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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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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을 고민에 빠뜨리고 가시다

등록 2005-04-13 00:00 수정 2020-05-03 04:24

가톨릭 세계화의 기수였던 요한 바오로 2세…종교적 전통이 다른 유럽에선 ‘사상의 자유’ 논란도

▣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로마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서거 이후 수백만명의 추모 인파가 바티칸을 찾고 있다.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은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 자리잡고 있다. 44ha의 면적과 900여명의 인구로 구성된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다. 교황이 국가의 수반이 되어 이끄는 교황군주제를 택하고 있는 바티칸은 이탈리아와 오랜 기간 영토 및 주권 분쟁을 한 이후 1929년부터 이탈리아 내에 위치한 공식적인 독립국이 되었다. 국가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바티칸은 유엔 가입국은 아니지만 ‘유엔상임 관찰국’이라는 특별한 위상을 지니고 있다. 다양한 종교·문화 단체들이 ‘비정부 기구’로 활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종교보다 가톨릭적 가치를 국제기구에 표명할 수 있는 남다른 기능을 부여받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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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 시대 ‘도덕성 강화’ 호소

바티칸은 유럽에서도 유럽연합에 가입한 나라는 아니지만 유럽상임위원회에서 미국이나 일본처럼 ‘관찰국’의 기능을 행사하고 있다. ‘교황청’이라는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전당이 종교 외 분야에서 대외적 영향력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바티칸의 대외적 영향력 행사권을 반대하는 움직임이 비정부기구(NGO)들을 중심으로 이어져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바티칸이 가지는 국가적 주권의 부당성을 지적하기도 한다. 어쨌든 국제무대에서 다원주의 외교를 펼치며 여러 국가와 활발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는 바티칸은 어느 국가 못지않은 대외적 주권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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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바티칸의 정부 통치기구인 교황청의 수반이다. 사임을 하지 않는 한 종신제로 군림한다. 요한 바오로 2세, 존 폴 2세, 장 폴 2세 등으로 불려진 선종한 교황의 본명은 ‘카롤 보이티와’ 로서 1920년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1978년 역대 교황들에 견줘 젊은 나이인 58살에 교황에 뽑혀 지금까지 교황청을 다스려왔다. 이탈리아 출신이 주로 교황으로 선출되던 전통적인 관례를 깨고 폴란드인으로는 처음으로 교황이 된 바오르 2세는 264대 교황으로 부임해 피우스 9세(1846∼78)에 이어 가장 오랫동안 가톨릭의 나라 바티칸에서 교황 자리를 지켜왔다. 투병 생활에도 불구하고 27년 동안 전세계 가톨릭인의 추앙을 받아온 요한 바오로 2세의 여정은 가톨릭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겁내지 마라! 예수로 향하는 모든 문들을 열어라”라고 취임사에서 외친 교황의 초심은 그 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교황은 모국인 폴란드뿐 아니라 공산화돼 있던 동유럽 국가들에 가톨릭 전통을 고수하고 되살리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동유럽뿐 아니라 남미나 아프리카, 아시아 등 정치 및 종교적 분란이 한창이던 나라들을 기꺼이 방문하고, 다양한 나라들의 수반을 접견하면서 바티칸의 외교력을 과시했다.

교황은 한국을 비롯해 130여개국을 찾았다. 역대 교황 가운데 가장 많은 나라들을 방문하고 가장 많이 해외여행을 한 활동적인 국가 원수였다. 활발한 대외 활동을 통해 급격히 변화하는 세계 판도에서 가톨릭을 더욱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으려는 야심을 펼쳤던 바오로 2세였다. 그래서 가톨릭 세계화의 기수로서 ‘세계주의자’로 불리기도 했다. 세계적으로 ‘가톨릭 부활시키기’가 취임 뒤 냉전 시대에 바오로 2세가 펼친 외교정책이었다면 세계화 시대에는 부활된 가톨릭의 ‘방향잡기’와 ‘도덕성 강화’ 기운을 북돋우며 보수적 가톨릭관을 드러냈다.

동성애·낙태 반대 고수해 비판 받기도

“국제적인 권리는 오랫동안 전쟁과 평화에 대한 권리였다. 이젠 정의와 연대에 기초해 특별히 평화권의 정립이 요청되는 바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도덕이 권리를 잉태해야만 한다. 도덕은 무엇이 타당하고 옳은 것인지, 권리의 방향을 예기하는 기능을 행사한다.” 교황은 도덕적이고 전통적인 교리를 중시하는 생활 방식을 국제사회에 널리 호소했다.

정의와 연대를 강조해 다른 종교나 사회 소외계층과의 대화를 시도하며 평화를 추구한 교황이었지만, 신만이 인간의 생명을 좌우할 수 있다는 교리로 ‘피임과 낙태’ 반대를 고수하고 안락사와 동성애를 강력히 반대하기도 했다. 이런 교황의 태도는 관련 이슈들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다양한 시민단체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나날이 개인적인 사안이 되고 있는 ‘성’과 ‘가족’의 문제인데다, 급격히 변화하는 현대에서 사회의 요구에 병행하지 못하고 극도의 전통적 보수성을 강조하는 로마 가톨릭이라는 비판을 들었다.

보수적 교황청의 목소리는 서유럽에서 소통의 어려움을 가장 크게 겪었다. 역사 속에서 신구교의 혈전을 겪었고 이후 종파가 나뉘어져 종교적 전통이 나라별로 다르게 발전했으며, 이젠 기독교뿐 아니라 다양한 종교 및 문화들이 공존하고 있는 서유럽이다. 다시 강력하게 부활하려는 로마 교황청의 의지에 대한 반응은 나라마다 각각 다르게 나타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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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서 종교 문제가 전례 없이 부각된 계기는 유럽헌법 제정을 전후해서다. 헌법에서 유럽의 전통문화적 정체성과 연관돼 토론된 이슈가 바로 종교 문제였다.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유럽의 기독교 전통을 강조하자는 움직임이 오래전부터 이어져오던 터다. 그러다가 2004년 유럽이 25개국으로 확장돼 폴란드를 비롯해 가톨릭 전통을 가진 동유럽 국가들이 많이 유럽에 합류하면서 유럽의 가톨릭은 의기양양해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런 기운에 실려 확장하는 유럽과 더불어 가톨릭 교회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은 바티칸의 주요 로비활동 중 하나가 되었다.

‘기독교 전통의 유럽’에 강력하게 맞서는 이념은 ‘비종교성’과 ‘사상의 자유’를 강조하는 ‘라이시테의 유럽’이다. ‘라이시테’란 국가가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면서 신앙 활동에 전적으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정교분리 정치사상이다. 그러나 유럽의 각 나라에서 나타나는 종교적 풍습이나 입장들도 천차만별이라 좀처럼 유럽의 동일한 입장을 천명하기가 힘든 대목이 바로 종교 분야기도 하다. 라이시테의 기수인 프랑스는 종교와 국가 사이의 오랜 알력의 역사 끝에 1905년 라이시테가 법제화돼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정교 분리뿐 아니라 공교육과 교회도 오래전에 분리시킨 전통적인 라이시테 국가다. 벨기에도 라이시테를 표명하지만 공권력이 종교단체의 재정 보조에 긴밀히 관여하고 있다. 스웨덴은 신교적 전통이 강하고, 국가와 교회의 관계가 불가분하게 이어져오다가 21세기 들어 새삼 라이시테를 공표했다.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 아일랜드 등은 국교를 따로 두고 있지는 않지만 교육이나 정책에서 가톨릭 전통을 긴밀히 이어오고 있다. 그리스는 아예 정교 분리의 큰 잡음 없이 그리스 정교로 국민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전수해오고 있다.

교회가 명기된 유럽헌법도 논란

이런 여건에서 △유럽연합은 회원국들의 교회와 협회들 또는 종교집단에 대해 국가적 권한에 의해 부여받는 위상을 편견 없이 존중한다 △비종교적 철학적 조직체들의 위상도 동등하게 존중한다 △그들의 정체성과 특수성을 인정하며, 교회와 단체들에 개방되고, 투명하고, 정기적인 대화를 유지해나간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유럽헌법 52항은 정교 분리를 주장하는 세력들의 적잖은 반감을 샀다. 교회를 특별히 명기하면서 구상되는 유럽헌법이 유럽 각 나라들의 다양한 사상과 문화에 중용적 태도를 권장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유럽과 교회의 유착이 재기되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에서다.

9·11 사태 이후 세계 곳곳에서 관찰되는 다양한 양상의 종교와 정치의 교착 현상이다. 여기에다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소설 <다빈치 코드>의 세계적 열광으로 전해지듯이 ‘허구와 종교적 진리’로 꾸려가는 상업적 열기도 보태지고 있다. 인종간의 비참한 학살이 이어졌던 20세기를 지나 21세기에는 전례 없이 종교와 도덕성이 부활되는 시대가 될 것이라는 석학들의 예견도 있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는 광신과 더불어 극도의 상업적 의지가 난무하는 이 혼란의 시대에 ‘진정한 신앙’이 무엇인지를 설파하고, 누구보다 도덕적 질서를 강조한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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