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수준에 비해 턱없이 많은 복권 판매점과 경쟁적으로 설립되는 카지노
정부는 도박 통한 일자리 창출·경제 부흥 앞세우며 사행성 산업의 허가 남발
▣ 나이로비=양철준 전문위원 YANG.chuljoon@wanadoo.fr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시내를 걷노라면 유난히 자주 마주치는 것이 복권 판매점이다. 1월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거리 모퉁이마다 어김없이 즉석복권과 로또 판매대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인파로 북적거리는 무인디 음빙구 거리의 복권 판매점에서 40실링(약 540원)짜리 즉석복권을 구입한 은조로게라는 청년은 이번에도 허탕이라며 아쉬운 듯 복권을 쓰레기통에 버린다. 두 개의 주사위가 일치하면 최대 40만실링(약 540만원)까지 움켜쥘 수 있다.
90년대 자본주의 바람 타고 침투
같은 날 밤 인도인과 외국인들이 주로 출입하는 메이페어 카지노는 평일임에도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룰렛에서 짧은 외마디 환호성이 금세 기다란 탄식과 분노 어린 소리에 파묻힌다. 담배 연기가 자욱한 블랙잭과 폰툰판에서도 긴장감이 예사롭지 않다. 카지노의 폐장 시각이 가까워지면서 “모든 사람이 승자가 되는 곳”이라는 카지노의 광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합법적으로 주머니를 털린 사람들은 어두운 표정으로 차를 몰고 밤이슬 속으로 사라진다.
아프리카가 점점 거대한 욕망의 블랙홀에 빨려들어가고 있다. 사행심을 조장하는 복권, 카지노, 경마 등의 사업이 아프리카에 경쟁적으로 파고들면서 일반 대중의 삶에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동아프리카의 관문인 케냐의 나이로비는 이러한 경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거리마다 복권 판매점이 자리잡고 있고 카지노도 도시의 규모나 경제 수준에 비해 턱없이 많이 난립하고 있다.
아프리카 대부분의 나라에서 복권이나 카지노 같은 사행성 사업은 80년대 후반까지는 그다지 주목을 끌지 못했다.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던 국가들은 물론 카무주 반다 통치하의 말라위나 인종차별 정책을 실시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경우 사행산업을 엄격하게 규제했다. 그러나 90년대 초반 이래 시작된 중장기 구조조정 계획, 공기업의 민간기업화, 외국인 투자 유치 등 변화의 바람을 타고 카지노와 복권사업이 활기를 띠고 급증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지노와 복권에 대한 일반 대중의 열기를 감안할 때 시장 잠재력은 크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행한 조사에 의하면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의 72% 이상이 어떤 형태로든 도박을 해봤고 실업자의 27%도 카지노나 복권에 손을 대보았다.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정부 당국이 카지노나 복권사업을 허가하면서 내세우는 명분은 천편일률적이다. 신규 일자리 창출을 통한 고용 증대, 경제 성장, 관광산업 증진, 외국인 관광객 유치, 세수 증대 등…. 복권이나 카지노 사업에서 발생한 수익의 일부를 오지의 소외된 지역에 학교나 병원을 건립하는 데 사용한다는 방안도 내세운다. 하지만 사행성 사업의 확대로 경제적 효과를 기대한다는 것은 언 발에 오줌 누기와 같다는 것이 중론이다.
카지노 수익으로 학교 건립?
타이 두라킷푼딧 대학의 와라콘 삼코셋 교수는 “복권이야말로 빈자에게 부과되는 세금”이라고 갈파한 바 있다. 사행성 산업은 장기적으로 더욱 심각한 문제를 유발한다. 인허가 과정에서의 투명성 문제는 고질적인 부패와 직결돼 있다. 공공기관에서 발행하는 복권 수익의 남용과 오용도 지적돼왔다. 개인적 측면에서는 도박으로 인한 빈곤의 심화, 가정폭력, 도박자금 마련을 위한 범죄에의 유혹과 범죄행위, 부채 증가와 파산, 구매력 상실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다.
새벽 3시, 나이로비 시내 중심부 식스에이티 호텔에 있는 킹스 카지노. 한쪽 구석에는 카지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맥주를 마시며 앉아 있는 초췌한 얼굴의 흑인이 보이고 룰렛판 옆에는 가지고 온 돈을 다 날린 뒤 소란을 피우는 또 다른 흑인의 모습이 초현실주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가운데 나이로비의 어둠은 더욱 깊어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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