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영대륙 아시아_혁명전선]
버마학생민주전선을 통해 본 혁명·해방전선의 황량한 병영 풍경
도덕적 지향 강했지만 강경한 사형 집행으로 하나둘씩 떠나보내
▣ 버마-타이 국경=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asianetwork@news.hani.co.kr
‘혁명전선’ ‘해방전선’.
이미 한물 간 느낌이 드는, 역사책에서나 불러보았던 이런 말들은 강렬한 ‘도덕성’을 바탕에 깔고 있는 용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인지 이런 말들은 그냥 불러보기만 해도 괜히 가슴이 두근거린다면, 누구는 철딱서니 없는 중년이라 타박할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첨단을 달리는 21세기 들머리에도 여전히 이 세상은 온갖 혁명전선과 해방전선으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도 이 지구상에는 100여개 나라에서 1천개가 넘는 온갖 조직들이 ‘해방’과 ‘혁명’을 외치며 전선을 가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혁명·해방 단체들의 병영 내부는 소개된 적이 거의 없다.
버마학생민주전선의 5가지 사형 조건
지난 16년 동안 버마전선을 취재해온 느낌부터 한마디 하고 넘어가자면, 사람 사는 세상은 어디든 똑같다. 다시 말해 그게 정규군 병영이든 게릴라 병영이든 모두 좋은 모습과 그렇지 못한 모습을 똑같이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버마정부군과 해방·혁명군 사이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하나 있다. 그건 도덕적 ‘지향’이다.
버마 민주혁명 무장투쟁 전선을 대표해온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을 본보기로 살펴보자. 이들은 세계 어느 혁명전선에도 뒤지지 않는 엄격한 ‘군법’으로 전선을 운영해왔다.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지닌 ‘사형제도’는 그들의 병영 내부를 들여다보는 좋은 단서를 제공한다. 1. 기밀누설·간첩행위 2. 살인행위 3. 마약거래·복용행위 4. 강간·성문란행위 5. 대민봉사 불성실·대민공격 행위. 대개 이것들이 사안의 중대성에 따라 총살형 감이다. 위 내용들 가운데 1과 2, 3은 전선이 아닌 일반 사회의 실정법에서도 통용되는 것들이지만, 4와 5의 경우는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지닌 도덕적 지향과 기본전략을 잘 드러내주는 요소들임이 틀림없다.
바깥 세상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1992년 북부버마학생민주전선(ABSDF-North) 내부에서 벌어진 대규모 간첩사건은 혁명전선을 크게 놀라게 했다. 그 무렵 모두 50명이 간첩 혐의로 체포됐고, 그 가운데 15명이 처형됨으로써 지나치게 가혹한 처벌에 대한 논란이 일기도 했다. 또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여러 차례 경고를 무시한 마약 복용 혐의자를 사형시킨 일도 있다. 강간과 부적절한 성 문제의 경우는 사형까지 간 적은 없었지만, 무법 혁명 지역에서 가장 골치 아픈 문제 가운데 하나였다. 학생군 지도부는 피 끓는 젊은이들이 모인 국경에서 혁명이 장기화되면서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이들을 막을 재간이 없었던 탓에, 결국 1990년대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중앙위원회 위원을 제외한 모든 이들에게 결혼을 허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버마학생민주전선은 조직 내부에서 비교적 융통성을 보였던 것과 달리, 조직을 벗어나 벌어진 성 문제의 경우는 엄격하게 처벌했다. 학생군 지도부는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내부 처벌에 이어 해당 주민 여성과 결혼을 주선하며 문제를 해결했다.
그리고 대민 피해 행위자에 대한 사형은 초기부터 강경하게 집행했다. 농부의 소를 죽인 경우나 타이 경찰관의 총을 훔친 경우들이 모두 대민 피해 행위로 처형됐던 사례들이다. 이렇듯 가혹한 버마학생민주전선 군법과 국경 혁명전선의 거친 문화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켰다. 민주화에 대한 염원 하나만 가지고 제 발로 국경을 찾아온 청년학생들 가운데는 학생군 조직 내부의 비민주성과 경직성을 탓하며 떠나는 이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국경으로 건너온 초기에는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개념 자체가 없었고, 법률 전문가도 없는 상황에서 전선이라는 특수성만 강조됐던 게 사실이다.” 카친독립군(KIO) 지역에 진영을 꾸렸던 북부버마학생민주전선 전 의장 옹 나잉(Aung Naing)은 조직 내 비민주성과 비전문성을 회고하며 “그런 면에서 보면 정부군과 혁명군이 차이가 없다”고 고백했다.
소수민족해방군은 더했다
버마정부군 내부의 폭력과 야만성을 혁명군인 버마학생민주전선도 전통처럼 상당 부분 물려받았다는 뜻인데, 버마 군대의 이런 습성은 버마 독립 영웅 아웅산(Aung San) 장군이 1941년 30명의 동지를 일본으로 데려가 일본식 군사훈련을 받은 뒤 다시 버마로 돌아와서 대영국 반식민지 투쟁을 벌이면서부터 생겨난 전통으로 여기고들 있다. 버마 군대의 제도나 문화가 일본 군국주의의 잔재라는 뜻이다.
버마정부군에서는 사병들이 흔히 상관, 특히 상사와 같이 나이 많은 이들을 계급 대신 ‘아바’(아버지나 삼촌 같은 의미)로 불러왔는데, 이건 조건 없는 ‘복종’을 상징하는 심각한 군사용어다. 이런 절대적인 복종 이면에 폭언·구타·고문·살해와 같은 만행이 자연스런 군대문화로 자리 잡아왔던 셈이다. 문제는 ‘아바’라는 말이 민주혁명군인 버마학생민주전선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사용돼왔다는 사실이다.
고백컨대, 나는 혁명전선을 취재하면서 몇 차례 버마학생민주전선 내부의 폭력적인 상황을 목격했고, 특히 땡볕이 쏟아지는 통나무 감방에 갇힌 넋 잃은 간첩 혐의자를 보면서 ‘혁명의 결함’을 실감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전체적인 면에서 보면, 버마학생민주전선의 도덕성은 주변 소수민족 해방군들보다 훨씬 우월했다. 그건 버마학생민주전선이 국경 어디를 가나 소수민족 주민들로부터 크게 환영받고 있다는 사실이 잘 증명해준다. 비교하자면, 소수민족 해방군들은 전선 지휘관에게 ‘사형권’을 부여하고 있었던 탓에 툭하면 즉결 처형이 벌어져 전사들의 인권 문제뿐만 아니라 국경 사기를 떨어뜨린 결정적 요인이 돼왔다. 특히 막대한 사업적 이권이 걸린 벌목이나 어장을 낀 카렌민족해방군(KNLA) 진영이나 옥 광산을 낀 북부 카친독립군(KIO) 진영은 사형으로 악명을 떨쳐왔다.
이런 열악한 인권 상황은 1988년 민주항쟁 끝에 국경으로 몰려든 버마학생민주전선에 가혹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1988년 12월17일 카렌민족해방군 지도부를 비판한 틴레이(Tin Lay·타보이대학생회장)를 비롯한 학생 5명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임을 당한 사건을 신호탄으로, 1989년 4월에는 우탄트장례항쟁(1974년)을 주도한 이름난 학생운동가 우민테인(U Myint Thein·변호사)과 학생 둘이 사라졌고, 이어 1990년 들어 학생군 홍보부에서 활동했던 툰툰옹(Tun Tun Aung·사진가)이 간첩 혐의를 받아 희생됐다. 전통적으로 버마인들에게 적대감을 지녀왔던 소수민족해방군이 갑자기 밀어닥친 랑군 출신 청년학생들을 믿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그러다 1993년 3월, 카렌민족해방군 4여단 지역에서 충격적인 사건이 터졌다. 버마학생민주전선 본부 파견 통신병을 포함해 201연대·203연대 소속 학생군 13명이 카렌민족해방군으로부터 살해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버마민주동맹(DAB) 깃발 아래 함께 전선을 가던 학생군이 적전 오발사고를 일으키자 카렌민족해방군 현장 지휘관이 학생군을 무장해제시켰고, 이에 무기 반환을 요구하던 학생들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이었다.
민주 군대로 거듭날 수 있을까
그렇게 보면, 국경 소수민족해방전선에서 ‘민주주의’니 ‘인권’ 같은 말들이 나돌기 시작한 건 버마학생민주전선이 등장해 무장투쟁에 합류하면서부터다. 말하자면 국경에서 민주주의가 화두로 떠오른 건 기껏 17년 남짓한 일일 뿐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아직도 버마 민족해방과 민주혁명전선 병영에서 현대식 민주주의 군대라는 개념은 낯설기만 하다.
“많이 개선했다. 이런 국경 학습을 통해 랑군 중앙정부가 민주화되는 날, 우린 민주 군대로 거듭날 자신이 있다.” 현재 버마학생민주전선 군사를 책임지고 있는 수니(Sunny)의 열망이 실현되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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