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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르단은 이라크인이 점령했다?

등록 2005-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암만으로 탈출한 부자들의 집 사재기로 주택건설 열기 속 집값 대폭등
고급빌라나 아파트 여러채를 현찰로 구입… 외국인 거래물량의 53%나 차지

▣ 암만=김동문 전문위원 yahiya@hanmail.net

중동이 변하고 있다. 요르단이 변하고 있다. “매매용 고급 주택 있습니다”라는 안내판이 암만 곳곳에서 발견된다. 때를 따라 찾아오던 양떼들이 차지하던 공터는 사라지고 주택단지로 변하고 있다. 집값과 월세가 폭등하기 시작했다. 지어도 지어도 공급이 달린다. “돈이 있거나 없거나 어쨌거나 집을 사라.” 이 말은 격언처럼 암만의 새로운 유행어가 되었다. 집값이 폭등하고 집 사재기가 한창이기 때문이다.

2억~3억 정도 하던 주택이 10억으로

요르단 암만의 경우 지난해부터 주택 건설 열기가 가득하다. 얼마 전까지는 기껏 개인이 임대를 목적으로 집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매매를 목적으로 한 기업형 주택 건설 열기가 뜨겁다. 짓기가 바쁘게 팔려나가고 있다. 덕분에 임대주택은 더욱 공급이 달리고 있다. “월세 놓습니다”라는 안내판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월세도 뛰고 주택 매매가도 상한가를 기록하고 있다. 주택 공급이 넘쳐나는 것 같은데도 공급이 달린다고 이구동성이다. 지난 일년 사이에 수십만 채의 빌라와 아파트가 지어졌는데 물량이 달리고 있는 것이다. 매년 여름철 다른 아랍 지역보다 온도가 10도 정도 낮아 시원한 암만으로 몰려오는 수십만 명의 걸프 연안에서 온 피서객들로 인해 집세가 일시적으로 올라가는 경우는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일시적인 가격 오름세가 아니다. 한번 올라간 주택 가격이 내려가기는커녕 천정부지로 계속 치솟고 있다.

신흥 주택 건설 지역 곳곳에는 ‘나디르’ 같은 부동산 소개업소나 부동산 소개 전문 회사들의 광고판이 넘쳐난다. 부동산 소개소들은 지난 여름 대호황을 맞이했다. 걸프 연안에서 몰려드는 수십만 명의 아랍인들은 물론 이라크인들까지 합세하면서 주택이나 부동산 거래 고객들이 넘쳐난 덕분이다. “지난 여름 젊은 사람 서너 명이 사무실을 내더군요. 부동산 중개소였어요. 여름철에 목돈을 챙기고는 이내 문을 닫더군요.” 요르단에서 자영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ㅎ씨의 말이다.

신흥 주택단지와 중산층 주거 지역의 경우 부동산 실거랫값은 배 가까이 뛰어올랐고 월세도 30~40%는 족히 인상됐다. 요르단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 ㅂ씨는 그동안 살던 월세 아파트를 떠나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가려 했다. 그러나 월세용 임대 아파트를 찾기가 그리 쉽지 않았다. “그리 깔끔하지 않은 아파트였는데 부르는 월세가 엄청났어요. 이사할 엄두를 못 내겠어요.” 요르단 거주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것은 1~2년 전에 2억~3억(???) 정도이던 주택이 지금은 10억이 넘고 수십억을 호가하는 고급스럽지도 않은 주택들이 넘쳐나고 있다는 것이다. 요르단의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한국의 80년대 초반 수준인 2100달러 정도임을 감안하면 주택 매매가가 무척 높은 편이다.

요르단의 부동산 시장 열기는 기현상이다. 그 이면에는 이라크 전쟁 이후 이라크인들의 암만 유입이 큰 몫을 하고 있다. “부동산 가격의 폭등에는 이라크인들이 가장 큰 요인이다.” 50대 중반의 요르단 공무원 에이사의 지적이다. 이라크 국내 사정이 혼란을 벗어나지 못하자 힘있는 이라크인들은 암만을 새로운 사업 기반이나 투자 현장으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이라크 탈출 현상이 러시를 이루면서 암만의 주택 공급 열기가 더해지고 있는 것이다. 전쟁 이전의 이라크 탈출은 생계유지, 이민이나 정치적 난민을 목적으로 한 것이 주를 이뤘지만 지금은 판세가 바뀌었다. 그동안 이라크인들은 암만 변두리 서민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막노동 현장에서 이집트인들에 섞여 있는 이라크인들을 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암만 시내 곳곳의 고급 주택단지는 물론 중산층 지역에서 깔끔하게 차려입은 이라크인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다. 바그다드가 무너지고 이라크 행정 업무가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던 당시 사용되던 이라크 임시 번호판이 있는데, 그 임시 번호판을 달고 있는 이라크 국적 차량은 물론 이라크 번호판을 단 차량이 쉽게 눈에 띄는 기이한 현상도 있다.

암만 곳곳의 고급 주택단지에서도 부유한 이라크인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들 중에는 사담 후세인의 장녀 라가드도 있고, 후세인의 최측근 세력들도 있다. 후세인 몰락 이후 총리를 지냈던 이야드 알라위가 보유하고 있는 수백만달러를 호가하는 고급 빌라도 있다. 부동산 중개인들은 고급 빌라나 아파트 여러 채를 현찰로 구입하는 이라크인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들의 주요 고객층은 물론 절반 이상이 이라크인들이다. 바그다드 함락 직후에는 사업 목적으로 일시 체류하는 이라크인들이 많았지만 지금은 집을 구입하고 아예 암만에 정착해 사업을 하는 이들이 더 많다. 요르단 정부 통계에 따르면 올해 8월까지 외국인이 매입한 주택의 53%가 이라크인 소유로 모두 1147채였다. 신고된 구입 가격 총액은 8400만달러인데 실제 거래액은 이보다 훨씬 높다.

후세인의 친인척·최측근도 큰손

이라크인들이 구입한 것으로 알려진 고급 빌라들은 대부분 수백만달러를 호가한다. 부동산 중개시장에서는 실제 거래되는 주택이나 대지 물량의 절반 정도를 이라크인들이 구입하고 있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제는 땅을 사서 집을 지어 주택 공급 시장에 뛰어든 이라크인들이 적지 않다. 투자 지역도 암만을 넘어 아카바나 사해 주변 휴양지를 비롯한 요르단 주요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주로 부동산 투자에 집중되고 있다. 그러나 이라크인들의 부동산 시장 참여 열기는 투자를 넘어 투기를 부채질하고 부동산 가격의 거품이 일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급작스런 이런 흐름에 정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아마도 ‘투기’라는 개념이 요르단 사회의 새로운 유행어가 될지도 모른다.

요르단에 거주하는 이라크인들의 수는 40만여 명, 비공식 통계로는 그 배가 넘는다. 요르단 내무부 통계에 따르면 올 2/4분기에 합법적인 거류 비자를 소지하고 있는 이라크인은 2만7천여 명에 불과했다. 요르단에 살고 있는 이라크인 대부분이 불법 체류 상태이거나 일시 방문 비자로 요르단에 입국한 이들이다. 전쟁 전에는 서민 지역이나 인력시장 주변에서 주로 이라크인들을 만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이라크 중산층 지역이나 번화가 한복판에서도 쉽게 이라크인들을 찾아볼 수 있다. 요르단 암만 최대의 번화가인 메카몰, 서민들의 관광지로까지 각광받는 이 공간에도 이라크인들이 넘쳐난다. 이른바 ‘물’을 바꿔놓고 있는 것이다.

요르단인들은 “바그다드는 미국이 점령했고, 요르단 암만은 이라크인들이 점령했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이라크 전쟁으로 요르단 서민들만 새우 등 터지고 있는 셈이다. 이라크가 안정을 되찾는다고 해도 일단 거품이 인 요르단의 부동산 시장이 제자리를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라크 전쟁은 요르단 암만에 부동산 투기 열풍이라는 커다란 후폭풍을 몰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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