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 성장률에도 일자리 없는 중국의 대학졸업생들
일자리 못 찾아 택시 기사나 가정부로 나서기도
▣ 상하이= 우수근 전문위원 woosukeun@hanmail.net
중국 상하이 화동사범대학. 매년 9월에 시작되는 새 학기가 마무리되는 6월경 중국은 바야흐로 졸업 시즌이다. 졸업사진을 촬영하느라 분주한 일단의 대학생들을 바라보는 쩡꾸어핑(남·22·화동사범대학 물리학과). 그는 학생이 아니다. 그는 지난해에 이미 인문학부를 졸업했다. 하지만 취직을 하지 못해 아직도 도서관에 다니고 있다. 그가 졸업한 대학은 상하이 4대 명문대학 중 하나이며 그의 대학 성적도 좋다. 실업은 쩡꾸어핑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국 대학생은 여전히 촉망과 질시의 대상
“이제 졸업식만 남았는데…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면목이 없습니다.”
대학 캠퍼스에서 책을 뒤적이고 있는 올해 대학 졸업반인 웬팡(남·21사학과)씨. 그는 상하이 인근의 저장성 시골마을 출신으로 4년 전 청운의 꿈을 안고 메트로폴리탄 상하이 유학길에 올랐다. 하지만 나날이 거세지는 취직 경쟁에 자신감을 상실했다. 취직하기 위해 남들처럼 학원에서 영어회화도 오랫동안 했고, 엑셀·파워포인트 등 컴퓨터 프로그램도 익혔다. 하지만 외자기업에 원서를 내고 나서는 인문학 계열이라 힘들다는 말만 들었다. 그가 있는 대학 기숙사의 룸메이트 4명 중 취직이 된 사람은 한명밖에 없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제 능력이 부족할 따름이지요.”
“고난의 대장정기입니다.” 캠퍼스를 산책하다 만난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유례없는 호황을 겪고 있는 중국에서 실직자 문제로 고민이라는 사실은 어리둥절하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매년 9% 전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고 있다. 인위적으로 경제성장률을 낮추어 발표한다고 할 만큼 몸으로 느끼는 중국의 성장은 더욱 무섭다. 다른 나라의 기업들은 중국의 빠른 성장을 화두로 올리며 중국의 성공사례를 연구하고 있고, 중국과 좋은 파트너십을 유지하는 방법을 탐색하고 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중국 사회의 급성장으로 인해 고학력자의 수요가 늘어났고, 대학 등 고등교육기관 진학자가 생겨났다. 이에 따라 대학 입학자는 1998년 108만명에서 2002년 340만명으로 3배 늘어났으며, 2003년에는 382만명으로 급증했다. 대학 진학률은 17%대로 늘어났다. 그 결과로 2003년 현재 중국의 1552개 고등교육기관(대학원 720개)에 재학 중인 대학생 수는 1108만5600명(2002년 대비 22.7% 증가한 수치), 대학원 재학생은 65만1300명으로 집계됐다.
해외파 입국하면서 더 힘들어져
대학생 수가 늘어났다고 하지만 17%만이 대학에 진학하는 중국에서 대학생들은 엘리트 중의 엘리트다. 아직도 중국 사회 저변에서는 대학생이라는 명함이 일종의 ‘특권’으로 통한다. 이와 같은 ‘아! 꿈의 대학생’ 현상은 13억 인구 가운데 9억명 이상이 거주하는, 낙후된 내륙지역으로 갈수록 더욱 분명해진다. 내륙지역의 시골마을에서는 아직도 고등학교 졸업자가 초등학교 교사 역할을 하는 곳이 꽤 된다.
직종에 따라 다르지만 대졸자의 초봉은 평균 2300위안(약 30만원)인 데 비해 고졸자인 동년배는 그 절반인 1200위안 정도에 불과하다. 이처럼 중국에서 대학생은, 과거 한국 사회의 ‘이수일과 심수애’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촉망받고 질시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 화려함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다.
“런 타이 둬!”(人太多·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취업 재수생 쩡은 실업 이유를 묻는 말에 이렇게 황당한 답변을 내놓았다. 대졸 취업자에게 열린 좁은 문에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기 때문이리라. <제일재경시보>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중국 당국도 늘어나는 대졸 실업자를 해소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상황은 오히려 더욱 악화되고 있다. 중국 대학의 졸업자 수는 2003년 212만명, 2004년 280만명이었던 것이 올해는 338만명으로 급증했다. 일자리 창출은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중화전국청년연합회’와 노동사회보장부 노동과학연구소가 최근 발간한 ‘청년 취업 현황 보고’에 따르면 중국의 청년 실업률은 9.1%에 육박, 중국 전체 실업률 6.1%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이에 보시라이 상무부장은 6월10일 상하이에서 개최된 한 심포지엄에 참석해 청년실업을 중국 사회의 연금, 저출산 및 고령화 문제 등과 함께 당면한 주요 현안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쩡상취 중국 인민대 노동인사 학원 학원장은 “청년실업은 단순한 개인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구조적 문제”라고 지적한다. 실제로 2004년 대학 졸업자 취업 현황에 따르면 대졸자의 45.4%는 각종 정부기관으로 취업하기를 원했지만 자기 희망대로 취업한 사람들은 약 3%에 불과했다.
거기다 출국열(유학붐)로 해외로 나갔던 유학생들이 속속 귀국하고, 기업들은 이왕이면 해귀파(海歸派·해외 유학 귀국파)를 선호해 국내 대학 출신자들은 점점 더 위축되고 있다. 외국 기업들이 인건비 부담과 노사관리 리스크 등을 줄이기 위해 사무자동화, 첨단설비 등을 적극 도입하고 있는 점도 취업을 위협하는 요인이다. 반면 육체노동을 포함한 일반 단순노동자들의 실업률은 아직 심각하지 않은 수준이다. 오히려 일부 숙련 노동자들은 ‘품귀 현상’을 보이기도 한다.
86.8%가 취업 스트레스
일반 기업에 취업하기가 힘들다 보니 중국 사회에 전례 없는 노동시장의 유연화가 연출되기도 한다. 격일 근무라고는 하지만 하루 20시간에 육박하는 고된 노동을 감내해야 하는 택시 기사로 취직하는 대졸자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전통적으로 교육을 별로 받지 못한 여자의 일이라고 여겨진 가정부 일에도 대졸 남자가 뛰어들어 중국 사회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2002~2003년 상하이 대학생 발전보고서’에 따르면, 상하이 대학생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걱정하는 것이 취업이라 한다.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6.8%가 취업과 관련해 적지 않은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 조사가 이루어진 때로부터 불과 2년 전인 2000년에는 58.9%를 기록했던 데 비하면 엄청난 수치다. 이와 같이 중국은 유례없이 계속되는 호황 속에 유례없이 더해가는 취업난이라는 모순 속에 있다.
이러한 모순은 특별한 상황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한 더욱 악화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교육부 통계에 따르면, 대입시험인 가오카오에 등록한 2005년도 응시생은 약 867만명. 중국 전역의 대학 모집정원이 약 475만명이니 응시생의 절반가량이 대학 새내기가 될 전망이다. 그런데 이는 지난해 대비 19% 정도가 증가한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