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국가적인 대할인 판매 시즌 돌아와… 노조는 노동조건 우려해 규제 움직임
▣ 파리= 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바야흐로 ‘솔드’(대할인 판매) 시즌이 돌아왔다. 겨울과 여름, 공식적으로 일년에 두 차례, 문자 그대로 ‘거행’되는 소비의 대축제인데, 프랑스의 겨울 솔드가 지난 1월12일부터 시작됐다. 프랑스인들의 60% 이상이 소비 경험을 하는 솔드다.
일찍 가야 횡재한다
20대 아가씨 퓨릭 마리는 솔드 첫날 아침 식사를 끝내기가 무섭게 파리의 한 백화점으로 향했다. 지난주에 눈여겨 봐두었던 신발과 옷들을 사기 위해서다. 솔드 첫날이라 아직은 할인율이 높지 않지만 맘에 드는 옷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면 솔드 첫날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조금 늦게 갔다간 팔려나가고 없을 수도 있고, 상품 선택의 여지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특히 마리는 프랑스 여성의 표준치인지라 수요 경쟁률이 높기도 하다. 마리의 극성은 솔드의 기회를 십분 활용하려는 이들에겐 꽤 널리 퍼져 있는 태도다. 그들은 솔드 첫날 상점들이 문을 열기 한참 전부터 밖에서 기다리다가 개장하자마자 쏜살같이 달려 원하는 상품이 있는 목적지로 향한다. 중고가 메이커 상품일수록 경쟁률이 높다. 빨리 도전할수록 좋은 물건을 살 확률이 크다.
솔드가 소비자들에겐 평소보다 싸게 다양한 물품들을 장만할 수 있는 기회라면, 판매자들에겐 가장 많은 판매량과 매출액을 올리는 기회다. 유별난 상점들은 솔드 첫날 자정부터 문을 열거나 평소 시간보다 훨씬 앞당겨 문을 열어 호객행위를 하기도 한다. “낮에 일하는 사람들도 솔드 첫날을 만끽할 수 있도록 한다”고 판매자들은 말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솔드가 소비전쟁의 이미지를 창출하는 데 기여한다.
솔드가 솔드로서 빛을 발하려면 일년 내내 간간이 이뤄지는 할인판매와 다른, 나름의 고유성을 가져야 한다. 공식적인 솔드는 까다로운 규정과 절차가 정해져 있으며, 경찰청이 공식 날짜를 발표해 일년에 겨울과 여름, 두 차례 전국적으로 실행된다. 판매 및 교환 규정이나 기간도 법이 정한다. 대개 4~6주 동안 지속되며, 할인율은 솔드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가격에 준해 적용된다.
거짓 솔드를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규정과 감시가 이뤄진다. 품목에 이전 가격을 명시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요구하는 경우 판매자는 이전 가격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도록 하고 있다. 솔드 기간을 특별히 겨냥해 대량으로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금지하기 위해 솔드 기간에 새롭게 등장하는 제품은 솔드 자격이 없다. 적어도 한달 이상은 가게에 출품되어 있던 상품과 재고상품에 한한다.
합법적인 솔드와 비합법적인 솔드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것도, 솔드의 고유성과 특수성을 강조해 진짜 소비의 축제가 되도록 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솔드는 전자제품, 의류, 내외장 품목 등 대부분의 소비상품에 걸쳐 행해진다. 품목에 따라 첫날부터 30~50%의 할인율을 적용하고 막판에 가면 70%까지 할인된다.
소비는 오늘날 국가들의 주요한 경제성장 요소라서, 솔드가 소비축제가 되도록 언론들도 한몫을 한다. “솔드 대축제” “드디어 솔드가 시작됐습니다” “프랑스 전체가 솔드를…” 등의 코멘트를 전하는 뉴스의 사회자는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축제 분위기를 북돋운다. 가게로 달려가는 사람들, 그날만을 기다렸다며 원하는 것을 사들고 만족해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솔드 첫날 뉴스를 타고 흐른다. 그걸 보고 있으면, 누군들 소비를 하고 싶지 않을까? 빨리 가보지 않으면 내가 먹고 싶고 갖고 싶은 것들이 모두 달아나버릴 것만 같은 탐스러운 공짜 축제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든다.
시기에 대한 논란은 계속돼
마치 “소비여! 늘어나라! 경제여! 건재하라!”는 구호처럼, 할인율이 숫자로 커다랗게 적혀 있는 솔드 상가는 소비자의 발길만큼의 성공률을 보장하는 소비사회를 건재하게 하는 방편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솔드가 확실한 소비축제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겨울 솔드는 크리스마스와 송년회가 있은 뒤에 이뤄지기 때문에 연말에 있는 일련의 소비와 겨울 솔드 기간 사이에 판매자들에게 일종의 공황상태가 생긴다. 하지만 이런 공황상태에도 장단점이 있다. 단점이라면 공황상태라는 그 자체이고, 장점이라면 소비자들의 소비를 자극하는 기간으로 십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솔드 광고는 솔드가 실시되기 한참 전부터 소비자들을 겨냥한다. 요즘엔 인터넷까지 한몫하고 있어서 솔드 분위기는 피할 수 없는 전염병처럼 소비자들에게 퍼져간다.
어차피 솔드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그 기간 동안 최대한의 소비가 이뤄져야 한다. 소비 증가와 솔드 개시일의 함수도 꽤 까다롭게 거론되고 있다. 대개 겨울 솔드는 1월 첫 수요일, 여름 솔드는 7월 첫 수요일에 행해지는데, 겨울은 너무 빠르고 여름은 너무 늦다는 게 상업주들의 견해다.
1월은 지난 연말 소비행사가 끝난 직후인지라 연말을 지나고 바로 이어지는 ‘빠른 솔드’는 소비자들에게 충분한 소비 갈증을 일으키지 못한다. 7월은 대대적인 바캉스가 시작되는 달이라서 바캉스 때문에 고객을 잃는다. ‘늦은 솔드’라는 설명이다. 이런 요구를 고려하고, 지난해 말의 동남아 해일 파동으로 인한 연초의 심리적 소비침체 현상을 감안해 올해 겨울 솔드는 평소보다 늦어져 두 번째 수요일에 시작된 것이다. 그러면 상업주들이 바라는 대로 또 국가 경제를 위해 최대의 소비를 창출하기 위해 모든 요소들을 총출동하면 어떨까.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소비와 판매만을 지향할 때 생겨나는 부작용들 때문이다.
솔드 첫날이 이렇듯 호황이라면 왜 모든 상점들이 자정이나 새벽에 문을 열지 않을까. 솔드 기간 내내 일요일마다 개장해서 소비자들을 불러들이면 안 될까라는 의문이 생긴다. 이는 상점 직원들의 특근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금도 한창 논란이 되고 있지만 주 35시간 근무제를 채택한 프랑스에서 노동시간과 근로조건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20세기 노동자들의 투쟁의 결실인 현 노동법에선 야근과 휴일 특근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상업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일요일 개장을 허용하고 있으나 몇 가지 예외적 업계를 빼고는 법적으로 일년에 다섯 차례의 일요일만 허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직원들이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받는데다 소비자들의 직접소비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상업계에선 좀더 벌기 위해 기꺼이 특근을 하려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문제는 특근이 필요한 직원들이 특근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업활동이 사회에 미칠 중장기적인 여파다.
소비에 소외된 계층의 박탈감
소비생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노동활동을 권장하는 경우 노동이 소비의 노예가 되는 역효과를 빚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잘 팔릴 때는 일이 늘고 안 팔리면 일이 줄어드는 그런 리듬에 의존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비정규직을 늘리고 노동권을 격하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게다가 일요 개장이 자연스럽게 되면 비즈니스 주간의 경쟁이 심해지고, 다른 직종에도 특근을 권장하는 파급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해 노조에서는 강경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 문제는 특히 경제 침체기였던 2003년에 사회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금은 직원들과 타협을 본 상업주들만이 실시하고 있다.
솔드와 소비자의 관계에서 꼭 필요한 품목들을 솔드 기간을 이용해 장만하는 것은 알뜰살림의 방편이지만, 평소보다 싸게 살 수 있는 솔드는 지나칠 정도로 소비욕구를 부추긴다. 단지 솔드라는 이유로 은행 잔고도 확인하지 않고 소비를 하거나, 소비중독증을 겪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런 현상들이 솔드의 부작용으로 언론에 소개되어 소비축제를 망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조용히 가정에서 불화를 겪거나 정신과 의사를 찾으면서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잉소비보다 대소비 축제의 유혹이 가장 힘든 계층은 모르긴 해도 소비에서 소외된 계층일 것이다. 소비자의 속사정이야 어떻든, 최대한의 소비를 부추기며 소비를 광고하고 권장하는 겨울 솔드, 그 물결이 거세지면 소비자 혼자라도 명심해야 할 경구가 있다. “소비의 남용은 건강을 해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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