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젊은 노동자 해고 쉽게 만든 ‘최초고용계약법’의회통과에 격렬한 시위…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서 검은 물결… ‘68년 혁명’에 비교되는 상황</font>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koreapeace@free.fr
3월20일 오후로 접어드는 파리의 대학가 ‘라탱가’에는 경찰 진압대가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었다. 이 지역은 진압대와 최초고용계약법(CPE) 반대를 외치는 시위 학생들 간에 지난 주 다소 과격한 충돌이 여러 차례 있었다. 그 여파로 주변 상점가들이 타격을 입었다.
“조류독감에 맞서 ‘닭’(경찰을 일컫는 속어)들을 재물로 바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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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은 도처에 있는데, 정의는 아무 데도 없다!” 경영난으로 문을 닫아버린 유명한 대학서점(PUF)의 벽에 갈겨쓴 글들이 묘비의 글귀처럼 읽힌다. 바로 옆 소르본대학 광장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었다. 그 앞을 지나는 사람들이 바리케이드 건너편을 보려는 호기심 때문인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곤 했다.
68세대의 ‘감성과 이성’도 자극
“난 ‘최초고용계약’을 실행하는 데는 반대하지 않아. 그런데 2년간 부려먹고 일언반구도 없이 해고하는 것에는 반대해. 그럴 순 없지.” 니콜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할머니의 의견이다. 1968년 5월 기성 체제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프랑스 청년들이 일궈낸 이른바 ‘68혁명’에도 참여했다는 그는 당시 운동의 중심지였던 이 거리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땐 지금보다 훨씬 더 심했지. 지금처럼 저렇게 차들이 다닐 수도 없었어. 우리 모두 젊었으니까. 학생들의 입장과 분노를 충분히 이해해. 문제는 우익의 고용정책을 반대하는 좌익 쪽에서도 이렇다 할 대안이 없다는 거야.” 그와 얘기를 나누는 사이 비슷한 연배의 미셸이라는 할머니가 끼어들어 열변을 토한다. “나도 ‘68’을 겪었지. 최초고용계약법에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어떤 점에서 반대하고 어떤 점에서 찬성하는지를 세세히 따져봐야지.”
‘68세대’ 할머니들의 열띤 논쟁을 곁눈질하고 있던 한 여성이 살그머니 다가왔다. 루마니아의 한 라디오 방송 기자라는 그에게 외국인으로서 이번 사태를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해를 잘 못하겠다. 그래서 여러분의 의견을 듣고 싶다”며 응수했다. 신자유주의 논리가 세계 도처에 만연한 지금 외국인의 눈에는 다소 의아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젊은이들의 과격 시위를 불러온 ‘최초고용계약’을 둘러싼 논란은 프랑스 사회에서 고령세대의 ‘이성과 감성’에도 적잖은 반향을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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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고용계약은 기업 쪽이 실시할 수 있는 고용계약 가운데 하나다. 20명 이상의 고용인을 둔 기업이 26살 미만의 젊은이를 채용할 때 적용된다. 무기한 고용계약(CDI)에 속하지만, 2년 동안 일종의 수습 기간인 ‘회사 통합 기간’을 두고 진행된다. 이 기간 동안 고용주는 해고 사유를 밝히지 않고도 고용인을 해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일단 정규직으로 채용은 하지만 ‘정식으로’ 정규직이 되기까지 2년간 비정규직 기간을 무사히 넘겨야 한다.
좌파 정치인들도 특별한 대안 없어
이 법안은 드빌팽 총리 정부가 최근 내놓은 이른바 ‘기회 평등’이라는 여러 법안 가운데 하나로, 지난 1월16일 프랑스 의회에 제출돼 ‘의회의 안정을 위해서는 투표를 거치지 않고 통과시킬 수 있다’는 헌법 조항에 따라 표결 없이 급행으로 처리됐다. 기업주연맹(MEDEF)의 지지를 받으며 ‘새 고용계약법’(CNE)과 더불어 그동안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지 못한 중소기업의 고용 활성화를 특별히 감안한 정책이란 게 정부의 설명이다. 법안을 통해 고용(및 해고)을 원활하게 할 수 있도록 기업들에 유연성을 부여하면서 일자리를 늘리는 한편, 견습을 거듭하거나 기간제 일자리(CDD)를 전전하는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의회에 제출된 때부터 지금까지 이 법안은 프랑스 전역에서 대학 폐쇄와 젊은이들의 대규모 거리시위를 촉발해 ‘68년 혁명’에 비교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학생들과 노동조합원, 학부모들까지 거리로 나서 ‘최초고용계약법’ 반대의 검은 물결을 만들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거듭된 법안 철회 요구에도 드빌팽 총리는 사태의 심각성에 따라 대화와 조절은 할 수 있지만 법안 자체를 철회할 수는 없다는 강경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3월18일 전국에서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펼친 최초고용계약법 철회 시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프랑스인 44%가 지지 의사를 밝혔고, 19%가 취지에 공감한다고 밝혔다. 시위에 반대(19%)하거나 시위대에게 적대감을 느낀다(8%)는 응답은 많지 않았다.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거리로 나선 학생들의 분노는 청년들의 불안정한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법안이 ‘결과적으로’ 2년 동안이나 고용주의 말 한마디에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리게 될 위험을 높였다는 것이다. 또 불안정한 고용 상태로 인해 소비를 극도로 줄일 수밖에 없으니, 청년층의 소외 현상은 더욱 심화할 것이란 우려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조 쪽에선 정부가 법안 구성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노조와 논의를 하지 않았다고 분노하고 있다. 최초고용계약법과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소기업이 좀더 나이가 많은 연령층의 피고용인에게 적용하는 ‘새 고용계약법’은 정부가 노조 쪽과 논의를 했고, 노조의 반대도 이처럼 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노동운동 진영이 ‘미래의 조합원’이 될 청년들과 관련된 최초고용계약법에 더 격분하는 이유는 자유시장 논리에 나날이 문을 열어가는 정책 방향과 노조의 입지를 좁히려는 정부 쪽의 의도, 그리고 불안해지는 노조의 미래에 대한 우려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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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좌파 정치인들은 특별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저 법안 통과 과정에서 보여준 정부의 비민주적 행태와 법안의 ‘반사민주의적 성격’에 적의를 보일 뿐이다. 그리고 전 사회적으로 일고 있는 ‘반정부 기운’에 기대 대권 탈환의 야심을 키워가고 있다. 그렇다. 대선이 1년여 앞으로 바싹 다가온 시점에서 더해지고 있는 사회적 분노여서 ‘최초고용계약법’ 사태는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고질적인 20% 선의 청년실업률
드빌팽 총리는 현 정부를 구성하고 있는 우파 대중운동연합당(UMP)의 대선 후보로 언급되고 있다. 국가경제 파탄이 운위되고 있는 판국에 실업 문제는 대선의 관건 중 하나다. 따라서 효율적인 정책 실행을 통해 결실을 맺는 건 그의 개인적인 야심을 채우는 데도 한몫할 것이다. 그가 법안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지금 바꾼다면 이는 ‘정치적 자살’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같은 당 당수이자 차기 대선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 내무장관의 반응도 흥미롭다. 애초 총리의 정책 방향을 지지했던 그는 법안에 대한 반대 소리가 ‘안티 대중운동연합당’ 성격으로 확산되면서 자신에 대한 사퇴 압력이 나오자 슬그머니 태도를 바꿨다. 그는 3월22일 “2년의 수습기간을 6개월로 줄이자”는 독자적인 의견을 내놨다. 이렇게 정치적 이합집산과 맞물리면서 최초고용계약법을 둘러싼 논란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지난 20여 년 동안 프랑스의 청년실업률은 20% 선을 유지하며 낮아질 줄 몰랐다. 같은 기간 전체 평균실업률은 10% 남짓으로, 청년층 실업률의 절반에 그친다. 1980년대 후반부터 줄곧 좌·우파가 번갈아 집권해온 프랑스 정치권에선 실업률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내놨다. 실업자 교육과 기업 돕기, 노동시간 줄이기 등 좌·우 이데올로기를 가미한 온갖 정책들이 쏟아져나왔다. 지난 2000년을 전후해 당시 좌파 정부가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하면서 실시된 고용장려책과 35만 개의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그램이 곁들여지면서 전체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을 각각 8%와 18% 선으로 낮추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상대적으로 인건비를 높이는 결과를 낳았고, 막대한 국가 보조금이 지급되면서 ‘시대를 거스르는 정책’이라는 경제인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실업률은 다시 20년 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을 하게 됐다.
“이유를 대지 않고 해고하는 것은 서유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난 학교를 폐쇄하는 데는 찬성하지 않지만 최초고용계약법은 반대한다.” 벌써 3주째 본관 강의가 폐강된 소르본대학 3학년 크리스텔(21)의 말이다. 그의 친구 아망딘도 “법안에 찬성하는 학생들은 아마도 부모가 기업주일 것”이라며 거들고 나섰다. 대규모 시위의 여파로 지금 프랑스 젊은이들은 ‘68세대’와 비교되고 있다. 하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68세대가 전후 번영의 시대를 살아간 세대였다면, 지금의 프랑스 젊은이들은 앞선 세대가 물려준 모순투성이 사회에서 생존권 투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드빌팽 총리와 정부의 강경한 태도를 두고 ‘유연성 부족’을 들먹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지금 프랑스에서 정작 유연성이 필요한 건 고용시장”이라며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도 있다. 그들은 유권자의 분노가 다음 선거에 끼칠 영향을 우려해 ‘개혁안’을 밀어붙이지 못했던 과거 정부를 들먹이며 “총리의 강경함은 대단한 용기”라고 치켜세우기도 한다. 그 사이에서 과연 무엇이 민주주의냐는 성찰은 발견되지 않는다.
“자유시장에 기반한 유럽은 싫다”
지난해 유럽헌법 선거에서 프랑스 유권자의 54.6%가 반대표를 던졌다. ‘자유시장 원리’에 기반한 유럽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 유럽’을 갈구하는 프랑스 국민의 의지였다. 최초고용계약법에 대한 격렬한 반대시위는 이를 다시 한 번 보여줬다. 프랑스 사회학자 룰로베르제는 “거리는 그 사회를 비추는 거울”이라고 했다. 3월28일 총파업이 예정된 가운데, 2006년 3월 파리의 봄거리엔 나날이 불평등해지고 불안해지는 사회에 대한 청년들의 우려와 절규가 자리를 잡고 있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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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빌팽의 네 가지 고용 법안</font>
‘최초고용계약’(CPE)을 포함해 드빌팽 정부는 최근 네 가지 고용정책을 잇따라 내놨다.
먼저 문제가 된 CPE는 26살 미만 노동자를 20명 이상 고용한 기업에 적용된다. 2년간의 ‘수습기간’을 두고 이 기간 동안 고용주는 사유를 밝히지 않고도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 해고 통보는 근무기간에 따라 2주~1달 전에만 하면 된다. 현 프랑스 노동법이 해고 사유를 두고 노동자가 고용주와 법정다툼까지 할 수 있도록 규정하는 점에 비춰, 아무런 설명 없이도 사용자가 노동자를 최초 고용 2년 동안 해고할 수 있는 권리를 준 것은 이례적이다. 이와 비슷하지만 20명 이하를 고용하고 있는 소기업에 적용하는 ‘새고용계약’(CNE)도 있다.
모든 연령층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는 ‘무기한고용계약’(CDI)은 한국의 ‘정규직’과 비슷하다. 근로계약 기간은 ‘무기한’이지만, 고용주는 해고 권한을 가진다. 다만 해고의 동기와 이유는 노동법 규정에 따라야 하며, 해고 통보는 적어도 한두 달 앞서 해야 한다. 한국의 ‘비정규직’과 비슷한 ‘기한제고용계약’(CDD)도 있다. 역시 모든 연령층의 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며, 계절직종 등에 적용된다. 재계약을 포함해 계약기간은 18개월을 넘지 못하며, 해고시 고용주가 사유를 명시해야 한다.
한편 CPE가 의회 표결을 거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헌법 49조 3항 때문이다. 제4공화국에서 정부 교체가 잦았던 폐단을 줄이기 위해 1958년 출범한 프랑스 제5공화국은 헌법에 ‘책임수행’이란 조항을 신설했다. 정부가 ‘의회의 안전’을 목적으로 야당의 불신임안 제출이나 법안 통과 저지를 피하기 위해 투표 없이도 특정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뼈대다. 이 조항은 지금까지 모두 80여 차례 활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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