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콜라 소비량을 자랑하는 ‘반미 심장부’에서의 다이어트 열풍… 신체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아랍 전통과 충돌하면서 찬반 논쟁도 뜨거워
▣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요르단 암만의 중산층 거주지역. 아침 저녁으로 거리를 나서면 열심히 걷는 여성들을 자주 접한다. 모녀가 같이 걷거나 온 가족이 동원돼 땀을 흘리는 풍경이 낯설지 않다. 짧은 운동복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 달리는 여성들도 가끔 볼 수 있다. 공원에서, 이슬람 사원의 큰 마당에서, 헬스클럽에서 땀을 흘리는 이들이 늘고 있다. 중동에서도 살을 빼고 몸매를 가꾸기 위한 치열한 몸부림, 살과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풍경은 비단 요르단에서만 펼쳐지는 게 아니다. 이제 다이어트는 아랍권 전역의 화두다.
개념 희박한 산후조리… 출산도 주범
아랍권의 비만은 경악스런 수준이다. 이 지역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비만을 ‘유행병’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아랍 각국의 자료와 국제 비만 태스크포스(www.iotf.org) 등의 조사 결과, 이 지역 주민의 절반가량이 과체중 또는 비만으로 나타났다. 이집트나 걸프 연안국가들의 여성 비만율은 50~70%, 남성 비만율은 30~50%로 전체 평균이 60%를 넘나들고 있다. 특히 바레인 여성은 지역 내 최고 수치인 83%의 과체중과 비만율을 보이고 있다. 뒤를 이어 아랍에미리트 여성이 74%였고, 레바논 여성들도 74%로 높게 나타났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의 66%, 전체 국민의 52%가 비만이다. 북아프리카의 모로코(51.3%)와 튀니지(50.9%)도 절반 이상의 국민이 비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랍권 비만의 주범은 뭘까? 일부에선 ‘비만’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서구화의 폐단’이라고 주장한다. 나라마다 건강에 대한 생각이 다른데 서구의 틀을 들이대 ‘전통적인 몸매’를 비난하는 것 아니냐는 게다. 한발 양보해 비만율이 높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서구의 기름기 많은 가공음식 섭취량 증가와 설탕 소비가 늘면서 생긴 ‘비아랍적 현상’이라는 주장도 만만찮다. 유목, 농촌 생활을 하면서 활동량이 많았던 과거와 달리 급속한 도시화로 몸을 덜 움직이는 생활습관이 늘어나면서 비만 인구가 늘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다른 쪽에선 ‘이슬람법에 따라 도살’(이를 ‘할랄’이라 부른다)되지 않은 고기를 많이 섭취하면서 기름진 음식을 먹은 ‘불경’ 탓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달거나 짠 음식을 많이 섭취하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적은 것도 사회적으로 팽배한 고도비만의 중요한 이유라고 지적한다. 또 여성 비만율이 높은 이유와 관련해선 출산을 주범으로 꼽는 이들도 있다. 다산이 전통인 아랍사회에서 출산 이후 몸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여성들의 비만율이 높다는 것이다. 걸프지역을 비롯해 대부분의 아랍권 국가 기혼 여성들의 1인당 평균 출산율은 6명 안팎임에도, 이 지역에선 ‘산후 조리’란 개념이 낯설기만 하다.
여기에 아랍권에선 여전히 풍성하게 차려놓고 양껏 먹는 게 미덕이다. 반미의 심장부임에도 콜라 소비량은 세계 최고에 이르고,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마셔대는 설탕이 진하게 풀린 홍차는 물론 설탕 범벅이 된 각종 디저트 음식들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다. 금식과 절제의 달인 라마단엔 해가 진 뒤 밤늦도록 폭식을 하게 돼 비만과 함께 소화기 계통의 이상을 호소하는 이들이 급증하기도 한다. 결국 현재와 같은 식생활 습관이 바뀌지 않는 한 장기적으로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각국 정부가 바야흐로 ‘살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
약, 압박붕대, 헬스클럽, 사우나, 수술…
아랍권에선 어떤 방식으로 살을 뺄까? 우선 굶어서 뺀다. 음식 섭취량을 극도로 줄이는 ‘굶는 다이어트’가 이곳에서도 일반적이다. 그러나 불균형한 식단이 개선되지 않아서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한다. 먹어서 빼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유행했지만 고기 위주로 먹거나 야채 위주로 먹기, 물 많이 마시기, 녹차나 아랍 특산 꽃차·민트차 마시기, 아랍 커피나 홍차를 설탕 없이 마시기, 한 가지 음식만을 하루 종일 먹기 등 여러 가지 ‘비법’이 시도되고 있다.
손쉬운 방법으로 ‘약’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다이어트에 효험이 있다는 각종 약품들이 도처에서 판매되고 있다. 다이어트 식품을 복용해 살을 빼려는 이들도 점차 늘고 있다. 암만 시내 주요 매장을 가면 최근 들어 건강식품, 다이어트 식품 코너가 따로 만들어져 있을 정도다. 특정 신체 부위를 붕대 등으로 감는 신체 압박법도 동원된다. 또 걸어서 빼는 ㅊ이들도 늘고 있다. 하지만 운동을 통한 살 빼기가 건강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성들이 운동을 하는 분위기가 ‘덜 개방적’이라 아직까지 엄두를 못 내는 여성들도 적지 않다. 동네 한 바퀴 도는 걷기 운동이 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경우에도 동네 분위기가 개방적인 중산층 이상의 지역에서나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물론 공개된 장소에서 과감히 몸매 가꾸기에 나서는 이들도 없지 않다. 암만 시내 곳곳의 헬스클럽에선 연방 땀을 흘리며 혼자만의 ‘살과의 전쟁’에 여념이 없는 여성들은 만날 수 있다. 업체 쪽에선 체지방률 평가는 물론 다이어트해야 할 부위와 기준, 목표 등도 제시해준다.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원하는 부위의 지방을 제거하거나 몸매의 볼륨을 조절해주는 등의 ‘선진 기법’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개방적인 레바논 베이루트의 해안도로에선 힘차게 달리는 여성들의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심지어 사우나에서 땀을 빼는 여성들도 조금씩 늘고 있단다.
여기에 국내에서도 잘 알려진 ‘수술요법’도 성업 중이다. 지방 흡입술 등 미용 시술로 몸매를 관리하거나, 성형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건강을 위한 다이어트를 넘어 ‘보여주기 위한 몸매 가꾸기’로 외연을 넓히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다이어트 열풍이 자칫 여성의 신체 노출을 꺼리는 아랍 전통과 충돌하면서 또 다른 사회 문제를 낳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다이어트는 서구사회의 퇴폐문화?
살빼기 방법과 다이어트 식단을 소개하는 등 지역 언론도 ‘살과의 전쟁’의 최전선에서 큰 몫을 하고 있다. 각국 정부 당국의 보건의료 담당 부서들도 앞다퉈 비만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한편 초·중·고등학교 등에서 ‘계몽교육’을 한다. 그러나 아직까지 다이어트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그리 넓게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여성들의 노출 패션과 다이어트 열풍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이 여전히 많은 탓이다. 이런 이들은 서구사회의 퇴폐문화가 아랍으로 급속히 유입되고 있다고 한탄한다. ‘살과의 전쟁’이 뿜어내는 열기 못지않게, ‘살과의 전쟁’ 자체에 대한 찬반 논란도 날이 갈수록 후끈 달아오르고 있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소년범 의혹’ 조진웅, 배우 은퇴 선언…“질책 겸허히 수용”

트럼프가 이겼다…대미 3500억불 투자 손해, 자동차관세 절감 효과 2배

박나래, 상해 등 혐의로 입건돼…매니저에 갑질 의혹

유시민 “통화·메시지 도청된다, 조선일보에 다 들어간다 생각하고 행동해야”

법원장들 ‘내란재판부 위헌’ 우려에 민주 “국민 겁박” 국힘 “귀기울여야”

‘갑질 의혹’ 박나래, 전 매니저들 공갈 혐의로 맞고소

쿠팡 손배소 하루새 14명→3천명…“1인당 30만원” 간다

‘쿠팡 외압 의혹’ 당사자, 상설특검 문 연 날 “폭로한 문지석 검사 처벌해달라”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5/53_17649329847862_20251205502464.jpg)
[단독] 통일교 윤영호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자금 수천만원 전달”

바다를 달리다 보면…어느새 숲이 되는 길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