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해병대, 나이트클럽 기도 선다?

등록 2005-09-08 00:00 수정 2020-05-03 04:24

[병영대륙 아시아- 인도네시아]

아체에서 위병 근무하다 지휘관한테 뇌물 주고 부업 허락받은 바시스…악명 떨쳐온 군대지만 육군참모총장도 한달 월급이 714달러밖에 안 되는 현실

▣ 자카르타=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k)/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IMAGE1%%]

첫 번째 이야기.
“한달에 80만루피(82달러)였어. 지금? 지금은 200만루피(205달러)고.”
해병대를 거쳐 현재 타나 아방시장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는 압둘 바시스(25)는 군대 월급으로는 도저히 먹고살 수 없었다며 헛웃음쳤다. 바시스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마땅한 일거리가 없어 2년 동안 빈둥거리다가, 어느 날 “500만루피(510달러)만 주면 군인 시험에 붙게 해주겠다”는 해병사무관을 만나 ‘돈놀이식’ 군인의 길로 접어들었다.
바시스는 3개월 동안 군사훈련을 받은 뒤 전선이 펼쳐진 아체로 파견됐다. 다행히 1년 만에 무사하게 자카르타로 되돌아온 그이는 군사령부 내 위병 초소에서 2년간 근무했다.

마피아 조직 끼고 부채 해결사까지

그러다 재미없는 내무반 생활을 접고 한 고참과 방을 얻어 영외에서 살면서 세상에는 부업거리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날부터 바시스는 현역 군인 신분으로 나이트클럽, 술집 기도를 서기 시작했다. 그러다 일에 진짜 재미를 붙인 건 고참들로부터 마피아 조직을 낀 ‘부채 해결사’니 ‘약장수 경호원’ 같은 일들을 소개받으면서였다. 일거리가 늘어난 바시스는 한달에 100만루피(102달러)를 지휘관에게 상납하며 부업을 허락받았다. 현역 해병대원 바시스에게는 그야말로 신나는 날들이었다.

두 번째 이야기.
전 육군참모총장 랴미자르드 랴추두(Ryamizard Ryacudu) 장군은 바시스 이야기를 꺼낸 내게 낄낄대며 대꾸했다. “놀랍기는 뭐가 놀라워. 대인도네시아 육군총사령관이었던 내 월급이 700만루피(714달러)였어. 요즘 내가 받는 연금이 한달 180만루피(188달러)야.” 결국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대육군참모총장은 퇴임하자마자 일거리를 찾아 이 회사 저 회사를 기웃거리는 팔자가 되었다고 한다.

[%%IMAGE2%%]

현대사를 통틀어 가장 악명을 떨친 군대를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주저 없이 인도네시아군을 지목할 듯싶다. 최장수 독재자였던 수하르토를 권좌에 올린 것도, 그 독재정권 32년을 떠받친 것도, 서파푸아뉴기니와 동티모르를 피로 물들인 것도, 아체를 전쟁터로 만든 것도, 엄청난 인권유린을 자행한 것도 모두 인도네시아 군대였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오늘날 그 많은 ‘유혈사업’을 담당했던 군인들의 처지는 위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별 볼일이 없다. 사병이든 장군이든 모두 마찬가지다. 물론, 수하르토 장군을 포함해 엄청난 부정부패로 세계적 규모의 재산을 챙긴 군인들 이야기는 오늘의 주제가 아니라 건너뛴다.

자, 그럼 ‘유혈사업단’이라 부를 만한 인도네시아 군대는 어디서 왔을까? 말할 것도 없이 대부분의 제3세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식민통치에서 왔다. 네덜란드 식민통치 당국이 네덜란드회사(Dutch Indie)를 보호하기 위해 현대식 군대를 조직하면서부터였다. 이어 ‘아시아 해방’을 외치며 쳐들어온 일본 점령군이 다시 전쟁 도구로 쓰고자 충성심과 지식을 지닌 이들을 모아 군대를 재조직했다. 그리고 1945년 8월17일 독립을 선포한 인도네시아는 반식민투쟁의 영웅 수카르노를 대통령으로 세워 헌법을 발효한 다음, 10월5일 공식적으로 인도네시아군을 창설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로부터 인도네시아군은 현대사를 피로 물들이며 정치를 주물러왔다. 군대를 끼고 정치를 한 수카르노와 수하르토라는 두 무장 대통령만으로 현대사를 지나온 탓에 인도네시아는 처음부터 나라를 군대가 지배하는 독특한 ‘병영국가’였다. 중앙정치는 말할 것도 없고 코담(Kodam)이라는 지역사령관이 각 지역 행정까지 주물러왔을 정도다. 17개(현재 12개)로 나뉜 관구사령관이 각 지역 군 작전권뿐만 아니라 사회 운영의 전권을 행사해왔던 셈이다.

인도네시아 군대의 ‘식인 풍습’

아무튼, 그렇게 잘나간 군대였고 또 지금도 여전히 잘나가고 있지만, 문제는 군인들의 병영 수준이다. 밥 하나만 따져보면 군인들의 실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작전- 인도네시아에서는 무슨 훈련이 아니라 실전을 치르는 전선을 뜻한다- 에 투입한 사병들의 하루 밥값이 1만7천루피(1.7달러)니 뭘 더 설명하고 말 것도 없다. 한달 전부터 2만7천루피로 크게 뛰었다는 이야기도 들리지만, 어쨌든 한국 돈으로 한끼 600원짜리 밥을 주며 국가를 위해 싸우다 죽으라는 말이다. 그러면 개밥보다 못한 이 밥값을 사병들은 온전히 받았을까? 물론 아니다.

“정해진 밥값에서 반밖에 못 받았다.” 아체 작전에 투입됐던 바시스가 증언한다. 나머지는? 지휘관이나 고참들이 빼먹었다는 뜻이다. 군인들의 필수품인 장비라도 쓸 만하다면 말을 하지 않겠다. 며칠 전 해병사령부를 찾은 나는 고장난 탱크와 온갖 장비들이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걸 보았다. “장비 지원금을 받지 못하니…. 여기저기 고장나면 다른 장비에서 빼다 대충 메우는 식이다.” 정비창 책임자인 수파르노는 이런 현실을 서로 잡아먹는 ‘식인 풍습’이라 불렀다.

[%%IMAGE3%%]

그러니 병영에서 무슨 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데스크로 올라와도 나는 전혀 놀라지 않는다. 4개월쯤 전에 한 사병이 동료 넷을 살해한 사건이 터졌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군대 현실이 군인을 살해한 사건을 놓고 그 군인을 못살게 굴고 싶지 않았다. 당시 군 당국은 그 군인이 스트레스를 못 이겨 저지른 사건으로 매듭지었다. 우리는 왜 그 군인이 동료를 살해했는지 아직 정확히 알지 못한다. 다만, 군 당국의 발표대로 스트레스가 진짜 원인이었다면 그이가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런 대인사고뿐만 아니라 장비 불량 때문에 사고를 당하는 사병들의 뉴스도 하루가 멀다 하고 데스크로 올라오지만, 역시 나는 무감하게 넘긴다. 뻔히 예견한 일들이기 때문이다.

프로페셔널 군대는 ‘한여름밤의 꿈’

인도네시아군 예산은 그런 사건과 사고들을 잘 예언하고 있다. 2004년 13억5400만달러였던 게 2005년에는 14억5600만달러로 조금 늘어났다. 이는 전체 국가 예산에서 4.3%를 차지한다. 국방부는 장비 구입 비용으로 1억달러를 더 올렸으나 의회가 반을 깎아버렸다며 투덜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만약 그게 사병 복지예산안이었다면, 우린 군대에 동정심이라도 보였을 것이다.

위 예산안에서 볼 수 있듯이, 문제는 국가 예산에서 차지하는 군사비 비율이 높아서가 아니다.

예컨대 2004년 예산안에서 군 작전 비용과 장비 구입에 쓴 돈이 약 11억달러였다면, 군인 30만2천명의 월급과 복지에 쓴 돈이 고작 2억5천만달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고도 병영이 안전하기를 바라고 프로페셔널 군대를 꿈꾼다면, 우린 그것들을 주저 없이 ‘한여름밤의 꿈’이라 불러준다.

인도네시아 시민들은 군인이 부업을 거두고 병영으로 돌아가 국방에 충실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면서 시민들은 “훌륭한 강철로 못을 만들지 않듯이, 좋은 사람들은 군인이 되지 말라”고 주절거리고 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