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독립 뒤에도 친불정권 유지한 코트디부아르, 경제난과 함께 내전과 반프랑스 운동 일어 </font>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지난 11월11일 파리에서는 코트디부아르의 분쟁을 염려하는 시위가 두 군데서 열렸다. 프랑스 거주 이부아르인들이 주축이 되어, 그바그보 대통령을 찬성하느냐 반대하느냐는 의견으로 나뉘어 각각 개선문과 에펠탑 근처에서 벌인 시위다.
“시라크의 신식민주의 정책에 함께 대항하자!”는 슬로건이 ‘찬그바그보’ 진영에서 휘날리는가 하면, ‘반그바그보’ 진영에서는 “그바그보를 추방하고 코트디부아르에 평화를 구축하자”는 구호를 외쳤다. 2002년 가을부터 심화되기 시작해 내란의 기운까지 띠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코트디부아르의 상황이 심상치 않다.
80년대 들어 자원고갈 심화
혹자는 코트디부아르 분쟁 사태를 ‘프랑스의 이라크’라고 부를 정도로, 프랑스는 코트디부아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1842년 프랑스가 점령한 코트디부아르는 1889년 ‘보호령’이 되었다가 이내 ‘식민지’로 바뀌었고, 1960년에 독립했다. 프랑스 문화·언어권에 깊숙이 자리한 채 전쟁이 아닌 협상으로 독립을 쟁취한 코트디부아르에서 초대 대통령으로 식민정부 시절 총리를 역임한 펠릭스 우푸에 부아니가 등극했다. 그 뒤 부아니는 1990년 대선까지 6차례에 걸쳐 재선되었고, 1993년 88살의 나이로 사망할 때까지 대통령 자리를 지켰다.
독립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방위와 군사협약을 맺은 프랑스는 친불정권 부아니의 협조 아래 코트디부아르의 방위와 정치, 경제에 견고한 자리를 지켜나간다. 독립 코트디부아르 경제에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종목이 카카오, 커피, 목화, 목재 등이다. 식민지 시절 재배가 시작되어 본격화되었고, 독립 뒤에는 세계시장을 겨냥하면서 코트디부아르의 경제를 살찌워갔다. 그 가운데 카카오는 세계 총생산량의 43%를 담당하며 세계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다.
부아니 정권은 신생 독립국에서 흔히 발생하는 내부 분열을 저지한 채, 주변 국가들로부터 노동이민을 장려하면서까지 1차산업을 권장해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뤘다. 남쪽의 기독교(33%), 북쪽의 이슬람(39%) 등으로 분포되어 총 60개가 넘는 종족들이 섞여 있는 나라임을 고려하면 결코 쉽지 않았을 경제기반 융화작업이었다. 독립 뒤 20여년간 이어진 경제성장은 ‘기적’으로 불리며 주변국들의 부러움을 샀고, 아프리카 지역에서 보기 드문 부흥과 안정 속에서 독재자 부아니는 ‘아프리카의 현인’으로 칭송되었다.
이렇게 탈식민지 기간 동안 후기 식민주의를 자연스럽게 심을 수 있었던 프랑스는 코트디부아르의 다양한 경제시장을 독점했고, 동시에 코트디부아르는 프랑스 후기 식민주의의 대표적인 모범국으로 성장했다. 1999년 대대적으로 사기업 시장이 개방되었지만, 물·전기·금융·건설·교통·통신 등 다양한 분야에 진출해 있는 현지 프랑스 기업들은 전체의 4분의 1을 차지해 내내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독립 이후 20여년간 지속된 1차산업의 발전으로 나라 전체가 부를 맛볼 수 있었지만, 1980년대 접어들어 자원고갈이 심화되면서 점차 경제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연간 45만ha씩 파괴된 열대림의 경우 독립 뒤 40여년간 10배나 줄어들 만큼 다양한 자연자원들이 거의 약탈 수준으로 고갈돼갔다. 그간 서로 나서서 투자했던 국제은행들은 경제침체를 이유로 환불을 요구했고, 이와 함께 코트디부아르는 세계은행과 국제금융기구의 덫에 서서히 갇혀갔다. 2000년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에만 158억달러의 빚을 지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1993년 부아니의 사망으로 초래된 정치 변화는 경제위기를 심화했다.
이부아르인 정체성, 새로운 증오 논리
부아니의 사망 이후 현 대통령 그바그보가 선출되는 2000년까지 쿠테타를 비롯한 권력분쟁이 지속되면서 새롭게 부각된 이념이 ‘이부아르인으로서의 정체성’이다. 즉, “누가 진짜 이부아르인인가”라는 논란이다. 부아니 시절 세계화 시장정책과 이주정책에 힘입어 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외국인 출신인 나라에서 거론되기엔 새삼스런 논란이 아닐 수 없다.
2000년, 남서부 기독교 진영 출신 그바그보가 대선 출마 때 내놓은 이념도 바로 이 ‘정체성’이다. 부모 한쪽만이 아닌 양 부모 모두 이부아르인이어야 대선 후보자가 될 수 있다는 논리다. 북쪽 지역을 대표해 전 총리였던 막강한 후보 ‘우타라’가 자격 미달로 후보에서 탈락했다. 자원고갈로 국가 수입이 줄어들고, 청년실업률이 늘면서 사회 내 종족간 혹은 종교간 알력과 증오가 짙어가는 와중에 나온 ‘정체성’ 문제는 곧 ‘인종차별’ 논리로 비약되었다. 정치인 출신이자 복음주의 기독교의 열렬한 신자인 그바그보의 아내 시몬 그바그보의 인종차별적 이념 주입 활약상이 널리 언급되는 가운데 현 정권의 텃밭이며 상대적으로 부강한 남부 진영의 기득권 누리기와 인종차별 정책 및 범죄가 나날이 늘어났다. 더불어 종족간 충돌과 학대가 잦아지며 안보는 더 불안전해졌다.
이런 상태에서 2002년 가을, 중부와 북쪽 지역을 반군이 점령하면서 내란 위협이 더해갔다. 코트디부아르 애국운동(MPCI) 단체를 주축으로 이웃나라인 부르키나파소에서 훈련된 반군이다. 때문에 내전뿐 아니라 근접 국가들간의 전쟁 기운까지 풍기게 된 상태였다. 이에 지역 안보를 도모하고 프랑스인과 서양인들의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프랑스군이 출두했다. 남·북부군 모두에게 사격 중단을 요구했지만 좀처럼 중단되지 않은 채 곳곳에서 충돌이 일어났고, 이웃나라로 피난가는 난민들도 늘어갔다.
코트디부아르는 과연 제2의 르완다가 되는가. 이런 우려 속에 프랑스의 노력으로 2003년 유엔과 아프리카 국가 수반 및 코트디부아르 반군들이 함께 자리한 가운데 파리에서 ‘리나스 마르쿠시스’ 평화조약이 체결되었다. 하지만 프랑스의 중재 역할은 남부와 북부군 어느 쪽에도 호응을 받지 못했다. 현 정권인 남부군에서는 나라의 안전을 도모하겠다던 프랑스가 애초의 약속과는 달리 외부의 원조를 받고 있는 반군의 침입을 몰아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감을 표시했다. 그리고 북쪽 반군은 “남쪽 진출을 저지하면서 인종차별 정책을 펴는 현 정권을 돕는다”며 반감을 표시했다.
안티 프랑스는 그바그보 진영에서 더욱 강해졌다. 증오의 대상이 반군에서 프랑스로 이전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바그보 자신도 북부 반군의 진압을 위해 워싱턴쪽의 개입을 간간이 외쳐왔다. 안티 프랑스를 의도적으로 표시한 대표적인 단체로 ‘젊은 애국자들’이 있다. 그바그보 진영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젊은이들 단체로 람보 스타일 차림새로 프랑스에 대한 반감을 거리에서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프랑스 대신 미국을 외치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돼가던 가운데 11월6일 중부 도시 부아케에서 남부 정부군의 항공기 공격으로 프랑스군 9명이 사망하고 34명이 부상당했다. 이내 이뤄진 프랑스군의 반격으로 총 63명의 사망자를 냈다고 정부군이 전하고 있다. 그 결과 안티 프랑스의 외침은 강도를 더해 현지 프랑스 주민들을 대상으로 강행된 화재, 강탈, 강간 행위가 극에 달했다. 그 뒤 11월10일에서 15일까지 닷새 동안 모두 13만여명의 프랑스 주민들 가운데 5천여명이 급하게 귀국하는 사태를 빚으며 코트디부아르는 내전뿐 아니라 프랑스 관계에서도 초긴장 상태를 자아냈다.
내년 가을 대선 이후 어떻게 될까
11월15일 프랑스쪽 제안에 따라 코트디부아르로 향하는 모든 무기에 대한 봉쇄 조처가 유엔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스라엘쪽에서 무기를 보급받아온 것으로 알려진 그바그보쪽도 이 결의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코트디부아르 사태는 잠시나마 소강상태에 접어든 듯하다. 그러나 내년 가을 대선을 앞두고 이런 상태가 지속될지는 불투명해 보인다. 정부군과 반군에게 무기를 판매하고 있는 국제적인 배후세력에 대한 의심이 강하게 일고 있는 가운데, 앞으로 코트디부아르 사태의 진전 상황은 신식민주의의 장이 되고 있는 아프리카 대륙의 판도 변화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신식민주의와 세계화의 물결에 마구 흔들리며 커져만 가는 종족간 증오의 비극은 우리에게도 경종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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