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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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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강제수용 정책 변하는가

등록 2005-07-22 00:00 수정 2020-05-03 04:24

수업중 예고없이 이민국에 연행된 한국인 황군 남매 문제로 논쟁 촉발
하워드 총리 “관련 정책 완화” 밝히면서 수용자들 7월 중 모두 풀릴 듯

▣ 시드니=글·사진 권기정 전문위원 kjkwon@hotmail.com

시드니 남서쪽에 위치한 빌라우드 강제수용소에 있는 한국 어린이 이완 황(11)과 제니 황(6) 남매. 지난 3월 중순 시드니 중부 지역의 스탠모어 초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 남매는 수업 도중 예고도 없이 찾아온 이민경찰에 연행된 이후 3개월 넘게 수용소 생활을 하고 있다. 황군 남매는 수업을 받다가 예고 없이 닥친 이민부 직원들에게 연행됐다. 어머니 한아무개씨가 한국에 갔다가 돌아오던 중 시드니 공항에서 불법 입국(비자 위반)으로 적발됐기 때문이다.

8개 강제수용소에 한국인 458명 수용

수용소를 방문한 6월18일은 수용소 내에서 자해 소동이 벌어져 출입이 금지됐다. ‘스테이지3’에 수감 중인 중국인 14명이 이민성의 강제 출국 결정에 항의해 집단 자해를 했다. 황군 남매를 방문하고 돌아온 고모 황자연씨가 전하는 황군 남매의 수용소 생활은 아주 단조롭다. 매일 아침 일어나 수용소 안에 있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오후에는 수용소 내의 또래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놀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새로 사귄 친구들도 있지만, 학교 친구들이 눈에 선하다고 하대요. 그리고 주말에 엄마랑 쇼핑센터에 갈 수도 없어서 속상하대요.” 외부 세계와 단절된 높은 철장 안에 갇힌 수용소 생활에 이력이 날수록, 지난 여름에 친구들과 놀러갔던 본다이 비치 생각만 가득하다.

오스트레일리아 전역에는 현재 황군 오누이가 수감된 빌라우드를 비롯해 불법 이민자를 수감하는 총 8개의 강제수용소가 있다. 이민성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이들 수용소에는 총 7472명이 수용됐고, 이 중 한국인은 458명이나 된다. 한국인이 인도네시아, 중국, 말레이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또한 전국의 수용소에는 18살 미만 어린이도 60여명 수감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중 한국계 어린이는 총 16명이라고 이민성은 집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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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수용소에 수감된 16명의 한국 어린이들을 포함한 60여명의 미성년자들 중에 특히 황군 남매 문제가 뒤늦게 오스트레일리아 정가의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아이들을 학교에서 연행해갈 경우 교육부를 통해 해당 학교에 연락을 하던 관례를 깨고 사전 통보도 없이 이민경찰이 아이들을 연행해간 것이다. 지난 3개월간 시드니 한인사회뿐 아니라 뉴사우스웨일스 교사연합회 등 사회 곳곳에서 정부의 도덕성에 대한 항의가 이어졌다.

지난달 석방을 촉구하는 서명에 3천여명이 참여했고, 이 서명은 스탠모어 초등학교가 있는 그레인들러 지역구 출신의 연방 야당(노동당) 앤서니 알바니스 하원의원에게 전달됐다. 알바니스 하원의원은 ‘제니와 이안을 수용소에서 석방하라’는 제목으로 작성한 이 청원서에 서명을 첨부해 조만간 연방의회에 상정할 예정이다. 연방의회에서도 이민성의 황군 남매 연행은 ‘게슈타포 전술’로 질타를 받았다. 알바니스 의원은 6월22일 의회에서 황군 남매의 인적사항을 밝히며 “두 어린이가 교실에서 강제로 연행된 사실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며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끌려간 것도, 아직 철조망 안에 갇혀 있는 것도 잘못된 일”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민정책이 얼마나 통제 불능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고 덧붙였다.

알바니스 의원이 발언을 한 전날인 21일에는 하워드 정부가 불법 이민자 억류 관련법 ‘개정안’을 상정했다. 페트로 조지오 등 여당 중견 의원 4명이 지난 한달간 벌인 정부의 과도한 불법 이민자 억류정책에 대한 ‘이유 있는 반란’의 결과였다. 하워드 총리는 이 의원들과 3시간에 걸쳐 비공식 면담을 한 뒤 “우리는 강제수용 정책에 실패했다”고 시인하고, 관련 정책을 완화하겠다고 말했다. 입법 절차에 들어간 이번 법안은 집권 자유당연합이 다수를 점한 연방 하원에서는 무리 없이 통과될 전망이다.

여당 의원 4명의 ‘이유있는 반란’

이에 따라 관련 법 개정이 의회에서 4~6주 정도 소요된다 해도, 7월 말까지 황군 남매를 포함해 현재 수용소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 어린이들과 그 부모들도 모두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1년 수백명 난민을 태운 탐파호의 접근을 완강하게 거부해 국내외적인 비난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을 때, 오히려 불법 입국 방지 정책을 한층 강화하는 방향으로 강경노선을 폈던 하워드 정부가 ‘강제 수용소 어린이들 전원 석방’을 시작으로 변화의 길을 이어갈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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