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유출로 밝혀진 ‘원자력 발전 밀어붙이기’
영국은 재생 가능 에너지를 포기할 것인가
▣ 런던= 줄리언 체인 전문위원
총선거 사흘 뒤인 5월8일 통상산업부(DTI) 문서 하나가 유출됐다. 문서는 통상산업부에서 은밀히 원자력발전 관련 정책을 추진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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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내각에서 최대한 빨리 처리”
여기에는 놀라운 우연의 일치가 있다. 그전 몇달간의 작업 결과로 보이는 이 문서의 유출은 5월6일 ‘생산, 에너지 및 산업부’(이후에는 통상산업부로 정정되었다) 수장으로 앨런 존슨이 임명되는 건과 거의 동시에 이루어졌다. 통상산업부 내에서는 원자력을 두고 오랫동안 밀고 당기는 싸움이 있었다. 전 통산부 장관인 퍼트리샤 휴잇은 원자력발전 주장에 회의적이었다. 브라이언 윌슨은 열렬한 원자력 지지자였지만 휴잇의 회의론에 막혀 옴짝달싹 못했었다. 총선 이후 개각에서 블레어 총리는 이때다 싶었는지 휴잇 자리에 원자력 지지자인 존슨을 앉혔다. 존슨은 현재 원자력발전을 재고하겠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통상산업부 내 친원자력 세력은 동면에서 깨어났고 그들의 행정사무관들은 제안을 표면에 올렸다.
이 일련의 사건들을 지켜보면 1980년대 TV 코미디 <예, 각하>(Yes Minister)가 떠오른다. 이 코미디는 정부의 밀실행정을 풍자한다. 행정사무관들은 자신들이 정부를 대변하는 실질적인 책임자라고 생각하고, 윗선에서는 정부 정책은 자기 권한이며 행정사무관들은 그것을 방해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그들은 연합할 때가 있는데, 외부의 적과 싸울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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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예, 각하’ 스타일의 보고서를 작성한 사람은 조안 맥노턴이다. 그는 에너지 정책의 총사령관이다. 그는 환경부(DEFRA)와 그 장관인 마거릿 베킷을 정부 내 원자력발전 반대 의견의 원천이라고 지목했다. 그의 계속되는 말은 “9·11이 나쁜 뉴스를 묻어버리기에 좋은 날”이라고 말한 악명 높은 노동 정책 고문 조 무어를 연상시킨다. “새로운 내각에서 최대한 빨리 이 논쟁적인 이슈를 밀어붙이는 게 유리하리라 판단된다.” 맥노턴은 환경부를 포함해 새로운 장관이 이 강경 방침을 받아들이고 산업을 위축시키지 않을 배출물 상한선을 발표하라고 주장했다.
겨울의 긴 선거 사기극 내내 정부는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고 에너지 공급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자력발전으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는 논조의 자료들을 풀며 여론을 선도했다. 통상산업부 문서 유출도 같은 맥락이다. 지지도가 높지 않은 이 정책들은 정부의 특별한 승인이 없었다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 선거에서 환경 정책은 거의 이슈가 되지 않았다. 주요 정당 중에서도 자유민주당만이 새로운 원자력발전소의 건설에 강력한 반대 입장을 보였을 뿐이다.
원자력발전의 지지자는 새로운 발전소는 더 싸고, 더 작고, 더 생산적이고 폐기물도 적을 것이라고 말한다. 온갖 난무하는 통계들을 보라. 옥스퍼드대학의 옥세라(Oxera)는 원자력발전이 풍력발전보다 더 쌀 것이라고 말한다. 어쨌든 정부 연구원은 옥세라의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그림을 그렸다. 비판자들은 이 추정 비용이 폐기물 저장과 취급 비용을 포함하지 않는 등 원자력발전에 최대한 유리하도록 계산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2002년 브리티시 에너지사의 구제금융비 6억5천파운드도 포함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부 내의 ‘지속 가능한 에너지 위원회’는 재생이 가능한 동력, 특히 영국의 거대한 잠재적 풍력 자원에 더 많이 투자할 것을 주장해왔다. 원자력발전은 배출량 목표를 맞추는 면에서 실패한다며 반대했다. 그럼에도 2월, 정부는 폐기물을 줄이도록 하는 재생열 법안을 막았다. 이 법안은 폐기물을 줄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으며 위원회가 제안하는 프로젝트와 정확히 부합했다.
원자력쪽에 편향된 과학당국과 왕립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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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원자력발전에 대한 충격적인 발표 이후 후속타로 12군데의 원자력 폐기물 저장소를 공표하려 했다. 이것은 책임 있는 정보기관인 핵폐기물처리감시단체(NIREX)에 의해 알려졌는데, 1989년에도 여론이 무서워 비밀로 했던 사항이다. 셀라필드와 던리 발전소 두 군데는 이미 알려져 있다. 원자력 폐기물은 천문학적 비용과 위험성, 그리고 대중들의 극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여전히 매우 논쟁적인 문제다. 정부 위원회는 폐기물과 관련해 두 과학 고문에게 ‘아마추어적이다’ ‘관리상 심각한 문제가 있다’ ‘말해봤자 듣는 둥 마는 둥 한다’ 등의 비난을 들었다. 고문 중 한명인 케이스 베이버스톡은 이렇게 말했다 해서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영국은 차세대 발전에 대해서 결정을 해야 한다. 현재 영국의 12개 원자력발전소는 국가 전기량의 약 20%를 생산하고 있다. 이 중 하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화력발전소와 함께 2023년까지 폐기될 것이다. 어쨌든 현존하는 발전소들은 역할이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2020년까지는 풍력발전이나 다른 재생 가능 발전이 에너지 공급의 20%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원자력 지지자들은 이것을 평가절하하고 이런 식으로 하다가는 돈을 쏟아부어 투자하더라도 수요를 맞출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 과학 당국은 원자력에 과도한 애정을 보인다. 이런 원자력 지지에 붙은 사람들의 면면에 비하면 재생 가능 에너지 지지자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왕립협회 같은 명예기구는 원자력에서 재생 가능 투자가 필요하다고 요구해왔고, 항상 원자력쪽에 편향된 연구 결과를 발표해왔다. 정부의 주요 과학 고문인 데이비드 킹 경은 차세대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호감을 대중에게 피력했다. 그는 덧붙여서 앞으로 25년 동안 모든 종류의 발전소에 1600만조달러를 쓸 것인데 지금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원자력은 건설과 금융 분야와 연합 관계에 있다. 원자력에 관해서라면 영국군도 연구와 건설 분야의 게임에서 선두에 있기를 바랄 것이다.
기후 변화에 관한 G8에 대한 정부의 단언과 블레어의 강한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영국과 유럽은 배출물에 관한 교토협약의 목표를 만족시키지 못할 것이다. 3월에 환경론자가 경악할 만한 일이 벌어졌다. 유럽연합(EU)은 단기간 배출 기준 설정에서 물타기를 했고, 장기 목표는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합의하에 포기했다. 영국의 온실효과 가스 배출량은 2002년 이후 2.1% 상승했다. 옥세라는 영국이 2025년까지 자체적으로 설정한 더 엄격한 기준에 40~60% 못 미칠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구 온난화에 대한 위협은 새로운 원자력 프로그램을 정당화하고 환경적 반대를 극복하고, 결국은 가이아 주창자인 제임스 러브록 같은 환경론자의 지지를 끌어낼 주요한 쟁점으로 보인다. 어쨌든 ‘지구의 친구’ 같은 비판자들은 원자력발전 비율을 두배로 끌어올린다 하더라도 CO2의 배출량 감소는 8%에 그칠 것이라고 말한다. 영국은 해안가에서 포르투갈과의 협조하에 벌였던 조력발전 투자도 실패했다. 풍력 농장은 자연 경관을 해치고 소음이 발생하고 땅값이 떨어진다며 여론이 점점 돌아서고 있다.
국민은 여전히 ‘원자력 혐오’
원자력 지지자들은 ‘원자력 혐오증’이라 할 만한 강한 반대에 부딪힌다. 셀라필드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위험한 방사선 원료가 20t가량 누출됐다고 최근 발표됐다. 지금은 조업을 중단했지만 몇달 동안 방사선 누출을 눈치채지 못했다. 이것을 정화하기 위해서는 200만파운드 이상의 비용이 들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은 THORP 재생 프로젝트에 순풍으로 작용했다.
어쨌든 진정한 ‘예, 각하’의 정부는 핀란드가 2002년, 10년 만에 처음으로 유럽의 첫 번째 새로운 원자력발전소를 지은 것을 예로 들면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원자력 에너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프랑스는 이렇게 반문한다. 공급이 달릴 때는 원자력 지지자들이 “좋든 싫든 영국은 원자력에 의존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이지 않느냐고. 지금 분명한 것은 재생 가능 에너지와 에너지 보호에 대한 현명한 투자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에너지 공급과 배출량 목표, 둘 모두 실패할 것이 분명한 원자력 지지자들의 입씨름에 놀아나느라 시간만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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