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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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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지브 간디의 ‘캄캄한 밤’

등록 2005-03-10 00:00 수정 2020-05-03 04:24

어머니 락스미를 쓰나미에 잃은 뒤 가족을 위해 모든 꿈을 접어버린 어느 소년의 이야기

▣ 타밀나두(인디아 남부)=사티야 시바라먼(Satya Sivaraman)/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다시 보름날이다. 양동이로 쏟아붓듯 인디아 남부 타밀나두 해안가 쿠다로어 지역의 무유쿠투라이 마을에 달빛이 쏟아진다. 바닷가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라지브 간디(18)는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돌무더기 위에 앉아 있다. 한때 가족들과 단란한 삶을 이어가던 그곳엔 이제 조그만 사당만 덩그러니 서 있다.

어머니, 왜 집에 가셨나요

깃발이 소리 없이 벽돌로 지어진 자그마한 사당 위로 펄럭인다. 주홍빛으로 테를 두른 흑백 사진이 벽돌로 만들어진 사당 안에 걸려 있고, 그 앞에 마른 꽃 몇 송이가 놓여 있다.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튿날 남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수마트라 지진해일이 휩쓸고 지나간 뒤, 그의 어머니 락스미(40)를 추억할 수 있는 것이라곤 고작해야 이곳뿐이다.

두달여 전 오늘 같은 밤, 막 저녁 식사를 마친 라지브는 마을 곁 벵골만쪽 바닷가로 낚시를 나갔다. 대대로 마을 주민들은 이곳에서 고기잡이를 해 생계를 꾸려왔다. 그날 아침 라지브는 일찌감치 참새우를 잔뜩 잡아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 어귀 시장에서 kg당 250루피(약 6천원)는 족히 받을 수 있는 탓에 이 지역 주민들은 참새우를 귀히 여긴다.

그의 어머니 락스미는 여느 날처럼 마을 어부들에게 생선을 사러 나간 터였다. 락스미는 사들인 생선을 이웃 마을을 돌며 되팔아 조금이나마 이문을 남겼다. 가족의 생계는 오롯이 그의 몫이었다.

라지브는 그 비극적인 아침을 고통스럽게 떠올렸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그는 자기가 잡아온 참새우도 함께 가지고 나가 팔라는 말을 전하기 위해 어머니 락스미를 찾아나섰다. “어머니가 집에만 돌아오시지 않았다면, 쓰나미가 덮쳤을 때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계셨을 거예요. 어머니는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겁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는 슬픔에 잠겨 라지브의 얼굴이 점점 어두워졌다.

사실 그날 락스미는 무유쿠투라이 마을을 강타한 첫 번째 쓰나미는 용케 피했다. 그는 남편과 아이들에게 어서 피하라고 말한 뒤 혼자서 집으로 돌아갔다. 두 번째 거대한 해일이 그를 덮쳤고, 짧은 삶 동안 늘상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행운의 여신은 그를 향해 웃어주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락스미의 주검이 발견됐다. 머리카락은 온통 가시덤불로 뒤엉켜 있었고, 같이 발견된 이웃 여성 4명과 마찬가지로 오른손으론 돈지갑을 꼭 쥐고 있는 채였다. 그는 어렵사리 번 돈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부랴부랴 집으로 되돌아갔다. 알루미늄 상자 안에 고이 숨겨뒀던 약간의 폐물과 현금을 지키려다 자기 목숨을 내놓고 만 것이다.

라지브는 어머니를 ‘암마’라고 불렀다. 타밀의 작은 어촌에서 태어난 아이에겐 어울리지 않게도 ‘라지브 간디’라는 거창한 이름을 지어준 것도 암마였다. 인디아 수상을 지낸 라지브 간디의 매력과 영예, 행운이 맏아들과 함께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억척스럽게 일만 할 줄 알았던 락스미는 자녀의 미래를 운명에 내맡기지 않았다. 그는 아이들이 최소한 초등학교까지는 마칠 수 있게끔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물론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루 종일 술을 마시고 락스미가 벌어오는 쥐꼬리만 한 돈까지 축냈던 남편 쳄반(45)은 도움은커녕 오히려 방해가 됐다. 어쩌다 한번씩 고기잡이를 나가 벌어오는 돈도 온통 남편 차지였다.

아버지 쳄반의 ‘이상한 짓’

맏딸 레기나(21)는 결혼을 해 쿠다로어 시내에 나가 살고 있다. 라지브는 5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지금껏 집에 있던 뗏목과 그물로 고기잡이에 나서 생계에 보탬이 돼왔다. 둘째딸 마헤스와리(15) 역시 학교를 중퇴하고는 집안 살림을 도우면서 결혼할 때만 기다리고 있다. 네 자녀 가운데 가장 똘똘한 막내 셀밤(8)은 성격이 명랑해서 락스미가 제일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는 막내에게 커서 도시에 나가 공무원이 되라고 귀가 따갑도록 일렀다.

이제 홀연히 떠나버린 락스미의 빈자리는 고스란히 라지브의 몫이 됐다. 셀밤의 교육도, 마헤스와리의 결혼도, 아버지의 음주벽도 그리고 그의 미래까지도….

“외국에 나가 일하고 싶었어요. 돈 많이 벌어서 어머니 호강도 시켜드릴 생각이었고요.” 라지브는 쓰나미가 들이닥치기 불과 한달 전에 발급받았던 여권을 복사해놓은 종잇조각을 보여줬다. 가족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들과 함께 그의 여권도 성난 물결이 앗아가버렸다.

이 지역 젊은이들 상당수는 이미 말레이시아나 싱가포르, 두바이 등지로 나가 농업이나 건설 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돌아온 이들은 엄청난 기회가 널려 있다는 얘기를 자랑 삼아 들려준다. 이제 가족의 암담한 상황에 막힌 라지브는 어디에도 갈 수 없다. 그는 벌써 가족을 위해 모든 꿈을 접어버리기로 결심을 굳혔다고 했다.

타밀나두 지방정부가 락스미의 사망위로 보상금으로 10만루피(약 240만원)를 내주긴 했다. 인디아 중앙정부도 비슷한 금액을 추가로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또 델리에서 온 시민단체가 마을 주민 전원에게 임시 거처도 지어줬고, 지방정부가 곧 영구주택을 지어줄 것이라는 소문도 떠돌고 있다.

그렇지만 갚아야 할 빚이 산더미다. 락스미가 장사 밑천으로 빌린 돈과 최근 새 고깃배와 그물을 사기 위해 빌린 돈을 갚아야 한다. 쓰나미로 고깃배가 파손됐고 그물은 사라져버렸지만, 한달에 25%까지 이자를 챙기는 고리대금업자들은 벌써부터 라지브의 집을 드나들며 “빨리 빚을 갚지 않으면 큰일 날 줄 알라”고 으르기 시작했다.

보상금으로 빚의 일부를 갚긴 했지만, 결혼을 준비하고 있는 마헤스와리의 지참금도 마련해야 한다. 쿠다로어 시내에 사는 예비 신랑감은 20만루피(약 480만원)를 요구하고 있다.

이렇게 많은 고민들도 모자라다는 듯 아버지 쳄반이 ‘이상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락스미의 사망위로 보상금을 한푼도 자녀에게 내놓으려 하지 않는 것이다. 라지브는 아버지가 재혼을 한 뒤 자식들을 내팽개칠 궁리를 한다고 믿고 있다.

“책임을 아버지와 나눠지는 게 순리겠죠. 그런데도 아버지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척합니다.” 이제는 체념한 듯 화도 내지 않으면서 라지브가 무심하게 말했다. 밤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지고 있었다. 그는 집에 돌아가기 전 마지막으로 한번 더 어머니 락스미의 사진을 들여다봤다.

바닷가 옛 마을터를 지나 새로 지은 임시 거처로 그는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쓰나미가 할퀴고 간 뒤 갑자기 들이닥친 슬픔의 무게 때문인지 어깨를 늘어뜨린 채, 지난 두달여 동안 나이보다 부쩍 성숙해버린 이 젊은 친구가 달빛을 따라 홀로 걸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미어졌다.

달빛 아래 가슴이 미어지는 그의 풍경

집이 가까워지자 라지브의 발걸음이 눈에 띄게 빨라진다. 분명 짐짓 즐거워 보이려고 애쓰는 눈치였다. 아무것도 모른 채 잠들어 있을 셈밤이나 저녁밥을 준비해놓고 오빠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을 마헤스와리를 떠올렸을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숨진 어머니 락스미의 생활력을 물려받았기 때문일 수도 있다. 락스미는 세상살이 40여년 동안 자기에게 들이닥친 모든 어려움과 맞서 싸웠으니까.

아니면 이 젊은이와 그가 감내해야 할 비극을 바라보면서도 내 그 잘나빠진 공허한 낙관론이 발동했기 때문일까? 끝없이 이어지는 불행에도 언제나 책임지기를 주저하고, 시간이 지나면 결국 내 삶에서 잊혀져버리기를 기대하면서 내가 전에도 보고 듣고 기록했던 수많은 슬픈 이야기들에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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