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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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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스파이’를 죽일 것인가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간첩과 테러혐의로 파키스탄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인도인 사라브지트 싱… 1947년 이후 남아시아 지역에서 2000여명 사형… 대통령은 신에 가까운 권한

▣ 델리= 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타임스 오브 인디아>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무려 2년 만에 사형제가 인도 언론의 주요 뉴스가 됐다. 2004년 8월에 14년을 감옥에서 보낸 뒤 출옥해 10대를 강간, 살해한 뒤 교수형에 처해진 다난조이 차터르지가 이야깃거리였다면, 최근엔 인도인 사라브지트 싱이 간첩과 테러 행위로 파키스탄에서 사형 선고를 받아 국민적 관심을 끌고 있다.

파키스탄, 미성년자의 사형까지 허용

사라브지트가 파키스탄에 밀입국한 것이 고도로 계산된 행위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인도는 그가 자국의 스파이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파키스탄의 최고법정은 사형을 확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파키스탄과 인도 양국에서 구명운동이 활발하지만 그를 사면할 수 있는 권한은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만이 쥐고 있다. 그러나 무샤라프 대통령이 사라브지트를 사면할지는 분명치 않다. 정치와 여론, 법과 문화가 이 사람의 운명을 가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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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형에 관련된 파키스탄의 법률은 매우 엄격하다. 파키스탄은 미국과 함께 미성년자의 사형을 허용하는 세계에서 몇 안 되는 나라다.

남아시아 지역에는 사형이 만연하고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지역 최대 국가인 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는 1947년 이래 2천여 명이 사형당한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의 최근 기록은 부정확하기로 악명 높고, 이 자체가 슬픈 기록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사형이 집행되는 빈도는 줄어들고 있다.

국제사면위원회는 2001년 파키스탄에서 최소 150명이 사형 판결을 받고 13명이 처형됐다고 밝혔다. 2003년에는 그 수가 각각 140명과 8명으로 조금 줄어들었으나 2004년 다시 반등해 278명과 8명으로 늘어나고, 전체 사형수도 무려 5700명으로 늘어났다. 2005년에는 사형수 394명이 늘어났고 15명이 집행됐다. 방글라데시에서는 2001년부터 357명의 사형수 가운데 적어도 10명에게 형이 집행됐다.

인도 대법원은 1980년 “사형은 매우 한정적으로” 선고돼야 한다는 판례를 남겼다. 그러나 오늘날 1700명이라는 사형수는 결코 적은 수가 아니다. 인도의 대통령은 신에 가까운 권한을 갖고 있다. 그만이 사형수를 사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압둘 칼람 현 대통령은 그동안의 사형 감형 청원 45건 가운데 20건만을 내무부에 재고하라고 돌려보냈다.

헌법이 대통령에게 정확히 어떤 권한을 부여하느냐도 논쟁점이다. 대통령의 사면권은 절대적인가? 아니면 대통령은 내무부의 견해를 받아들여야 하는가? 만약 후자가 답이라면 대통령에게 사면을 신청한 이들의 미래는 암담하다. (사실 사형수 1700여 명 전부가 사면을 요청한 것도 아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문맹에 극빈층 출신이며 제대로 된 사면장을 구성할 만한 지적 능력을 갖지 못한 이들도 많다.)

1953~63년, 1422명 처형의 미스테리

식민지 시대의 “원주민들을 길들이라”는 권위주의와 보수주의 통치의 계보를 내려받은 인도 내무부는 항상 인도주의적 대안보다 가혹한 처벌을 선호했다. 내무부는 2004년에 대통령이 재검토를 지시한 20건을 모두 돌려보냈고, 앞으로도 그럴지 모른다.

내무부는 인도 정부라는 거대한 조직에서 하나의 나사못에 불과하다. 정부는 가혹한 법으로 수백 명의 시민(아니 ‘사형 대상’이라고 부르자)들을 처형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중적이다. 내무부는 1947년 독립 이후 인도에서 사형된 사람이 ‘고작 55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인도의 권위 있는 시민단체인 ‘민주적 권리를 위한 인민연맹’(PUDR)은 1953~63년에만 1422명이 처형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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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단체가 주장의 근거로 삼는 것은 1965년 법률위원회가 16개 주에 대해 작성한 제35회 보고서다. 오늘날 정보기술의 발전으로 유명한 타밀나두주 한 곳에서만 최다수인 485명의 사형 집행이 보고됐다.

사형제와 관련해 가장 충격적인 점은 사형 판결의 근거 등을 밝힌 공식 기록의 질이 극도로 열악하다는 점이다. 법률위원회의 기록조차 왜 1953~63년에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됐는지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1989년부터 2002년까지 각 교도소에서 사형에 처해진 이들의 수를 밝힌 ‘인도 교정시설 통계’는 4년간 35명이 교수형을 당했다고 밝혔다. 내무부가 밝힌 ‘57년간 55명 처형’을 무색게 하는 것이다.

인도 법정은 1950년대부터 70년대까지 사형 판결을 쉽게 내렸다. 대법원이 이와 같은 마구잡이 사형 판결에 제동을 걸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부터다. 대법원은 사형제도 자체는 합헌이지만 판결이 “극도로 제한된 경우에만” 적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범행 방식이 매우 잔인하고 극악무도한 경우, 범인이 범행 당시 피해자보다 우월한 위치에 있는 경우, 극도의 악의적 범행 의도를 갖고 살인을 한 경우에만 사형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국가를 배반하려는 의도를 갖고 저지른’ 살인 역시 사형에 해당될 수 있다. 위에서 언급한 건 이외에도 사형 판결을 내릴 수 있는지 여부는 판사가 판단하기 나름이다.

그간 인도 내부에서 사형제도를 놓고 열띤 논쟁이 계속됐다. 사형제 옹호자들은 누구나 잘 아는 이유들- 사형은 강력범죄를 방지하고, 정부는 죄인들을 처벌할 의무가 있으며, 피해자들의 가족이 정의를 원한다는 식의- 을 들어왔다.

특히 최근 인종적, 종교적 증오가 낳은 범죄가 늘어나면서 사형 옹호론자들의 목소리는 높아지는 추세다. 1992년 이후 무슬림들이 살해되고 힌두 광신도들이 16세기에 세워진 이슬람 성전을 공격하는 등 인종 학살과 종교적 소수자들을 겨냥한 범죄가 증가하고 있다. 또 4년 전 구자라트주에서는 2천여 명의 무슬림들이 학살당했다. 그러나 아이로니컬하게 이런 심각한 범죄에 대한 기소는 도리어 줄어들고 있다.

사형 폐지론자들은 국가가 국민의 삶을 빼앗는 것이 비윤리적이고 비문명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사형 판결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며 사형제가 강력범죄를 예방하지 못한다고 본다. 1988년 유엔이 조사한 결과 사형제는 종신형보다 범죄 예방 효과가 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는 1976년 사형제를 폐지한 결과 살인율이 도리어 줄어들었다. 2000년에는 542건의 살인이 있었는데 이는 1998년에 견줘 16건, 1975년에 견줘 159건 줄어든 것이다.

<뉴욕타임스>가 2000년 9월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지난 20년간 사형제도를 폐지한 미국 내 주의 살인율은 사형제도를 유지한 주보다 48%에서 101%가량 높았다.

인도의 사형제 폐지 아직 멀었다

더 심각한 것은 죄 없는 이들이 처형되는 것이다. 미국 대법원이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밝힌 1976년 이후 500명가량이 처형됐는데, 같은 시기에 무려 75명의 사형수가 그들이 무죄임을 밝혀주는 증거로 인해 감옥에서 풀려났다. 최근에는 60년 전 처형된 흑인 하녀 레나 베이커가 무죄임을 강력히 시사하는 새로운 증거가 발견돼 충격을 주기도 했다.

인도에서도 미국과 같이 무고한 이들이 처형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경찰이 무력 대치하는 상황에서 테러 용의자들을 임의로 처형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도 사회의 분위기는 사형제를 폐지할 만큼 관용적이거나 여유롭지 않다.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늘어나는 실업률, 양극화와 불균형 성장 때문에 사회적 갈등이 심각해지며 도리어 ‘질서’를 바라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구도에서는 부드러움과 동정을 바라기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인도는 사형제도를 없앤 118개 나라가 택한 길에 동참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충분한데도 말이다.

역설적으로 사라브지트 싱 사건은 인도인인 그가 적국인 파키스탄의 잔혹성을 잘 드러내는 사형을 선고받았다는 점에서 인도인들도 사형제도에 대해 다시 한 번 고민하게끔 해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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