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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왕 | 부탄] 야만의 왕, 숲을 청소하시다

등록 2004-11-18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시아 네트워크]

전국민의 7분의 1에 이르는 비드룩팍스 인종을 삼림보호지역에서 쫓아낸 지그메 싱예 왕추크 왕

▣ 델리=프라풀 비드와이(Praful Bidwai)/ 전 편집장·핵 전문 칼럼니스트

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조류학 보고로, 또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유산이기도 한 인디아의 바랏푸르 조류보호지역에는 커다란 돌 장식이 하나 서 있다. 그 돌을 장식한 동판에는 그곳을 방문하는 영국 식민주의 관리들이 마음껏 사냥을 할 수 있도록 접대했다는 사실들이 기록돼 있다. 그렇게 시작된 인디아의 부도덕한 ‘사냥쾌감’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인디아 봉건제도의 가장 추악한 얼굴 가운데 하나다.

사냥꾼들의 변신, 그 기묘한 역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그 ‘사냥꾼’ 지배자들의 후손 가운데 열렬한 자연보존주의자들이 생겨났다. 150년 영국 지배 아래서 살아남은 500여 왕후들은 자신들 지역에서 야생동물 사냥 권리를 지닌다는 조건을 내걸고 독립국가 인디아와 손을 잡았다. 비록 그런 특권들이 1969년에야 폐지되긴 했지만.

그로부터 전 봉건주의자들은 ‘그린’(Green)으로 전환을 결심하면서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이들의 전환은 기묘한 역설이었다. 그이들은 자신들이 짐승과 새를 사랑하는 이들이라는 자부심을 강조했다. “야생동물을 사랑했기에 야생동물을 쏘았다”에서 “야생동물을 사랑하기에 야생동물을 보호한다”로 잽싸게 구호를 바꿔들었다.

그런 인디아판 봉건적 역설을 부탄 왕국이 보여왔다. 이상향 샹그릴라(Shangri-La)로 여겨져온 인구 70만명의 소국 부탄은 60%가 숲으로 덮인 세계에서 가장 푸른 나라다. 그 부탄을 지배하는 지그메 싱예 왕추크(Jigme Singpe Wangchuk)왕은 서방 세계로부터 ‘위대한 환경주의자’란 칭호를 얻었다.

부탄은 남아시아의 다우림과 북아시아의 고산 초원성 그리고 히말라야산맥이 교차하는 지역으로 거대한 생물학적 3층대를 이뤄 매우 다양한 종(種)들이 군집한 곳이다.

그런 부탄은 세계은행(World Bank)으로부터 세계 최고의 보존프로그램 재정 지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국가총생산의 15%가 산림자원에서 나오는 부탄은 1981∼91년에 12%에 이르는 산림지를 잃어버리면서 ‘산림 보호’와 ‘국세 창출’ 사이에서 모순을 일으켰다. 그사이 보호지역과 주민들 사이에도 긴장감이 높아져버렸다. 산림에서 쫓겨난 주민들, 산림지역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주민들에게 그 보호지역은 대물려 살아온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위대한 환경주의자의 위선

부탄은 그런 사회적 긴장 속에서 인종 단층선이 동시에 불거져나왔다. 왕추크왕 계통인 불교계 지배세력 드룩파스(Drukpas)와 비불교계 네팔인들과 닮은 비드룩파스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그러자 왕추크왕 정부는 비드룩파스인 소수 인종에 대해 야만적인 탄압을 가하기 시작했다. 왕추크왕은 드룩파스 말과 전통과 의상을 강요하면서 26%에 이르는 산림보호지역에서 소수 인종들을 쫓아내고 말았다. 그렇게 해서 부탄 정부는 적어도 전국민의 7분의 1에 이르는 사람들을 외국으로 쫓아내면서 세계 최대 자국민 추방국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왕추크왕이 지닌 인자한 이미지는 평화적인 불국토 히말라야의 이상향이라는 부탄의 이미지와 어긋났고, 왕추크왕이 지닌 위대한 환경주의자라는 이미지도 자신이 마나스 보존지역에서 사냥을 즐기면서 스스로 깨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남아시아의 ‘봉건적 보존주의’는 참으로 기묘한 지배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며 시민을 먹이감 삼아 생존하는 괴물들의 정신적 자양분이 되고 있다. 부탄의 산림이 살아 있는 한 세계적인 환경보호주의자, 인자한 왕추크왕도 영생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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