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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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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이혼할까 시험이혼할까

등록 2006-03-18 00:00 수정 2020-05-03 04:24

‘혼인등기조례’ 제정 후 절차가 간소화되면서 이혼율 가파르게 느는 중국
친구 관계를 유지하는 이혼, 떨어져 살아보는 이혼 등 신풍속도 생겨나

▣ 상하이=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20대 후반, 신장 165cm 이상, 전문대졸 이상, 용모 단정, 사교적 성격….”

중국의 신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는 모집광고의 하나다. 당연히 회사의 구인광고? 얼핏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배우자를 구하는 광고다. 중국에서는 이와 같이 신문매체를 통해 대대적으로 결혼상대를 구하는 모습이 낯설지 않다.

96살 할아버지에 여자들이 몰리다

56살인 한 남자가 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 10대에 무작정 도시로 뛰쳐나와 40여 년을 일에 파묻혀 살았다. 그런데 덧없는 것이 세월이라,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결혼은 생각도 못해본 채 어느덧 환갑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더 늦기 전에 그동안 쌓은 재력을 밑천으로 신문에 배우자 모집광고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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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최소 1천만위안(한국돈 13억원 정도), 56살, 미혼. 현모양처 타입. 연락처….”

하지만 그를 찾아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이가 너무 많다는 주위의 충고를 받아 나이를 46살로 고쳐 다시 광고를 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 이번에는 한 지인의 재치로 나이를 아예 66살(!)로 올려 광고를 내봤다. 그랬더니 곧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많은 여성들의 응모가 쇄도했다. 그런데 광고가 나간 다음날, 신문사에서 사과 전화가 왔다. “저희 편집부의 실수로 선생님의 나이를 66살이 아닌 96살로 잘못 기재했습니다.”

1978년부터 중국을 휩쓸기 시작한 개혁·개방의 열풍으로 서양문물이 급속히 유입돼 중국의 전통적 사회구조와 사고방식이 급속히 변화하게 된다. 중국인의 전통적 결혼관과 이혼관도 예외가 아니다. 중국에서 결혼과 이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회주의 가정제도를 굳건히 지켜가기 위한 엄격한 ‘관리 대상’”이었다. 그런데 2003년에 새로이 ‘혼인등기조례’가 제정되면서 기존의 모습이 많이 달라지게 됐다. 1994년 2월1일부터 시행된 ‘혼인등기관리조례’에서 ‘관리’라는 단어가 삭제되고 결혼과 이혼이 관리 대상에서 제외된 것이다. 이에 따라 결혼이나 이혼을 할 때 필요했던 직장에서의 비준제도 등도 폐지돼 정부나 직장이 개인의 결혼 문제에 전혀 관여할 수 없게 됐다. 즉 성인 남녀라면 신분증과 호구(戶口)를 제시해 ‘하자 없음’만 입증하면 결혼과 이혼에 대한 신속한 법적 부여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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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처럼 간소해진 절차가 중국인들을 얼마나 더 행복하게 만들지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중국 대도시의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현 상황에서 결혼과 이혼 절차의 간소화가 오히려 이혼을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중국에서 이혼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5년에 중국 전역에서 112만 쌍이 이혼했는데 이는 2004년보다 12% 증가한 수치다. 상하이시에서도 2005년에 3만745쌍이 이혼했다. 이 또한 2004년보다 12% 증가한 수치다. 상하이시 산하 민원부서인 민정국에서는 법정 심리 절차도 없어 신속한 이혼 절차가 가능하다. 민정국이 아닌 법원을 통한 이혼 건수는 매년 1만 건 정도로 추정되는데, 이들을 종합할 때 상하이에서는 날마다 약 100쌍의 커플이 이혼하는 셈이다.

싱가포르의 <스트레이트타임스>도 최근 중국 내의 달라진 결혼관과 이혼관에 대해 보도했다. “한 여성이 이혼했다. 그렇다고 그녀가 지금의 남편과 문제가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런데 이혼한 이유는? 오로지 하나, 재혼하기 위해서다. 한 신문에서 돈 많은 사람의 배우자 구인광고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부자도 현재의 아내와 문제가 있어 이혼한 것은 아니다. 오로지 하나, 지금 아내와의 결혼생활이 너무 익숙해 더 짜릿한 결혼생활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아내에게 상당한 위자료를 주고 이혼해 배우자 광고를 내게 됐다.”

“이혼하니까 더 애틋해지네요”

올해 27살인 장씨는 부모의 만류에도 2005년 말 남편과 이혼했다. 남편의 외도가 결정적 원인이었다. 이에 그녀는 2년간의 애증 섞인 결혼생활을 20분도 채 안 걸리는 서류작업으로 끝내버렸다. 그리고 이혼 당일, 그녀 친구들이 준비한 ‘이혼 축하’ 파티석상에서 그녀는 미소짓는다. “이미 몇몇 친구들도 이혼했다. 이혼은 정상적 생활의 한 부분일 뿐이지 않은가.” 사실 중국의 많은 젊은 대도시 여성들에게 장씨는 경원의 대상이 못 된다. 결혼은 더 이상 무서운 숙명이 아니요, 이혼도 향유 가능한 평범한 하나의 시민권에 불과해졌기 때문이다.

장씨가 이처럼 간단히 일을 끝낼 수 있었던 것은 당국의 조례 발효 이후, 결혼만큼이나 간단해진 이혼 수속 덕이다. 필요한 수속을 모두 마치면 불과 10여 분 만에 이혼 판결이 내려질 정도로 간단해졌다. 예전에는 최소한 한 달의 기간이 필요했다. 머리를 식히고 주변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자성도 할 수 있었다.

간소해진 이혼제도는 중국 사회에서 다양한 형태의 이혼을 만들어내고 있다. “더는 못살겠다. 이혼하자!”에까지 이르기 전에, 두 사람이 별 다툼 없이 미리 합의이혼하는 화평이혼, 이혼 뒤에도 애인이나 절친한 친구처럼 계속 관계를 갖는 문명이혼, 혹은 결혼생활에 문제가 생겼을 때 두 사람의 합의 아래 일정 기간 별거해본 뒤 이혼하는 시험이혼 등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

상하이의 한 대학에서 강의 중인 40대의 위안 교수는 2년 전에 이혼했다. 아내와의 성격차이가 주된 원인이었다. 하지만 성격차를 빼고는 아쉬운 것이 적지 않아 그는 전 부인과 지금도 자주 만난다. 매일 함께 있지 않을 뿐, 부부에 준하는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른바 화평이혼의 하나다. 그는 “매일 같이 있어 다투는 것보다 이혼하고 나니 훨씬 더 애틋해졌다”며 변종 혼인생활에 만족해한다. 주위에서 비슷한 이유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들려주고 있다.

한편 이혼이 더 이상 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보니, 중국인의 상술이 이혼에 대해서도 번뜩인다. 이혼 전문 변호사, 이혼 상담인, 사설 탐정 회사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면서 이제 이혼은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상하이에서는 최근에 이혼을 주제로 한 또 하나의 신종 사업이 탄생했다. 수많은 연인들이 사랑을 고백하던 밸런타인데이 때, 상하이 최초로 이혼클럽 ‘이혼구락부’가 성황리에 문을 연 것이다.

토털 도우미 사업도 성행 중

이 클럽에는 오픈과 동시에 이미 이혼했거나 이혼을 준비하는 남녀 100여 명이 즉시 회원으로 가입했다. 아울러 회원을 골드멤버(연회비 280위안), 실버멤버(연회비 180위안), 일반 멤버 등으로 분류해 등급에 따라 △결혼생활 안내 △이혼과 재혼 문제 자문 △배우자 외도 치료법 등에 대해 전문가 상담과 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또 이혼자들을 대상으로 한 단체 여행과 배우자 알선 등 차별화된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를 위해 이혼클럽에는 결혼 애널리스트, 심리 컨설턴트, 결혼 전문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이 항시 대기하고 있다.

“비록 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이제는 이혼에 관한 토털 도우미가 절실하다”고 이혼클럽 관계자 후황씨는 말했다. “사고를 바꿔보라. 이혼은 하나의 축복일 수 있다. 이혼을 통해 또 한 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지 않는가. 더 이상 이혼을 경원시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상하이 사회과학원 소속 결혼 및 이혼 문제 전문가인 쉬안치 연구원은 중국 사회의 이혼율 급증을 “예견됐던 일”이라고 말했다. 특히 젊은 층들은 결혼과 이혼을 어렵지 않게 생각하고 결정하고 있다. 그는 “중국 정부의 한 자녀 갖기 정책으로 인해 ‘소황제’로 자라난 이들의 병폐에다, 2003년의 이혼 수속 간소화 조치도 기폭제가 됐다”며 “바야흐로 중국 사회도 더 이상 결혼생활을 억지로 유지해야 하는 사회가 아니게 돼가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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