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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darkblue">왕실 가족 8명을 살해하고도 혼수상태서 왕위직 계승했던 디펜드라, 마오반군들에게 힘을 주다 </font>
▣ 카트만두=쿤다 딕시트(Kunda Dixit)/ 발행인
2001년 6월1일 오후, 네팔의 왕세자 디펜드라(Dipendra)는 상을 주기 위해 한 스포츠 행사에 참석했다. 얼마 뒤, 짙은 색안경에 뭔가 달아 있는 표정을 한 그이는 검은 리무진을 손수 몰고 가버렸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사진기자는 왕세자가 재킷 속 어깨에 자동권총을 차고 있는 사진을 찍었음을 회상했다.
4일 동안 3명의 왕이 거쳐간 진기록
그날 밤, 왕세자는 모든 왕실 가족들을 카트만두에 있는 그의 자택인 나라얀히티 왕궁으로 초대해서 중대한 발표를 할 것임을 암시했다. 그리고 왕세자는 가장 애호하는 위스키 로열 그라우스 두잔을 마신 채 사촌들과 수영장에서 놀았다. 7시30분경, 그의 아버지 비렌드라(Birendra)왕과 어머니 아이쉬와르야(Aishwarya) 왕비가 도착했다. 이어서 왕세자는 그의 방으로 올라가서 전투복을 입고 레이저 유도용 9mm 소형 경기관총(MP-5K), 5.56mm 소총(M-16) 그리고 프랑스제 엽총을 차고 나타났다. 먼저 왕세자는 아버지인 왕을 쏘아 중상을 입힌 뒤, 잠시 방을 떠났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왕을 비롯한 모든 이에게 탄창의 총알이 거덜날 때까지 무차별 발포했다. 그 결과 왕실 가족 8명이 죽었고 6명이 중상을 입었다.
끝으로 왕세자는 이탈리아제 권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쏘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냉혈한 왕세자가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삼촌을 비롯해 숙모 셋을 살해한 이 가공할 사건은 네팔뿐만 아니라 온 세상을 놀라게 했다. 그건 국왕 시해였고, 아버지 살해였고, 어머니 살해였고, 형제 살해였고, 친족 살해였고 그리고 자살까지 포함해서 모든 범죄가 한 인물에 의해 저질러진 사건이었다. 그로부터 그 살해자인 왕세자는 자신이 쏜 총알이 자신의 뇌를 뚫고 지나가며 혼수상태에 빠져 있던 4일간 왕실법에 따라 명백하게 왕위를 계승했다. 4일 뒤 그가 죽었을 때, 비렌드라왕의 아우인 갸넨드라(Gyanendra)가 왕위를 계승하면서 네팔에서는 단 4일 동안 3명의 왕이 거쳐가는 진기록이 세워졌다. 그리고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미국 대통령 케네디와 다이애나 황태자비가 죽었을 때처럼 네팔에서도 왕실 살해에 대한 ‘음모론’이 끊이지 않고 있다.
네팔의 수많은 시민은 대법원장이 주도한 정부의 공식 조사 발표를 결코 믿지 않았다. 시민들은 아직도 갸넨드라 새 국왕의 가족이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불가사의로 여겨 진실을 찾고 있다. 대부분의 목격자들이나 진실을 쫓고 있는 기자들 사이에도 누가 그들을 살해했는지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왕세자가 왜 그들을 살해했는지에는 여전히 의견 차이가 있다. 살해 동기로 드러난 셋 가운데 하나는 왕세자 디펜드라의 알코올·마약 중독설이고, 다른 하나는 데비야니 라나(Deviyani Rana)라는 약혼자를 놓고 아버지와 벌인 마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버지와의 정치적 견해 차이다.
네팔인들은 나쁜 소식을 파고들거나 불쾌한 대화를 하지 않는 본성을 지녔다. 게다가 네팔 사회 내부에는 그런 문제뿐만 아니라 빈곤과 실업에다 유독성 폭동이 판치고 있다 보니 망각이 속도가 더 빨라졌다.
반군과 국왕의 권력투쟁
군주제 타도와 중국식 인민공화국 건설을 외치며 1996년 무장 봉기한 네팔의 마오이스트 반군들에게 왕실 살해는 혁명을 가속하는 도구가 되었다. 반군들은 국왕 살해를 최대 이점으로 활용하며 지난 3년 동안 새 국왕과 정부의 합법성에 심각한 도전을 해왔다. 이 전쟁의 결론은 이제 명백하다. 반군과 국왕의 권력투쟁이다. 따라서 두 권력투쟁 당사자가 협상하지 않는 한, 네팔의 민주주의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을 것이며 전쟁은 끝없는 장기전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피해는 고스란히 시민들 몫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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