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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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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도 “그만둘 수 있다”

등록 2006-07-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의지 보이지 않다가 김현종 본부장이 설명회 연 뒤 태도 바꿔… 찬성 대세지만 자동차 업계는 원하는 수준 개방 아니면 돌변할 수도

한미 FTA와 세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한국은 미국의 7대 교역상대국이자, 7번째로 큰 수출시장이다. 지난 한 해 한미 두 나라 사이의 교역액은 전년과 대비해 7억달러 감소한 694억달러에 이른다. 미국은 반도체 칩과 제조업용 기계류, 항공기, 옥수수·밀 등 농산물 등을 중심으로 모두 262억달러의 수출고를 올렸다. 또 휴대전화와 반도체 회로·자동차·가전제품 등을 중심으로 432억달러 상당의 한국 제품을 수입해, 모두 169억달러의 무역 적자를 기록했다.

미 전문가들 86% 찬성

특히 미 서부 일대 경제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대적이다. 캘리포니아주 수출업체에 한국은 5번째로 큰 해외시장이며, 오리건주 수출업체들엔 2번째로 큰 시장이다.

한국은 또 미 농업 분야 전반에 걸쳐 4번째로 큰 해외시장이기도 하다. 그러니 한미 FTA는 한국에 그렇듯 미국에도 커다란 ‘도전’이다. 협상이 무리 없이 타결된다면 한미 FTA는 200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미국이 맺는 최대 규모의 FTA가 된다.

애초 조지 부시 행정부는 한국 쪽의 FTA 제안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 2월9일 펴낸 ‘한미 경제관계: 협력, 마찰 그리고 FTA’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2004년 초 한국 외교통상부가 FTA 제안을 했으나 부시 행정부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며 “하지만 2004년 말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이 로버트 졸릭 당시 미 무역대표 등 정부 핵심 관계자들을 상대로 ‘설명회’를 연 뒤 상황이 바뀌었다”고 전했다. 이에 따라 두 나라는 2005년 1월부터 6개월 동안 FTA 협상의 절차와 방법, FTA가 체결됐을 때 발생할 이득과 손실 등에 대한 검토작업을 벌였다. 지난해 6월 검토작업을 마무리한 로버트 포트먼 미 무역대표는 김현종 본부장에게 ‘두드러진 주요 현안들’이 해결되기 전까지 FTA 협상을 시작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회조사국은 보고서에서 “이들 ‘현안’에는 자동차와 의약품의 수입장벽,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치, 외국 영화 상영 일수를 제한하는 ‘스크린쿼터’ 등이 포함됐다”며 “많은 미 당국자들이 이 분야들에 대해 한국 정부가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가 미국이 FTA를 통해 예상하는 양보를 한국 정부가 추진해낼 수 있는 정치력이 있는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여겼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직접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지만, 2006년 1월 말까지 한국 정부는 이 4개 분야 모두에서 대미 양보안을 내놨다. 그리고 지난 2월2일 한미 두 나라는 워싱턴에서 FTA 협상 공식 개시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한미 FTA 협상에 대한 미국 쪽 반응은 워싱턴 한미경제연구소(KEI)가 지난 5월15일 내놓은 전문가 집단 면접조사 결과를 보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조사 대상자는 모두 50명으로 많지 않지만, △한국과의 무역 관련 업계·이익단체(31명) △각종 연구소 및 학계의 한국 전문가(10명) △한국 문제에 밝은 전·현직 미 정부·의회 관계자(9명) 등 이른바 ‘여론 주도층’이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한미 FTA 협상 개시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압도적 다수인 86%가 ‘찬성한다’고 답한 반면, ‘반대한다’는 의견은 4%에 그쳤다. 찬성론자들은 △자유무역이 두 나라 모두에 이익이 된다 △시장개방 강화를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FTA를 통한 경제협력 강화가 정치·안보 영역을 포함한 전체적인 한미 관계에 보탬이 된다는 등의 의견을 내놨다. 소수 반대론자들은 “한국 정부가 그동안 (내부 반발 등으로) 여러 협정 규정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한 일이 많았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스크린 쿼터에 대한 이견으로 한미 투자협정(BIT) 협상조차 마무리짓지 못했는데, 그보다 훨씬 광범위한 영역을 다룰 FTA 협상은 더 어렵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가장 큰 이득은 농업분야

‘FTA 협상이 최종적으로 발효되면 어느 쪽 이득이 더 클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엔 “두 나라 모두에게 똑같이 이득이 될 것”이란 응답이 62%로 가장 많았다. 뒤를 이어 ‘한국 쪽 이득이 더 클 것’이라는 응답(22%)이 ‘미국 쪽 이득이 클 것’이라는 응답(8%)보다 3배 가까이 많게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한미 FTA를 통해 미국 내에서 가장 큰 이익을 볼 집단으로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농업, 특히 쌀 생산자들이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지난 2001년 상원 재정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국제무역감독위(ITC)가 낸 보고서를 보면, 한미 FTA가 발효될 경우 4년 안에 미국의 농산물 수출은 200% 이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기대감 때문인지 딘 클렉너 전 미국농업연합회(AFBF) 회장은 최근 농업전문 인너텟 매체 에 보낸 기고문에서 “자유무역의 적들은 개성공단 문제를 빌미로 한미 FTA 협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부시 행정부에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FTA 체결로 미국 내에서 피해를 입게 될 집단이 누구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없다”고 답했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한 한국 전문가는 “만약 미국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면 FTA 협정은 (의회) 비준을 받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피해를 보는 집단은 있을 수 없다”며 “이런 사정은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 쪽에서 피해를 입을 만한 분야로는 응답자 절대 다수가 ‘농업’을 꼽았고, 이어 ‘금융산업’ 등이 거론됐다.

이 밖에 미 의회의 한미 FTA 비준 가능성을 묻는 질문엔 응답자의 78%가 무난히 통과될 것으로 봤으며, 통과되기 어려울 것이란 응답은 8%에 그쳤다. 또 FTA 체결이 한미 관계 전반에 끼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거의 만장일치로 “성공적인 FTA 협상은 한미 관계를 전반적으로 강화할 것”이라고 답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FTA가 체결된다면 양국 관계는 더욱 긴밀해질 것이며, 상호방위 등 (군사적) 협력관계보다 경제적 협력관계가 보다 중요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물론 찬성 의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미 무역대표부(USTR)를 중심으로 국무·상무·농무·국방·재무 등 11개 부서와 환경보호청·국가안보회의 등 20개 정부 기구가 모여 무역정책을 논의하는 주요 협의틀인 통상정책스탭위원회(TPSC)는 지난 3월14일 워싱턴에서 한미 FTA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는 제조업 협회를 비롯해 서비스·지적재산권·의약품·전자 등 분야별 이익단체 대표 26명이 출석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혔다. 이들 대부분은 ‘환영한다’ ‘적극 지지한다’ 등 찬성 의견을 밝히고, 자기 업계가 원하는 각종 규제 철폐와 시장 개방의 구체적 내용을 거론했다. 하지만 조합원 900만 명의 ‘미국노총’(AFL-CIO)과 120만 조합원을 거느린 전미자동차노조(UAW) 등 2개 노동단체는 노동조건 악화와 고용불안 등을 이유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했다.

노동단체들, 고용불안 이유로 반대

또 전통적으로 FTA를 앞장서 지지해온 다임러크라이슬러와 포드, 제너럴모터스 등 미 자동차 3사로 구성된 자동차무역정책위(ATPC)는 “진입장벽이 제거되지 않은 상태에서 한미 FTA가 체결될 경우, 미국에만 남아 있는 관세를 일방적으로 자유화하는 꼴이 될 수도 있다”며, 기대감을 표시하기보다는 우려 섞인 반응을 보였다. FTA 협상 개시 선언이 나오던 날 자동차 산업으로 유명한 미시간주 출신 샌더 레빈 하원의원(민주)이 “FTA 협상 과정에서 부시 행정부가 자동차 업계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때문에 일부에선 시장 개방 폭이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경우 미 자동차업계가 FTA 반대세력으로 돌변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이는 다른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만족할 만한 협상 결과를 얻지 못한다면 이를 선선히 받아들일 이익집단은 없다. 그러니 미국에서도 ‘한미 FTA를 안 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이기는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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