않는 만큼, ‘짬밥’이 호칭에 끼어들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이다.

나이와 신부, 빈부를 초월하는 ‘친구’

반면 베트남 단어에서 ‘친구’의 개념은 나이, 신분, 빈부를 초월한다. 청소년과 노인이 친구가 되고, 사장과 운전기사가 친구가 되고, 가정부와 집주인이 친구가 된다. ‘네가 지금 나랑 친구 하자는 거냐?’는 말이 아랫사람에 대한 불쾌감을 표현하는 뜻이 되기도 하는 우리말의 ‘친구’와는 그 어감이 크게 다른 셈이다. 베트남의 탈권위주의,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노라면 한국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했던 한국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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