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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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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_ 미국 1] 50주(州) 50법

등록 2005-12-28 00:00 수정 2020-05-02 04:24

▣ 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호텔 숙박객은 객실에서 오렌지 껍질을 벗겨서는 안 된다(캘리포니아주), 물 속에서 숨을 쉬어서는 안 된다(버몬트주), 대중 앞에서 옷을 벗어서는 안 된다(뉴저지주). 이 법들은 각 주의 독특한 지정학적·문화적 관습 차이를 반영한 독특한 주법들이다. 미국의 법률, 제도 등이 우리와는 달리 각 지역 특색을 반영한 관습(법)이나 생활문화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각 주의 법이 달라서 일반인이 그 천양지차를 조목조목 파악하고 살아가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그로 인해 너무도 많은 것이 달라 우리가 생각하는 ‘한 나라’라는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육로로 여행하다 주의 경계를 알리는 표지판이 나오면, 동일한 고속도로라 할지라도 다른 법을 따르게 된다. 예컨대 메릴랜드주에서 북부 이웃 펜실베이니아로 주행할 때 펜실베이니아주 경계로 들어가면 주행 속도에 주의해야 한다. 메릴랜드주의 주행 허용 속도가 이곳에서는 속도 위반으로 처벌받기 때문이다. 또 우회전이 가능한 주가 있는가 하면 위법인 주도 있고, 오토바이 헬멧 착용을 의무화하는 주가 있는가 하면 권장하기만 하는 주도 있다. 자동차의 번호판도 뒤에만 달도록 의무화한 곳도 있다.
세금도 당연히 주마다 다르다. 소비세가 아예 없는 주가 있는가 하면 뉴욕처럼 8%를 넘는 주도 있다. 그 결과 재미있는 현상이 속출한다. 버지니아주는 일률과세제로 거의 예외 없이 소비세를 내야 하는 데 비해 포토맥강 하나를 사이에 둔 이웃 메릴랜드주는 주의 빈곤층 보호라는 주정부의 정책 차원에서 식료품에 대한 소비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이에 따라 주말이면 식료품을 사러 온 버지니아 주민으로 인해 메릴랜드주의 식료품점은 대만원을 이룬다. 미 서부 해안지대인 캘리포니아주(7% 이상)나 워싱턴주(6%) 주민들도 오리건(소비세 0%)으로 주로 물건을 사러 가는 현상이 빚어지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기름값도 주마다 차이가 난다. 가솔린의 가격은 미국 전체에서 거의 동일하나 주마다 서로 다른 유류소비세를 부가함으로써 가격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술에 관한 규정도 물론 다르며 음주 허용 연령도 주별로 다르다.
배우자의 불륜 발견으로 이혼 수속 중 우연히 구입한 로또가 대박이라는 행운을 불러왔을 때 공동재산제를 채택하고 있는 주라면 불륜 여부와 관계없이 그 당첨 금액을 배우자와 균등히 배분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런 제도를 채택하지 않은 다른 주 거주자였다면 당첨금은 구입자의 단독 재산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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