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바논 침공 한 달, 전선을 넓혀도 공격을 중단해도 나아질 수 없는 처지…헤즈볼라를 겨냥했던 ‘충격과 공포’는 오히려 이스라엘 자신에게 떨어지는가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에후드 올메르트 이스라엘 총리가 지금 당장 군사행동을 중단한다면 헤즈볼라는 당연히 자신들의 승리를 선언할 것이다. 몇 주째 이어진 이스라엘군의 공세에도 헤즈볼라 조직원들은 여전히 건재한데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로켓 공격도 불을 뿜고 있는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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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바논 깊숙이 전선을 넓혀나가더라도 상황이 별반 나아질 것 같아 보이진 않는다. 이스라엘은 지금 6년여 전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하면서 끝났던 것으로 생각했던 게릴라 전쟁에 다시 깊숙이 빨려들어갈 수도 있는 상황에 봉착해 있다.”
유엔안보리 결의안에 아랍국 거센 반발
서양 장기를 두다 보면 다음 수를 어떻게 두든 간에 자신에게 불리한 상황으로 몰릴 수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이를 ‘추크즈방’(Zugzwang)이라고 부르는데, 영국 시사주간지 는 최신호에서 올메르트 총리가 처한 상황을 이에 빗대 설명했다. 두 가지 ‘악수’를 모두 피하고 싶었던지 올메르트 총리는 지난 8월2일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킬 다국적군이 도착할 때까지 레바논 남부에서 공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누가 어떤 형식으로 헤즈볼라를 무장해제시킬 수 있을지에 대해선 여전히 물음표만 가득하다. 가 “수많은 불확실성 가운데 그나마 확실한 것은 전쟁이 끝나더라도 누구도 승리했다고 주장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진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 7월12일 시작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이 한 달째로 접어들었다. 지금까지 약 1천 명의 레바논인이 목숨을 잃었고, 100만에 가까운 이들이 집을 잃고 난민으로 전락했다. 내전의 참화를 뚫고 국제사회의 지원 속에 재건에 박차를 가하던 레바논 경제는 이스라엘군의 폭격으로 인프라가 파괴되면서 다시 잿더미로 변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의 파괴적 군사행동은 여전히 거침이 없다.
카나의 참극을 목도한 뒤에도 무기력하기만 했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그나마 만들어낸 즉각 휴전을 위한 결의안 초안은 ‘이스라엘에 일방적으로 유리하다’는 거센 반발만 부르고 있다. 안보리 결의안 초안은 이스라엘군의 ‘공격적 군사행동’만 중단할 것을 촉구해 ‘방어적 군사행동’의 여지를 남겼고, 이른바 ‘다국적 평화유지군’이 레바논 남부에 주둔할 때까지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미룰 수 있도록 돼 있다. 레바논을 포함한 아랍권 대부분 나라가 적극 반발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하긴 이스라엘은 이번 공격을 ‘방어’라고 칭했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도 사태 초기부터 “이스라엘은 자국을 방어할 권리가 있다”고 되풀이해 강조해왔던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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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헤즈볼라가 준비해온 전쟁을 치르고 있지, 자기들이 원하던 대로 전쟁을 치르지 못하고 있다.” 침공 초기 수도 베이루트를 포함해 레바논 각지에서 대규모 공습을 벌이는 한편 일부 지상군 병력까지 투입하면서 기세를 올렸던 이스라엘군은 침공 한 달째를 맞으면서 조금씩 흔들리는 모습이다. 8월9일 이번 공세를 진두지휘하는 북부군 사령관 우디 아담 중장을 모셰 카플린스키 중장으로 전격 교체했지만, “뭔가 잘못돼가고 있다”는 지적이 슬며시 고개를 들고 있다.
무인 라바니 (WRMEA) 연구원은 대안통신사 와 한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은 침공 초기 신속한 작전을 통해 헤즈볼라에게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 한편, 인프라 파괴와 대량 난민 유발, 민간인 사상자 급증 등을 통해 헤즈볼라에 대한 여론 압박을 노렸을 것”이라며 “하지만 한 달이 지나도록 이번 작전을 통해 헤즈볼라를 겨냥했던 ‘충격과 공포’는 오히려 이스라엘 자신들에게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헤즈볼라의 로켓 능력 간단치 않네
실제로 최근 미국 주류 언론이 최근 쏟아내고 있는 각종 기사의 제목을 보면, 이번 전쟁의 판세를 읽는 독해법이 급변하고 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헤즈볼라 열성 지지층, 승리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 내보여’( 8월2일치), ‘헤즈볼라, 강력한 공세 퍼붓다’( 8월3일치), ‘정예 헤즈볼라, 훈련·전술·무기 등에서 이스라엘 놀라게 해’( 8월6일치), ‘이스라엘, 잘 훈련되고 충분히 무장한 군과 맞서다’( 8월7일치)….
침공 초기부터 전세계를 놀라게 한 헤즈볼라의 로켓 무장능력이 서서히 베일을 벗으면서 이스라엘의 부담을 더욱 키우고 있다. 군사·안보 전문 연구단체 ‘PINR’는 헤즈볼라가 “1만 발 이상의 사정거리 20km급 카투사 로켓과 사정거리가 40~75km에 이르는 파즈르-3·파즈르-5 로켓을 보유하고 있다”며 “또 사정거리가 120km에 이르는 수십 발의 C-802 미사일과 사정거리가 200km에 이르는 젤잘-2 로켓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 무장이라면 이스라엘 북부 하이파는 물론 최대 도시인 텔아비브까지 모두 타격이 가능하다고 지적한다.
헤즈볼라의 로켓 공세를 차단하기 위해 이스라엘 내각은 8월9일 국경에서 레바논 쪽으로 약 20km 떨어진 리타니강 유역까지 지상군 병력의 진격을 승인하는 등 확전으로 대응 방향을 정한 모양새다. <ap> 등 외신들은 이튿날인 10일 “이스라엘 내각이 ‘유엔 안보리에 협상 시간을 주기 위해서’라며 지상군 공세를 2~3일 미루기로 했다”고 전했지만, 탱크와 장갑차를 앞세운 이스라엘군은 이미 레바논 남부 일대 상당수 도시에 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지상군 공세 강화가 전세를 이스라엘에 유리한 쪽으로 이끌어줄지는 의문이다. 로버트 파페 시카고대 교수(정치학)는 지난 8월3일 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스라엘은 공군력 지원만으로 헤즈볼라를 궤멸시킬 수 없다는 점을 이제야 깨달았지만, 향후 몇 주 동안 지상군 병력 투입 역시 효과를 거두지 못할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라며 “문제는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충분히 막강하지 않다는 점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헤즈볼라라는 적의 본질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살폭탄 공격에 대해 집중 해부한 란 책을 펴낸 바 있는 파페 교수는 헤즈볼라의 ‘본질’을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함께 시작된 광범위한 저항운동”이라고 규정한다. 이란의 지원을 받은 소수 시아파 활동가들이 레바논 전역에서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대중적 분노였다는 게다. 실제로 미 해병 220명 등 24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던 지난 1983년 10월 베이루트 미 해병기지 자살폭탄 공격에 가담했던 41명 가운데 신원이 확인된 38명 중 이슬람주의자는 8명에 불과했다. 절대 다수인 27명은 레바논공산당과 아랍사회주의연맹 등 좌파 계열이었고, 나머지 3명은 고등학교 여교사를 포함한 기독교도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념이 아니라 ‘점령군’에 대한 분노가 이들을 움직였다는 증거다.
최악을 피하는 유일한 길
파페 교수는 “이스라엘군이 지상군 병력을 동원해 헤즈볼라가 보유한 로켓이나 그들의 근거지를 파괴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헤즈볼라라는 조직 자체를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오히려 민간인을 겨냥한 폭격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나면서, 더 많은 이들이 헤즈볼라에 가담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스라엘이 자초한 ‘추크즈방’, 이제라도 공세를 멈추고 즉각 휴전을 받아들이는 게 최악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는 것이다.</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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