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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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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혁명, 나의 돈…

등록 2004-11-19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라파트의 부인 수하 알 타윌은 누구인가… 파리에서 호화생활, 임시 지도부에 독설 퍼부어

▣ 파리=이선주 전문위원 nowar@tiscali.fr

“나는 혁명과 결혼했다.”

아라파트보다 34살 아래인 수하 알 타윌(41)은 아라파트와의 결혼생활을 종종 이렇게 표현했다. 수하는 은행가인 아버지와 유명한 신문기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부르주아 출신이다. 프랑스 소르본대학 유학 시절이었던 1989년 프랑스에서 아라파트를 처음 만났다. 이 인연으로 1990년 비밀리에 결혼했다. 당시 아라파트는 튀니지에서 망명생활 중이었다. 이런 생활 탓에 수하는 아라파트와의 결혼을 혁명과 결혼한 것으로 여긴 셈이다. 크리스천이었던 그는 결혼 뒤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등 성의를 보이기도 했으나, 팔레스타인 국민들에게 별다른 호응을 얻지 못했다. 오슬로 조약의 결실로, 1994년 아라파트가 팔레스타인 서부 지역인 가자지구로 복귀해 생활할 때도 이슬람 예식대로 머릿수건 쓰기를 거부한 채, 화려하게 치장하고 고급 자가용을 타고 다니면서 국민들의 눈총을 샀다.

돈과 권력을 위한 정략결혼?

아라파트와 수하 사이엔 9살 난 외동딸 ‘자흐와’가 있다. 1995년 딸의 출산을 위해 파리로 떠나면서 팔레스타인 병원의 위생 문제를 거론해 또 한번 세간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2000년 두 번째 인티파다가 시작되면서 파리로 옮겨 생활해왔다. 그러나 그의 화려한 파리 생활과 엄청난 생활비가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분노를 샀다. 2002년 7월에서 2003년 7월까지 수하 명의의 파리 계좌들에 1150만달러에 달하는 금액이 입금된 것으로 알려져, 파리 검찰청이 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이외에도 정기 혹은 비정기적으로 송금을 받아왔다. 주로 이스라엘 언론들에서 터져나오는 아라파트의 비자금 유출 소문에서 수하는 중심인물로 자리잡고 있었다. 아라파트와 수하의 결혼은 수하의 어머니이자 유명한 신문기자이며 현재 파리에서 수하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라몬다 타윌’에 의해 이뤄진 정략결혼이라는 소문까지 민중들에겐 공공연한 사실처럼 퍼져 있는 형편이다. 그래서 사랑이 아닌 돈과 권력을 위해 결혼한 수하라는 이미지가 팔레스타인 국민들의 머리에 널리 박혀 있다.

그런가 하면 가끔씩 공식석상에서 깜짝 연설을 해서 아라파트를 난처하게 만들기도 했다. 2002년 나날이 심해지고 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스라엘 자살폭탄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아라파트가 ‘무고한 시민을 향한 모든 테러행위 처단’을 외치던 때, “내게 만일 아들이 있으면 팔레스타인을 위해 바치겠다”는 발언을 해서 이스라엘 언론의 거친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수하는 중동 전체에서 미운 오리로 취급받고 있는 셈이다.

그런 수하가 지난 10월 아라파트의 병세가 악화되자 4년 만에 팔레스타인을 방문해 아라파트를 파리로 데려왔다. 수하는 에 직접 전화를 걸어 자치정부 지도자들이 병원을 방문하려 하자 “아라파트를 생매장하려 한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발언은 팔레스타인 국민들로부터 오히려 분노를 샀다. 아라파트는 수하의 한 남편이기 전에 팔레스타인의 아버지라는 주장이다. 팔레스타인 정부 소속 한 보좌관은 “아라파트는 어느 가족의 소유물이 아니라, 팔레스타인 국민 모두의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방송 이후 그들의 분노를 표시하기 위해 거리로 쏟아져나와 시위를 벌였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반응도 이와 유사했다. 아라파트가 죽음의 고비를 수없이 넘기며 거의 감금되다시피 지냈던 지난 세월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으며 화려한 생활을 하다가, 이제 거의 주검이 돼버린 아라파트를 두고 부인 행세를 하려 한다는 혹평이 쏟아져나왔다. 이렇듯 국내 분위기는 수하가 아라파트 이후 권력 이양에 영향력을 미치기엔 거의 불가능하다.

지원금 사용에는 영향 미칠 것

그러나 그가 아라파트가 관리했던 팔레스타인 지원금 사용에는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견해는 많다. 팔레스타인 지원금은 주로 아랍 세계에서 들어오는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보조금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보조금으로 유입되는 유럽을 비롯한 국제기구기금과 헌금 등을 일컫는다.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원금으로 8억9760만달러 정도가 팔레스타인 정부 계좌에 들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자금들은 다양한 용도를 가정해 여러 개의 비밀 계좌로 흩어져 있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특유의 카리스마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개인 행적에 힘입어 권력 분립을 꺼렸던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지원금의 대부분도 전적으로 혼자서 관리하며 다양한 팔레스타인 기구들을 지원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 가운데 아라파트 측근 자치행정부원들의 부정부패 문제가 최근 자주 이스라엘의 언론을 타고 있어 민중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4년간 계속되고 있는 2차 민중봉기, 즉 인티파다의 영향으로 나날이 악화되고 있는 팔레스타인 경제와 고위 간부들의 부정부패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도 나날이 늘어가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부정부패 척결’과 ‘권력 분립’을 원하는 움직임들도 부쩍 늘어났다. 이렇게 변화를 원하는 팔레스타인이었지만, 끝까지 자기 식으로 이끌어오던 아라파트였다. 그는 지난 10년간 8억달러를 개인 계좌에 넣어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그가 관리한 계좌들의 비밀번호를 알고 있는 사람도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따라서 그의 죽음으로 그 많은 돈들이 영원히 은행계좌에 묶여 있게 될지 모른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그의 파리 체류 2주간 행적들도 베일에 싸여 있다.

점령국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위해 평생을 바쳐온 야세르 아라파트는 이제 영원한 자유인이 되었다. 10월 말 갑자기 건강 상태가 급격히 악화되자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특별히 그를 프랑스에서 치료받도록 허용했다. 프랑스 군병원에서 2주 동안 생과 사를 오가다가 11월11일 ‘공식적으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사망으로 중동 사태는 바야흐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번 아라파트의 프랑스 행차 때 국제사회는 “필요한 치료를 받고 빠른 쾌유를 바란다”는 한목소리를 냈다. 지난 봄, 미사일 폭격으로 아라파트의 목숨까지 위협했던 이스라엘의 아리엘 샤론 총리도 쾌유를 기원했다. 무엇보다 중동 사태에 아라파트의 부재와 사망이 가져올 부정적 여파에 대한 우려가 강했다. 다들 갑작스런 변화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프랑스 체류 2주 동안 아라파트는 호전, 악화, 혼수상태, 의식불명 소식들 사이에 간간이 양념처럼 곁들여지던 사망 소식, 그러다 결국 공식적인 사망 선언이 나왔다. 프랑스 법에 따라 그의 부인 수하 아라파트에게 최종적인 뇌사 결정권이 맡겨진 상태라 2주간 아라파트의 생명은 사실상 수하의 손에 달려 있었다. 수하는 11월7일 팔레스타인 국민들에게 아랍방송국 를 통해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이 메시지는 세계 언론의 주요 지면을 장식했다.

그의 다음 행보에 관심 집중

“아부 아마르(남편)은 잘 견디고 있으며 곧 (팔레스타인으로) 귀국할 것이다. 그런데 (자치정부의 지도자) 아바스, 쿠레이가 권력을 탐내 아라파트를 생매장하려 한다.” ‘아부 아마르’는 아라파트의 게릴라 이름이며, 11월8일로 예정된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거물급 인사들의 파리 방문을 저지하기 위한 독설이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수반인 아라파트 사망 이후, 정권 이양과 팔레스타인 국내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도 시급했던 거물급 인사들의 아라파트 접견을 수하는 막으려 한 것이다.

아라파트의 사망 직전 임시 지도부에 독설을 퍼부었던 수하 여사는 11월12일 오후(현지 시각) 요르단강 서안 라말라의 자치정부 청사(무카타)에서 열린 안장식에는 참석하지 않았지만, 세계의 이목은 이제 그의 다음 행보에 집중되고 있다. 이날 오전 카이로에서 치러진 공식 장례식에서 수하 여사와 딸 자흐와는 두 뺨에 굵은 눈물을 흘리며 아라파트를 영원히 떠나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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