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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런 법이_ 중국] 출산허가증

등록 2005-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 베이징=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올해 28살인 친리(秦麗)는 지난 여름, 결혼 2년 만에 뜻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됐다. 베이징의 한 명문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 중인 그녀는 학업 때문에 줄곧 임신을 미뤄오던 터였다. 비록 예상치 못한 임신이었지만 그들 부부는 기쁜 마음으로 아이를 낳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아이를 낳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임신을 확인한 뒤 검진을 하려고 병원을 찾은 친리는 의사에게서 ‘출산허가증’(准生證)이 있냐는 질문을 받았다. ‘없다’는 그녀의 대답에 의사는 출산허가증 없이 어떻게 아이를 낳을 생각을 했느냐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허가증이 없으면 임신 중 각종 의료혜택과 출산 뒤 예방접종 등에서 혜택을 받을 수 없다고 설명해주었다. 무엇보다 심각한 문제는 출산허가증이 없으면 아이를 낳아도 호적에 올릴 수 없다는 것이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은 친리와 그녀의 남편은 곧바로 출산허가증 만들기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임신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은 출산허가증을 받지 못했다. 합법적인 부부이고 신분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이들이 왜 허가증을 받지 못하는 것일까.
‘베이징시 생육관리법’(生育管理辦法)에 따르면 결혼 뒤 아이를 낳고자 하는 부부는 반드시 임신 전후 3개월 내에 관련 기관에 ‘생육복무증’(生育服務證)을 신청해야 한다. 이 생육복무증이 바로 출산허가증에 해당하는 것이다. 출산허가증을 받기 위해서는 임신한 여성이 속한 회사나 소속 기관에서 관련 증명서를 발급받는 것이 일차적인 순서다. 친리는 박사과정 중인 학생이기 때문에 당연히 소속 대학교에서 출산허가증을 발급해줘야 한다. 하지만 학교 쪽은 학업 중인 학생에게 출산허가증을 발급해준 전례가 없다는 이유로 발급 요청을 거절했다. 친리와 그녀의 남편은 학교와 회사, 관련 기관 등을 백방으로 뛰어다니며 필사적으로 매달렸지만 다들 이런저런 핑계만 댔다. 심지어 친리의 소속 학교에서는 학위를 마친 뒤 아이를 낳으라며, 지금 뱃속에 있는 아이를 ‘지우라’는 끔찍한 말까지 내뱉었다.
친리의 기막힌 사연이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중국 내 여론은 계획경제 시대의 산물인 출산허가증 제도는 이제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산허가증 제도는 현재 지방마다 조금씩 다르게 시행되고 광둥성 등에서는 지난 2003년에 이 제도를 폐지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아이를 낳으려는 부부라면 예외 없이 이 허가증을 발급받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친리는 과연 무사히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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