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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침공, 카드빚 돌려막기!

등록 2006-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2003년3월20일 부시의 대도박 이후 3년 동안 세계는 불안해졌고 내내 불행했네… 피의 행렬 속 군비경쟁 최고조… 이라크 새정부 구성 협상은 아무런 진전 없어</font>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위대한 이라크인들이여, 서로를 겨냥한 폭력을 멈추고 침략자에 맞서 싸우라.” 지난 3월15일 바그다드의 법정 증인석에 선 그는 여전히 당당했다. “피고인은 정치연설을 중단하라”는 주심 라우프 압델 라흐만 판사의 거듭된 제지에도 그는 “나는 이라크의 국가 수반”이라며 되레 목소리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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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재판을 일시 중단시키고 취재진과 카메라를 물린 뒤에도 그의 일장 연설은 이어졌다.

다시 당당해진 후세인

“모든 종교인과 종파는 어떤 이라크인도 차별하지 말라. 최근 우리 국민 사이에서 스스로를 해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는 게 내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다.” 검은색 양복 차림으로 준비된 원고를 읽어내려가던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은 “미국과 시오니스트의 침략에 맞선 그대들의 저항은 위대하며, 태양이 다시 떠오르고 우리가 승리를 거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980년대 시아파 주민 148명을 학살한 혐의로 재판에 회부됐지만, 여전히 당당하기만 한 그의 모습은 오늘 이라크가 마주한 ‘비현실’을 새삼 웅변하는 듯했다.

2003년 3월20일 미국의 이라크 침공, 그 뒤 어느새 3년이 흘렀다. 침공의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WMD)의 흔적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후세인 정권과 9·11 동시테러의 연관성이 허구라는 점은 조지 부시 미 대통령 스스로 인정한 바다. 저항세력을 중심으로 한 ‘저강도 전쟁’이 시아와 수니로 갈려 ‘고강도 내전’으로 변해가는 사이 헐벗고 굶주린 몰골로 짐승처럼 붙들렸던 독재자는 다시 당당해져 이라크인들을 향해 정치연설을 하고 있다. 도대체 지난 3년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침공 42일 만에 ‘주요 전투’가 끝났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언’이 나왔지만, 이라크 주둔 미군의 ‘고난의 행군’은 끝모르고 이어지고 있다. 지난 2월 말까지 2300여 명이 전투 중 목숨을 잃었고, 1만7천여 명이 다쳤다. 지난 3년 동안 줄잡아 1만 명이 치료를 위해 미국과 독일 등지로 후송됐고, 2만5천여 명은 심리·정신적 이유로 귀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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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에서 베트남전의 악몽을 떠올리는 이들이 많은 이유다.

미 국방예산은 이미 냉전이 정점으로 치달으며 군비경쟁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1980년대 중반 수준에 근접해 있다. 침공 한 해 전인 2002년 약 3620억달러였던 국방비는 2003년 4550억달러를 넘어섰다. 2005 회계연도엔 1000억달러의 전비 추가예산을 포함해 5200억달러에 이르렀고, 올 9월 마감하는 2006 회계연도엔 전비 추가예산 1150억달러를 포함해 모두 5568억달러 규모다. 냉전의 허황된 망령을 테러와의 ‘장기전’(Long War)이 완벽히 대체했으니, 침공 4년차가 돼서도 변화의 조짐은 없어 보인다.

미군 2300여명, 이라크인 최소 3만3638명 사망

‘M-1 에이브럼스 탱크 20대, 브래들리 전차 50대, 최신형 스트라이커 장갑차 20대, M-113 장갑차 20대, 경장갑 험비차량 750대….’ 가공할 화력을 앞세운 미국의 무차별 공세에도 수많은 전과를 올리며 효과적인 ‘저강도 전쟁’을 벌여온 이라크 저항세력의 인명피해도 심각한 수준이다. 저항이 격렬해진 2004년 이후 최근까지 약 2만5천 명에 이르는 저항세력이 전투 중 목숨을 잃거나 사로잡혔다.

저항이 드센 서부 팔루자와 북부 탈아파르, 중부 사마라 등지는 미군의 전면 공세로 문자 그대로 ‘초토화’됐다. 이를테면 30만 인구가 거주하던 팔루자는 시내 대부분의 건물이 미군의 공세로 완파되거나 심각하게 파손돼 재건축이 어려울 정도다. 몇 차례로 나눠 진행된 미군의 공세로 팔루자에서만 적어도 5천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평화단체 ‘이라크보디카운트’는 3월16일 현재 언론 보도와 이라크 내무부 등의 자료를 근거로 침공 이후 지금까지 최소한 3만3638명(최대 3만7754명)의 이라크인이 목숨을 잃었다고 집계하고 있다.

침공과 함께 무너져내린 사회 질서는 3년이 지나감에도 회복될 기미가 없다. 미군을 포함한 외국군이 15만 명을 넘어서는데다 부시 행정부가 틈만 나면 ‘유능함’을 강조하는 이라크 치안병력도 22만7천여 명에 이른다. 그럼에도 끝없이 번지는 폭력과 유혈의 참극을 막지 못하고 있다. 팔루자-바그다드-티크리트로 이어지는 ‘수니파 삼각지대’는 저항세력의 공세가 갈수록 불을 뿜으면서 어느새 ‘죽음의 삼각지대’로 이름을 바꿨다. 치안 인력 대부분이 몰려 있는 바그다드에서는 하루 평균 50건의 납치 사건이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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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15일 우여곡절 끝에 주권 정부 구성을 위한 총선이 실시됐지만, 권력 배분을 둘러싼 정파 간 다툼으로 새 정부 구성 협상은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2월22일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 황금돔 폭파 사건은 수니-시아파 사이에서 피의 보복전을 촉발하며 내전의 음습한 그림자가 전면화하고 있다.

미국민 52% “철군 시작해야 할 때”

전기와 물, 연료를 비롯한 기본적 생활 서비스 공급 역시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30~65% 사이를 오가는 살인적 실업률 속에 난민 아닌 난민은 갈수록 늘고, 전문 직업인들은 국경을 넘는 탈출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이른바 ‘정부’가 있지만 국민을 보호하는 건 종교 지도자들을 따르는 민병대가 고작이다. 미 뉴욕 스토니브룩대학 마이클 슈어츠 교수(사회학)는 이를 “주권 공백 사태”로 표현했다. 슈어츠 교수는 최근 진보 매체 <머더존스>에 보낸 기고문에서 “이런 상태에서 조만간 주권 정부가 구성되더라도 대체 뭘 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종족 간 긴장이 어느 때보다 높다. 우리에게 닥친 최대 걱정거리다. 이제 이라크 상황은 저항세력 창궐 단계에서 종족 간 폭력 단계로 옮겨가고 있다.” 지난 3월10일 미 상원 세출위원회에 출석한 존 아비자이드 미 중부군사령관은 이렇게 시인했다. 그러나 함께 청문회에 나온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은 “이라크가 아직까지는 내전 단계로 접어들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철군 계획을 묻는 의원들의 잇따른 질의를 “예측은 경솔한 일”이라고 무찔러버린 그는 이라크에서 내전이 벌어진다면 “이라크 치안 인력이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라크 치안 인력이 그 정도로 ‘유능’하다면 왜 현지 주둔 미군의 규모를 줄이지 않는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았다.

침공 3주년을 앞두고 최근 <워싱턴포스트>와 <abc>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상당수 미국인들은 여전히 침공의 정당성에 동의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침공의 비용과 효과를 비교할 때 침공이 가치 있는 일이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42%가 그렇다고 답한 것이다. 그러나 응답자의 80%는 이라크가 내전으로 치닫고 있다고 답했으며, 52%는 철군을 시작해야 할 때라고 답했다. 부시 대통령에게 결단을 내려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셈이다.
“…이에 상원은 미 합중국 대통령 조지 부시를 견책하며, 미국민을 겨냥한 불법 도청을 승인한 그의 행위를 비난한다.”
위스콘신주 출신 민주당 러셀 파인골드 상원의원은 지난 3월13일 미 상원에 부시 대통령이 법원의 허가 없이 미국민을 불법 도청한 혐의로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견책 결의안을 내놨다. 대통령직을 박탈하는 ‘탄핵’과 달리 ‘견책’은 의회 차원의 공식적 비난이라는 상징적인 의미만 갖는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상원의 견책 결의안이 나온 것은 1834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로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부시 행정부에는 묵직한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다.

파인골드 상원의원 견책안의 의미

침공 결정이 도박이었다면, 그 뒤 3년은 카드빚 돌려막기를 하다 신용불량자로 전락해가는 과정이었을까? 미국의 이라크 침공 이후 지난 3년 동안 세계는 그렇게 더욱 불안해졌고, 내내 불행했다. 파인골드 의원이 부시 대통령에 대한 견책안을 낸 뒤 조지프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은 한 방송에 출연해 이렇게 말했다. “파인골드 의원이 견책안을 낸 것은 극도의 좌절감 때문이라고 봅니다. 언론인들도 그렇고, 정치인들도 그렇고 우리가 지금 부시 대통령이 뭘 하고 있는지 알고나 있습니까?” 이라크인에게뿐 아니라 미국인들에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던 게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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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파라서, 수니파라서…</font>

<font color="darkblue"> 바그다드 택시 운전사 두 사람의 엇갈린 운명</font>

‘그들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지난 2월22일 사마라의 시아파 성지 아스카리야 사원 폭파 사건 이후 내전 양상이 심해지면서 이라크에서 ‘자발적 난민’이 급증해 임박한 ‘인도적 재난’을 예고하고 있다. 종족 간 유혈 폭력이 급증하면서 생명의 위협을 느낀 시아파 집단 거주지역에 사는 수니파와 수니파 집단 거주지역에 사는 시아파가 너나 없이 보금자리를 등지고 있는 것이다.
아프가니스탄·발칸반도 등 분쟁지역에서 현지 출신 언론인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 ‘전쟁과 평화 보도 연구소’는 15일 ‘종족 간 폭력으로 떠도는 가족들’이란 제목의 바드다드발 기사를 인터넷 홈페이지(www.iwpr.net)에 올렸다. 야신 루바이·다우드 살만 등 2명의 현지 예비 언론인이 쓴 이 기사에는 악귀처럼 이라크를 떠도는 종족 간 유혈극을 피해 더부살이를 하고 있는 평범한 이라크인들의 신산스런 삶의 풍경이 잘 드러나 있다.
니자르 아바스(40)의 가족 5명은 바그다드 외곽의 한 체육센터에서 다른 수십 가구와 함께 매일 밤 새우잠을 자고 있다. 그곳에서 불과 몇km 떨어지지 않은 곳에선 하마드 칼라프 들라이미(55)가 한 달여 전부터 친척 집에서 눈칫밥을 먹고 있다. 방 2칸짜리 비좁은 집에선 19명이 나눠 지내고 있다.
바그다드에서 택시를 모는 두 사람 모두 아스카리야 사원 폭파 사건 뒤 이어진 종족 간 폭력 사태를 피해 삶의 터전을 버려야 했다. 시아파인 아바스는 수니파 집단 거주지역인 아부 그라이브 자신의 집을 버리고 시아파 집단 거주지역인 슈알라의 농구장 한켠에서 지내고 있다. 반대로 수니파인 들라이미는 슈알라에서 살다가 수니파 집단 거주지인 가잘리야 지역의 처남 집으로 옮겼다.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까? 소문엔 수니파 지역에서 시아파 주민들의 빈집을 약탈한 뒤 불을 질러버린다던데.” 아바스는 여전히 불안하기만 하다. 그와 함께 슈알라 체육센터에서 지내는 아부 그라이브 출신 30여 시아파 가족이 있다. 이 체육센터를 보호하는 건 경찰이 아니라 시아파 강경 지도자 무크타다 사드르가 이끄는 무장세력 ‘마흐디군’이다.
들라이미가 지난 30년 동안 살아온 정든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이름 때문이다. ‘들라이미’는 수니파에 가장 흔한 성씨 가운데 하나다. 한 달여 전 검은 복면을 한 무장괴한들이 그의 집에 들이닥쳤을 때 시아파 이웃들은 “이 사람은 남부에서 오래전에 이사온 시아파”라고 둘러대줬다.
“우리가 살던 작은 집이 그립다.” 곁에서 묵묵히 기도용 묵주를 매만지던 그의 부인 이스라 아베드 카드르가 평화롭게 살던 옛 기억을 떠올렸다. 누가 수니파고 누가 시아파인지 구분이 필요 없던 때였다. 그러던 어느 날 이웃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수니파 주민이 들라이미 가족의 집 부근에서 살해됐고,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카드르는 “전에는 한 번도 이웃들이 이유 없이 매를 맞거나, 협박을 당하거나, 끌려나가 죽임을 당하는 것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며 “세상의 종말이 온 것만 같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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