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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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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진타오의 사상투쟁

등록 2004-12-23 00:00 수정 2020-05-03 04:23

전면에 내세운 ‘이데올로기 수호’ … 체제비판적 지식인들 강제구금 속 “언론은 당 대변해야”훈계

▣ 베이징= 글 · 사진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중국에 이데올로기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이 ‘이데올로기 수호’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대적인 사상 재정비 작업을 주문하고 나섰다. ‘작업’은 조용하게, 그러나 회오리 같은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최근 체제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당국에 의해 잇따라 구금됐는가 하면, 인터넷 언론을 포함해 각종 언론 매체에 대한 치밀한 검열 작업이 진행 중이다.

“언론은 사회 공기인가? 아니다”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언론은 사회의 공기가 아니라 당과 정부와 인민의 대변자”라는 ‘잊혀져가는’ 옛 명제를 다시 내세우며 “언론의 ‘사회공기론’은 사람들의 마음을 현혹하는 서구 자본주의의 허위적인 구호에 불과하다”고 쐐기를 박았다. 비판적인 이성과 사회 양심을 자처하는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들에게도 강력한 ‘경고’를 했다. 이들에게는 서구의 공공 지식인 흉내를 내며 국가와 사회의 안정을 해치는 위험한 세력들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중국 지식인은 마땅히 당과 국가와 사회의 이익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고 훈계한다. 이데올로기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중국 지식인들과 언론은 잠옷을 갈아입고 긴 겨울잠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12월13일을 전후해 미국의 와 그리고 홍콩의 등 주요 외신들은 중국 내에서 대표적인 체제 비판적 지식인으로 꼽히는 위제, 류샤오보, 장쭈화 등이 당국에 의해 갑작스럽게 구금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이들은 다음날 모두 풀려났다. 이들 세명 외에 지난 11월24일에는 중국 프리랜서 작가인 스타오가 산시 타이위안 자택에서 긴급 체포됐다. 중문작가필회(中文作家筆會) 발표에 따르면 그의 체포 이유는 ‘국가 기밀 누설’ 혐의다. 구금 하루 만에 풀려난 위제, 류샤오보, 장쭈화는 중국 내 대표적인 자유주의 지식인들로서 평소 인터넷에 정부의 정치개혁과 언론의 자유 등을 촉구하는 글을 써왔다. 특히 류샤오보와 장쭈화는 최근 중국 전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위 사태와 관련하여 ‘현 정세에 관한 긴급 호소’라는 일종의 ‘시국선언문’을 작성해 서명 작업을 주도한 지식인들이기도 하다.

당국의 갑작스러운 ‘공격’을 받은 사람은 이들뿐만이 아니다. 중국 내 유력지 가운데 하나인 경제 시사지 의 기자 왕광저는 지난 11월22일 미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해고를 당했다. 해고 사유는 ‘심사 불합격’이다. 그러나 진짜 해고 사유는 정치적 ‘괘씸죄’일 것이라고 중국 언론인들은 추측하고 있다. 왕광저는 11월 초 미국에서 열린 중국 매체 및 인터넷 관련 세미나에서 인터넷 시대에 뒤떨어진 중국 정치 체제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의 체포와 구금, 해고는 지난 11월 초부터 등 유력 공산당 기관지들을 통해서 사전 경고된 바 있다.

“언론은 사회 공기인가? 아니다. 언론은 당과 정부와 인민의 대변자다.” 지난 11월12일치 에 실린 ‘해방 논단’의 첫 문장이다. 는 상하이시 공산당 기관지다. “사람의 마음을 현혹케 하는 구호 ‘언론 공기론’에 대한 응답”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논단의 내용은 최근 사회 일부 지식인들과 언론인들이 서방의 허위적 구호인 ‘언론 공기론’을 내세우며 언론의 독립과 자유를 운운하는 것을 순진한 ‘착각’이라고 비판하면서 중국에서 언론은 어디까지나 당과 정부의 감독 아래 ‘대변인’ 노릇을 해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또 언론 감독은 “당이 언론을 감독”한다는 원칙을 견지해야지 ‘공기론’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고 일갈했다. 마지막으로 ‘논단’은 “이데올로기는 ‘절대로 타협하거나 양보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데올로기 영역에 문제가 발생하면 곧바로 사회 혼란을 몰고 오고 심지어는 정권 상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며 이러한 이데올로기 전선의 최전방에 있는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이 점을 명확하게 강조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공공지식인 50인에 공개적 경고

사흘 뒤인 11월15일, 는 이번에는 직접적으로 공공 지식인들을 겨냥하는 장문의 ‘논단’을 발표했다. “표상을 통해 실제 본질을 보자: 공공 지식인론 분석”이라는 제목이 붙은 이 글은 올 9월 이라는 잡지사에서 발표한 ‘중국에 영향을 미치는 공공 지식인 50인’ 선정을 언급하며, 이들 선정된 50인의 공공 지식인이 과연 당과 인민대중의 이익과 관계가 있는 지식인인지에 의문을 제기했다. 에서 선정한 50인의 중국 공공 지식인 가운데는 지난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발생 당시 외부에 최초로 중국의 사스 상황을 폭로한 장옌융 의사를 포함해 며칠 전에 구금됐던 자유주의 작가 류샤오보, 위제 등 정부 비판적인 지식인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논단’은 중국에서 지식인은 사회주의와 인민대중의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며, 공산당을 따르고 노동계급의 일부가 될 때만이 자신들의 재능을 충분하게 발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1월23일치 신문에서는 “이데올로기 공작 주도권을 확실히 장악하자”라는 사설을 발표했고, 11월25일치 신문에서는 의 공공 지식인 관련 논단 내용을 다시 실었다. 이어 12월6일치 에서는 인터넷에서 민심을 혼란시키거나 부정적인 여론을 조성하는 행위를 강력하게 단속하고 처벌하자는 내용을 담은 “인터넷에서 긍정적인 여론 흐름을 형성하자”라는 사설을 발표했다. 이 사설은 원래 11월12일치 에 실렸던 것을 그대로 다시 게재한 것이다. 이틀 뒤인 12월8일치 사설에서도 인터넷 여론과 인터넷 매체에 대한 감독 및 이데올로기 작업을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역시 12월15일치 기사를 통해 독립적인 지성과 사회 비판 기능을 주장하는 공공 지식인 사조를 경계해야 한다는 요지의 내용을 크게 실었다. 중앙선전부장 류윈산의 발언을 중심으로 유력 당 기관지들에서 지난 11월부터 줄기차게 ‘써내려오고’ 있는 기사들의 요지는 한마디로 ‘이데올로기 전선 이상 없나?’이다.

이들은 왜 다시 ‘이데올로기’를 외치는 것일까? 그것은 최근 후진타오 주석이 ‘이데올로기 수호’를 중국공산당 집권 능력의 기초로 제시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올해 9월19일 중국 공산당 제16기 4차 중앙위원회 전체회의 폐막회의 당시 후진타오 주석이 중앙위원들에게 중요하게 강조한 내용이다. 홍콩의 과 대만 에서 보도한 연설 내용은 이랬다. “언제부터인가 해외 적대 세력과 매체들이 우리나라 지도자들과 정치제도에 대해 제멋대로 공격을 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 언론들은 정치 체제 개혁이라는 명목 아래 서방 자산 계급의 의회민주와 인권, 언론의 자유를 선전하고 있고 자산 계급 자유화 관점을 유포하고 있다. 이러한 오류에 대해 절대로 우유부단하게 대처해서는 안 되며, 언론과 여론 감독을 더욱 강화해 잘못된 사상을 제공하는 통로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미국 등 국제 독점자본의 옛 소련 해체의 주요한 수단은 이데올로기 장악이었다. 고르바초프는 옛 소련과 동구 몰락을 가져온 원흉이며 사회주의의 배신자이지 절대로 공신이 아니다. 바로 그가 제창한 개방화와 다원화가 소련과 소련 인민의 사상을 혼란으로 몰아넣었고, 그가 주도한 ‘서방화’와 ‘자산 계급 자유화’ 물결의 충격 속에서 해체됐다.”

인민들의 사상이 더 물들기 전에…

장쭈화 등 지식인들이 만든 ‘긴급호소문’에 따르면 후진타오가 이 발언을 하고 있던 9월 티베트 자치구와 톈진시를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시위와 소요들이 끊임없이 발생했다. 참가 인원만 300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10월과 11월 들어서는 시위 규모와 양상이 더욱 심각해졌고, 심지어 관민이 충돌해 대규모 유혈 사태까지 빚어졌다. 후진타오는 최근 이같은 일련의 사태를 바로 ‘이데올로기 장악’의 실패로 파악하고 있다. 그래서 미리 언론과 지식인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 하는 것이다. 인민들의 사상이 더 물들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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